우리들의 만남
책과 사람
'십자가가 사라진 현대교회'의 저자 조록형 목사
목사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남을 갖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목사님이 『십자가가 사라진 현대교회』를 출간하였는데, 이 책과 관련하여 나눔을 가지고자 합니다.
1. 우선 목사님이 스스로 밝히신 것처럼 뒤늦게 신학을 하시고 목사님이 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어떤 일을 하시다가 목회자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는지요?
네, 그렇습니다. 저는 시드니 온누리교회에서 장로로 섬기던 중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으며, 이후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사실 1970년대 말, 제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시절에 담임목사님께서 교단 신학교에 진학해 신학을 공부해보라고 권유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특별한 소명의 확신이 없었기에 계산통계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지요. 대학을 졸업한 뒤 대기업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입사하면서 IT(Information Technology) 분야에서 개발 업무를 담당했고, 그 후 약 40여 년 동안 그 분야의 전문가로 종사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늘 설명하기 어려운 영적 부담감과 부르심의 울림이 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마도 그 시절이 이미 하나님께서 제 마음속에 부르심의 씨앗을 심어 주신 때였던 것 같습니다. 이후 저는 시드니 온누리교회에서 오랫동안 일대일 제자양육 사역에 헌신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제게 가르침의 은사를 주셨다고 격려해 주셨고, 저 역시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 속에서 가장 큰 기쁨과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때 저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소명”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신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박사 과정까지 마치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신학을 공부하던 그 시절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충만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하나님께서 저를 목회의 길로 인도하신 은혜의 여정이었다고 고백합니다.

2. 목사님은 지금 호주에서 사역하고 계십니다. 호주는 어떻게 가시게 되었고, 지금 그곳에서 하시는 사역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요?
1980년대 후반, 제가 금호그룹에서 IT 업무를 담당하던 중 우연히 『호주로 가는 길』이라는 소책자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호주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컴퓨터 기술이민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게 특별한 비전이나 거창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외국 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컴퓨터 분야를 더 깊이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민이 허락되었고, 시드니에 도착한 지 3개월 만에 일본계 회사인 후지쯔(Fujitsu)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뉴사우스웨일스 대학교(University of New South Wales, UNSW)에서 IT 분야의 대학원 과정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습니다. 당시 저는 서른 살 남짓한 젊은 나이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하며 좋은 성과도 많이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사도 바울이 세상의 학문과 영광을 배설물로 여겼던 것처럼, 저 역시 이제는 세상의 업적을 지나가는 거품으로 여기며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기로 결단했습니다.
현재 저의 사역은 크게 학교 사역, 교회 사역, 그리고 코이노크로스 선교훈련 사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학교 사역으로는, 제가 박사학위를 받은 알파크루시스 대학교(Alphacrucis University College) 한국어 학부에서 조직신학 관련 과목들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며 가르칠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낍니다. 둘째로, 교회 사역은 시드니에 있는 브릿지교회(Bridge Church)에서 협동목사로 섬기며, 매주 3부 예배 설교와 양육 훈련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전하고 성도들의 신앙 성장을 돕는 일은 제게 큰 감사이자 사역의 기쁨입니다. 마지막으로, 코이노크로스(KoinoCross) 선교훈련 사역은 하나님께서 최근 제 마음에 주신 비전으로 시작된 새로운 사역입니다. 비록 아직은 초기 단계에 있지만, 코이노크로스 선교훈련원은 제자양육과 예배 회복 훈련을 통해 이민 교회가 말씀과 예배 중심으로 다시 세워지도록 돕는 일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선교사 후보생을 발굴하고 훈련하여 파송하는 사역을 장기적인 비전으로 삼고 있습니다. 저는 이 모든 사역을 통해 ‘코이노크로스’, 곧 십자가 공동체가 세상 속에 세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3. 목사님은 호주 알파크로시스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Ph.D.)를 마치시고 동대학교에서 교수 사역을 하고 계시는데, 이 학교와 현재의 교수 사역과 관련하여 한 말씀해주시지요.
알파크루시스 대학교(Alphacrucis University College)는 호주 내 신학대학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70년의 역사를 가진 초교파 기독교 대학입니다. 현재는 신학뿐 아니라 교육, 상담, 복지 등 다양한 학문 분야로 확장되어, 전문 신학대학에서 종합대학으로 성장하고 있는 단계에 있습니다. 특히 우리 대학에는 오랜 전통을 가진 한국어 학부가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는 약 350명 정도의 한국 학생들이 학업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팬데믹 기간과 더불어 호주 정부의 유학생 쿼터 제한 정책으로 인해 학생 수가 일시적으로 감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점차 회복세를 보이며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습니다.
