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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사회정치참여 어디까지 가능한가-크리스찬북뉴스 포럼 발제문

크리스찬북뉴스 | 2017.04.18 14:22

발제: 고경태 목사(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주님의 교회)


기독교의 사회정치 참여 어디까지 가능한가?

 

들어가는 말

 

201759일은 대한민국 19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18대 대통령이 탄핵되어 예정된 12월이 아닌 5월에 대통령 선거를 진행한다. 2016년 광화문과 전국 광장의 어둠을 밝힌 촛불은 대한민국을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크리스찬북뉴스이란 기독교 단체(독서 운동)에서 사회정치 참여에 대한 자세에 대해서 포럼을 갖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행동이다. 독서인이 책을 읽는 것은 곧 현재 사회를 읽을 수 있고 사회를 선도하는 선각자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독서(讀書)’는 단순하게 독서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검증하고 계승하며, 현실에 참여하고 미래를 위한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까지 포함한다. 디지털화된 사회에서 독서라는 가장 낡은 아날로그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다. 아무리 문서가 디지털화되어도 종이에 기록한 책은 더 다양하게 보급되고 활성화되고 있다. 한국 사회와 기독교 독서 운동에 중심에 있는 크리스찬북뉴스가 있다. ‘크리스찬북뉴스가 사회 전반에 관한 주제를 읽으며 공유하는 포럼을 갖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다



 

대한민국 사회를 결정하는 수단이 정치(政治, political)’이다. 공화국은 국가 결정 과정에 국민이 직, 간접으로 참여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한 종교(30% 국민)인 기독교가 사회 결정 과정에 참여할 때 범위와 자세에 대한 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기독교 근본 가치는 국가 정권을 창출하거나 사회를 선도할 목적이나 의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시대에 주어진 과제를 수행해야 할 시대인간이기 때문에 사회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기독교와 국가, 두 가치를 잘 이해하고 두 가치를 잘 수행해야 한다.

대한민국 사회는 2017년 대통령 선거에 임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할 대통령을 직접 선출할 때, 그리스도인다운 판단 기준과 행동 자세가 필요하다. 국민은 대한민국의 주권자이기 때문에 주권적인 선택을 해야 자기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 선거에서 밴드웨건 효과(bandwagon effect)’가 있다는 것은 주권자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한 증거이다. 그리스도인은 자유자로서,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자유하고 주체적인 선택을 하며, 자신이 선택한 결과에 대해서 승복하고 책임을 향유해야 한다. 정치가 매몰찬 생존경쟁(정권창출)을 위한 맹목적인 행위가 아니라, ‘국민(이웃)을 위한자기 의지와 사상의 표현과 정진 그리고 상호유익을 담보하고 서로 즐겁게 경쟁하는 향연(饗宴)을 창출해야 한다.



2. 대한민국 정치와 대한(大韓) 사람그리스도인

 

기독교와 정치는 분리되었다. ‘정교분리(政敎分離)’ 원칙이 세워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 전에는 제정일치(祭政一致)’ 유일한 신적 대리자로서 왕()이 통치하는 사회였다. 제정일치 사회에서 유럽은 왕과 종교가 갈등을 갖기도 했다. 왕은 종교를 통제하려고 했고, 종교는 정권을 장악하려고 했다. 동양에서는 절대군주가 통치했다. 정교분리 원칙은 기독교(서방교회)가 사회를 주도했던 서양에서 형성되어 세계로 정착된 산물이다. 대한민국도 대한제국의 왕정체제를 일본이 강제병합을 했을 때, 국민이 스스로 국민 주권의 국가공동체를 선언했다(1919). 당시 시대정신인 정교분리 원칙이 자연스럽게 정착했다.

