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주님은 어느 자리를 원하실까 ?

조영민 | 2016.08.18 10:38

주님은 어느 자리를 원하실까 ?

13년 전, 아내가 제게 했던 나눔을 ... 제가 다시 글로 정리했던 내용입니다. 제 아내와 제가 이런 생각들을 했었군요 ... 그리고 13년이 지났는데, 저는 지금 동네 작은 교회의 담임 목사가 되어 있습니다. 늘 그 때 그 고백과 기도를 생각합니다. 주님 원하시는 자리를 어디일까... 주님께 묻지 않으면 늘 우리는 편한 자리를 찾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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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OO교회라는 OO옆에 있는 작은교회의 유치부교사이다. 이 작은 교회를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다녔다. 지금 28살이니 18년이라는 세월을 이 작은 교회에 다녔다. 참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렇기에 철이 든 후에 교사와 리더로 섬겨왔다. 지금은 유치부 사역자가 없기에 유치부 아이들을 위한 유치부 예배 역시 인도하고 있다. 

주일 11시 대예배 시간이 되면, 나는 지하에 있는 유치부실에서 7명의 유치부 아이들을 데리고 유치부 예배를 드린다.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짧은 아이들이기에 간단한 설교와 공과 게임들을 하고 간식까지 다 먹여도 40분이 채 지나가지 않는다. 아이들은 축구에 푹 빠져 늘 시간이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밖으로 나가 근처에 있는 OO고 공터에서 축구를 한다. 이제 막 5살이 된 유치부 남자아이 역시 그 형들의 무리와 함께하고 싶어 안달을 한다. 아직은 위험한 것이 많아 내가 꼭 옆에 같이 있어야 하기에 간식으로 달래고 이것저것 약속을 해서 시간을 벌어 유치부실 정리가 끝날 때까지 어떻게든 내 옆에 붙들어 둔다. 정리가 끝나면 그 아이의 손을 잡고 OO고 공터로 간다. 

오늘도 여전히 OO고로 가서 5살 된 아이와 함께 계단에 앉아 축구하는 우리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만히 햇살을 맞으며 아이들의 즐거운 모습을 바라보는데, 오늘따라 아이들의 공을 한번씩 차주며 따뜻한 웃음을 지어보이고 가는 이웃 대형교회의 청년들이 눈에 자주 들어왔다. 매주 그렇게 내 옆을 지나가던 청년들이었지만 오늘은 유난히 그 청년들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저렇게 밝은 모습으로 무리를 지어가는 모습을 보며 그 많은 청년들 가운데 나와 함께 이 아이들을 섬겨줄 수 있는 청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올 초 4명이었다가 이제 막 부흥해서 12명이 된 중고등부학생들을 위한 중고등부 교사로 헌신해 줄 수 있는 청년이 한명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앉아있던 나를 서글프게 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부터 다녔기에 작은교회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공급받을 곳은 없고, 해야 할 일은 많은 곳. 그런다고 좋은 말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좋은 시설이 있지 않은 곳, 교육부서에서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해도 지원해주는 것은 거의 없어 거의 자신의 사비로 아이들을 먹여야 하는 것, 힘들게 일해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다는 것,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만 알아주고,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나 어려운 일에 대해서 영적인 정서적인 도움을 너무도 받기 어려운 점 ..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하려고 해도 나이드신 분들의 의견과 대립됨으로 대부분의 경우 묵살되어버렸던 것들 .. 

‘작은교회’는 정말 어렵다. 

그래서 많은 청년들이 ‘작은교회’를 떠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이미 무언가 많은 것이 준비된 큰 교회, 좋은교회로 갔다. 그리고 오늘도 가고 있다. 나는 그 청년들을 이해한다. 더 좋은 말씀을 듣고, 더 나은 성경공부를 받기 위해서, 더 나은 예배를 드리고, 더 깊은 수준의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 .. 그 청년들이 떠나갈 때, 아픈 마음이었지만 그곳에서 더 좋은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축복하며 보내주었다. 솔직히 우리교회가 줄 수 없는 많은 것들을 큰 교회에서는 줄 수 있었고 그 청년들은 그 안에서 아름답게 커 갈 수 있을거라고 믿고 기도했다.