우리 대학의 큰 자랑 중 하나는 호주 교육부로부터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논문을 제출할 수 있는 인가를 받은 최초의 대학이라는 점입니다. 박사과정은 영국식 제도를 따르고 있어서, 코스워크 없이 약 8만 단어의 논문을 제출하고 심사를 통과하면 철학박사(Ph.D.) 학위를 취득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감사하게도 호주에서 한국어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첫 번째 졸업생이 되었습니다.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었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학위 과정을 마친 이후에도, 언어적 제약으로 인해 학습 내용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유학생들을 보며 늘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어로 논문을 작성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보다 깊이 있게 표현하고, 동시에 호주식 학문 체계에 따른 엄정한 심사 과정을 거침으로써 보다 수준 높은 논문을 완성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30명 이상의 목회자들이 저희 학교 한국어 학부 박사과정에 등록하여 열정적으로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저는 기독론(Christology)을 전공하였으며, 현재 모교에서 학사와 석사과정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독론, 구원론, 삼위일체론, 그리고 기독교 윤리학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학생들과 함께 신학적 사유를 나누고,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더 깊이 발견해 가는 일이 제게는 가장 큰 보람이자 감사의 이유입니다.

4. 『십자가가 사라진 현대교회』에서 목사님이 지양해야 할 신학으로 번영신학을 말씀하셨는데, 이와 관련하여 예로 든 몇 분들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제가 번영신학을 비판하면서 특정 인물들을 언급한 것은, 개인의 신앙을 공격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분들이 대표하는 신학적 구조, 특히 성경의 축복 개념을 인간 중심적으로 재해석한 사유가 오늘날 한국교회에 깊이 침투했기 때문입니다.
번영신학의 근원은 20세기 초 미국의 신사고운동(New Thought Movement)과 긍정적 사고의 신학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E.W. 케년(E. W. Kenyon) 이 있었습니다. 그는 ‘믿음의 법칙’을 주장하면서, 믿음이 하나의 영적 에너지 혹은 법칙처럼 작동한다고 설명했죠. 그의 신학은 성경의 구속적 믿음을 인간의 언어적 선언과 사고의 힘으로 대체했습니다. 즉, ‘믿음이 곧 현실을 창조한다’는 신비주의적 관념을 신학의 중심으로 둔 것입니다. 이 사상을 신앙의 원리로 발전시킨 이가 케네스 해긴(Kenneth E. Hagin) 입니다. 해긴은 ‘예수의 이름의 권세’와 ‘긍정적 고백’을 강조하면서, 믿음의 말이 현실을 바꾼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신학에서는 십자가의 고난보다 신자의 권세와 부요함, 질병으로부터의 해방이 부각되었습니다. 이런 신학은 고난과 자기부정이라는 십자가의 본질을 가리게 됩니다. 오랄 로버츠(Oral Roberts)는 이러한 사상을 대중화한 대표적 인물입니다. 그는 ‘씨앗 신앙’(Seed Faith)을 통해 헌금을 하나님의 축복과 연결짓는 신앙 체계를 확립하며, 물질적 헌금이 곧 축복의 씨앗이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의 사역은 거대한 텔레비전 복음화 운동을 일으켰지만, 동시에 복음의 중심을 ‘자기 실현’과 ‘경제적 번영’으로 옮겨 놓는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세 인물의 공통점이 ‘십자가를 결과로만 본다’는 데 있다고 봅니다. 그들에게서 십자가는 죄의 대속 사건이 아니라 부요와 성공의 수단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십자가는 ‘하나님의 자기비움’(케노시스, 빌 2:6–8)이며, 인간의 욕망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길입니다. 따라서 번영신학은 단순한 교리적 차이를 넘어 복음의 방향을 뒤집어 놓는 신학적 왜곡입니다. 그것은 고난을 피하려는 신학, 세상에서의 성공을 복음의 증거로 착각하는 신학이며, 결과적으로 십자가 없는 부활, 은혜 없는 영광을 추구하는 위험한 신앙 형태를 낳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이런 신학적 경향을 비판하면서, 다시 ‘고난을 통한 영광’이라는 복음의 본래적 역설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교회가 십자가 위에 서 있을 때만, 세상의 욕망과 달리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5. 목사님은 십자가 신학의 상황성을 설명하기 위해 역사적인 상황과 인물들을 몇 분 소환하고 계신데, 그 부분에 대하여 요약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책의 제1부에서 제가 전하고자 한 핵심은, 십자가 신학이 특정 시대의 교리나 신학적 담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각 시대의 역사적 위기 속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갱신되어 온 복음의 중심 진리라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십자가 신학의 본질이 언제나 ‘상황적’(contextual)이라는 사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계시가 각 시대의 역사적·문화적 맥락 속에서 새롭게 이해되고 실천되어 왔다는 진리를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먼저 초대교회 시대의 사도 바울을 살펴보았습니다. 