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구세군 창설자 윌리암 부스(1829-1912)

채천석 | 2025.05.20 11:03

윌리암 부스는 구세군의 창시자로, 19세기 영국의 지독한 빈곤 현실 속에서 국제적인 부흥운동이자 구조운동인 구세군을 탄생시킨 인물이다. 그 자신이 극심한 가난 속에서 태어났고, 열세 살 때 아버지를 잃은 뒤 생계를 위해 원치 않던 전당포 도제로 들어가야 했다. 그는 훗날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종종 회상하며, 산업도시 빈민들의 처참한 현실이 자신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고백했다. 특히 아무 보호 없이 방치된 어린아이들의 고통은 그의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는 젊은 시절 노동자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했기에, 회심하지 않았다면 노동운동가나 노동조합 지도자가 되었을 것이라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1844년에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이후, 그는 노동운동가의 길 대신 영혼을 구원하고 인간의 비참한 상태를 개선하는 일에 생애를 바치기로 결심했다.


1855년 그는 케더린 머포드를 만나 결혼했다. 아내는 그의 사역 방향을 선명히 잡아 준 동역자였다. 케더린은 그가 목회에 전념하도록 권면했고, 부스는 감리교 계열인 개혁감리회에서 전임 사역자가 되었다. 그러나 1861, 교회 지도자들이 그의 사역 구역을 제한하려 하자 그는 교단을 떠나 소속 없는 자유 복음전도자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1865, 극도의 빈곤층이 밀집해 있던 런던 이스트엔드에서 부흥선교회’(East London Revival Society)를 조직했고, 1878년에는 스스로를 대장이라 부르며 구세군(Salvation Army)을 창설했다.


구세군은 급속도로 확장되었다. 1879년에는 이미 81개의 선교 거점에 127명의 전담 복음전도자를 파송했고, 행진하며 찬송하는 구세군 악대를 조직해 거리에서 복음을 전했다. 당시 널리 불린 찬송가 믿는 사람들은 군병 같으니등은 부스의 신앙과 비전을 잘 드러낸다. 1878구세군의 체제와 규율집을 펴냈고, 1880년부터는 제복을 착용했으며, 1884년에는 90여 개 군단을 거느린 조직으로 성장했다. 독특한 군복과 우렁찬 찬양, 상징적인 배지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그 가운데서 반대자도, 조롱하는 자도, 또 깊이 헌신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구세군은 회개와 구원의 메시지에 더해 규율과 훈련을 통해 사람들을 복음으로 이끌고자 했다.


케더린 부스는 남편의 가장 귀한 동역자이자 가장 솔직한 비판자였다. 그녀는 구세군 안에 남녀 평등의 원칙을 세웠고, 충분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남편을 여러 면에서 도왔다. 그녀의 지도력과 영적 통찰은 구세군이 영국과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데 큰 힘이 되었다. 1890년 케더린이 세상을 떠난 뒤, 부스는 홀로 여러 나라를 순회하며 선교와 조직 정비에 헌신했다.


그는 어둠의 영국과 헤쳐 나갈 수 있는 길(Darkest England and the Way Out)을 통해, 복음 전도와 사회 구원을 결합한 개혁 비전을 제시했다. 부스는 무엇보다 영혼 구원을 최우선으로 삼되, 동시에 고용 알선, 직업 훈련, 복지와 재활 프로그램 등 다양한 사회사업을 강조했다. 이 책은 출간 직후 큰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국 사회개혁 담론의 중심에 섰다.

그의 구체적인 실천도 눈에 띄었다. 농장 이주지 개척, 실종자 신고와 가족 찾기, 빈민은행 설립, 가난한 이들을 위한 법률 상담 등 다양한 구호 프로그램이 구세군을 통해 시행되었다. 아들 브럼웰은 영국 내 구세군 조직 정비에 큰 역할을 했고, 딸 에반젤린은 구세군 사역을 미국과 캐나다로 확장하는 데 앞장섰다.


부스는 스스로 인정했듯, 복잡한 신학 체계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의 신학은 단순했다. 사람은 죄에 대해 책임이 있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구원하려는 사랑과 책임을 지고 계신다는 믿음이었다. 그러나 이 단순함 뒤에는 가난한 자를 향한 깊은 기독교적 사랑과, 인간 삶을 파괴하는 세력에 맞서 싸우려는 강한 저항 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가난한 자를 구원하는 첫 단계는, 넉넉한 자들로 하여금 가난한 자들의 형편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구세군은 결국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나는 전심으로 그 일을 하겠다는 고백으로 헌신한 이들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1912, 윌리암 부스가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4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의 장례식에 참석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산업사회 최하층의 빈곤 속에서 시작해, 전 세계에 자비와 복음을 전하는 운동을 일으킨 한 대장의 생애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러나 그의 비전과 헌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구세군을 통해 살아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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