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판결 흉패(출애굽기 강해)

강도헌 | 2018.02.06 11:05

판결흉패 (출애굽기28:15-30)

 

지난 시간 에봇의 어깨받침대에 이어 제사장의 에봇 위 가슴 쪽에 붙여질 ‘판결 흉패’의 제작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흉패에는 우림과 둠밈이라는 주사위 같은 신탁을 묻는 두 개의 돌도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흉패를 판결 흉패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흉패는 에봇과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진 화려한 정방형(정사각형)의 천 조각으로 만들었습니다.

 

흉패는 가로 세로 한 뼘씩 약 22.5센티미터씩 두 겹으로 하여 하나의 주머니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줄에 세 개의 보석을 물려 네 줄로 전부 12개의 보석을 물리고 그 보석들에 금테를 물렸습니다. 이 보석들은 각각 12지파의 이름들을 새겨 넣음으로 이스라엘 12지파를 나타내었습니다. 이로 인해 12부족의 지파들은 야훼 하나님 앞에서 하나의 공동체로 연합되고, 각각의 12지파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앞에 순종해야 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림과 둠밈을 대제사장 가슴 바로 위에 달기(넣기)위함이었습니다. 우림과 둠밈의 정확한 의미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지만 현재 대부분의 학자들은 ‘우림’을 ‘빛’ 또는 ‘저주’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둠밈’은 ‘완전’을 의미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두 개의 주사위를 어떻게 사용하였는지에 대해 많은 성경학자들은 의견을 모으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는 이 주사위를 통해 대제사장이 점을 치는 방식을 취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는가 하면, 다수의 학자들은 ‘계시’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 성경의 내용과 불일치함을 주장하며 우림과 둠밈은 어떤 결정을 내리기 위해 정보를 얻는 필수적인 수단이라기 보다는 대제사장에게 열려 있는 특별한 계시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12개의 보석과 하나의 흉패

오늘의 본문을 통해 살펴보아야 할 의미심장한 주제는 두 가지입니다. 그 첫째는 12보석이 하나의 흉패에 물려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그 주머니 안에 우림과 뭄밈이라는 신탁의 물건이 들어 있었고 그 사용처와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먼저 12보석과 하나의 흉패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이미 본문에서 언급되고 있듯이 “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보석마다 열두 지파의 한 이름씩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고”(21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열두 보석은 이스라엘의 12아들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고, 이 이름이 세겨진 각각의 12보석들은 당시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흉패를 만든 첫 번째 목적은 바로 12보석을 달기 위함입니다. 12지파의 상징으로 보석을 물린 것은 이들이 아름답고 존귀한 존재임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보석의 가치와 값을 결정하는 것은 정결함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빛깔을 내고 있는 큰 보석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흠이나 티가 있을 경우 그 보석의 가치는 현격하게 떨어집니다. 이처럼 보석은 존귀하고 아름다움을 상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의 정결함을 유지해야 하는 조건을 함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구약에서는 이 판결흉패를 대제장의 가슴에 붙여져 있었겠지만, 신약에 들어와서 히브리서의 기자가 말씀하고 있는 제사장 된 우리의 오직 유일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슴 앞에 자신의 백성이 보석과 같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석같이 빛나는 자신의 백성을 가슴 앞에 장식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남녀노소, 빈부의 차이, 사회적 직책의 차이와 같은 모든 것이 사라진 우리 모두가 존귀한 자이며, 또한 우리 주위에 있는 모두가 우리 자신과 같이 존귀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구별하고 나누는 식의 자기중심성과 물질, 성공, 외모의 가치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가 모든 사람을 존귀한 존재이라고 가르치며, 이것은 나 자신만을 향한 말씀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17절부터 20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이 보석들은 3개씩 4줄로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줄은 홍보석(유다), 황옥(잇사갈), 녹주옥(스불론)으로 성막의 동편에 위치한 지파들입니다. 둘째 줄은 석류석(르우벤), 남보석(시므온), 홍마노(갓)으로서 성막 남편에 위치한 지파들입니다. 셋째 줄은 호박(에브라임), 백마노(므낫세), 자수정(베냐민)으로 성막 서편에 위치한 지파들이며, 마지막 줄은 녹보석(단), 호마노(아셀), 벽옥(납달리)로서 성막 북쪽에 위치한 지파들의 순서로 달려 있습니다. 이 판결흉패에 붙여진 보석의 순서와 위치는 이스라엘 군대의 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애굽기와 민수기에서 묘사되고 있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의 12지파는 하나님의 군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즉, 왕이 어떤 곳으로 이동을 하거나 특히 왕이 직접 참가하는 전쟁을 치르는 군대의 진행과 진형의 모습이 바로 광야를 행진하며 진을 치고 있는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야훼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군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2보석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의미는 하나님의 통치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하나님의 군대이고, 이 충성스러운 군대는 하나님에게 빛나는 보석과 같은 존재이며, 이 군대는 하나님의 빛나는 영광과 업적을 드러내고 지키기 위해 싸우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오직 왕이신 야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만 움직이고 멈추며, 야훼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방향으로만 행동하는 존귀한 하나님의 군대들입니다.

