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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자인의 가버나움에 동참해야할 때(영화감상평)

크리스찬북뉴스 | 2019.01.26 21:56

열두 살 쯤 된 자인(Zain)이라는 이름의 소년이 판사 앞으로 불려나가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얇은 두 손목에 수갑을 차고 있는 자인이 이 법정의 원고라는 것이다. 칼로 누군가를 찔러 상해를 입힌 죄로 5년형을 선고 받은 자인은 자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한 명목으로 부모를 고소하였다.

 

베이루트 빈민가 출신인 자인은 가난 탓에 학교는커녕 매일 고된 노동을 해야 했고, 부모는 한 입이라도 줄이려고 초경을 한 열한 살 여동생을 나이 많은 남자에게 보내 버렸다. 부모에 대한 실망과 여동생을 지키지 못한 절망으로 집을 뛰쳐나와 떠돌던 자인은 우연찮게 에티오피아 불법체류자인 라힐과 요나스 모자를 만나 가족처럼 몇 달을 함께 산다. 자신의 부모와 달리, 불법체류자 신분에도 자식인 요나스를 정성껏 돌보는 라힐을 통해 자인은 위로 받는다. 그 모자와의 관계 안에 스며들어가 어느 덧 자인도 가족이 된다. 하지만 미혼모 라힐도 갑작스레 이민당국에 잡혀 가고, 자인은 요나스와 단 둘이 남겨진다.

 

요나스를 버릴 수도 있었지만, 여동생을 팔다 시피 한 자신의 부모처럼 되지 않기 위해 자인은 최선을 다해 요나스를 돌본다. 그러나 커피를 마시면 흑인 아기를 낳는다고 믿을 수준의 자인도 모든 게 힘이 부친다. 결국 불법 입양을 주선하는 브로커에게 요나스를 보내고, 자신 역시 그 브로커를 통해 레바논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떠나기 위해 필요한 서류를 가지러 빈민가 속으로 다시 돌아온 자인은 출생신고가 되어있지 않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만한 어떤 서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게다가 여동생은 잘못 된 임신으로 병원 문턱에서 숨을 거두었단 이야길 듣는다. 부모가 자식들의 출생신고를 해두지 않아서 여동생은 입원조차 못했단 말에, 자인은 칼을 들고 나이 많은 남자에게 달려간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자인의 모습은,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그 비참함이 스크린을 뚫고 나를 덮어버릴 만큼 가난하고, 방치되었으며, 끝없는 무시를 당하고 있다. 본능적 욕구 이상은 사치가 되는 베이루트 빈민가의 가난과 무지는 차마 살아낼 수 없을 것 같아 보인다. 그 안에서 자인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무엇을 배웠을까?

 

줄줄이 낳은 아이들의 출생신고도 하지 않은 부모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입장을 비난하지 못할 것이라 당당히 말한다. 아직 피지도 못한 꽃 같은 딸이 그렇게 숨지고, 어린 아들의 양손에 수갑이 채워져 있는데도, 본능에만 충실한 부모는 다시 임신을 하고, 그것이 신의 선물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한다. 그럼에도 그런 부모의 항변에 어느덧 수궁이 갈만큼 그들의 삶은 처참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안에서 자인은 사랑과 존중을 꿈꾼다. 그저 착한 사람이 되는 꿈을 꾼다. 과연 사랑과 존중이 무엇인지 알기나 할까 싶은 소년은, 단 한 번도 좋은 어른을 만나본 적 없을 그 작은 아이는 스스로 해석해낸 방식으로 사랑과 존중을 베풀고,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책임질 필요가 없는 불법체류자의 아기 요나스를 챙긴다. 도둑질과 환각제를 탄 물을 팔아 아기의 분유를 산다. 구호 단체를 찾아가 시리아 난민이라고 거짓말을 하여 구호물품을 받아와 아기를 건사한다. 시장 통에서 앵벌이로 사는 난민 소녀인 메이소운을 데리고 함께 스웨덴으로 떠나기 위해, 불법브로커에게 가져다 줄 돈을 불법적이게 모은다. 그리고 여동생을 잘못된 임신으로 죽게 한 남자를 칼로 찌른다. 모두에게 버림받은 소년은 자신이 직면할 수밖에 없던 막힌 담을 무너뜨리고자 애를 쓴다. 그가 찾아낸 사랑과 존중이다. 자신이 꿈꿨던 사랑과 존중을 다른 사람에게 직접 베푼다.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두 장면이 있다. 하나는 영화 초반, 빈민가 어딘가에 걸려 다 부서진 마을을 내려다보는 십자가의 모습이다. 또 다른 한 장면은 자인과 라힐이 각각 구치소에 수감돼 있을 때 그곳을 방문하여 노래를 불러주는 신부와 동행들이다. 그들의 아름다운 악기 연주와 노래 소리, 깨끗한 얼굴의 미소는 안타깝게도 막힌 철창을 넘지 못하였다. 막힌 담을 무너뜨리지 못하였다. 그들은 과연 자인을 나무랄 수 있을까? 철창 밖에서 그들은 자인의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

