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떠나간 차(車) 그리고 머무는 차(車)

문양호 | 2017.08.24 15:30


집에 차 두 대가 있었다.

다섯 식구이긴 하지만 이십년 넘게 삼대가 사는 집이고 생활 영역이 다르니 차 두 대는 필수적이었다.

그리고 두 차는 징하게 자기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지난 주 차 한 대를 떠나 보냈다.

 

1. 떠나가는 차

아버님이 십 수년간 몰던 차, 레조.

나의 반쪽이 차를 사기전 주일 새벽 기도설교를 가야 할때면 송내역 버스정류장까지 태워주시곤 했던 차다.

첫 차로 마티즈를 사고 난 뒤에도 몇 년만에 가는 여름 휴가때 장거리 남도가는 것은 안전을 위해 아버님 차를 빌려 이박삼일동안 1200킬로를 달리기도 했었던 추억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은 워낙 낡고 수리도 여러 번해서 중고부품으로 겨우 연명하던 차였다. 어쩌다 네가 운전을 하게 되면 운전하다가 분해될 것 같은 불안감마저 줄정도로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여건이 되면 어떻게든 바꾸어 드리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그랬었던 차였다.

최근 아버님 건강이 운전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을 듯 싶어 결국 폐차로 정리하게 되었다.

끝까지 잘 달려 주었고 최선을 다했던 차.

아쉽고 불편하더라도 운전이 편리와 도움보다는 위험이나 부담이 된다면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나을 것이기에..

최선을 다한 은퇴는 귀하고 값지다. 자기 몸이 부서져라 수고하고 달렸다면 비록 그의 육신이 낡고 쇠약해도 값진 것임을..

 

2. 머무는 차

며칠 후 두 번째 차가 며칠 입원을 하고 오늘 퇴원을 했다. 타박상!

첫 차였던 마티즈가 십년을 못채우고 매달 수십만원씩 저금통 상태가 되어 차라리 차 할부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차를 바꾸게 됐다. 지금 차도 십년이 안되긴 했지만 주행거리가 28만에 육박하고 있다. 몇 년간 새벽기도로 왕복 70킬로가 넘는 거리를 달렸고 나의 반쪽도 다녔던 직장중 거리가 꽤 멀었던 곳도 있었고 지방을 다녀야 했던 곳도 있어서 년 수에 비하면 이미 중고차로서의 가치도 떨어진 상태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이 차도 수리비 적금붓는 느낌으로 차를 몬다. 그러던 참에 빗길에 타박상까지...

아마도 은퇴를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고생하고 수고했어도 별 대접도 받지 못한 우리 차.

차뿐만 그럴까?

열심히 수고하지만 그 빛과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3. 능력과 열심

모 방송사에 유념해 보고 있는 기자가 하나 있다. 그는 뉴스를 볼 때마다 참 성실하게 노력하는 듯 싶고 열심히도 일하며 특종도 나름 잘 잡아내지만 매번 생방화면 앞에서는 말이 어눌했고 앵커 앞에 설 때마다 뭔가 주눅든 모습이었다. 결국 그는 어떤 사정인지는 모르지만 약간은 중심에서 밀려난 듯한 뉴스분야를 얼마 전부터 맡고 있다.

세상의 기준은 열심과 성실만으로는 안 된다. 자기를 어필하고 홍보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래야 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어떤 이를 만났다. 그는 어디를 가든 빛을 발하고 남을 설득하고 이끄는 데 능력을 잘 발하는 이이다. 그는 말하기를 같이 사역하던 동역자들 보다 일이 되게 하기 위해 배의 노력을 기울인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는 그런 능력을 지녔다. 그리고 그 성과를 낸다. 하지만 그 성과가 꼭 다른 사역자들보다 하나님 앞에서 충성됨을 인정받는 것은 아닐 게다. 우리가 열매를 거두고 부흥도 이루어야겠지만 그 열매와 결과물만이 하나님 앞에서의 성적표는 아니다.

세상과 교회는 달라야 한다. 어떤 이는 남들보다 빛을 발하지도 못하고 남을 설득하는 능력도 적을지 모른다. 효융성과 가성비도 떨어지게 사역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되도록 최고의 결과, 최고의 효율을 이루어야겠지만 그 능력과 자질이 조금 처져서 그렇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꾸중 듣거나 질책받는 것은 아니다. 게으름이나 불순종과는 구별해야 할 것이다.

좀 미련하게 일해도 하나님 앞에서의 충성이라면 하나님은 그를 인정하시고 귀하게 여기신다.

 

4. 복귀

오늘 차는 퇴원했다. 들인 돈이 있으니 다시 열심히 몰아야 할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외관에 들인 비용이긴 하지만 나의 삶과 사역에서도 정비하고 수선해야 할 모습들을 이번 일을 통해 보게 된다. 하나님은 두 대의 차를 통해 나를 돌아보게 하신다. 최근 약간 찐 몸무게와 느슨해진 내 마음, 그리고 여러 군데 구멍나고 녹슨 영역들을 보게 된다. 아직은 떠나갈 상태는 아니지만 내가 최선과 충성을 다하지 않는다면 폐차하지 않았어도 나는 폐차상태와 별반 차이 없을 지도 모른다. 이것이 나만의 문제일까? 나이는 젊어도 그저 전시용인 신앙과 수차례 데모 화면만 띄우고 실 작동은 하지 않는 노트북같은 이들을 자주 본다. 지금 우리 시대의 문제는 열심히 달리는 이들이 없는 연유 아닐까? 달리기는 하지만 정작 어디로 가는 목표는 상실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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