바울이 살던 시대는 로마 제국의 권력과 유대교의 율법주의가 강력하게 작동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는 그 두 체계 속에서 십자가를 “세상의 지혜를 부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선포했습니다. 바울에게 십자가는 단순한 구속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함과 고난이라는 역설적 방식으로 세상을 구원하신 사건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십자가는 세상의 가치와 정반대되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드러난 자리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십자가 신학은 신앙의 한 주제가 아니라, 기독교 존재 전체를 규정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저는 종교개혁 시대의 마르틴 루터를 다루었습니다. 루터는 당시 교회의 부패와 형식주의, 그리고 인간의 능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영광의 신학’(theologia gloriae)을 비판하며, “오직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crux sola est nostra theologia)라고 선언했습니다. 루터에게 십자가는 인간의 지혜나 업적을 무너뜨리고, 오직 은혜와 믿음으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복음의 역설이었습니다. 그는 고난과 약함을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자리로 보았고, 그 점에서 오늘날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할 신학적 방향을 제시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신학에서는 두 인물을 주목했습니다. 먼저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폐허와 인간의 고통 속에서 십자가를 단순히 인간의 죄를 속죄하는 사건으로만 보지 않고,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의 고난과 연대의 사건으로 해석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세상의 고난에 참여하시고, 그 고난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일으키신다는 몰트만의 신학은 전쟁과 절망의 시대 속에서 십자가 신학이 어떻게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였습니다.
또한 더글라스 존 홀(Douglas John Hall)은 북미 문명 속에서 번영과 소비주의에 빠진 교회를 향해 “고난받는 하나님과 함께 고난받는 교회”를 강조했습니다. 그는 교회가 세상과 대립하거나 도피하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의 아픔 한가운데에 함께 서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십자가 신학은 번영의 신학으로 기울어진 현대 교회에 대한 깊은 성찰과 교정의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저는 바울, 루터, 몰트만, 그리고 홀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위기 속에서 십자가 신학이 어떻게 이해되고 적용되었는지를 추적함으로써, 시대와 상황을 초월하여 역사 속에서 계속 일하시는 십자가의 능력을 증거하고자 했습니다. 로마 제국의 권력, 중세 교회의 부패, 전쟁의 비극, 그리고 현대 물질문명—이 네 시대의 위기는 서로 다르지만, 모든 시대의 신학자들은 공통적으로 하나의 사실을 증언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는 언제나 상황 속에서 새롭게 해석되어야 하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진리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자기비움이며, 인간의 고통에 대한 하나님의 연대이고, 세상의 구원을 위한 사랑의 방식입니다. 저는 이러한 보편성과 상황성의 긴장이야말로 십자가 신학의 생명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어느 시대, 어떤 문화 속에 있든지 간에, 이 긴장을 붙드는 한에서만 교회는 복음의 중심에 서는 공동체로 존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6. 목사님은 이 책에서 인간의 한계와 모순, 특히 신앙과 삶의 불일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칼뱅의 삼중직을 교회론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주장을 하게 된 신학적 배경과 문제의식은 무엇인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칼뱅의 삼중직을 통하여 십자가 신학의 교회론적 재구성을 제시하기 위한 신학적 기초 작업의 일환으로, 속죄론의 발전사를 검토하면서 각 시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려 했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해석하는 방식은, 그 결과가 하나님께 미치는가, 혹은 인간에게 미치는가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객관적 속죄론(objective atonement)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하나님의 공의와 진노를 만족시켜, 인간에게 구속과 의롭다 하심을 가능하게 한다는 견해입니다. 이 견해는 하나님의 주권과 법적 정의의 실현에 초점을 둡니다. 둘째, 주관적 속죄론(subjective atonement)은 십자가의 사건이 인간의 내면과 삶의 변화를 일으켜, 그리스도의 사랑과 헌신을 본보기로 삼아 공동체적 윤리와 신앙의 실천을 이끌어낸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이는 인간의 내적 응답과 공동체적 변혁을 강조합니다.
