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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단락 서평

넘치지 않게 접근하는 선행과 상급에 대한 해설

문양호 | 2018.08.23 14:04 | 조회 140
마크 존스의 선행과 상급(마크 존스, 이레서원)를 읽고

잘 아는 사역자가 신대원 입학과 동시에 아는 목사님과 함께 교회개척때부터 부교역자로 열심히 사역했었다. 주일 새벽기도와 명절 새벽기도, 교회의 온갖 궂은 일을 상당수 전임처럼 감당했었고 나중에 강도사와 부목사가 되고 나서는 더더욱 그 일은 확장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수고하는 그 사역자에게 담임 목사님은 고맙다라는 말은 커녕 수고했다라는 말도 전혀 하지 않다시피 했다. 이벤트나 다른 특정한 사역을 한 파트사역자한테는 칭찬도 하고 인정도 해주시는 편인데 교회행정과 루틴한 일을 하는 이 사역자한테는 일은 더 시켜도 칭찬은 없었다. 그 사역자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했기에 꼭 보상이나 어떤 칭찬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나가는 말로도 칭찬 한마디나 가끔은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다고 토로했다.
그것이 인간의 마음일 것이다. 아무리 일해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거나 아무도 아는 체를 해주지 않는다면 아무리 그것이 대가없는 봉사이고 헌신임을 안다 할지라도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일게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자체가 어떤 일을 하건 보상과 상급의 논리가 어떤 형태로건 간에 작용하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이 열심히 일했는데 그러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이 이득을 얻고 혜택을 누린다면 그것에 대해 불평하고 힘들어 하는 것이 인간적인 마음일 것이다. 반대로 범죄도 마찬가지이다. 범죄를 저지르고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우리는 분노하고 사법체계를 비난할 것이다. 우리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말하는 것도 상급이나 죄에 대한 처벌을 생각하기 때문 아닌가?
그런데 사람들은 교회에서 복을 이야기 한다거나 상급을 이야기하면 기복신앙이고 행위구원이나 상만 바라는 신앙이라고 비판하곤 한다. 물론 이기적인 신앙이나 물질에만 치중한 신앙은 문제지만 과연 수고한 자와 게으른 자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할수 있을까?
어떤 이는 포도원 일군을 이야기하면서 하늘의 상급은 노력한 것과 상급은 세상과는 다르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나님 나라의 상급이 세상과는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포도원 일군들도 열심히 하루종일 수고한 이가 자신의 수고한 일당보다 더 받았으면 받았지 덜 받은 것은 아니었다. 최소한 그는 자신이 수고한 것이상으로 다 받아간 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상급의 문제가 혹시나 행위구원이나 물질주의로 빠질 위험성때문에 이 문제를 다루길 꺼려하는 듯하다.
이번에 읽은 마크 존스의 ‘선행과 상급’은 이러한 이슈를 그리 두껍지 않은 책에서 잘 다루어 준다. 하나님의 선 기준을 만족시킬래야 시킬수 없는 죄인으로서의 우리의 위치를 인정하면서도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인간인 우리와의 관계와 각 삼위 하나님의 행하심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상급이 가능해졌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도 이 상급이 가능케 하는 선행은 세상에서 말하는 선한 행위와는 다르며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정의 내려짐을 이야기한다. 그러기에 이 선행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와 기도속에서 가능하고 심판 때에 그 상급이 이루어진다. 또 이 상급을 위해 우리가 수고하고 힘써야 할 것을 말해준다. 이것은 우리가 어떻게 신자로서 살아가야 할지를 보여주는 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이 상급이 꼭 마지막 때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즉 이 땅에서도 제한적이고 일반적인 기준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상급이 주어질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때 우리의 필요를 기도하고 어떤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 모든 것이 인과응보라는 틀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또 그 인과응보 자체를 아주 무시할 수 없음도 말해준다. 예컨대 열심히 노력한 모든 사람이 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할 때 더 돈을 벌수 있을 가능성과 기회가 열리는 것은 당연한 것과 같다고나 할까? 그러기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신앙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의 상급을 궁극적인 보상과 상급은 아니어도 이 세상에서 어느정도 보상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이유가 있다. 물론 그 그 대는 세상과 다르지만 말이다.
또한 이러한 상급은 그 수고에 따라 천국에 이르러 누릴 상급과 영광이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저자는 이야기한다. 무조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기에 우리가 선행을 하여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수고한 그 결과가 하늘 나라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몇 가지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부분들을 행위구원이나 기복신앙적인 차원으로 빠지지 않으면서도 복음적이고 성경적인 접근을 탁월하게 해내고 있다.

그런데 한가지 아쉽다면 아쉬운 것이 이 책이 분량적으로 그리 두껍지 않기 때문일 수 있지만 천국에서의 각 수고에 따라 차이가 나는 상급을 다루며 한번쯤은 짚어볼만한 주제를 저자는 그냥 지나간다. 즉 천국에서의 상급과 영광에 차이가 난다면 그 차이가 천국에서 영원한가라는 문제다. 즉 차이나는 상급을 가지고 영원을 살아갈수 밖에 없냐는 것이다. 만일 그러하다면 결국 천국에서는 각 개인별로 차이와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함이라면 그것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고 또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인지를 저자는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의외로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이 생에서의 행동에 대한 평가는 어떤 식으로 받는 것이 타당할수 있지만 정작 그 평가가 영원하고 고착화 되어진다면 그것은 무언가 심각한 문제 아닐까? 저자는 천국의 상급의 차별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듯 싶다. 그렇지만 저자의 이러한 태도는 이 책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분량의 한계도 있겠지만 아마도 성경에 대한 저자의 자세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저자가 이 책에서 성경적 관점을 고수하면서 선행과 상급을 풀어갔던 것처럼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천국에서의 상급을 이야기하시긴 하지만 그 상급의 영원성과 성격을 말씀하시지 않기에 저자도 하나님이 멈춘 선에서 멈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지나친 소극적인 자세같지만 이것이 기독교 신학자나 목회자라면 가져야 할 중요한 자세일 것이다. 왕왕 신학자나 목회자는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을 지나치게 유추하여 말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인양 대치시키는 이들이 있곤 하다. 우리가 어느정도는 상상하고 개인적으로는 그렇지 않을 까 말할수 있지만 그것을 공론화하고 교리화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일게다. 청교도 사상과 개혁파 신학자이기에 그는 자신이 멈추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아는 것일 게다. 설혹 하고 싶은 말이나 생각이 많더라도 그것을 넘는 것은 이미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이 앞서가는 것이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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