 

우림과 둠밈

이 판결흉패는 두 겹의 천으로 만든 주머니의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즉, 판결흉패를 만드는 두 번째 목적은 바로 ‘우림’과 ‘둠밈’이라는 두 개의 돌(주사위, 제비)을 넣기 위함입니다. 사실 이 두 개의 돌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연구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19세기 말부터 우림과 둠밈에 대한 어원의 본격적인 인구가 시작되었고 최근에는 기존의 연구들을 총 망라한 단행본이 나오기도 했습니다(Comelis Van Dam, The Urim and Tummim: A means of Revelation in Ancient Israel).

 

사실 한 치의 앞도 알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은 현재에 대한 어려움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지금도 엄청난 돈을 부어가며 점집을 찾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신의 힘을 빌어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방법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문화권에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죽은자의 영혼과 접촉하는 점술(necromancy), 화살을 쏘아서 신의 뜻을 찾는 점술(bellomancy), 물에 기름을 띄워 그 모양을 보는 점술(lecanomancy) 등 각종 점술들이 행해졌다는 구체적인 증거들이 구약성경 여러 곳에 남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점술들은 성경의 기록자들에 의하여 야훼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것들이라고 비난을 받아 왔습니다.

 

반면, 사무엘상 28장 6절은 야훼 하나님께서 공식적으로 인정하시는 세 가지 점술 방식으로 꿈, 우림, 선지자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림과 둠밈은 구약성경에 여러 번 언급되는데 출애굽기 28:30, 레위기 8:8, 민수기 27:21, 신명기 33:8, 사무엘상 14:41, 28:6, 에스더 2:63, 느헤미야 7:65 등입니다. 우림만 언급되는 민수기 27:21절, 사무엘상 28:6의 두 번을 제외하고는 주로 우림과 둠밈, 또는 둠밈과 우림식으로 짝을 이루어 나타납니다.

 

우림과 둠밈의 의미와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들이 제기되었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설명은 우림을 히브리어 ‘오르(빛)’에서 온 것으로 보고, 둠밈을 ‘타맘(완전하다)’에서 온 것으로 이해합니다. 다른 한 편으론 이 두 개가 단어 의미를 각각 ‘빛’과 ‘완전함’으로 보지 않고, 한 개념을 두 단어로 표현하는 방식(hendiadys)의 일종으로 보아서 ‘완전한 빛’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빛은 우리말로 하나님의 ‘조명, 계시’ 등으로 보아 ‘완전한 조명, 완전한 계시’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제가 보기에 인위적으로 끼워 맞춘 해석으로 여겨집니다.

 

중요한 것은 ‘우림과 둠밈은 어떻게 생겼으며, 그 기능과 목적은 무엇인가?’ 입니다. 아직은 고고학적으로 발견된 우림과 둠밈의 모델도 없고, 성경 이외의 히브리와 근동의 자료에도 우림과 둠밈에 관한 남아 있는 기록이 없어서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은 구약성경 뿐입니다.

