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링컨, 그는 과연 위대한 기독교적 대통령이었나?

신동수 | 2016.11.14 09:37

링컨만큼 위대한 기독교적 인물, 신앙적 대통령으로 언급되는 분은 가히 없을 것입니다. 올 해 미국 대통령으로 링컨과 같은 당인 공화당의 트럼프가 당선이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트럼프가 링컨과 같은 위대한 기독교적 신앙의 대통령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하지만, 링컨에 대한 오해와 트럼프에 대한 과도한 기대까지 겹쳐 말할 수 없는 착잡한 심경이 되게 합니다. 링컨에 대한 오해부터 풀어보려 합니다.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에 대한 사람들 사이의 인기와 명성은 그의 사후 1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그러들지를 않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매년 역사학자들과 전문가들, 그리고 대중들이 재임 기간 중의 치세와 업적 등을 종합하여 평가하는 역대 미국 대통령의 순위가 발표됩니다. 1948년 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가장 많은 1위를 받고, 역대 최고의 대통령이라 평가 받는 이가 바로 아브라함 링컨 (Abraham Lincoln, 1809~1865) 입니다. 비단 미국 사람들 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역사적 지도자로서, 특별히, 한국에서도 전 대통령 노무현은 링컨에 관한 책을 쓸 정도로 그를 존경했고, , 얼마전 대선 후보였던 안철수는 링컨 영화 한 편을 보고 그를 존경한다고 발언함으로 링컨의 인기를 증명했습니다.

 

특별히, 한국 교회는 링컨에 대한 특별한 사랑을 품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강해설교의 대가인 이동원

목사님은 링컨 대통령에 대한 애정을 공공연히 드러내시고 많은 예화로 활용하셨던 것이 그의 설교집들에서 드러납니다
. 특별히, 2003년에 나온 전광 목사님의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 이라는 책은 한국 기독교계에 링컨 열풍이 불게한 기념비적인 책이 되었습니다. 한국교회가 링컨에게 열광한 이유는, 링컨은 미국과 전세계에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지만, 또한, "그는 하나님의 기준을 완벽하게 만족시킨 사람" 이었고, "언제나 하나님 앞에 무릎 꿇었던 사람" 이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심지어, 한국인이 사랑하는 "부활" 의 작가 톨스토이는 링컨을 가리켜, "링컨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미소는 따사로운 햇살같이 빛났으며, 그의 행동은 바위처럼 단단했고, 그의 인품은 친절과 관용으로 넘쳤습니다. 우리 모두는 링컨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자로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라고 기록하였고, 그것을 겉표지에 써놓음으로, 전광 목사는 링컨이 이 시대 가장 위대한 성자요 모든 이들이 존경하는 위대한 크리스챤 지도자로 여기기에 합당하다고 강변합니다.

 

사람은 늘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을 봅니다. 그래서, 자기가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은 수 많은 증거들이 나타나도 애써 외면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링컨 대통령에 대한 한국교회의 애정과 존경은, 실상, 링컨과 같은 위대한 역사적 인물을 신앙에 있어서 같은 편으로 삼고 싶은 마음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도력, 초등학교 출신의 미천한 학력으로 유명 변호사, 국회의원, 상원의원 그리고 대통령에 이른 입지전적 이력, 무엇보다 그가 이룬 노예해방의 선언과 헌법 개정의 업적은 그 누구도 능가할 수 없는 고매하고 위대한 일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믿는 그의 신앙의 힘과 성경적으로 훈육된 인격 때문이었을까요? 링컨은 과연 오직 믿음과 기도로,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 백악관을 기도실로 바꾸어 기도하던 신앙의 모범이었을까요?

 

최근에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은 한 링컨 영화가 있었습니다.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와, 정치적 거두요 위인으로서의 링컨이 아니라 인간 링컨의 소탈, 연약, 야비함을 함께 보여주는 새로운 시각으로 인해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 영화에서 링컨은 결코 신앙적인 인물이 아닙니다.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이기적이고 자기만 아는 아내와는 부부싸움이 끊이지를 않고 자기의 말을 안 들어주는 큰 아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이루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노회한 정치꾼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영화는 정치가 링컨의 인간적인 모습만을 너무 드러낸 것일까요? 링컨의 올 곧은 신앙과 불요불굴의 거룩성은 어디로 갔다는 말입니까?

