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미안합니다...감사합니다

문양호 | 2016.05.26 11:40


 

1.

나의 반쪽과 같이 집을 나서는 목요일.

집앞 네거리, 그리 크지 않은 건널목이지만 학교 앞이라 신호등이 제대로 달려 있다.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는데 인도 저편에 길냥이 한 마리 어슬렁 걸어온다.

보도블록 후 남은 모래에 한차례 몸을 비비고는 건널목을 건너려고 조심히 기다린다.

그런데 저쪽에서 좌회전 받아 들어오는 차량 한 대, 갑자기 차를 멈추고 창문을 내린다. 그리고 길냥이를 향해 무언가를 던진다. 얼핏 먹을 것이라도 던져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빈 패트병이었다. 황당해서 나의 반쪽과 함께 그 사람을 쳐다보는데 나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들어 보이는 남자, 그리고 그 옆에 아내로 보이는 여자한명. 둘 다 상당히 불쾌한 표정으로 길냥이를 쳐다보더니 차를 몰고 가버린다.

2.

나의 반쪽과 헤어져 지하철을 타고 종로거리를 걷다가 아까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자신한테 해꼬지하지 않은 길냥이에게 분노를 표출한 그 사람은 무엇이 그러한 행동을 하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돈다. 그러다가 종각역 부근 터주대감인 한 노숙인을 보게 된다. 오늘도 매번 앉아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얼핏 어제 일이 생각난다.

그분은 카스테라인지 샌드위치인지를 들고 아침을 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주변에 비둘기들이 여럿 모여 있다. 그 아저씨는 자신이 먹던 빵을 떼어 비둘기들에게 준다. 먹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많다. 이미 자기 배는 채우기라도 한 걸까?

3,

지난주 토요일이던가?

영등포역 지하상가를 지나가는데 근처 화장실에서 나온 남자가 크게 소리친다.

미친 것 아냐?”

상황을 보니 들어가는 청년이 그 남자를 치고 들어간 것 같다. 다행히 상황은 거기서 멈춘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서로 기분 나쁘지 않을 텐데

4.

한 두전 지하철 옆좌석에 커플 한쌍이 조금은 거스리는 스킨쉽과 말을 주고 받는다. 자꾸 움직이며 자꾸 건드니 영 불편하다. 그러다가 내릴 역이 돼서 그들이 내리려 했다. 그런데 청년이 의자에 휴대폰을 흘리고는 일어나 걸어가길래 청년에게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자 힐끗 보고 휴대폰을 집어들더니 아무말없이 그냥 내린다. 감사하다란 말 한마디가 그리 어려웠을까?

물론 그것을 바라고 이야기해준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지 않은 이들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4.

세상의 구조를 당장 바꿀수 는 없겠지. 정치가들의 악한 행태와 타락한 목회자를 지금 고칠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경제적 양극화도 쉽게 손볼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 힘쓰긴 해야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지금 기본적인 얘의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최소한 두단어라도 미안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라도 제대로 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싶다. 앞서 길냥이에게 분노를 표출한 그 남자는 누군가에게 당한 분노의 표출이 아닐까? 최소한 모든 것을 고치거나 보상해줄 수는 없어도 진심이 담긴 미안하다라는 말과 내게 도움을 준 이에게 당장 줄 것은 없어도 감사하다란 말을 하는 훈련으로부터 세상은 조금이나마 바뀌지 않을까?

5.

몇주전 불쑥 예배시간에 우연히 들어왔던 청년 하나.

그리고 유학에 관계된 기도제목을 나누고 갔었는데 지난 주 예배에 찾아왔다. 원래 다니는 교회갔다와서 예배에 참석한 것인데 그때 나누었던 기도제목이 응답받았다고 감사의 마음으로 찾아온 것이다. 기도외에는 도와준 것이 없는데.

그리고 이제 유학 인터뷰로 미국에 내일 출국하는데 기도받고 가고 싶다고 찾아왔던 것이다.

기도부탁받아서 중보기도했는데 응답받았다는 것은 참 기쁜 일이다. 그것을 이렇게 알려주니 더더욱 기쁘다.

목회하며 온힘을 다해 상담하다가 또는 누군가를 돕다가 갑자기 등을 돌리는 이들도 꽤나 본다. 어떤 때는 나의 잘못도 있지만 그것이 없거나 사소한 일로도 등돌리는 이들을 여럿 만나게 된다. 그런 이들을 보면 가끔은 인간적으로 서운함과 배신감을 갖기도 한다. 물론 그런 일들이 일어날 것을 알고 살아오기는 했지만 인간인지라 아플때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안 한 것은 미안하다 말하고 감사할 일은 감사하다 말할수 있으면 좋겠다.

한꺼번에 몰아서가 아니라 지금 내가 부딪히는 문제와 사건 속에서, 또 내가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미안하다 감사하다라는 말만 제대로 해도 이세상은 좀더 나아질듯 싶다

그리고 앞서 비둘기에게 빵을 나눈 아저씨처럼 내 밥그릇에서 한술을 덜먹고 나눌수 있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그때부터 세상은 바뀌는 것 아닐까?

아침에 드는 상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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