대한민국 헌법 20조는 종교의 자유(1)와 정교분리 원칙(2)을 천명하고 있다. 종교의 자유와 함께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거나, 정치가 종교를 간섭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정치와 종교가 결탁한 사례들이 있었고 진행 중으로 생각한다. 개신교에는 일제의 적산(敵産)을 불하(拂下)받았으며, 독재정권에 편승한 것이다. 정치과 종교가 결탁할 때 좋은 사례는 거의 없다. 정치 목적과 종교 목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독교 정치 참여를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제안하는 것은 종교 목적이 아닌, 한 시대에 한 공간을 점유한 한 개체로서 존재 의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과 대한민국 국민이란 두 명료한 의식과 지식을 가지고 행동할 때, 그리스도인이 우리 사회에 소금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인(목사)가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목사의 신분으로 정치적 소신을 피력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목사라는 직분에 고유 목적이 있고, 정교분리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기독교 정치에서는 진보와 보수로 나눌 수 있는데, 진보적 기독교에서는 가능하다. 진보적 기독교는 사회 정치 개혁이 종교 가치(행동강령)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수적 기독교는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가치를 지양하고, 바른 그리스도인을 양육해서 바른 사회를 실현하는 우회적인 방법을 지향한다. 그러나 보수적 기독교를 지향하는 목사라 할지라도 정치 이해는 필요하다. 역사의식 없는 사람은 공동체의 지도자가 될 수 없다. 교회 목사는 한 공동체를 책임지는 지도자이기 때문에, 반드시 역사의식과 함께 미래의식이 있어야 한다. 직접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반드시 정치의식과 감각이 있어야 한다.

정치는 한 공동체의 현재 상황을 결정하는 수단이고, 현재를 결정하려면 과거를 이해해야 하고, 현재를 결정하면 미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가 함께 있다. 그래서 정치를 하려면 과거를 바르게 분석하고 정립해야 하고, 미래에 대해서 상상하고 계획할 수 있어야 한다. 1980년대 대학 캠퍼스에서 외친 구호와 노래가 대중 미디어에 송출될 것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30년 변화인데, 아직도 그런 모습을 보며 매우 불편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어떤 형태든지 변한다. 그 변한 가치를 수용하고, 다른 대안을 제안하고 미래로 가야 한다. ‘보수라는 것이 과거 가치에 집착하고, 과거 지향적이라면 당연히 미래로 가려는 현재인에게 해로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정치는 모든 공동체 일원과 화합을 지향한다. 그래서 정치에서는 선과 악이 없다 

한 시대에 공존하는 사람들은 한 시대에 형성된 동일 가치(agenda)를 수행해야 한다. 그 시대의 요구를 외면하고 회피하는 것은 부당하다. 한국 개신교회는 독재정권의 폭거에 침묵했고, 미래지향적인 사회상을 제시하지 못 했다. 진보적 기독교도 독재정권에 항거했지만, 현재에 대해서 비판을 했을 뿐 미래사회에 대해서 적절한 대안까지 제공하지 못 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주장하는 적폐는 독재정권의 가치와 유산이다. 과거에 대한 자세, 미래에 대한 기대에서 현재 행동이 결정된다. 인류의 미래사회에는 탈기독교가 급속하게 정착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미래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없으면 변화된 사회에서 도태되는 최악을 맞을 수도 있다. 그리스도인이 정치를 참여해서 합리적으로 현재를 정립하고 진취적인 미래 모습을 창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치는 한 공동체의 어떤 시간을 지나는 제한된 특수 현상이다. 대한민국 정치는 대한민국 공동체에 현시대에 국한한 것이다. 대한민국 결정이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2차적인 것이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고려할 사항이 될 수 없다. 또한 종교는 인류 보편성을 추구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특수하고 제한된 위치를 갖는다. 인류 안에서 대한민국은 특수한 소수이지만, 대한민국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은 특수한 위치이다. 그리스도인이 정치에 참여할 때 대한민국의 특수성을 반드시 고려하면서, 인류 보편 가치를 확립할 수 있어야 한다.



