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말씀구원과 체험구원(1)

이진규 | 2025.03.21 16:43


구원은 죄인인 인간에게 영적으로 일어나는 너무나 중요한 하나님의 은혜의 사건입니다. 왜일까요? 영원한 지옥멸망에서 영생천국으로 옮겨온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배신 제자 가롯 유다에게너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했으면 나을 뻔 했다라고 말씀했는데,왜 그런 말씀을 했을까요?! 천국과 지옥이 내세에 실재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출생해서 이 죄 문제를 헤결 못받으면, 영원 지옥멸망받기 때문에,예수를 배신한 가롯 유다는 이 죄를 해결 못한자이기에 다가올 영원지옥 멸망 받을 것이므로, 그리 될 바에는 차라리 그에게 육신적 출생이 차리리 없었다면 좋을 뻔했다는 의미입니다. 왜 가롯유다는 제자의 삶을 선택했으면서도 스승되시며,구세주되신 예수님을 팔아 넘기는 배신을 하게 됐을까요?

예수를 진정한 하나님 아들과 자신을 위한 죄에서 구원자로 깨닫지 못했을뿐 아니라,죄에서 구원할 구세주로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 교회 공동체 내에서 직분도 맡았으나(재정관리)(종교적인 믿음) 영적으로 가듭나지 못한 예수 불신자였습니다.

여기서 교회에 오래 다녀도,가롯유다처럼, 직분도 받아도 봉사해도, 자기 죄를 분명하게 예수님께 전가시키지 못한채 예수 불신자로 남아있다면, 그도 가롯유다의 범주에 들어갈지도 모를 일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천국과 지옥을 증거하며,예수믿는 자는 천국, 불신자는 지옥행임을 증거합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 출생 했을지라도 에수믿어 가듭나지 못한다면,그 영은 내세에서 지옥갈 것이기 때문에, 현실 세상에서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게 낫다는 말씀이 성립됩니다.

왜 세상 사람들이 예수를 불신하는가요? 그들은 예수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경륜 차원에서는 선택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믿지 않는 불신자들 역시 가롯유다처럼, 차라리 태어나지 않했더라면 좋은 뻔 했다는 말씀이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태어나기를 잘 했다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인가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해 믿는 자들입니다.

예수믿는 자들이 세상에서 예수믿는다는 이유로 무조건 잘 되면 좋겠지만,세상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예수 잘 믿어도 가난하고 병들고 누명쓰고 핍박받고 고난과 고통과 억울함 속에 사는자 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이르기를 태어나기를 참 잘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죠? 반드시 그 모든 고통과 고난이 불원간에 끝이 나고,그 모든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의 세계(천국)가 예비 돼 있기 때문입니다.(8:18)

이처럼 구원이란 죄값으로 마땅히 영벌에 처해져야 할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음으로 인해 값없이 의롭다함 받으며, 하나님자녀 신분이 돼, 천국을 상속받게 되는 사건을 말씀합니다. 이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혜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1.말씀구원(이신득의)

그렇게 엄청난 큰 하나님의 혜택인 구원을 어떻게 받는가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며 믿고 받아들임으로써 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은 너나 예외없이 죄인이다고 선언합니다.(3:23) 그리고 죄의 삯은 사망이다(6:23). 그러나 그 모든 죄 값을 예수가 십자가로 담당했습니다. 죄인의 죄가 다 에수께로 전가 된 것입니다. 그 결과로 칭의받고,구원받아 하나님자녀 신분을 얻으며.영생천국을 보장받습니다. 이 모든 복이 다 하나님 말씀에 언약에 근거해서 성취됩니다.

어떻게 구원받는가요? 이 모든 복음을 담고 있는 말씀 언약을 듣고 깨닫고,받아들여질 때 그 믿음으로써입니다. )씨앗이 밭에 떨어지면 싻을 내듯이,하나님말씀 언약이 마음밭에 들려져 머물게 되면, 거기로부터 새생명을 얻는 믿음의 싻이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로마서 1017절말씀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했습니다.

밭에 씨가 떨어질 때 생명 싻이 나오는 것처럼, 영원한 하늘의 생명을 얻는 믿음이 하나님말씀을 귀로 듣고 마음속에 받아질 때에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구원에 관련된 하나님말씀을 듣고 반응하는게 거듭난 믿음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깨닫지 못하여, 부정적 반응, 거부하면, 불신자의 길입니다. 깨닫고 긍정적 반응하여 수용해 나가면 믿는 자의 길로 나갑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반응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영원한 운명길도 갈리게 됩니다.


