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너무 익숙해서 상처를 만듭니다

서중한 | 2018.06.21 19:02

제가 지금까지 사역을 하면서 겪었던 뼈아픈 기억 한 가지가 있습니다. 십년 전쯤의 일입니다. 섬기던 교회에서 어느 날 아침 몇 가지 일들을 처리하고 오전 심방을 가야할 바쁜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오십대로 보이는 낯선 남자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이 분이 목사님과 면담을 하고 싶다는 겁니다. 교회사무실에서 저보고 그 남자 분을 만나서 상담을 좀 하라고 합니다. 할 수 없이 옆방으로 가서 그 분을 만났습니다. 어떤 일로 교회에 오셨냐고 물었지만, 그 남자 분은 쉽게 입을 떼지 않았습니다. 제 머리 속에는 처리해야 할 일들과 심방 시간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마음이 답답했지만 꾹 참고 기다렸습니다. 조금 후에 그 분이 말을 꺼냈는데 말은 느리고, 말꼬리를 흐렸습니다. 신경을 써서 들어보니 아내와 아들 둘이 있는데 며칠 전 공항 앞에서 자신이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큰 사고가 나서 아내와 아들 하나는 그 자리에서 죽고, 다른 아들은 병원에서 치료 중이고, 자신만 몸이 좀 불편하긴 하지만 살았다는 겁니다.

 

좀 심각한 일이긴 한데 그래도 교회 오래있다 보면 별별 사람이 다 오거든요. 여권과 연락처를 다 잃어버렸다고 하는 외국인들부터, 지방을 내려가야 하는데 소매치기를 당해서 차비가 없다는 사람, 이런 저런 이유로 좀 도와 달라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교회에 오래 있다 보니 척보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보이는 거예요. 대부분 도와달라는 사람들의 사연이 비슷하거든요. 떠듬거리며 이야기하는 그분도 그날 아침 제게는 반신반의였습니다. 제가 처리해야할 일들 때문에 마음은 점점 초조했습니다. 그때 제가 그 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그래서 교회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그 말을 하자마자 그 분의 안색이 확 바뀌더라구요. 그리고 아내와 아들을 한꺼번에 잃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허둥대니까 주변에서 교회라도 가서 목사님을 만나보라고 권유를 해서 내가 이곳을 찾았구요, 뭐 도움 받으러 온 거 아닙니다. 그냥 제 얘기 나눌 때가 없어서 온 겁니다. 됐습니다!”하고 자리를 차고 일어나는 겁니다. 그 순간 아차!’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교회 문을 나서는 그 분 뒤를 200-300m는 족히 따라간 것 같습니다. 황을 설명하면서 죄송하다는 말을 수없이 드렸지만 그 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를 건너 가버렸습니.

 

너무 잘 알고, 익숙했을 때 돌이킬 수 없는 아픈 상처를 냅니다. 척 보면 알정도가 됐을 때 뼈아픈 일들이 생깁니다. 우리 스스로 익숙한 대로, 편한 대로, 습관대로 생각하다가 작은 한 사람을 실족시킵니다. 사람이 아니라 일에 매여 바퀴처럼 돌아가다가 큰 사고를 낸 것이지요. 그러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셨습니다(18,5-10). 저는 그 귀한 소자를 실족시켰습니다. 그 분이 잰걸음으로 길을 건너면서 이 놈의 교회 다시 오나봐라!”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한 영혼을 향해 떨리는 마음이 사라지고, 섬약한 누군가를 향해 조심스러운 마음을 잃어버리면, 소자 하나를 허투루 대하면 우리 영혼에 이상이 생긴 겁니다. 저는 그 때 그런 이상을 겪고 있던 겁니다.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숨이 막혀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그날 그 아침 중년의 남자 분께 용서를 구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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