실제로 십자가 사건은 신자에게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인 속죄의 결과를 함께 가져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각 시대는 자신들의 신학적, 사회적, 문화적 상황 속에서 한쪽 측면을 강조하며 십자가를 해석해 왔습니다. 먼저, 고대 교부시대 약 천 년 동안은 십자가의 의미를 주로 총괄갱신설(Recapitulation Theory)로 이해하였습니다. 이는 이레나이우스(Irenaeus)가 대표적으로 제시한 견해로, 그리스도의 사역을 아담의 타락으로 깨어진 인간 역사의 총체적 갱신과 회복으로 본 것입니다. 당시 로마 제국의 속국으로 살아가던 유대인들의 최대 관심이 로마로부터의 해방이었던 점을 고려할 때, 십자가를 공동체의 회복과 새 창조의 시작으로 이해한 관점은 그 시대의 사회적·정치적 맥락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세시대에 들어서 안셀무스(Anselm)는 『Cur Deus Homo』(“하나님은 왜 인간이 되셨는가?”)에서 만족설(Satisfaction Theory)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는 십자가의 결과가 하나님께 향한다고 보았습니다. 즉, 십자가는 인간의 죄로 인해 무너진 하나님의 명예와 정의가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과 죽음을 통해 회복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명예를 만족시키는 사건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이후 종교개혁기에 이르러 루터(Martin Luther)와 칼뱅(John Calvin)은 안셀무스의 만족설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보다 체계화된 형벌대속론(Penal Substitution Theory)으로 정립하였습니다. 이 이론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이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에게 전가되었다는 법적 구조를 강조하며,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통해 인간이 의롭다 함을 얻는 길을 명확히 제시하였습니다.
현대 신학에 들어서는, 십자가 사건을 우주적 차원의 회복과 승리로 이해하려는 견해가 등장하였습니다. 이는 형벌대속론이 가지는 한계—즉, 구속의 의미를 개인적 차원에만 국한시킨다는 점—을 보완하고자 한 시도로, ‘승리자 그리스도’ 이론(Christus Victor Theory)으로 불립니다. 이 견해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죄와 사망, 악의 권세를 정복하시고 온 피조계를 새롭게 하셨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 속죄론들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의 고통과 신앙의 모순, 그리고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악의 문제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가 남아 있습니다. 이에 따라 현대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객관적·주관적 속죄론을 통합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통합 시도들조차 여전히 어느 한쪽 이론에 편중되어 있다고 판단합니다. 따라서 십자가 신학은 칼뱅의 삼중직에 내재된 개인적·공동체적·종말론적 차원에서 새롭게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러한 신학적 재구성은 교회론적 적용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이 현실의 불일치 속에서도 통합적 조화와 성숙한 공동체성을 회복하도록 돕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7. 그렇다면, ‘칼뱅의 삼중직을 통해 십자가의 의미를 교회론적으로 재구성한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칼뱅의 삼중직이 십자가의 의미를 가장 포괄적으로 드러내는 신학적 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따라 이 틀을 개인적, 공동체적, 그리고 종말론적 차원에서 새롭게 해석하고자 하였습니다.
먼저, 제사장직은 십자가의 개인적 차원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으로서 친히 자신을 드려 인류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는 사실은, 십자가가 각 개인의 삶과 신앙의 중심에서 일어나는 구속 사건임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제사장적 사역은 단순히 죄 사함의 교리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단절이 회복되는 인격적 만남의 자리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십자가의 개인적 의미는 구원의 확신에만 머무르지 않고, 일상의 삶 속에서 자기부인과 순종의 영성을 살아내는 실천으로 확장됩니다. 제사장적 십자가는 인간의 고통과 하나님의 고난이 만나는 자리이며, 그리스도의 대속적 사랑이 인간의 존재 깊숙이 스며들어 내적 변화를 일으키는 현장입니다.