이리 볼 때 구원얻는 믿음은 철저히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그 중에서도 그 말씀이 증거하는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되신 예수 복음을 깨닫고 믿으면 구원받는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게속 성장해 갑니다. 우리들도 모두 다 이 하나님 말씀듣고 결국 구원받는 믿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지금도 계속 말씀가운데 성장 성숙해 나가는 중입니다.


2,체험적 구원(이신득의)

대체적으로 말씀듣고 교육받음으로써 깨달음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구원받은 믿음에 이르게됩니다.(예수님의 제자교육방법).이렇게 말씀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구원을 이루게 된다하는 인식이 신학적 용어로 구원의 서정입니다. 말씀이 들어가면 갈수록 자신이 구원받은 자라고 하는 성경말씀대로 확증을 받게 됩니다. 즉 구원을 확신합니다. 그러나 게중에는 특별하게도 그런 일반적인 말씀 과정을 뛰어넘어서, 극적인 체험 통해서 구원을 받는 경우도 있다. )사도바울 평소 복음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 과정 없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직접만나 체험으로 구원에 이릅니다. 체험적 구원 믿음입니다.

이 둘 사이에는 서로 어떻게 다른가요?(차이점) 말씀구원과 체험적 구원은 전혀 별개로 서로 다른가요? 즉 전혀 다른 구원인가 말입니다.

어떤 목회자 가운데는 이 체험적 구원사건...인격적인 하나님 경험사건... 없으면 차별화를 시도합니다. 그런 자는 목사라도 자기네 강단에는 안세운답니다. 구원파같은 이단에서는 구원받은 날짜를 모르면 구원 못받았다고 미혹합니다. 그럴듯하잖아요?! 괴연 그러한 태도는 옳은가요? 만약에 차이가 있다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어야 제대로 되는 것인가요?

결론부터 말한다면 말씀구원과 체험 구원은,본질적으로 동일한 수준,같은 내용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당연하게 체험구원을 선호합니다. 상대적인 비교 관점에서 말한다면 그런 태도가 틀린 것만은 아닙니다. 그 차이점을 예로 들어본다면?...)사관학교 입학하면 지연스럽게 정규과정을 마치면 소위로 임관하게 됩니다. 그런데 임관식에서 많은 사관생들이 운집해 있는데, 그 중에서 몇 사람을 특별하게 불러 세워서 대통령 앞에서 악수하며,대표로 임관식장을 수상하게 된다하면 그 영광의 차이는 상대적으로 차이가 많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대통령과 악수하는 자나, 같은 그 시간에 운동장에 서있는 사관생들도 동일하게 소위로 임관하지 그것을 뛰어넘지는 않습니다. 똑같이 소위답니다.. ...


)임금님께 직접 백성 공고 말씀 들음(체험)과 방을 통해서 지방에서 글로 간접적으로 들었다해도 (말씀),말씀에 대한 체험 현상과 영광은 다를지 모르지만, 그 말씀이 주는 효력은 동일합니다.

믿음학교에 들어갔다 하면 말씀교육 절차에 따라서 교육받고 수료하면 구원받는 믿음이 임관된다 보겠습니다. )가롯 유다처럼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선택자가 아니라 , 유기하기로 작정한 자들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면 싻이 나오는게 순리입니다(말씀구원). )출산에서 순산하나(말씀구원),난산하나(체험구원),동일한 생명의미를 부여받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난산 끝에 출산한 것을 특별하게 여기고, 간증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놀라워합니다. 순산에는 별관심 안둡니다. 사실은 순산에게 더 특별한 감사의미가 있음에도 말입니다.


성경에서 제자들간에 비교해 본다면,극적인 구원체험은 사도바울입니다....그는 예수를 핍박하던 중에서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직점 체험합니다, 그리고 회신했습니다. 그의 구원은 당연히 체험적 구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12재자들은 예수님께 부르심받고 교회공동체 안에서 말씀교육받기 시작했습니다. 3년반 동안입니다. 그렇게 구원의 서정과정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예수님에때한 확신 믿음이 생겨났습니다.이러므로 구원에 관련해서는 바울처럼 특별하고 비상한 구원체험도 감사하지만, 다른 제자들처럼 구원서정 과정을 밟아 이뤄지는 말씀구원도 하나님 앞에는 동일하게 소중한 의미를 갖게됨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제자들의 구원받은 믿음의 싹이 보일일 때 쯤,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제자들을 둘러 보며 그들의 믿음을 확인하는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랴 하느냐?(16:15) ” 이때는 예수님 제자교회에 등록한 후 하나님 말씀을 들은 지가 꽤 됐을 무렵입니다. 그때 대답을 베드로가 이렇게 나섭니다.,“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나이다”(16:16)

솔직히 이런 정도 믿음도 그때 겨우 나온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도 수제자라고 하는 베드로가 말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어땟을까요?! 침묵했습니다. 그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런 베드로의 믿음고백을 얼마나 가뻐하시며 축복하시는지, 우리가 보기에 좀 지나치시다 싶으실 정도로 요란떠시게 창찬해 주십니다, 이를 네게 알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너는 복받은 자라고 ...