 

우림과 둠밈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은 사무엘상 14장 41절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개역개정판 성경은 “실상을 보이소서 하였더니 요나단과 사울이 뽑히고 백성은 면한지라”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 구절의 ‘실상’은 ‘둠밈’으로 번역해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개역개정판 성경은 맛소라 사본을 그대로 번역한 것인데, 이 부분의 맛소라 사본은 대부분의 주석가들과 학자들이 호모이오텔루톤(homoiotelouton)의 결과로 원문이 손상된 상태로 보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사본을 필사하는 서기관들이 동일한 단어가 두 행의 끝부분에 나타날 때 두 번째 행을 필사한 것으로 착각하여 그 행을 빼먹고 다음 행으로 넘어 가면서 그 행이 통째로 누락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주석가들과 학자들은 70인역을 따라 사무엘상 14장 41절을 재구성하여 채워 넣고 설명을 하는데, 우리말 새번역 성경이 이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주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었다. “오늘 저에게 응답하지 않으시니, 웬일이십니까?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그 허물이 저에게나 저의 자식 요나단에게 있다면 우림이 나오게 하시고, 그 허물이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있다면 둠밈이 나오게 하십시오.” 그러자 요나단과 사울이 걸리고, 백성의 혐의는 벗겨졌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판결을 내리기 위해 우림과 둠밈을 사용하였습니다. 우림과 둠밈에 대해 아직도 많은 이견들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현재 가장 신뢰받고 있는 견해는 우림과 둠밈이 주사위 같은 물건으로 던져서 그 결과로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는 도구라는 것입니다(제비뽑기라는 주장도 있다). 질문을 던진 사울은 자신이 유죄일 경우 우림이 나올 것으로 예상을 하였기 때문에 우림은 앞서 말씀 드린 ‘빛’ 보다는 ‘저주 받은’, 혹은 ‘유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남대학교 강승일 교수는 “우림과 둠밈, 에봇 그리고 언약궤 - 제사장의 점술 도구들”이라는 논문에서 슈만트-베서라트 교수의 고대인들이 동물의 무릎 도가니 뼈를 가지고 주사위나 공기처럼 던지기 놀이를 하였다는 점에 착안하여 우림과 둠밈이 동물의 무릎 뼈로서 두 개의 무릎 뼈로 안쪽과 바깥쪽을 구별하여 던져서 둘다 안쪽이 나오면 우림, 둘다 바깥쪽이 나오면 둠밈, 서로 다르게 나오면 무효 등으로 사용했을 수도 있다는 추측을 내 놓기도 하였습니다.

 

결론

대제사장의 에봇 가슴위에 12보석을 단 판결흉패와 그 판결흉패 주머니 안에 우림과 둠밈을 넣어 보관하였습니다. 그리고 12보석의 배치는 이스라엘 군대 진영의 순서대로 배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앞서 말씀 드린바 대로 성막과 이스라엘의 행진은 왕되신 야훼의 군대의 행진을 의미합니다. 거기에 우림과 둠밈은 어떤 모호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그것을 판결하는 것으로 사용되어졌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물론 우림과 둠밈의 흔적들이 후기 구약성경의 기록들에도 일부 남겨져 있지만, 우림과 둠밈의 방식으로 판결(혹은 제비뽑기)을 내리는 행위들은 구약의 예언자들의 신학과 서기관들의 율법이 점점 체계화 되면서 서서히 사라지고 명문화된 말씀(율법)으로 대체되어졌으리라 추측됩니다(여기에 대해 자세한 근거자료들을 아직 찾지 못함).

 

중요한 것은 판결흉패와 우림과 둠밈이 대제사장의 에봇에 부착되어 있었으며, 대제사장이 판결을 내리는 집행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제사장들의 부패와 타락으로 인해 사무엘 시대에 가서 왕정으로 전환이 되지만 다윗왕조가 주전 586년에 멸망한 이후 다시 제사장적 메시아 사상(대표적으로 에스겔, 스가랴)이 강조되는 것을 볼 때 유대교에 있어서 왕정 시대에 있어서도 제사장에게 주어진 권한이 강력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복음서가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각각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왕은 이스라엘이라는 자신의 군대를 지휘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계시와 성령(지혜)의 수여자이십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말씀과 가르침, 그리고 깨닫게 하시는 지혜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 우리의 삶을 판결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대제사장 되심을 히브리서기자는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출애굽기 28장의 제사장 의복을 통해 제사장이 가지고 있는 직무의 성격과 그 책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 아론의 에봇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임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가운데, 유일한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순히 속죄의 제사를 집행하는 것만이 아닌 이스라엘 군대의 지휘관이시고 판결관으로서의 역할과 권한이 주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히 예배에 참여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12보석과 같은 군대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지시와 지휘 그리고 그 판결에 순종하는 자들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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