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프로인가, 제자인가

강도헌 | 2017.02.03 10:39

‘프로’ 인가?, ‘제자’인가!

 

딸 둘이 드라마 ‘도깨비’를 시청하면서 ‘공유’에 푹 빠졌다. 어떤 녀석은 자기 남편이라고까지 한다. 참고로 딸 둘은 모두 청소년이다. 물론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배우 공유가 아니라 함께 하는 공유(共有)이다. 어느 순간부터 인지는 잘 모르지만, 교회조차도 공동체라는 개념뿐만 아니라 단어조차 사라진 것 같다. 분명 이것은 교회가 성장중심으로 너무 치우치다 보니 일어난 나쁜 결과인 것 같다. 성장이 분명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어서 그럴까 이제는 성장 쪽에 너무 실린 무게들을 들어내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된다.

 

분명 성장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 성장에 치우치는 것은 결국 성장이 아니라 ‘탐욕’이 되어버린다. 그로 인해 경쟁은 과열되고,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해 지며, 물질만능주의로 흘러가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성장에서 힘을 빼서 ‘건강한 성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건강한 성장에 대한 고민이란 먼저 건강한 성장의 개념 정의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건강한 성장의 의미에 대해 지속적은 고민과 추구가 있어야겠지만, 그 첫 실마리는 ‘함께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승자 독식’의 패턴은 공멸(共滅)로 나아간다. 또한 이것은 편가르기와 분열을 조장한다. 결국 모든 것을 소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혼자만 남아 있다면, 그 소유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목사인지라 현재 기독교와 교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작금의 기독교 가르침이 과연 세상의 교육 목적과 이념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좀 비약적일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과 ‘믿음’이라는 단어 만 빼고 본다면, 과연 자기중심적이고, 탐욕을 정당화하는 세상 풍조와 얼마나 다를까? 오히려 ‘하나님’과 ‘믿음’이라는 종교적 포장을 하여 더 교묘하게 인간의 탐욕적 욕망을 잘 포장해 주고 있지는 않는가?

 

짧은 신학적으로 볼 때 과거 교회의 확장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동일시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 교회가 커진다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 되고 있는 것인가? 심각한 질문이 일어난다. ‘과연 무엇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일까?’, 사도행전 1장 8절에 언급되는 진정한 ‘땅 끝’은 어디일까?

 

분명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나가시지만,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는 아니라는 것을 중세교회의 크리스텐덤을 통해 확인 되어졌고, 지금 교회는 나눔은 차치하고, 공유조차 하지 않는 탐욕적 복음, 공동체 성을 잃어버리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그 기득권을 지키고 확장시키기 위해 자기들만의 대형교회, 즉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아니라 성장이 중심이 되어버린 듯한, 더 나아가 세상보다 훨씬 심각한 교회의 빈부격차를 해결할 수도 없는 교회 정치의 현실은 성경으로 포장된 인간의 욕망들의 집합소로서의 ‘돈 먹는 하마’로 변했고, 변해가고 있는 듯하다.

 

물론 지금의 교회가 완전히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교회의 모습은 이미 성경적 정체성에서 많이 벗어난 듯하다. 1980년대부터 일어난 교회성장 운동은 이미 그 목적과 본질에서 벗어 난지 오래 되었고, 1990년대부터 일어난 제자훈련 또한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 목사의 제자 혹은 그 교회의 제자 훈련으로 퇴색 되어 버렸다. 물론 모든 교회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장,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제자가 목적이 아닌, 자기교회 성장, 자기 목회에 순종하는 제자 훈련은 이미 수많은 교회에 퍼져 버렸다. 과연 자기 교회성장을 위한 제자훈련이 주님이 원하시는 제자훈련일까?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지 않고 자기교회, 자기이익을 먼저 챙기는 탐욕과 이기심을 버리지 않는다면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은 막연한 희망사항으로 느껴진다. 결국 믿지 않는 자들의 눈에 목사는 CEO로, 교회는 종교 사업(서비스)으로 보이는 것이 그들만의 잘못된 오해일까? 과연 목사는 ‘프로’인가? ‘제자’인가? 프로라면 이익과 성과를 내어야 할 것이고, 제자라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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