‘작은교회’에 남아있다고 해서 더 의롭거나, 더 큰 헌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작은교회를 지키고 있다고 자랑할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역시 작은교회에서 큰교회로 떠났다고 하여 크게 잘못 되었거나 정죄 받아야 하는 대상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가 어디에 있건 그가 있는 교회가 그에게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해 준다면 ..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모두가 하나님의 교회니까. 

하지만, 오늘 그렇게 선린고 계단에 앉아 지나가는 청년들을 보며 사무치는 설움에 눈물이 난 건, 이 작은교회도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이었다. 작은 하나님의 교회의 수많은 필요 때문이었다. 아무리 작은교회지만 한 두명의 아이라도 유치부나 유초등부는 존재한다. 중고등부 아이들도 존재한다. 몇 명이 모이건 청년부는 존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야 하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누군가는 그들에게 그 예수님을 보여주고, 그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본으로 끌어안아 주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순전한 복음을 심어주고, 하나님 말씀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어야 하는 어린 아이들. 이제 막 교회에 몰려든 또래집단인 주기도문도 못 외우고,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도 모르는, 그러며 예배 끝나기가 무섭게 농구공을 들고 뛰어나가는 중고등부 아이들... 정말 깊이 있는 말씀과 따뜻한 배려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납 받아야 하는 청년들 .. 이들에게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말씀을 가르치며, 수고로 섬길 ‘사람’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이유 중 하나가 교회 때문이었다고 나는 배웠다. 그래서 나는 교회를 사랑한다. 그 교회가 부족한 모습이 많지만 그럼에도 그 교회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기적과 이사를 오늘날에도 일으키신다. 그런데 우리교회 유치부 아이들은 이렇게 모든 위험에 방치된 채 시멘트로된 공터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중고등부는 교사가 없어서 그 모든 다른 계층의 아이들을 단 두 명의 선생님이 나눠서 지도한다. 연말이 다가온다. 매년 그랬듯 또 얼마나 힘든 교사 수급을 위한 각 부서간의 챙탈전이 시작되어야 할까 ...

오늘 저렇게 아이들을 예뻐하며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보며 지나가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며 사무치게 마음이 아팠던 것은. “이곳도 주님이 피 흘려 사신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이었다. 작고 힘이 없고, 그래서 초라하기까지 한 교회이지만 이곳도 여전히 주님께서 .. 그토록 사랑하시는 교회인데 .. 왜 충분히 받아야 할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해야 하는가 하는 서글픔 아니었나 한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청년들에게 부탁한다. 혹시 예수님께서 이미 주신 사랑이 너무 크고, 혹 받은 사랑과 받은 성경공부와 받은 은사를 더 약한 자, 어린 자, 부족한 자를 위해 기꺼히 포기할 수 있는 그런 성숙한 분이 있다면, ‘작은교회’로 찾아와 도와달라 하는 그리스도의 초청을 받아 들였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축구할 때 지켜줄 어른 선생님이 필요하고, 그들과 함께 놀아주며, 오고가는 차들로부터 그들을 지켜줄 형들이 필요하다. 중고등부는 밤새워 그들과 함께 pc방에서 오락을 하면서도 그들의 고민을 듣고 신앙적으로 권면해 줄 수 있는 형들과 언니가 필요하다. 

많은 작은교회에서 큰교회로 간 이들에게... 이제 많이 받았고, 충분히 누렸는가? 그렇다면 이제 돌아와서 그 받은 은혜, 받은 사랑, 받은 관심을 제발 나눠달라. 언제까지 ‘은혜의 바다’에서 자신의 그릇을 채우겠는가? 당신이 그 은혜의 바다에서 채워지는 것은 또 누군가를 채우는 은혜의 통로가 되기 위함이 아니었는가? 언제까지 그곳에 머물러 누려야 하는가? 어쩌면 이곳은 사막이다. 오면 메마를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정말 당신이 먹여야 하는 영적으로 배고파 우는 ‘작은 자’들이 있다. 그들에게 먹여야 할 책임을 진 자는 누구인가?

고등학교 운동장 앞 계단에서 서러워 눈물이 났다.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왜 그토록 한자리에 많이 몰려 있어야 하는지 .. 그리고 왜 .. 이토록 필요한 우리교회에는 없는지 .. 예수님이라면 어떠실까 ... (이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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