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다 안다고 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서상진 | 2019.07.16 08:19
인간이 가지고 있는 교만의 출발점은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것에서 출발을 합니다. 물론 사람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앎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도 하고, 힘도 쓰고, 공부도 합니다. 그러나 그 앎이 참된 앎인지 다시금 질문해야 합니다. 다 아는 것이 아니라, 잘못 알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편협한 앎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청소년 때, 사춘기 때의 우리들의 삶을 장성해서 바라보면 웃음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 때는 왜 그렇게 자신만만 했을까요? 천지 분간도 하지 못하면서, 다 아는 것처럼 그렇게 행동을 했을까요? 어른들이 하는 일에 왜 그렇게 반항을 했을까요? 그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장성해서 내가 반항했던 그 때의 삶을 보면, 내가 아는 것처럼 행동했던 그 때를 바라보면, 어리석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처럼, 내가 누구로부터 배우겠다고 말을 하는 것처럼 성숙한 자세가 없습니다. 피조물 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다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인간이 다 알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다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의 행하신 구원의 능력을 우리가 다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가지고 있는 크고 놀라운 능력을 우리가 다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만한 인간은 편협한 사고와 제한된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고 판단을 하고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말을 합니다. 이런 생각처럼 교만한 생각이 없고, 이런 생각처럼 어리석은 삶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 속에는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자신을 나타내신 하나님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드러내고, 나타내실 때에 사람들이 알 수 없는 행동과 말씀으로 자신을 드러내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알 수 있는 언어로, 인간이 실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일들을 다양한 삶들을 예를 들어 설명을 하시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는 방법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신 것만큼 우리가 애를 써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얻고자 힘을 기우리면, 그 바른 지식을 통해서 우리에게 바른 믿음이 생기게 되는 것이고, 그 믿음이 우리를 성숙한 신앙인의 삶으로 인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교만한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저지른 죄악의 극치는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재판하는 일이었습니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재판하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향해서 '네가 그리스도냐?' 라는 말까지 서슴치 않고 말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 알고 계셨기 때문에, 죄인된 인간의 실상을 다 알고 계셨기 때문에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서 나를 겸손하게 낮추어야 합니다. 그 분 앞에서 그 분의 성품과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주 되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바른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오늘도 창조주 되신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고 내 삶을 통해서 아름답게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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