 3. 래더콥의 <기독교 정치학>에 대해서

 

래더콥의 <기독교 정치학>이 금번 크리스찬북뉴스 포럼의 기본 텍스트이다. 래더콥의 <기독교 정치학>은 먼저 전혀 대한민국에 대한 고려가 없음을 인지하는 것을 제시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도서를 기본 텍스트로 정했을까? 그것은 래더콥이 그리스도인의 정치 자세에 대해서 매우 명료한 프레임(frame)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더콥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자기 프레임을 만드는 계기를 갖는다면 매우 의미있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레더콥의 사상이 아나뱁티스의 정치 개념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일반 정치 상황에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를 독자가 많은 고려가 필요하다. 우리 정치 사회가 상당한 진적을 가져왔기 때문에, 이제는 외부의 산물을 바로 이식하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처음에는 외부 헌법 목록을 번역하거나 법률을 세밀한 조사 없이 세우기도 했을 것이다(구빈법 등). 아직 우리 정치 형태가 완전하지 못한 상태이지만, 시민의 힘으로 대통령제 직선제를 쟁취했고, 대통령 탄핵을 요구해서 관철시켰다. 이제 대한민국은 상당한 정치 수준으로 성장했다고 평가한다. 지적(知的)으로 외국 정치사상을 면밀히 검토하며 상호비교 검토하며 적용시킬 수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우리의 고전적인 정치의식에 대해서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서양 연구에 더 익숙한데, 대한민국 정치를 이해하려면 인문학적 소양이 훨씬 더 필요하다. 우리는 정치 상황을 대동(大同), 소강(小康), 난세(亂世)’로 구분했다. 우리 의식에서 기본 정치 목적은 대동이룸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래더콥의 <기독교 정치학>하나님의 통치를 세속정부를 통해서 이루는 것을 정치 목표로 제시한다. 대한민국 그리스도인이 정치에 참여할 때는 기독교적 사고와 동양과 서양의 사고의 복합적인 충돌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래터콥의 <기독교정치학>을 읽을 때, 독자들이 이 (Gap)’을 잘 인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그리스도인이지만 대한민국 정부를 하나님의 정부로 변환시킬 의도는 없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지지하고 신장시키는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래더콥은 아나뱁티스트(재침례파)로서 정확한 의식을 갖고 있다. 대한민국 개신교에서 아나뱁티스트는 종교적으로보다 사회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갖고 있다. 아나뱁티스트들이 종교 영역이 아닌 사회 영역에 깊숙이 자리를 잡은 원인은 래더콥과 같은 아나뱁티스트 연구자들이 인식을 전환시켰기 때문이다. 래더콥은 자신을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현실주의 아나뱁티스트(Anabaptist realism)’라고 정의했다. 아나뱁티스트의 정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균형있는 정치 감각을 위해서 필요한 과정이다.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는 것은 학문과 민주주의의 기본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의식을 바로 세우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토론할 수 있게 된다. 대한민국도 아나뱁티스적인 주장들이 점차 관철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병역의무에 대한 대체복무제(代替服務制)’는 아나뱁티스트적인 주장이 정치적으로 관철되는 중요한 사례이다.

래더콥이 루터와 칼빈을 꾸준하게 대조하는 방법은 정치를 다루는 방법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루터와 칼빈이 활동하던 16세기와 식민지 통치와 세계전쟁이 끝난 20세 중엽 이후 사회는 비교할 수 없는 사회 구조이기 때문이다. 16세기 유럽과 21세기 캐나다는 현재 캐나다와 대한민국의 차이보다 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래더콥의 <기독교정치학>은 매우 명료하게 사상을 전개하기 때문에 독자가 쉽게 수용할 수 있다. 특히 성경을 좋아하는 독자는 더 빠르게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아나뱁티스트적 주장이라는 저술 전개를 인지하며 독서를 진행해야 한다.

