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요19:6-12)

이진규 | 2025.03.19 18:24


(서론)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역사적으로 볼 때,예수그리스도께서 지금부터 약2천연전 갈보리 언덕위에서 십자가형 처해 죽으셨습니다. 십자가형은..)그림.,당시에 로마법의 중죄인들,)질나쁜 살인강도,국가반역죄...에 해당하는,중죄인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잔인하게 공개처형해서,죄를 응징하고,그 집안은,“저집은 십자가형받는 집안이야!”해서, 사회적으로 왕따당하게 하여,절대 그런 죄를 져서는 안된다고 하는 교육과 경고가 담겨져있는,로마 최고 사형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재판을 직접 담당했던 로마총독 빌라도에 의하면,사실해보니 그럴만한 죄가 예수님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요한복음 196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그렇다면,분명코 죄없으신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죽게 되었고.누가 예수님을 십자가 죽음으로 몰고 간 것입니까?

1.유대종교지도자들과 그들을 추종했던 유대인들이 일차적으로 해당합니다. 그들은 본문속에서 볼 때, 재판장 빌라도한테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십자가에 못박으소라고 분노하며 아우성칩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처형할 것을 주장했을까요?

.자기를 하나님의 친아들이라고 하는 신성모독죄를 범했다 해서입니다.요한복음197절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범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예수께서 하나님나라 진리를 가르치던 중에, 은연중에 자기 참 정체를 밝히시기를, 자기는 하나님의 아들이다고 언급했습니다.


요한복음521절말씀입니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를 일으켜 살리심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더 충격적인 것은 자신은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되는 절대자이시다.말씀합니다. 요한복음1030절말씀입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 아니 갈릴리 벽촌에 사는 천한 목수 요셉 아들인 것을 뻔히 아는데,그런 자가 자기를 하나님 친아들이다.하나님과 동일시된다.”는 말은, 모세율법에 의하면,하나님 절대자를 모독하는,신성모독죄로서,돌로 쳐 사형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은, 로마 통치를 받기 때문에,사형관련 법문제는,자기들 법대로 못하고,로마법에 따라야 했습니다. 그런데,자기를 하나님아들이라고 한다는 주장은,이스라엘종교법으로서,로마법에는 저촉이 안돼요. 그래서 로마 최고사형법에 해당되도록,예수가 자기를 이스라엘 왕이라고 주장하고 가르쳐 무리를 선동하고 현혹시킨다고 정치적으로 고소했습니다.

하지만,총독빌라도가 사실 조사해보니,자기들의 유대종교적인 문제로 발생한것이지,로마실정법에 저촉행위로 볼수 없다고 판단돼,예수님을 죄없다 방면하려하자, 그렇게 못하도록 쐐기를 박는 말을 이렇게 합니다. 요한복음1915절말씀입니다. “그들이 소리지르되 없이하소서 없이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유대인들에게는 어떤 신앙이 있냐면? 자기들을 통치할 왕은 오직 하나님 한분 뿐이시며, 그 하나님께만 큐리어스()라고 경배하며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황제가,자기를 신으로 숭배하도록,강요할 때도,하나님 외에는 어떤 세상왕에게,큐리어스(),로 경배할수 없다고,신앙의 절개를 지켜왔던 그들인데,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시키도록 만들기위해서,,로마황제를 자기들의 왕으로 인정해 버리는,하나님께 대한 자기들의 신앙의 절개를 포기하는,큰 죄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 유대종교자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려고 합니까? 그 예수께서 진짜 하나님아들이시며,그들의 왕이시며,메시야 그리스도이심을 몰라서였습니다. 그렇다면,갈리벽촌 천한 목수에 불과하다고 여겼던 예수님의 참정체가 하나님아들 그리스도이셨다면,구약 율법에 따라,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열심으로,예수를 십자가 죽음에 넘겼던 유대종교 지도자들과 그 추종자들의 참정체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아들 예수께서 그들의 정체를 이렇게 폭로하셨습니다.

