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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세계밀알 총재 이재서 교수의 꿈과 끈기의 여정기
내게 남은 1%의 가치/이재서/토기장이
세계밀알 총재 이재서 교수의 꿈과 끈기의 여정기
“내게 실명은 축복이었다
내게 남은 1%가 나를 살렸다”
실명의 고통을 감사와 기회로 역전시킨 감동적인 인간승리
“하나님이 주신 소명 때문에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이재서 교수의 감동간증!
포기하고 싶다면, 당신에게 1%밖에 남아있지 않다면,
1%로 99% 절대희망을 만들어낸 그를 만나라!
목차
추천의 글
프롤로그
숫자로 보는 삶이 파노라마 "그때…나는 만났다!"
1부 절망 한가운데서 건진 빛
2부 내게 남은 1% 세어보기
3부 꿈은 인내로 움직인다
4부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 수밖에
5부 껍질을 깨야 장애물을 넘는다
6부 밀알로 사는 인생
에필로그
저자 이재서
1965년 전라남도 승주군 황전북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쯤 뒤 실명했다. 좌절하고 방황했지만 1968년 국립서울맹학교에 입학하여 1974년 동교 고등부를 졸업했다. 그곳에서 새로운 인생의 비전을 세우며 대학진학을 꿈꿨지만 경제적인 현실로 막혀버린다. 그러나 1973년 여의도광장에서 있었던 빌리 그래함 목사의 선교 집회 때 예수님을 영접하여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
고향으로 내려가 순천성서신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그때에 장애인 선교의 비전을 갖는다.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 1977년 총신대학에 입학을 하여 3학년 때인 1979년 한국밀알선교단을 창립한다. 밀알 선교단 활동을 하던 중, 세계 장애인선교를 위한 전진기지를 미국에 세우는 일과 사회복지학 공부, 이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1984년 기적적으로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Philadelphia College of Bible 사회사업과에 편입하여 학사학위를, 이어 Temple 대학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행정으로 석사학위(M.S.W.)를 받고, 1994년 5월 Rutgers 대학 대학원에서 사회복지 정책 전공으로 박사학위(Ph.D.)를 취득한다.
미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1987년 필라델피아 밀알을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워싱턴, LA, 뉴욕, 뉴저지, 시카고 등 여러 곳에 밀알 지부들을 세우고 1992년에는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미주밀알선교단을 출범시키고 미연방 정부에 등록하였다.
1995년에는 한국과 미국 유럽 등 세계 여러 곳의 밀알들을 통합하여 세계 밀알연합회를 출범시키고, 2007년 세계밀알로 조직화하여 현재까지 총재로 일하고 있다. 세계밀알은 현재 세계 60여 곳에 지부 및 지소를 둔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거대 조직이 되어 많은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또 2000년부터 2004년까지 한국시각장애인아카데미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시각장애인용 컴퓨터 교본과 시각장애인용 속기용 컴퓨터 약점자를 개발하였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전자, 점자 영한사전을 발간하여 시각장애인들의 교육과 직업생활에 큰 유익을 주고 있다. 2003년에는 2차에 걸쳐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 장애인을 위하여 최초로 휠체어 등 장애인용품과 의약품을 전달하여 북한 장애인의 문제를 국내외에 공론화하였다.
밀알운동은 현재 한국을 포함하여 22개국 67개의 지부 및 연락소로 확장되었으며 2009년 30주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성장과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학문의 장 대학, 봉사의 현장 밀알에서 교수와 총재로 살아가는 그는, 소외된 사람들을 섬기는 사명을 따라 오늘도 세상의 빛과 밀알로 사는 삶, 열정과 인내로 꿈꾸고 도전하는 삶을 끊임없이 펼쳐가고 있다.
세계밀알 총재 이재서 교수의 꿈과 끈기의 여정기
“내게 실명은 축복이었다
내게 남은 1%가 나를 살렸다”
실명의 고통을 감사와 기회로 역전시킨 감동적인 인간승리
“하나님이 주신 소명 때문에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이재서 교수의 감동간증!
포기하고 싶다면, 당신에게 1%밖에 남아있지 않다면,
1%로 99% 절대희망을 만들어낸 그를 만나라!
목차
추천의 글
프롤로그
숫자로 보는 삶이 파노라마 "그때…나는 만났다!"
1부 절망 한가운데서 건진 빛
2부 내게 남은 1% 세어보기
3부 꿈은 인내로 움직인다
4부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 수밖에
5부 껍질을 깨야 장애물을 넘는다
6부 밀알로 사는 인생
에필로그
저자 이재서
1965년 전라남도 승주군 황전북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쯤 뒤 실명했다. 좌절하고 방황했지만 1968년 국립서울맹학교에 입학하여 1974년 동교 고등부를 졸업했다. 그곳에서 새로운 인생의 비전을 세우며 대학진학을 꿈꿨지만 경제적인 현실로 막혀버린다. 그러나 1973년 여의도광장에서 있었던 빌리 그래함 목사의 선교 집회 때 예수님을 영접하여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
고향으로 내려가 순천성서신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그때에 장애인 선교의 비전을 갖는다.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 1977년 총신대학에 입학을 하여 3학년 때인 1979년 한국밀알선교단을 창립한다. 밀알 선교단 활동을 하던 중, 세계 장애인선교를 위한 전진기지를 미국에 세우는 일과 사회복지학 공부, 이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1984년 기적적으로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Philadelphia College of Bible 사회사업과에 편입하여 학사학위를, 이어 Temple 대학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행정으로 석사학위(M.S.W.)를 받고, 1994년 5월 Rutgers 대학 대학원에서 사회복지 정책 전공으로 박사학위(Ph.D.)를 취득한다.
미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1987년 필라델피아 밀알을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워싱턴, LA, 뉴욕, 뉴저지, 시카고 등 여러 곳에 밀알 지부들을 세우고 1992년에는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미주밀알선교단을 출범시키고 미연방 정부에 등록하였다.
1995년에는 한국과 미국 유럽 등 세계 여러 곳의 밀알들을 통합하여 세계 밀알연합회를 출범시키고, 2007년 세계밀알로 조직화하여 현재까지 총재로 일하고 있다. 세계밀알은 현재 세계 60여 곳에 지부 및 지소를 둔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거대 조직이 되어 많은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또 2000년부터 2004년까지 한국시각장애인아카데미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시각장애인용 컴퓨터 교본과 시각장애인용 속기용 컴퓨터 약점자를 개발하였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전자, 점자 영한사전을 발간하여 시각장애인들의 교육과 직업생활에 큰 유익을 주고 있다. 2003년에는 2차에 걸쳐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 장애인을 위하여 최초로 휠체어 등 장애인용품과 의약품을 전달하여 북한 장애인의 문제를 국내외에 공론화하였다.
밀알운동은 현재 한국을 포함하여 22개국 67개의 지부 및 연락소로 확장되었으며 2009년 30주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성장과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학문의 장 대학, 봉사의 현장 밀알에서 교수와 총재로 살아가는 그는, 소외된 사람들을 섬기는 사명을 따라 오늘도 세상의 빛과 밀알로 사는 삶, 열정과 인내로 꿈꾸고 도전하는 삶을 끊임없이 펼쳐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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