  


4. 에피소드

 

1) 권세자에게 복종하라는 로마서 13장에 대해서... 민주공화국에서 사회계약권세는 국민에게 있음을 규정했다(대한민국 헌법 12). 공화국의 통치자는 국민에 위임된 권한을 행사하는 공복(公僕, public servant)’이지 권세자가 아니다. 성경 본문(13)을 갖고서 권세자를 대통령으로 설정하고 복종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대한민국 공동체의 사회계약을 무시하는 행동이다. 대한민국 헌법(국가와 국민의 계약)에서 권세자는 국민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면서 대통령을 최고 권세자로 판단하는 의식은 헌법적 의식이 아닌 과거 제왕적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성경 본문대로 한다면,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세를 가진 대통령이 권세를 위임시킨 국민에게 복종해야 한다.

 

2) 필자는 대한민국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이 성경보다 역사 과정과 민족의식에 대해서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많은 기독교 정치 참여에 관한 연구에서 성경을 잘 연구해서 대한민국 정치에 적용하려고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치에는 대한민국 상황으로 대화해야 하기 때문에 대한민국에 대해서 더 잘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 정치 활동에서 성경 본문을 근거로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염려가 있다.

 

3) 그리스도인은 현재인으로 반드시 현재 정치 상황에 참여해야 하고 참여할 수 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정치는 헌법과 법률 그리고 공동합의를 통해서 진행해야 한다. 거기에 성경 원리를 어떻게 실현시킬지 많은 고려를 해야 한다. 현재 성경 가치로 토지공개념이 경제 원리에서 중요하게 등장했다. 우리사회에서는 주빌리 은행이라는 기독교적 용어로 국민 회복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이런 가치를 주장하는 정치인을 지지해야 하고, 이런 가치를 주장하는 정치인을 배출하거나 되는 활동이다.

그리스도인이 정치에 참여할 때 기독교 가치를 실현하는 정치 활동인가? 사회 공동 가치를 실현하는 정치 활동인가?를 잘 구분해야 한다. 정치에 가장 민감한 주제인 안보는 생존과 관련하기 때문에 기독교 가치를 말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4) 필자가 그리스도인 정치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분야생명존중학문증진분야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관심이 없는 분야이다(농업 등). 그런 분야에 그리스도인이 전문가가 되어 국가의 근본을 튼튼하게 지탱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힘들고 낮은 자리를 감당할 수 있는 인재는 그리스도인이 적합하다. 그리스도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단순한 ‘1를 행사하는 방식이 아니라, 분야에 전문가적 식견을 갖고 의견을 제안하고 수립하는 참여 방식이다. 목사가 정치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은 목사는 목회 분야의 전문가이지, 사회 일반 분야에서 전문 식견을 개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회 전반에서 그리스도인이 탁월한 전문 식견을 함양하는 것을 정치 활동으로 제안하고 싶다. 자기 분야의 전문가는 자기 분야에 관한 국가 정책 수렴에 주도할 실력자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정치에 참여하게 된다. 권력의지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 지식을 근거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5) 그리스도인의 선거 자세: 첫째 밴드 웨건 효과는 없다. 그리스도인의 특징 중 하나는 자유이다. 자유자는 단독자로서 설 수 있는 것이다. 자연인은 서로 어울려야 할 존재이다. 밴드 웨건 효과는 긍정적인 효과는 어울림의 효과이지만, 부정적으로는 주체성이 상실된 인간 모습이다. 그리스도인에게 밴드 웨건 효과는 없다. 둘째, 네거티브 선전 전략에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 선거에서 네거티브는 피할 수 전력인데, 네거티브의 진위가 결정되는 것은 선거 후에 판정되는 경우가 많다. 불확실한 네거티브 정보로 후보자를 판단을 하는 것을 피하고, 명료한 정보로 판단하려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셋째, 증오하는 마음으로 후보자를 피하는 것을 지양한다. 밴드 웨건 효과에 반대되는 것인데, 상대 후보가 싫기 때문에 내가 지지할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것은 미움을 투표에 표출하는 방식이다. 그리스도인은 자유자로서 자신이 인정하고 지지하는 후보에게 자기 한 표를 자유롭게 행사해야 한다.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가 선출되지 않아도 자기 의사 표현이 무시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국민이 자유롭고 양심적으로 투표할 수 있도록 적당한 선거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넷째,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없어도 투표를 해야 한다. 투표는 반드시 기표하는 것이 아니다. 투표를 포기하는 것도 투표소에서 기명하지 않는 방법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없어도 기표할 수 있는 것은, 후보 등위를 결정하고 거기에서 최우선 후보에게 투표하면 된다. 정치는 최고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 그리고 차선을 요구한다. 역으로는 최악을 피하고 차악을 선택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5. 나가는 말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는 대한민국 국민인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치 참여이다. 필자는 기독교 가치와 대한민국 역사와 사회의 두 축을 바르게 이해할 때 그리스도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함을 제시했다. 래더콥의 <기독교 정치학>기독교의 아나뱁티스트’, 그것도 현실주의 아나뱁티스트의 한 제안이다. 래더콥의 주장은 기독교적 주장에서도 일부의 주장이고, 대한민국과 관계없는 주장이기 때문에 참조할 내용으로 평가했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역사, 대한민국 형성(1919년부터 1948)과 전쟁 그리고 현대사를 합리적으로 이해할 때 정치 현장에서 설 자격이 있다. 선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면서,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한 이해가 없이, 종교 열심으로 세속 정치를 판단하고 참여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나오기 때문에, 국민은 자유로운 정치, 종교 활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와 종교 영역은 서로 같지 않다. 정치 권력으로 종교에 개입하는 것이나, 종교의 규합력으로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제정일치보다 더 무서운 폭력 혹은 무지한 행동이다. 정치는 종교가 합리적으로 잘 병존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하고, 종교는 정치가 백성의 정신세계를 잘 유지할 수 있도록 선도해야 한다.