둘째로, 왕직은 십자가의 공동체적 차원을 드러냅니다. 칼뱅에게서 왕으로서의 그리스도는 세속적 지배의 상징이 아니라 섬김으로 다스리는 통치의 모델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의 왕직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섬김의 질서와 관계의 회복, 그리고 고난을 함께 짊어지는 연대의 영성으로 나타납니다. 십자가는 개인의 구원만을 위한 사건이 아니라 공동체를 세우는 사건입니다. 교회는 왕이신 그리스도의 섬김을 본받을 때만 참된 교회가 됩니다. 따라서 십자가 신학의 공동체적 차원은 교회를 세속적 성공의 조직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서로의 짐을 지는 십자가 공동체로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왕직의 의미는 권력의 구조를 뒤집어, 교회를 위에서 다스리는 공동체가 아니라 아래로 섬기는 공동체로 변혁시키는 데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지자직은 십자가의 종말론적 차원을 보여줍니다. 선지자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뿐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 종말의 진리를 미리 실현하셨습니다. 십자가는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드러내는 종말론적 표지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십자가 신학의 선지자적 차원은 교회의 예언자적 사명과 깊이 연결됩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보여주는 예언자적 공동체로 부름받았습니다. 십자가의 종말론적 의미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구속을 바라보며 현재의 고난 속에서 미래의 영광을 증언하는 삶으로 구체화됩니다. 따라서 선지자적 십자가는 세상의 거짓과 불의를 폭로하고,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미리 살아내는 종말론적 제자도의 표현이 됩니다.
결국 칼뱅의 삼중직은 십자가 신학을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구조를 제공합니다. 제사장직은 십자가의 개인적 차원, 왕직은 공동체적 차원, 선지자직은 종말론적 차원을 각각 드러내지만, 이 세 차원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으로 개인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왕으로 교회를 섬김의 공동체로 세우시며, 선지자로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셨듯이, 십자가는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구속 사건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삼중직은 십자가의 세 차원을 통합하는 신학적 구조이며, 이를 통하여 교회는 개인의 구원, 공동체의 회복, 그리고 종말의 소망을 함께 살아내는 존재로 부름받았습니다. 이러한 삼중적 통합 속에서 교회는 다시 십자가 위에 바로 서게 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여정 속에서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는 참된 갱신을 경험하게 됩니다.
8. 『십자가가 사라진 현대교회』란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요즘은 교회 안에서 십자가가 상징하는 희생과 봉사 정신보다는 복과 번영이 강조되고 있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현재 교회들이 잘못 취하고 있는 행동양식은 어떤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십자가가 사라진 현대교회』라는 제목에는 단순한 수사나 자극적인 문제 제기 이상의 신학적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오늘의 교회가 처한 가장 심각한 위기를 ‘십자가의 상실’, 곧 복음의 본질이었던 희생·자기비움·섬김의 정신이 점차 사라져 가는 현실로 규정했습니다.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은 세속적 가치로 포장된 성공주의와 번영 중심의 신앙 형태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보여주는 잘못된 행동양식은 몇 가지 특징적인 흐름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신앙의 세속화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언어를 빌려 복음을 말하면서, 복음 자체가 세속적 욕망의 언어로 변질되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높이는 경배의 자리라기보다, ‘내가 은혜를 받는 자리’, ‘문제 해결의 통로’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의 목적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분의 뜻을 이루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와 욕망을 충족하는 데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번영신학이 남긴 가장 심각한 흔적입니다.
둘째, 십자가 없는 제자도, 즉 고난과 자기부정을 회피하는 신앙이 만연해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막 8:3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고난보다 성공, 희생보다 효율, 섬김보다 성과를 더 중요시합니다. 교회의 프로그램은 넘쳐나지만, 십자가를 짊어지는 헌신과 희생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신자들이 신앙을 ‘자기 성장’이나 ‘자기 계발’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게 되면, 십자가의 역설—즉, 약함 속의 강함, 낮아짐 속의 영광—은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셋째, 교회의 조직화와 시장화입니다. 많은 교회가 복음적 사명을 이루기보다 ‘성장’을 목표로 삼습니다. 결과적으로 교회는 기업처럼 운영되고, 목회자는 CEO처럼 행동하며, 신앙은 소비자가 누리는 ‘영적 상품’이 되어버립니다. 이런 구조 안에서 성공이 곧 축복이라는 논리가 강화되고, 실패와 고난은 신앙이 부족한 결과로 해석됩니다. 그리하여 십자가는 점점 교회 안에서 ‘부정적인 상징’으로 밀려나고, 대신 ‘승리’와 ‘축복’의 언어만 남게 됩니다.
