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은혜를 저버린 요아스 왕의 최후

채천석 | 2025.06.05 11:32

북 왕국 아합과 남 왕국 여호사밧은 정치적 안정을 위해 결혼 동맹을 맺었다. 아합은 이세벨에게서 난 딸 아달랴를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에게 시집보냈고, 그 사이에서 난 아들이 바로 아하시야다. 아하시야는 외삼촌인 북이스라엘 요람 왕을 병문안하러 갔다가, 혁명을 일으킨 예후에게 요람과 함께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한다.


왕을 갑작스럽게 잃은 남 유다에서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아합의 딸 아달랴가 곧바로 움직였다. 그녀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아하시야의 아들들을 철저히 색출해 모두 죽이고 스스로 왕위를 차지했다. 다윗 왕조는 한순간에 뿌리까지 잘려 나갈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이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작은 희망 하나가 남겨진다. 아하시야의 여동생 여호사브앗이 제사장인 남편 여호야다와 함께 아하시야의 어린 아들 요아스를 몰래 빼내어, 아달랴의 눈을 피해 6년 동안 성전에서 숨겨 기른 것이다.


요아스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여호야다는 결단을 내린다. 그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그리고 충성된 사람들을 모아 다윗의 씨,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가 살아 있음을 선포하고 그를 왕으로 세웠다. 이 소식을 들은 아달랴는 반역이라 소리쳤지만, 여호야다와 함께한 군사들이 성전 밖으로 끌어내어 그녀를 죽였다. 이렇게 해서 아달랴로 인해 거의 끊어질 뻔했던 다윗 왕조는 다시 회복된다.


유다의 왕이 된 요아스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양육했던 고모부 여호야다의 지도를 받으며 나라를 다스렸다. 그는 성전을 수리하고,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는 일을 회복하는 등 초기에는 하나님의 눈에 옳은 일을 행하는 왕으로 기록된다.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만큼은 요아스가 참으로 선한 왕이었다.


그러나 요아스가 서른 살이 되던 해, 여호야다가 죽자 상황이 급격히 달라진다. 그는 곧 우상숭배에 빠져 들었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권면을 듣고도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다. 특히 대제사장 스가랴가 그의 죄를 책망했을 때, 요아스는 분노하여 사람들을 시켜 성전 뜰 안에서 스가랴를 돌로 쳐 죽이게 한다. 스가랴는 누구인가? 바로 요아스를 살려내고 왕으로 세워 준 은인 여호야다의 아들이자, 하나님을 섬기던 대제사장이었다.


요아스가 저지른 죄는 단지 사람 한 명을 죽였다는 수준을 넘어선다. 그는 자신을 살려주고 왕위에 올려 준 집안의 아들을 죽였고, 그것도 성전에서, 하나님께 속한 대제사장을 피 흘리게 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노골적인 도전이자 은혜에 대한 철저한 배반이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했다. 소수의 군대만 이끌고 온 아람 군대가 수적으로 훨씬 우세한 유다 군대를 크게 무너뜨렸고, 요아스는 그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침상에 누워 있게 된다. 그때 신하들, 곧 스가랴의 피를 기억하던 자들이 반역을 일으켜 요아스를 죽였다. 그의 최후는 비참했으며, 그는 다른 왕들처럼 왕의 묘실에도 들지 못했다.


역대하 242절은 요아스의 생애를 이렇게 요약한다. “여호야다가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여호야다가 살아 있을 때는 선한 왕이었지만, 그가 죽자마자 요아스는 급격히 변하여 우상숭배와 악행의 길로 나아갔다. 무엇보다 그는 은혜를 모르는 왕이었다.


만약 요아스가 스가랴의 책망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겸손히 회개하고 돌이켰다면, 아니 최소한 그가 자신의 은인 여호야다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여 그를 조금이라도 배려했더라면, 성전에서 대제사장을 죽이는 끔찍한 죄악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에게 임한 무서운 징계도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요아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된다. 첫째, 인간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가 없이는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연약한 존재라는 점이다. 선한 환경과 좋은 멘토가 있을 때는 괜찮아 보이지만, 그것이 사라지면 우리의 본심이 드러날 수 있다. 둘째,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잊어버리는 삶, 곧 받은 은혜를 배반하는 삶은 결국 심판을 부른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사람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늘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고 은혜를 잊지 않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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