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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뿌리를 찾아서

크리스찬북뉴스 | 2017.02.24 22:32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생애와 사상/김명수/그리심/강도헌 운영자

      

정확한 정보인지는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지인을 통해 들은 바로는 올해가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로서 독일에 호텔을 잡기가 무척 어렵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다. 종교개혁은 교회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와 사상사, 문화사 등의 전반적인 영역에 영향을 끼친 사건이다. 또한 오늘날 개신교가 탄생하였던 사건이다. 여러모로 올 해는 특별히 종교개혁의 의미와 종교개혁자들에 다시 한 번 관심과 연구를 통해 오늘의 개신교와 그 신앙을 되돌아보고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각 출판사들마다 종교개혁과 종교개혁자들의 책들을 내 놓고 있다.

 

에라스무스

 

에라스무스는 네덜란드 데벤터에서 데보치오 모데르나 즉, 기독교 르네상스의 토양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어린 시절부터 복음주의 가치관과 기독교 인문주의의 기초를 형성하였다. 그는 인문주의의 대가 아그리콜라(1444-1485)의 강의를 듣고 인문학과 라틴 고전에 대한 강렬한 충동을 받게 되었으며, 기독교 인문주의 학자로 변신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인문주의의 왕자로 불리지만, 그의 인문주의는 철저하게 성경중심의 기독교 인문주의였다. 그는 일생동안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에 관심을 갖고 그리스도의 제자된 삶을 살고자 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작품을 통해서 거짓되고 악폐와 구습에 노예 된 중세 가톨릭교회를 비판했고, 새로운 개혁을 위한 정의의 나팔을 불었다. 에라스무스의 외침은 중세의 지성인들을 일깨우고, 교회의 개혁과 갱신에 대한 깊은 문제의식을 심어주었다. 그가 제롬의 불게이트 라틴어 성경을 헬라어로 다시 번역한 헬라어 성경은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즐겨 애독하였던 책이기도 하다. 루터는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성경을 기초로 수준 높은 독일어 성경을 출판하여 독일 국민들에게 신선한 영혼의 양식을 공급할 수 있었다. 에라스무스가 적극적으로 마틴 루터의 개혁 진영에 서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지원하고 지지했으며, 루터의 개혁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사실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루터는 과감하게 부패한 로마 가톨릭체제를 깨고 새 판을 짜길 기대했고, 그렇게 행동하고 추진하는 열정적인 개혁의 용기와 결단, 그리고 추진력이 있었다. 하지만 에라스무스는 그런 점은 부족하였다. 종교개혁에 대한 루터의 열망에 찬동하기는 했지만, 당시 에라스무스 자신을 지지하던 교황과 불화하고 교회를 분열시키는 그를 따를 수는 없었다. 당시 수많은 대학에서 에라스무스를 자신의 대학 강당에 묶어 두고 싶어 했지만, 에라스무스는 한 곳에 매여 있기를 원하지 않았다. 체제에 얽매이기보다 자유롭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책을 집필하면서 그 시대에 영향을 주는 삶을 살고 싶어 했다. 또한 가톨릭 체제를 유지하면서, 그 체제 안에서 교회를 개혁하길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루터

 

루터는 14831110일 독일 동부 아이스레벤에서 태어났다. 18세에 에르푸르트 대학에 입학하였다. 그 대학에서 주로 스콜라 철학을 공부하였는데, 논리학, 수사학, 물리학, 형이상학 등을 공부했다. 그 학교는 실재론과 유명론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즉 보편개념이 객관적 실재로 있는 것인지, 아니면 주관적으로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었는데, 당시는 유명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그는 오캄의 유명론을 깊이 받아 들였다). 다른 한 편으론 인문주의적 연구가 전 유럽에 걸쳐 지적 문화와 자유로운 사고를 위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었다. 그는 고전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하지 않았고, 라틴어 공부 또한 충실하게 했다. 고전 문화에 있어서 에라스무스나 멜랑히톤, 칼빈과 베자의 수준에 달하지는 못했지만, 사고의 독특성과 독창성 그리고 모국어의 탁월한 구사 능력은 어느 누구에도 뒤지지 않았다. 루터는 시인이었고, 음악가였고, 탁월한 웅변가요, 신학자였다.

