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놀라운 은혜를 입은 존 뉴턴(1725-1807)

채천석 | 2025.03.31 10:54

존 뉴턴(John Newton)은 영국 선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열한 살에 처음 항해를 떠났고, 청년 시절 내내 매우 거친 생활을 하며 지중해와 서인도 제도를 여러 차례 오가다가 마침내 흑인들을 실어 나르는 노예선의 선장이 되었다.


긴 항해 기간 동안 그는 홀로 유클리드를 공부하고, 라틴어를 익혀 버질과 에라스무스의 글을 읽을 정도로 학문에도 힘썼다. 그러나 어느 날 그가 탄 배가 북대서양에서 극심한 풍랑을 만나 난파 위기에 처하게 되었을 때,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과 죄악을 깊이 돌이키며 회개하였고, 그 사건을 계기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회심 후 뉴턴은 선상에서 승무원들을 모아 주일예배를 인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755년경에는 바다 생활을 정리하고 성직을 준비하였다. 결국 그는 노예선의 선장에서 영국 성공회의 성직자로 완전히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되었고, 1764년 버킹엄셔 올네이 교회의 부목사로 부임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시인 윌리엄 코퍼와 교제하며 여러 시와 찬송시를 지었고, 1779년에는 런던으로 옮겨 성 메리 울노트 교구의 담임목사로 섬기게 되었다. 그의 영향력은 특히 복음주의 진영에서 매우 컸다.


뉴턴은 뛰어난 설교자로도 유명하였다. 그가 시무하던 작은 교회에는 설교를 들으려는 사람들로 항상 가득 차, 문을 열어 놓은 채 예배를 드려야 할 정도였다. 윌리엄 코퍼는 올네이로 이주하여 뉴턴과 협력하면서 올네이 찬송을 펴냈는데, 이 찬송집에 뉴턴이 지은 거의 300편의 찬송시가 실렸다. 그 가운데에는 주의 이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그대의 영광스러운 것이 말씀되었나이다와 더불어 오늘날 전 세계에 가장 널리 알려진 찬송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가 포함되어 있다. 이 찬송은 이제 다양한 종교적·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들까지도 알 정도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한편 그는 노예선장으로 활동하던 과거를 결코 잊지 못하고, 그 죄책감 속에서 그 죄를 어떻게 씻어야 할지를 늘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설교를 마치고 강단에서 내려오는데, 젊은 정치가 윌리엄 윌버포스가 찾아와 상담을 요청했다. 그 만남을 계기로 뉴턴은 노예제 폐지를 외치는 윌버포스의 정치적 운동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고, 이후 노예무역을 폐지하기 위한 일에 중요한 조언자이자 영적 후원자로 헌신하였다. 그와 동료들의 오랜 수고는 마침내 대영제국에서 노예무역의 궁극적인 폐지라는 결실을 맺었다. 미국에서 노예 해방이 이루어진 것이 1863년이었음을 생각할 때, 영국이 더 이른 시기에 노예제를 폐지할 수 있었던 배후에는 이들의 눈물어린 노력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792, 뉴저지 대학(오늘날의 프린스턴 대학교)은 존 뉴턴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는데, 이때 알렉산더 해밀턴과 토머스 제퍼슨도 함께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뉴턴의 저술 가운데는 자서전과, 독자들의 여러 질문에 답한 서한을 묶은 영적 도움을 위하여가 특히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은 39편의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악과 고난, 죄의 문제 등 신앙생활과 관련된 폭넓은 주제를 다룬다. 그 안에는 죄가 넘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느니라는 성경 말씀에 대한 그의 깊은 깨달음이 녹아 있는데, 이는 한때 노예선장이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철저한 참회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붙드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대한 헌신 어린 고백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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