 요한복음844절말씀입니다.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그들이 정녕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자들이었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보내신,하나님아들 메시야 그리스도를,알아보고 믿어야 할텐데,모르고 그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려하는,그들의 진짜 영적 소속은,하나님이 아니라,마귀사탄이었다. 그래서,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지금이 마귀사탄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밭에는 곡식이 있는게 당연하지만,그속에는 잡초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은,하나님을 아버지와, 예수를 그 아들 구세주로 제대로 믿어,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자녀로서,그 이름이 하늘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 다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자녀들과,예수를 믿는 자라면,삼가 주님 뜻을 따라 살며,교회를 위해 헌신해야 하고,예수님의 교회를 해하는 사탄적인 일을 하지 안해야 합니다.

2.가롯유다가 예수를 먼저 배신하여,십자가 죽음으로 내몰리게 했습니다.

가롯유다는,예수님과 36개월동안,동고동락했던 제자로서,12제자 공동체,교회의 헌금,재정을 담당하는 일을 했던 일군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왜 예수그리스도를 배신했을까요? 외형상의 이유로는 돈 은30냥 때문이었으며.자기 뜻대로-예수께서 메시야라면,로마로부터 고통받는 자기동족을 구해내야 하는데,그렇지않고 무력하게 십자가를 지신다는 이유때문이었습니다. 보다 중요한 영적인 이유로는 마귀사탄에 지배받아서입니다. "요한복음132절말씀입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롯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왜 예수를 믿습니까? 돈 때문에 예수믿는게 아니어야 합니다.내 뜻을 이루려고함이 아니라,하나님뜻을 이루려고 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항상 받아,마귀사탄이 주는 생각과 유혹을 뿌리쳐야 합니다. 예수믿는 길은, 넒은 길이 아니라,앞서 가신 주님 따라가는길,십자가의 길 좁은 길임을 알고, 자기를 부인하며,주님말씀에 자기를 쳐 복종시키며,변치말고 끝까지 믿음지켜 나가야 합니다.


3.빌라도가 예수를 죽이는데 결정적인 재판을 담당했습니다.

빌라도가 세상법으로는 예수를 죽일수도 살릴수도 있는 최고 행정 재판자입니다. 요한복음1910절말씀입니다.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십자가에 못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못하느냐그렇다면,빌라도는,자기가 양심적으로,죄 없다 판단했으니,제아무리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죽여달라고,요구해와도,소신껏 무죄, 판결해야 옳은 재판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요구가 불의함을 알면서도,안들어줄 경우,폭동이라도 일으켜,자기 정치입지에 손해볼까봐,자기 정치입지를 위해서,죄없는 예수그리스도에게 십자가형을 판결했습니다. 왜 사도신경에서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죽으시고라고 신앙고백합니까? 로마총독 빌라도 이름을 언급하여,예수가 신화적 인물이 아니라,역사적 실존인물이며,실제로,죄없는 하나님아들 예수그리스도를,비록 자의가 아니라해도,십자가형에 내어준 판결자,불의한 재판자가 당시 총독빌라도였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1911절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했다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나를 너에게 넘겨준 유대종교지도자들의 죄가 더 크지만,그들의 요구대로 재판하는 너의 죄 또한 면치 못하리라는 말씀 뜻입니다.그런 그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하나님뜻에 어긋나는 줄을 알면서도,인간과계상 이유나 또는 내게 손해보는 일이 생길까봐,어쩔수 없이 불의를 따랐다고 해서,최후 하나님 범정에 설 때에,무죄합니다는 변명이 안통한다는 것입니다. 고의든 고의적이지 않든간에,하나님 자녀들은 세상에서 살 때,하나님뜻을 포기하고 불의를 따라가고 타협해서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어떤 환경적인 요인이나 이유 때문에,예수에 대한 신앙의지를 꺾이게 헤선 안됩니다. 주 예수 편에 서서,의를 지켜내며,불의와 타협치않을 수 있는, 정직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이뤄내시기를 축원합니다.

