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아! 아달랴

문양호 | 2016.11.11 15:07

! 아달랴

 

- 아달랴를 통한 현 정국의 이해와 그 해결 찾기

 

개인적으로 성경에서 최고의 부부, 환상의 커플을 꼽는다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뽑고 싶다.

반대로 최악의 부부를 꼽으라면 신약에서는 단연 아나니아와 삽비라일 것이고 구약에서는 아마도 유다 최악의 왕이라 할만한 아합왕과 이세벨이 아닐까?

 

속된 표현으로 북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부부, 최악의 환상의 커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부부의 이름은 북이스라엘의 역사를 거론하는 곳곳에서 이름이 언급됨을 통해 그들 당대에만 그 아우라를 떨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들의 후유증은 결국 여러 왕에게 영향을 미쳐 북이스라엘을 멸망케 만드는 단초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문제는 그들이 다스렸던 북이스라엘을 넘어 남 유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남유다왕 중 신실한 왕으로 꼽혔던 여호사밧이었지만 그는 자기 아들 여호람을 아합의 딸 아달랴와 정치적 결혼을 시킴으로써 아달랴가 여왕으로 등극하는 계기를 만들고 만다. 사실 이때 다윗왕조의 일시적 단절뿐 아니라 완전히 그 왕조가 멸망할 위험까지 처했었다. 그녀의 아들이었던 아하시야가 죽자 다윗왕조의 모든 남자들을 말살시키려는 학살을 감행한다. 하지만 한 아이가 살아남으로써 아달랴의 시도는 결국 실패한다. 외형적으로는 칠년이란 기간동안 아달랴의 통치 속에서 남유대는 영적 어둠속에 놓이고 만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남 유다는 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여기까지 필자의 글을 읽은 이들 중 눈치 빠른 이들은 아마도 이미 필자가 왜 이 글을 썼는지, 또 왜 아달랴를 누구랑 비교하려 하는지 눈치를 챘을 수 있을 듯싶다.

 

짐작처럼 필자의 글의 의도가 지금의 우리나라의 현 사태를 아달랴를 통해 재해석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아달랴가 지금의 대통령과 같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일대일 적용은 알레고리적 해석이 될 수 있고 지나친 끼어 맞추기식 이해가 될 수도 있다. 심정적으로는 그렇게 봐도 무방하다는 마음도 들지만 일부 비슷한 요소가 있다고 하여 쉽게 동일화하고 그것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은 개인적인 이해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목회자로서 성경을 해석적 방법으로 적당하지는 않다고 본다.

 

그보다는 악한 왕 아합의 하나님을 떠난 우상숭배의 신앙과 도덕적 영적 파행성이 그 딸에게 영향을 준거처럼 박정희의 통치를 통한 부정적 통치 영향력과 유신의 잔재들이 그 딸이었던 현 대통령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었을까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접근은 성경을 묵상하고 해석하는데 기독론적 접근만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역사를 이해하는 데 하나의 방법론적 이해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이것은 잘못하면 그저 성경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한 가지 교훈을 얻는 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이들, 하나님의 공의를 거부한 이들의 삶과 죄의 영향력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지금의 우리의 조국을 흔드는 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 공의를 떠난 정권의 후유증과 지금까지 우리사회 적지 않은 집단이 가지고 있던 박정희 유신 정권에 대한 동경을 최소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다시 재해석해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박정희 정권은 그 출발부터 쿠데타로 출발함으로서 그 정통성을 상실한 정권이었고 그 정권을 유지하고자 온갖 불법과 힘을 사용한 폭압을 해왔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 유신정권이 경제적 부흥을 일구었다는 것으로 인해 지금 우리들은 그들을 정당화시키고 그들로 인해 고통 받았던 이들, 사회구조와 그 가치를 왜곡시켰던 것을 간과하고 회피하고 있다. 결국 그 향수는 도덕적 결함이 있던 이명박을 경기를 살릴 것이라는 믿음으로 대통령으로 세웠고, 5년의 후유증의 증거가 자명함에도 다시 유신의 잔재를 선택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다.

 

왕정정치였던 남유다는 왕이었던 여호사밧의 개인 한명의 어리석은 정략적 결혼이란 선택이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었고 영적 암흑시대를 낳고 말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당시 북이스라엘의 부강의 중심에 있던 아합과 연계한 것은 외형적으로는 옳았을지 모르지만 영적으로는 최악의 선택이었다. 신실했던 여호사밧이었지만 그의 어리석은 선택은 치명적이었다.

 

지금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대통령 선출의 책임을 국민에게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선택이기에 현 대통령이 잘못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이제라도 우리는 내년의 선거, 어쩌면 조기에 치러질 대선을 다시 생각해보며 기도해야 할 것이다. 아달랴가 아합의 우상숭배와 악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는 유신의 피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박근혜대통령의 실제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 선택을 했고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젠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더 이상 반복할 수 없다.

 

우리는 지난 1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그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말았다. 자연환경은 엉망이 되었고 경제적 양극화와 무고한 생명들의 숱한 죽음과 곤고를 보았다. 제발 이제는 바르게 생각하고 판단하자.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남은 자도 불가능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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