뭐 그리 대단한 신앙고백이라고 그렇게 주님은 베드로를 칭찬했을까 싶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무엇인가요? 그때 고백못하고 침묵했던 다른 제자들은 여전히 주님을 베드로처럼 전혀 인정못하는 불신상태로 있는가요 ? 아닙니다.

)땅속에서 싹이 나오는데 그중에 맨 먼저 나온 싹에 불과합니다. 다른 싹들도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때 베드로 믿음고백은,대표격이다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믿음고백 정도는 다른 제자들도 이미 가지고 있었던 상태라고 보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대표해서 ..사관생도들을 대표해서 대통령 상받듯이, 이미 타 사관생도들도 다 소위임관 자격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먼저 나선 베드로 믿음고백을 칭찬하고 축복한 것은 다른 제자들도 동일한 칭찬을 해준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 사랑이고 그래야 차별없고,그래야 동일한 부르심과 구원받은 제자들이 됩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의 믿음 구원은 철저하게 말씀교육으로 이뤄진 말씀구원입니다.

단지 아직 그 싹이 미약할 뿐입니다. 성장해가야 하겠지요....

그런데 왜 그리도 아직은 미약한 싹에 불과한 베드로의 믿음고백을 예수님은 그리도 칭찬했을까요? ...그것은 생명난 것에 대한 순수한 기쁨이기도 하지만, 구원의 싻의 미래를 보시고 전능자로서 기뻐하시는 모습인 것입니다.


)농부의 기쁨...씨앗을 뿌리면 때가 되어 싻들이 땅에서 터져나올 때 그 싹을 바라보는 농부의 기쁨을 아는가요? ...왜 그 어린 싹을 보고 농부는 그리도 기뻐할까요? 그 싹이 예쁘기도 하지만,농부는 이제 시작된 그 싹이 자라서, 후에 성장해 맺을 열매를 미리 내다보기에 그토록 기뻐하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이 아직은 부족하지만 베드로를 비롯해서 다른 제자들에게서, 이미 시작된,하나님 손길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구원 싹의 새생명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새생명이 지금은 미약하나 나중에 자라서 하나님 나라 위해 얼마나 기여하는 큰 일군들이 될지를 미리 아시기 때문에 그리도 기뻐하신 것입니다.

이를 네개 알게 하신 이는 하늘 아버지라고 하며 복받은 자라고 칭찬하신 이유? ..

그렇습니다 구원은 혈과 육으로 되지않습니다. 그래서 타종교나 율법종교가 구원에 실패하는 이유입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이며, 그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기때문입니다.(2:8.9) 그 하나님 아버지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구원선물을 말씀을 통해서 교육 받다가 깨닫고 고백하는 그들의 믿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예)처녀마리아가 예수 잉태가 불가능한 상태인데, 성령으로 잉태가 가능해진 것처럼, 불신 심령이 하나님 말씀 통해서 성령의 은혜로운 역사로 인해 믿음이 확실하게 싹터 생겨났기 때문에 복받은 자라고 기뻐하시며 극찬하신 것입니다. 그 은혜 그 복을 받았다고 증거되는 믿음이 그들에게서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 통해서 믿음이 일어난 것은 내 힘 노력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입었다 해서 복받은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말씀 통해서 믿음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임하신 성령의 은혜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고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고전12:3)

그래서 그 믿음을 고백하는 자들은 참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 믿음을 보시고 아직 연약하지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지를 아버지 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 정도 하나님 아버지께는 사랑받기에 합당하게 가듭난 복받은 자녀들입니다.

이때 제자들은 시원찮아도 확실하게 구원받은 믿음의 소유자들이 이미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농부가 때가 되매 싻을 보듯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서 영원한 새생명의 씫을 보시고 기뻐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복되도다 했습니다. 이렇게 구원의 주인되신 주님께서 친히 제자들을 불러 모아(교회)말씀으로 교육해서, 그들에게 구원이 임하도록 교육과정을 충실하게 이행하시는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 말씀이 구원이기 때문입니다.(6:63)

사도바울 하고는 비록 구원양상이 좀 다르게 나타났을지도 모르나, 결과는,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동일한 구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자들은 다같이 예수님 실망시키지 않고 믿음으로 잘 자라갔습니다. 공생애 기간동안 에수님과 함께 동역도 하실 정도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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