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자유정신이 충만한 위대한 소설가 레오 톨스토이(1828-1910)
톨스토이는 1828년 8월 28일,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약 210km 떨어진 야스나야 폴리야나에서 태어난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사회개혁자이다.
그는 지배 계층에 속한 명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 부모를 차례로 여의고 동부 러시아 카잔에서 숙모의 손에서 자라야 했다. 카잔 대학교에서 수학하기는 했지만 학업을 마치지 못한 그는 결국 자신의 영지로 돌아와 농노들의 삶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이때 쓴 「지주의 아침」은 당시 그가 경험하고 느꼈던 농노들의 현실을 담아낸 작품으로, 이후 농노 문제에 대한 그의 관심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훗날 그는 실제로 자신의 영지에 속한 농노들을 해방시키기도 했다.
그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리나」와 같은 대작을 통해 일찍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내면에서는 여전히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두고 깊은 회의와 싸움을 이어갔다. 철학자, 신학자, 과학자들의 조언에서 만족스러운 답을 찾지 못한 그는 한때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심각한 영적·존재적 위기를 겪었다. 그러던 중 1879년에 일종의 ‘회심’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회심은 전통적 의미의 기독교 신앙으로의 복귀라고만 보기 어렵다. 톨스토이는 교회의 제도와 교리를 고집하는 신앙보다는, 복음의 ‘원시적인’ 단순함과 도덕적 가르침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그는 “종교는 인생에서 나온다. 인생이 종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실제 삶 속에서 검증되는 종교를 추구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종교’를 따르려 했지만, 신비와 초자연적 신앙보다는 실천과 윤리를 강조했다. 다가올 영원한 축복보다는 이 땅에서 실현되는 정의와 사랑을 더 중요하게 보았고, 그 과정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사실상 부정하며, 예수의 가르침을 도덕적 이상으로만 이해하고자 했다. 이러한 태도는 필연적으로 기독교의 초자연적 차원과 교회의 권위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1901년 러시아 정교회는 그를 공식적으로 파문하였고, 그의 종교 관련 저술들은 금서로 지정되었다. 이 사건 이후 톨스토이는 남은 생애를 농부와 같은 검소한 삶으로 보내며, 자신의 신념을 구체적인 생활 방식으로 실천하고자 했다.
사실상 ‘개종’ 이후 톨스토이는 더 이상 단순한 허구 소설에 머물지 않고, 종교적·윤리적 저술을 통해 자신의 신앙과 사상을 전하려 했다. 그는 기독교 급진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 되었으며, 경제적 물질주의가 이상 사회를 만들 수 없다고 보았다. 오직 인간 본성 속 선(善)의 회복과 도덕적 갱신을 통해서만 보다 나은 사회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전쟁과 가난과 억압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그의 꿈은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지 못했고, 오히려 러시아 안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세속 이념, 곧 공산주의 체제가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와 역사, 인간 본성에 대한 톨스토이의 통찰은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남겼다. 그의 자유에 대한 꿈 자체는 온전히 실현되지 못했지만, 기독교적 자유정신에 대한 그의 비전은 오늘날 러시아 사회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톨스토이는 무엇보다도 기독교적 자유정신에 뿌리를 둔, 진정 위대한 소설가이자 사상가였다. 그의 작품과 생애는 지금도 “믿음과 삶, 종교와 정의가 어떻게 만날 것인가”라는 질문을 우리 앞에 다시 던져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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