 

자인이 부모를 고소한 이유는 가난한 부모가 감히 자식을 낳았기 때문이 아니다.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지 못했고, 배움의 기회가 없었던 것을 원망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공중화장실에서 초경을 한 여동생의 속옷을 빨아 입히고, 나이 많은 남자가 보이는 호의에서 동생을 빼내려는 오빠가, 찌그러진 양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러주는 오빠가, 배기가스 뿌연 길가에서 동생들을 끌어안고 앉아 주스를 팔고, 밤이면 손바닥만한 방구석에서 동생들과 잠 들던 오빠가, 심장을 찌르는 것 같은 부모의 무관심을 고소하는 것이다.

 

자녀들을 하나의 인격으로, 정서로, 정신으로 공감하고 인정해주지 않은 괘씸함을 고소한다. 여동생 죽음을 두고 슬픔과 고통에 참여하지 않으며, 새로운 임신으로 생명을 대체하려는 부모의 폭력을 고소한다. 증명서가 없기 때문에 그냥 죽어야 하고, 자식과 헤어져야 하며, 짐승 같은 취급을 당해도 누구하나 편들지 않는 사회 구조를 고소한다. 영화관 스크린 앞에 두 시간 동안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만 난민과 가난의 굴레를 고민하는 나의 게으름과 나태를 고소한다. 막힌 담을 무너뜨리려 예수는 자신의 몸을 주셨는데, 고작 예쁜 노래 몇 곡으로 철창문 앞에서 기웃대는 우리의 무감각을 고소하는지도 모른다.

 

가버나움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프랑스어 capharnaüm으로 무언가 뒤죽박죽 뒤섞여 있는 상태나 장소를 일컫는다. 프랑스 문학에서 가버나움은 카오스, 혼돈을 표현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 또 다른 의미는 복음서에서 예수가 활동한 무대로 등장하는 지역을 말한다. 가버나움에서 예수는 예언자 이사야의 말대로 천국이 가까이 왔음을 선포한다. 가버나움에서 예수는 아픈 사람을 고치고, 그곳 회당에서 가르친다. 그리고 가버나움을 빌어 그리스도의 권능을 경험하고도 그 삶을 돌이키지 않는 도시들을 꾸짖는다.

 

이 세상 속에서 엉망진창인 자인의 가버나움, 그리고 이 세상 속에서 모든 걸 향유하고 돌이키지 않는 우리의 가버나움. 예수는 막힌 담을 자신의 몸으로 허물기 위해 오셨다. 이미 예수는 빈민가를 내려다보는 어두운 십자가처럼, 우리를 넘어 자인의 가버나움 안에 들어가셨다.

 

우리는 이제 게으름과 무감각을 돌이켜 예수와 자인의 가버나움에 동참해야 하지 않을까?

 

이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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