 

미국 정치사와 인물 평전으로 퓨리처 상을 수상했던 여류 역사가요 작가인 도리스 키언즈의 "링컨: 라이벌들과 이룬 팀" 이라는 평전이 있습니다. 스필버그의 영화 링컨은 이 소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900페이지가 넘어가는 이 방대한 역사 평전은 링컨에 대해 샅샅히 읽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좋은 자료가 됩니다. 특히, 링컨에 대한 좀 더 다각적인 사료들을 재구성하여, '정치적 천재' 로서의 링컨을 보여줍니다.

 

특별히, 링컨을 기독교 신앙의 요체요 성자의 반열에 올려놓는 일부 크리스챤의 시각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이유있는 의심을 가지게 하는 것이 이 평전입니다. 최근 미국 기독교 역사학자인 마크 놀 교수는 링컨의 종교와 신앙에 대한 1, 2차 자료를 연구한 후에 링컨의 기독교 신앙을 "애매모호하다" (ambiguous) 라고 표현합니다. 링컨이 가진 신앙이 과연 그 시대를 살아갔던 미국 복음주의자들의 기준에서 얼마나 진실했는가 혹은 모범이 될 수 있는가의 문제에 있어서 의심스럽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독교적 신앙의 관점에서 링컨의 인생과 업적을 살펴보는 것은 기독교적 시각으로서는 당연한 것일 수 있지만, 그것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지 못하고 애매모호함이 가득한 상황이라면 다시 한 번 링컨의 삶과 신앙, 그리고 정치의 관계를 재고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링컨을 여전히 "하나님의 기준을 완벽하게 만족시킨 사람" 으로 이해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그가 어떤 현실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대의를 어떻게 실현시키는 정치인이었는지를 보는 것도 그의 삶과 신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리라 생각합니다.

 

링컨 평전에서 읽을 수 있는 그의 신앙의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링컨의 신앙은 복음적이거나 개인체험에 근거한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링컨은 어려서 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고, 그 중에서도, 성경을 거의 외우다시피 독파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변호사 생활과 정치인 생활 동안에, 수 많은 성경의 구절들을 통해서 자신의 대의를 확립하고, , 사람들을 설득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고 구원 받은 복음적 체험을 기초로 살아가는 복음적 신앙인은 아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물론, 선과 악에 대한 분명한 기준과 고난 받는 약자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긍휼의 하나님을 매우 의지하였던 것은 분명합니다만,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대한 복음적 체험은 매우 약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특별히, 링컨이 매우 사랑했던 첫 사랑 처녀 앤 루트리지가 전염병으로 죽게 되었을 때, 링컨은 너무나 큰 낙담을 하게 되고, 심지어, 자살을 암시하는 글들을 쓰게 됩니다. 사실, 링컨은 그 이후로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경험들을 거듭하게 되는데, 그 때마다, 그는 말할 수 없는 우울증적 괴로움을 겪게 됩니다. 이유는, 링컨 자신의 편지와 지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사람이 죽으면 다시는 살아날 방법은 없고 영원히 사라지는 것" 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아들 에디와 윌리가 각각 어려서 결핵과 전염병으로 죽었을 때에도, 링컨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아들들로 인하여 깊은 슬픔에 빠지고 맙니다. 다만, 백악관에서 아들 윌리가 죽었을 때는, 아내를 위로해 주는 뉴욕 에버뉴 장로교 목사인 파이니아스 굴리 목사의 설교에 감사해하며, 한 동안 그 교회의 참석자가 되기도 합니다. 본인도, 목사가 되기 원했던 아들 윌리가 천국에 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 위안이 되었지만, 부인이 심령술사를 찾아가 아들과 신접하여 대화를 나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중 한 모임에 직접 참석하기도 하는 등, 그의 신앙의 중심이 성경적이거나 복음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링컨은 일생 어느 특정한 교회에 멤버쉽을 가지지 않았고, 마지막에 다니던 장로교회에서 조차도 입교하지 못했습니다.