로마 백부장과 그를 따르는 군인들이 직접 예수님을 십자가 형에 처하는 집행을 했습니다. 그들은 상관이 시키는대로 해서 어쩔수 없이 했다해도,그들 역시 예수를 십자가에 죽인 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알고 모르고 간에,하나님 자녀로서,불의에 가담치말고,불의의 도구로 사용되지않게끔,자기 관리를 잘해내는 정직하고 신실한 하나님자녀들의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3.예수를 그들 외에 달리 누가 죽였습니까? 여기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한 진짜 원인 제공자들이 또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일까요? 바로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죽으신 이유는? 외형적으로는 유대인들 때문이며,가룻유다 때문이며빌라도 때문이며 로마군인들 때문입니다. 그러나 겉으로 볼 때는 그들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은 것이나,실제 참 이유는 11절말씀에서처럼, 위로부터 하용된,즉 하나님의 짜여진 각본대로 하나님의 진짜 숨겨진 이유와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예수께서 자원해서,십자가 죽음의 길로 간디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그 진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류의 죄를 구속하는 일을 위해서였습니다.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을 포함하여,오늘 우리들까지,앞으로 다가오는 세대 사람들까지, 포함하여,그 죄값을 대신 치루시고,그 죄를 사해주시고,하나님 자녀삼아,천국영생을 축복해주시고,하늘나라 천국으로 구원의 길을 열여주시려고,속죄하는 제물되어 십자가에 달려죽어주신다는 것이 진짜 이유입니다. 아멘입니까? 그러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으시는 이유는? 오늘 나와 우리들의 죄 때문이다,내 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만들었다고 깨달아 알야하며,그 십자가 진리를 깨닫고 믿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교부였던 아타나시우스가 깜빡 잠들어 꿈을 꾸게됐는데,꿈속에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어떤 사람이 또 그 십자가에 올라가 다시 쾅쾅 망치질을 하고 있더랍니다.“어떤 놈이냐! 어떤 놈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냐!”분개하며 달려가 범인의 얼굴을 확인했는데요, 이게 웬일인입니까? 그는 다름아닌 아타나시우스 자신이었다고 합니다.소스라치게 놀란 그가 잠에서 깨어 대성통곡하며 외쳤습니다. “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나의 죄악으로 인하여 내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나이다. ”


누구 죄가 예수를 십자가에 죽게 만들었습니까? ...내 죄 때문입니다.라고 뜨겁게 마음중심으로 고백하도록, 성령께서 조명해,역사해주시기를 축원합니다. 호리티우스 보나 라는 사람의 신앙고백시를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거룩한 피 내가 흘리게 했네 내가 그분을 나무에 못 박았네 내가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고 그 모욕하는 일에 나도 참여했네 ...


유대종교지도자들과 그 추종유대인들,빌라도,가롯유다,로마병정에 의해 예수가 죽었다에서 끝나면,그 역사적인 예수 십자가 죽으심이 오늘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됩니다. 2천년전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은,내 죄 때문에 죽으셨다. 이런 진리를 바로 깨달을 때, 비로소 예수 십자가에 담겨진 은혜를 알고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내 주 예수께서 날 위해 지신 십자가 은혜와 공로 때문에, 나같은 죄인이 하나님 앞에 서고 살게 됐다고 믿으십니까? 그 은혜를 알고 믿는다면,날 위해 그렇게 고난당하신 예수님을 모른채 해선 안됩니다. 그분이 당하신 고난의 깊은 의미를 되새기며,죄를 회개해야 할 것이며,그 은혜를 감사해야 할 것이며,그 예수를 따르도록 충성하고 결단을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은혜에 동참하는 고난주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그 예수님 십자가를 생각하며, 성찬예식 참여하며,내일부터 한 주간은,나를 위한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며,함께 교회에 나와 기도하기를 원합니다.동참바라며,하나님의 은혜가 사랑하는 모든 성도와 가정과, 우리교회 위에 충만하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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