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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칼럼
그리스도를 본받아- 토마스 아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토마스 아켐피스
"당신이 성경을 모두 암송하여 알고 있고 철학자의 말을 알고 있을 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함이 없다면 무슨 유익이 있는가? 하나님을 섬기는 겸손한 농부가 그 자신을 소홀히하면서 하늘의 움직임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교만한 철학자보다 분명히 낫다.”
토마스 아켐피스(1380-1471)의 본명은 토마스 해메르켄이다. 그는 데벤터의 성직자학교를 입학하여 라데윈스의 영적 지도 아래 있게 된 12세 때부터 그의 긴 생애의 마지막까지 게르트 그로트(1340-1384)가 시작한 <근대적 경건>운동에 전적으로 몰두하였다.
그는 책을 쓰고 사본을 필사했으며 그리스도를 전하고 다른 사람들을 권하였다. 그의 생애와 저작들은 후기 중세 교회의 영적인 꽃이었다.
라틴어로 기록된 그의 대표작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4부로 되어 있다. 1부는 <영성 생활에 관한 권고>, 2부는 <내적 생활에 관한 권고>, 3부는 <내면의 위안에 관하여>, 그리고 4부는 <복된 성만찬>이다. 4부에서 토마스는 성만찬의 신학적,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책제목이 보여주고 있듯이, 이 책의 목적은 그리스도인에게 그리스도의 모범을 본받음으로써 완전한 길을 가도록 가르치는데 있다.
1425년부터 1450년대 동안에는 이 책이 비밀리에 배포되기 시작하더니 수십년 내에 서부 유럽 전역에서 사랑을 받는 책이 되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탐구적이며 영적이며 그리고 전적으로 그리스도 중심적이다.
<기독교명저 60선>(종로서적)에서 이현주 목사는 이 책의 영향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지난 5백년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이 작은 책이 끼쳐 온 방대한 영향력을 모두 측량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 지혜의 깊이와 생각의 명료함 그리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에 있어 아마도 성서 다음 가는 책이라고 할 만 하다. 토마스 모어, 성 이그나시우스 로욜라, 존 웨슬리, 성 프란시스 사비에르 등 이 책에 의하여 생각이 맑아지고 인생이 아름다워진 사람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한 수도자가 쓴 작은 책 한 권이 그토록 많은 독자들의 인생을 뒤바꾸고 또한 끊임없이 지혜와 용기를 넣어 주고 있다는 사실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실은 이 책의 저자인 토마스 아 켐피스는, 하나님을 향한 불타는 사랑과 깊은 겸손,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 인간성에 대한 통찰력과 너그러운 이해심으로 인생의 참된 목적을 알고 그것을 성취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슬기롭고 신뢰할만한 조언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토마스는 하나님과 하나되는 최고의 목적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에게 헌신하는 것, <거룩한 십자가의 왕도>를 따라 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토마스를 연구한 크루이스 박사는 말하기를, “의심할 여지 없이 토마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예수가 하늘로부터 이 땅으로 가져온 빛을 가장 완벽하게 반사하고 있으며 최고 수준의 그리스도교 철학을 전개하고 있다”라고 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이 책이 ‘행위에 의한 칭의’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4부에서는 성례에 기초한 카톨릭주의를 가르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마음과 생각을 집중시키고 있다.
“만일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에수님을 위해 자신을 무시한다면 그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 이외의 세상적인 것들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이는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도 예수님이 사랑받으실 만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에 집착하는 사람은 그 피조물이 망할 때 함께 망할 것이요 에수님을 품은 사람은 영원히 굳게 설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분을 당신의 친구로 삼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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