 

둘째, 링컨의 노예해방은 신앙적인 결단이 아니라 정치적인 꿈이었습니다.

 

노예제도에 대한 반대는 하나님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링컨의 신앙적 결단이 만들어낸 용기있는 결단이 아니었습니다. 노예제도는 미국의 건국 조상들 사이에서 이미 고민되고 논의되던 내용들이었고, 미국은 세워질 때부터 노예제도는 남부에만 제한하고, 더 이상 북부나 다른 신생주에 노예제도를 시행하지 않는다는 기본방침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링컨 보다는 노예제 폐지론자들이 공화당 내에서 강력한 목소리를 내며 전국적인 노예 폐지 주장들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링컨은 대통령이 되기전까지, 노예제 폐지에 그렇게 획기적인 제안을 하지 않습니다. 그의 생각은 남부의 노예제를 인정하고, 북부와 새로운 서부의 주들에서는 노예제를 시행하지 않는다는 오래된 입장의 지지였습니다. 링컨은 오히려 남부에서 도망친 노예들이 북부나 서부로 옮겼을 때에는, 정부가 그들을 잡아 다시 주인에게로 송환하는 정책을 적극지지 하게 됩니다. 이것이 노예 해방 선언이 있기 전까지 링컨의 노예제에 대한 현실적 입장이었습니다. 심지어, 186311일의 노예 해방 선언까지도, 모든 주의 노예 해방 선언이 아니라, 남북 전쟁이 치열한 접전 지역, 그 중에서도, 노예 주인들이 몰려있는 곳의 주에서만 시행되는 노예 해방선언이었습니다.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정치적인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링컨의 노예제에 대한 정치적 입장은, 전쟁을 거치며 헌번 수정안 13조를 통해 미국내 노예제 폐지라는 대의를 이루지만, 그것이, 자신이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해낼 수 있는 가장 큰 정치적 업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링컨의 생각속에는 여전히 "흑인은 하나님 앞에 그 인권이 보장 받아야 할 인간이지만, 백인과는 결코 동등해질 수 없는 인간" 으로 보았다는 점입니다. 링컨은 흑인들에게 투표권이나 정부요직의 피선거권을 주지 않았고 궁극적으로는 백인과 함께 살 수 없고 살지 않는 것이 좋기에 식민지를 세워서 이주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링컨의 노예제 폐지와 수정헌법 제정은 역사에 남은 업적이 분명하지만, 그것은, 그가 성경에서 얻은 만인평등의 사상을 가지고 일관되게 추진하던 정책이 아니었습니다. 노예 해방에 대한 링컨의 입장은 늘 정치적이었고 가장 현실적으로 미국의 연방을 깨지 않으면서도 대의를 세울 수 있는, , 자신의 정치적 명운과 야망을 이루기 위한 수단과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링컨의 위대성과 입지전적 경력과 정치적 업적 등은, 결코, 그의 신앙의 투철함이나 성자적 믿음으로 이루어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이라는 사뭇 복음적이고 신령한 주장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의심스러울 뿐입니다. 하지만, 링컨의 인격과 정치적 대의는, 그가 늘 인정하고 따르기를 원했던 하나님의 주권과 뜻 안에서 이루어진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의 인생역정과 정치적 여정은 분명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한다 - In God We Trust" 의 사상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실제 그의 신앙을 어느 학자가 이름 붙이듯이 "기독교 이신론" (Christian Deist) 으로 명명하는 것이 정확하다 한다면, 너무 간편하게 링컨을 신령한 복음주의적 지도자나 혹은 성자로 만드는 우()는 지양해야 하겠습니다. 링컨을 거룩한 성자로 만들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신 일을 볼 수 있고, 또한, 인격과 업적 모든 측면에서 그는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위인임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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