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디셀러
20세기 가장 탁월한 루터 연구가에게서 듣는 종교개혁사
저자 롤란드 베인튼(Roland H. Bainton)은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와 종교개혁사 연구와 재세례파 연구에 상당한 업적을 쌓은 예일대학 교수이다. 그가 쓴 루터의 전기 [Here I Stand](내가 여기에 서 있도다)는 아직도 가장 애독되는 루터에 관한 탁월한 역사서이며 최고로 추천받는 책이다. 이런 베인튼 교수가 이 책에서 16세기 종교개혁의 역사적 배경과 그 전개, 그리고 개혁자들의 특성 등을 일목요연하고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총 13장으로 구성된 내용에서는 루터로부터 츠빙글리, 칼빈, 그리고 제 3의 세력들을 다룬다. 그리고 그 전개과정과 영향력 등을 약술한다. 역사적 개관성과 명료성을 가지고 기술된 베인튼의 [16세기 종교개혁]은 종교개혁 당시의 시대적 정황과 개혁자들의 특성, 그리고 그 과정과 영향들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게 하는 명저이다.
사뭇 개신교 찬양 일변도의 신적 권위만을 주장하지 않고, 중세로부터 근대로 넘어가는 길목의 역사의 한 장에서 일어난 '신앙의 부흥운동'(Revival of Faith)으로 평가한 저자의 평가는 충분히 긍정적이다. 서론에서 저자가 잘 밝히듯이, "13세기 위대한 교황 신정 체제의 붕괴의 책임을 종교개혁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그 체제가 이미 역사적으로 추락해 있었던 상태를 도외시 하는 것이다"에서처럼, 중세의 파괴는 결코 16세기 종교개혁의 공헌만은 아니었음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순전히 종교적인 이유, 신학적인 이유만으로 중세의 암흑의 세계는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고 보는 것은 편협한 개신교회의 시각일 것이다.
여러 가지 역사적 요인들 중에서 개혁가들의 역할은 주요한 요인들 중의 하나였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이해야말로 작금의 우리 개신교의 역사적 위치를 바로 조망하고, 또 다른 '개혁'의 요구들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것일 것이다. 루터는 분명 종교개혁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의 영적 민감성이나 신앙적 결단, 그리고 개혁을 향한 노력 등은 탁월하다. 그러나 저자는 그것이 루터 한 사람의 능력이나 재능으로 모두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효과적으로 제시한다. 루터도 역사의 한 아들이었다. 독일민족주의와 교황권 사이에서 눈치 보던 교황과 새로운 시대를 향해 눈뜨고 있던 프리드리히 현인공의 도움, 그리고 비텐베르크의 개혁자들의 도움이 종교개혁가 루터를 개혁의 기수 루터 되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냉철하게 루터의 개혁이 개인주의적 성경해석의 길을 열고, 잡다한 분파의 형성의 원인 제공자가 되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카톨릭 절대주의로부터 중세를 벗어나 근세로 향하는 시대의 길목에서 하나님은 분명 루터를 통해 기독교의 세계화의 초석을 놓았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지만, 루터가 열어놓은 교회분열의 역사와 심지어 개신교 진영 안에서의 반목과 불일치는 종교개혁 운동이 가진 역사적 오점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종교의 자유란 무엇일까의 부분에서 흔히 16세기 종교개혁은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재세례파에서 특히 강조되는) 양심의 자유로 이야기된다. 하지만 각 개인이 여하한 예배와 종교적 자유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은 저자에 의하면 나이브한 생각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결국 각 분파는 배타적 자유를 표방하게 되었고, 서로에 대해서 적대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루터파와 개혁파는 공적으로 단결하여 재세례파의 사형을 언도했다. 이러한 것은 비판적 안목에서 종교개혁의 배타성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하지만, 당시의 이러한 경향은 신앙적인 자유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자유까지 보장 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당시 시대정황을 살펴보아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겠다. 저자가 의미심장하게 언급하는 것처럼, "고난은 그리스도인의 운명이며 표지이다"는 말은 종교개혁 시기에 개신교도들(재세례파를 포함)이 겪어야 했던 투쟁과 험난한 세월을 기억하게 해준다.
이미 고전에 이른 이 책은 분량은 많지 않지만 16세기 종교개혁 당시의 역사적 정황과 종교사적 의미를 깊이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신학생들과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