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조지 휫필드의 일기

송광택 | 2004.06.27 21:12
조지 휫필드의 일기
원제- George Whitefield's Journals
조지 휫필드 / 엄경희 옮김/ 지평서원

영국의 설교자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1714-70)는 열정의 설교자였다. 눈물 없이 마친 설교가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는 그에게는 항상 잃어버린 자들을 위한 진정한 슬픔이 있었다. 분명한 억양, 우렁찬 음성, 청중의 마음을 열게 하는 설득력, 그리고 유행어와 예화의 적절한 사용 등은 그의 설교의 특징이었다.
본서는 18세기 영국과 미국에서 복음을 전한 조지 휫필드의 일기 모음이다. 이 책은 그의 사역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그리고 그의 신학적 특징을 가장 잘 알 수 있도록 짜여져 있다. 독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쓰시기 위해 어떻게 그를 빚으시고 다루셨는지를 읽을 수 있다. 또한 이 일기에서 그가 뜨거운 열정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던 순간들의 기록을 볼 수 있다.
휫필드는 미국을 일곱 번 방문했는 데, 뉴잉글랜드 노샘프턴에서 영적 각성 운동을 전개시킨 조나단 에드워즈를 만난 후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에드워즈는 견고하고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다... 나는 뉴잉글랜드에서 그와 필적할만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고 생각한다"(1740년 10월 17일). 같은 해 10월 19일(주일)의 일기에는 에드워즈 부인이 "온유함과 고요한 영혼으로 장식을 하고 있었고, 하나님의 일을 확고한 마음으로 이야기했다"고 기록했다.
이 책의 부록에는 존 웨슬리의 <값없는 은혜>라는 제목의 설교에 대한 답변으로 존 웨슬리 목사에게 휫필드가 보낸 장문의 편지가 실려 있다. 휫필드는 로마서 8장에 대한 웨슬리의 해석을 비판하면서, 그 본문은 '선택의 교리'로 보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였다. 편지의 결론부에서 그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친구' 웨슬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그곳[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사랑하는 웨슬리 자네가 선택과 영원한 사랑에 대해 확신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네."
휫필드는 그를 추종하던 많은 사람들에게 "휫필드라는 이름은 사라지게 하라. 다만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라"고 말했다. 그는 한 교파나 교단의 창시자가 되지 않았다. 그는 1770년 보스톤으로 여행하던 중, 엑세터의 어느 여관에서 한밤중에 몰려든 청중들에게 마지막 설교를 한 후,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10월 2일 그의 육신은 미국 메사추세츠의 뉴베리포트 교회에 묻혔고, 영국에서는 존 웨슬리의 인도로 장례 예배가 드려졌다.
1879년 찰스 스펄젼은 휫필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조지 휫필드와 같은 사람에게 관심을 쏟는 것은 결코 끝이 없다. 종종 그의 생애를 읽을 때 어느 부분을 펼치든, 즉각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는 '살았다'. 다른 사람들은 단지 반만 살다 간 것처럼 보인다. 휫필드의 모든 삶은 불이었고 날개였으며, 힘이었다. 나의 주님께 순종하는데 있어 나에게 모델이 있다면 그것은 조지 휫필드이다."
독자는 휫필드의 일기에서 무려 13회나 대서양을 넘나들며, 1만 8천 회에 달하는 대중집회에서 복음을 전한 하나님의 사람 조지 휫필드의 살아 울리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1,020개(24/51페이지)
편집자 칼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560 모바일 [문양호 칼럼] 초과중량 문양호 2019.03.14 15:04
559 [서중한 칼럼] 내 삶의 중심을 내어 드리라 서중한 2019.03.12 18:32
558 [송광택 칼럼] 스타벅스 웨이, 조셉 미첼리 지음, 현대지성 사진 첨부파일 송광택 2019.03.09 23:54
557 [서상진 칼럼] 바로 알면 바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서상진 2019.03.08 05:07
556 [서상진 칼럼] 무서운 사람 서상진 2019.03.07 09:22
555 [서상진 칼럼] 고난은 이 때를 위함입니다. 서상진 2019.03.06 05:15
554 모바일 [김성욱 칼럼] <복음, 교회 회복의 본질 > 김성욱 2019.03.05 10:52
553 [서상진 칼럼] 누구를 믿고 있습니까? 서상진 2019.03.03 09:54
552 [서중한 칼럼] No Jesus phobia(예수중독) 서중한 2019.03.01 20:29
551 [서상진 칼럼]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큰 것 서상진 2019.03.01 08:10
550 [서상진 칼럼] 예수님이 필요한 이유 서상진 2019.02.28 09:34
549 [서상진 칼럼] 점점 힘들어져 가는 심방 서상진 2019.02.27 14:57
548 [서상진 칼럼] 보여주면 믿을까요? 서상진 2019.02.26 05:10
547 [서상진 칼럼] 누구를 위한 교단인가? 서상진 2019.02.26 05:10
546 모바일 [김성욱 칼럼] < 세상의 시선 > 김성욱 2019.02.23 10:14
545 모바일 [김성욱 칼럼] 인내 김성욱 2019.02.23 10:13
544 [서상진 칼럼] 설교 준비가 되지 않았던 하루 서상진 2019.02.23 10:04
543 [서상진 칼럼] 누구를 위한 번영인가? 서상진 2019.02.21 09:44
542 모바일 [김성욱 칼럼] <하나님의 주권과 순종> 김성욱 2019.02.19 07:08
541 모바일 [김성욱 칼럼] <논쟁의 태도는 사랑이다> 김성욱 2019.02.19 07:0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