 

1505년 무더운 7월 초에 그는 부모를 방문하고 에르푸르트로 돌아가는 도중에 무시무시한 벼락을 만났다. 그 벼락으로 같이 동행했던 친구가 벼락을 맞고 즉사하는 광경을 보고 마음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고 법관이 되고자 하는 진로를 포기했다. 그리고 어거스틴 수도원에 들어가서 수도사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금욕적이고 엄격함을 요구하는 수도원 생활을 모범적으로 수행하면서 놀라운 학문적 진보를 함께 이루어갔다. 루터는 어거스틴 수도원에서 보배와 같은 소중한 스승을 만나게 된다. 그는 루터가 입소한 수도원 원장 요한 스타우피츠 박사였다. 그는 루터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인지하고 로마를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루터는 로마 라테란의 성 요한 기념 성당에 있는 빌라도의 계단으로 알려진 스칼라상타 계단 위를 무릎으로 기어서 올라갔다. 그 계단은 28개로 되어 있는데, 매 계단을 오를 때마다 주기도문을 암송했고, 계단에 입을 맞추었다. 그곳에 하나님의 특별한 공로와 은총을 얻고자 했으나 오히려 로마교회에 대한 회의가 증폭되었다. 그럼에도 그의 스승 요한 스타우피츠 박사는 루터에 대한 애정을 갖고 교수직을 위해 박사 과정을 받고, 대학에서 설교하며 강의하도록 했다.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1513-1515년까지 시편을 강의했고, 1515년 가을학기부터 1516년까지 로마서를 강의했고, 1516년부터 1517년까지 갈라디아서를 강의하였다. 그러면서 로마서 117절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의가 로마 교회가 가르치는 성례와 선행에 의해서 주어지는 능동적인 의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수동적인 의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15171031일 그의 나이 34세에 면죄부 판매와 교황권 남용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95항목들의 논제들을 비텐베르크 대학교회 정문에 내 걸었다. 이것이 16세기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고, 전 유럽을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 말려들게 했고, 세계 역사의 중대한 획을 긋게 되었다.

 

루터가 독일어 성경을 번역 출판한 것은 종교개혁의 대업을 이루는데 크나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루터에게도 씻지 못할 과오들이 있다.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으로 평가절하하고, 유다서와 요한계시록은 비교적 가치가 낮다고 생각했다. 또한 루터는 제후들과 권력자들의 횡포와 학정에 시달렸던 가난한 농민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봉기했을 때, 철저하게 지배계급이었던 영주들의 편에 섰다. 이 농민 전쟁으로 인해서 15만 명의 농민들이 학살 되었다. 이로 인해 처음에 루터 편에 섰던 사람들이 옛 교회인 가톨릭으로 돌아갔고, 재세례파 쪽으로 흘러들어갔다. 루터는 제후들과 귀족 계급으로부터 정치적 도움을 받아야 개혁이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또한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본서의 특징

 

본서는 기독교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와 종교개혁자 루터에 관해 요약과 정리를 해 주고 있다. 두 인물의 주요한 역사적 사건과 그들이 영향을 받은 책들과 사상가들, 그리고 그들이 출판한 주요 책들과 논문들에 대한 핵심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서 두 인물의 업적을 과장하거나 치켜 올리지 않고 담담히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같은 시대를 살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점을 알려 주고 싶어 하는 듯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역사(한국사)’ 교육이 중요한 이슈가 된 시점에 있다. , 바른 역사 교육의 중요성을 부인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교회의 역사, 신앙의 역사의 중요성에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중요성에 동의만 할 것이 아니라 기독교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행동으로 다가가야 할 것이다. 구약을 제외 하더라도 기독교 역사는 2000년이 넘는다. 그러나 교회에서 체계적인 교회의 역사를 교육하는 곳이 없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교회가 이렇게 맛 잃은 소금이 된 것의 여러 원인들 중 주요 원인 중에 하나가 바로 역사에 대한 무지 때문은 아닐까? 물론 교회의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고 알기 위해서는 엄청난 사건들과 사상들과 사상가들을 만나고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고대 교회사를 공부하는 것에 비해 우선 종교개혁에 대해 공부를 시작하는 것도 좋은 시작에 해당된다. 종교개혁이 왜 일어났으며, 종교개혁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고, 종교개혁이 이룬 성과와 종교개혁이 남긴 숙제 등에 대해 우리는 진지한 마음과 진지한 태도를 회복해야 할 필요가 있다. 종교개혁을 공부하거나 이해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 방식이 있을 것이다. 신학적 접근, 사회학적 접근, 역사적 접근, 인물적 접근 등이다.

 

본서는 그 중에서 인물적 접근으로 에라스무스와 루터를 소개하고 있다. 앞서 밝힌 것처럼 이 두 사람은 모두 당시 로마가톨릭교회의 개혁을 외쳤지만, 한 사람은 로마교회에 남아서 개혁하기를 원했고, 한 사람은 새로운 출발을 통해 개혁을 추진했다. 당시 로마교회의 상황 이상으로 문란해진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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