정치란 대한민국의 국민을 화합시키는 세속 수단이다. 개별 생각을 하나로 화합시키는 수단은 다양하다. 근세 이전에는 거의 종교를 이용했는데, 근세 이후에는 절대 종교를 이용하지 말자고 세계가 합의했다. 종교로 사회를 통합시키려는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사회에 실현시키는 목적이 아니고, 단순한 정치 목적, 사회 구성원을 화합시키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그러한 제안으로 자기 분야에 전문가 집단이 되는 것을 제안했다.

래더콥의 주장처럼 세속정부하나님의 기관으로 주장하지 않기를 바란다. 제정일치 사회에서 가능한 것이었고, ‘하나님의 대리자로 생각하는 경향이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다. 세속정부는 세속정부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마지막으로 요한일서 2:12-17 말씀으로 마친다.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사도 요한은 성경 독자에게 세상 속에서 살며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의 것인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하나님의 뜻에 첨가하지 말도록 가르쳤다. 그러나 문자적인 의미가 아닌 실재에 있는 우리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인 세상을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날 수 없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는 정치 활동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19:16-30, 10:17-31; 18:18-30). 이 불가능한 일을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 그리고 탁월한 학문성(전문 지식)으로 가능하다고 제안한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전능자로는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정치 활동을 전개하자. 우리 힘으로 구원을 얻는다면 계산하고 배치해야 하지만, 구원은 하나님께 달린 것이다. 정치 활동은 구원과 관계하지 않는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다. 다만 정치 활동을 위해서 우리 역사와 미래에 대해서 민족적 관점을 갈 배양해야 한다. 세속 정치 활동에서 종교 목적이 드러나지 않는 것을 제안한다. 그럼에도 세상 사람들의 입에서 스스로 아버지의 선함을 인정하는 그리스도인의 탁월한 실력과 인격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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