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나의 참된 선생님은?

서상진 | 2019.05.17 05:05

하나님의 이름은 참 많습니다. 엘은 가장 널리 알려진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샘족에서 많이 사용하던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엘로힘은 복수이자 단수입니다. 히브리어에서 사용되는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교회 사람들은 엘로힘을 복수로만 취급해서 어머니 하나님을 탄생시키기도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수 많은 하나님의 이름이 등장을 합니다. 엘 로이, 엘 엘리온, 엘 샤다이, 등 수 많은 이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라고 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너무나도 신령하게 여기고, 함부로 부르지 않기 위해서 주님을 의미하는 아도나이로 읽었습니다.

여호와라고 하는 하나님의 이름 뒤에 하나님의 성품을 붙여서 사용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샬롬, 이레, 체바오트, 닛시, 삼마 등 다양한 형태로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원래 이름은 "I am who I am" 입니다. 즉 "나는 나다" 라는 뜻입니다. 자존자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이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이름 안에 가두어 버리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이름 안에 갇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이름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내가 생각하는 내 생각의 틀 안에서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내 생각을 초월하시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정도의 하나님으로만 오해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십계명을 통해서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전부를 드려야 하기에 전심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무한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은 자신을 보여준 만큼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스스로 보여준 하나님조차도 오해하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많기에,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빠 아버지"로 알려 주셨습니다. 아빠라고 하니 하나님이 굉장히 친근한 분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는 호칭으로 부를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내 존재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근본이시자, 뿌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하는 데 있어서 참 만은 선생님들이 존재하셨습니다. 제 기억 속에 몇몇 선생님의 이름이 떠오릅니다. 예전에 저를 오늘에 있게 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주신 세 분의 선생님을 기억하며 글을 적었던 기억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있어서 가장 큰 선생님은 바로 저의 아버지이십니다. 목사로서, 아버지로서, 선생님으로서 저에게 많은 영향력을 끼치셨습니다. 얼마 전 집안 결혼식이 있어서 참석을 했더니, 아버지의 오랜 지인 분들이 저를 보더니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꼭 닮았다고 하더군요. 저의 모습 속에서 아버지가 드러난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도 이와 같아야겠죠..

내 삶과 내 모습을 통해 나를 가장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이 드러나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결코 나를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지으신 분이기에 나를 나보다도 자세히 아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은 나의 모든 환란과 고통과 절망 못에서도 함께 하시는 분이시고, 나의 아픔과 슬픔까지도 외면하지 않으시고, 자녀의 고통을 기꺼이 받아드리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은혜와 사랑을 베푸셨다고 우리에게 보상을 바라시는 분도 아닙니다. 아버지는 다만 아버지라는 존재로서 한없이 기뻐하시고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내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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