넷째, 공동체의 해체와 관계의 단절입니다. 십자가의 정신은 철저히 관계적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이루셨듯, 교회는 이 화해의 사역에 참여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개교회 중심, 개인주의적 신앙 구조 속에서 서로의 짐을 지는 연대의 영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나의 신앙’, ‘나의 은혜’, ‘나의 축복’만을 강조하는 신앙은 십자가의 공동체적 의미를 무너뜨립니다.
마지막으로, 말씀의 왜곡과 영성의 피상화입니다. 말씀 선포의 중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곧 죄와 구속, 은혜와 순종의 복음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의 강단에서는 점점 ‘긍정의 메시지’, ‘성공하는 법’, ‘마음 치유’와 같은 인간 중심의 담론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성경을 인간의 필요를 채우는 도구로 만드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회복되지 않으면, 교회는 본질적으로 ‘좋은 조언의 공동체’로 전락하게 됩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이런 현실을 단순히 비판하기보다, 칼뱅의 삼중직 신학을 통해 십자가 신학을 교회론적으로 재구성하려고 했습니다. 즉, 교회가 선지자적 공동체로서 세상의 거짓을 폭로하고, 제사장적 공동체로서 고통받는 세상과 함께 울며, 왕적 공동체로서 섬김으로 다스릴 때, 비로소 복음의 본질이 회복된다고 믿습니다.
9. 그렇다면 현대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신앙적인 태도와 삶의 양식을 취해야 할까요?
오늘의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신앙의 방향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그 방향은 단순한 열심이나 봉사의 차원이 아니라, 십자가의 형식 속에서 하나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저는 저의 책에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통해 신앙의 형태를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은 결국 그리스도의 삼중직에 참여하는 삶으로 구체화됩니다. 즉, 제사장적 헌신을 통해 개인의 내면을 하나님께 봉헌하는 영성을 회복하고, 왕적 섬김을 통해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며, 선지자적 증언을 통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가 이 세 방향으로 다시 설 때 그곳에서 비로소 하나님 나라가 시작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것은 거창한 업적을 남기는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일상의 삶의 형식으로 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0. 목사님의 책은 논리전개가 명확하고 읽기가 쉽습니다. 그만큼 목사님이 글을 잘 쓰신다는 생각이 드는데, 저자 인터뷰이니만큼 앞으로 목사님의 저작활동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저는 몇 주 전에 사도행전 12장에 등장하는 베드로의 투옥과 탈출 사건을 본문으로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베드로의 생애를 깊이 살펴보게 되었는데,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사역을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에게 맡기고, 주요 선교 사역을 바울에게 이양한 뒤, 복음이 미치지 않은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다가 결국 순교한 인물입니다.
그의 생애를 묵상하면서,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디아스포라로’ 오셔서 보여주신 십자가의 길, 그리고 신자에게 본으로 남기신 디아스포라의 삶이 아닌가 하는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 하나님께서 주신 영감이 바로 『십자가의 길, 디아스포라의 삶』이라는 제목의 책을 집필하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가 사라진 현대교회』가 오늘의 교회를 향한 신학적 메시지였다면, 이 새로운 책은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신학적으로 탐구하고 조명해 보려는 시도입니다. 또한, 저는 지난해부터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매주 한 장씩 강해 설교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강해가 마무리되면, 그동안의 설교 원고를 정리하여 『조직신학의 렌즈로 본 누가행전』이라는 제목의 설교집으로 출간하고자 하는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부족함이 많습니다. 다만 제 저술이 단순한 기록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과 신학, 그리고 삶이 서로 만나는 통로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11. 끝으로 목사님이 한국교회에 대해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주시지요.
한국교회는 지난 세대 동안 눈부신 부흥과 성장을 이루어 세계 복음화의 중요한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외형적 확장보다 복음의 본질을 다시 붙드는 내적 갱신의 시기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팬데믹과 사회적 변화, 그리고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교회는 이제 “얼마나 큰 교회가 되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복음의 본질에 충실한가”를 물어야 합니다. 저는 그 회복의 중심에 십자가 신학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한국교회가 다시 십자가 앞에 서서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고, 세상의 고통에 응답하며, 신앙과 삶이 하나로 통합된 교회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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