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386세대와 사다리 걷어차기

이성호 | 2016.07.07 12:48

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세대를 386세대라고 부릅니다. 참 특별한 세대였습니다. 보리고개와 한국전쟁을 겪은 부모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삼시 세끼 배곯지 않고, 원하는 대학에도 진학할 수 있었던 축복받은 전후세대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신문화와 고등교육의 혜택을 누린 덕분으로 전 세대와는 전혀 다른 청바지와 통키타의 낭만을 누리면서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빼앗긴 권리회복을 위해 부정부패와 독재자의 만행에 맞서는 용기와 투지를 장착했다는 점입니다. 도서관과 강의실, 직장에서까지 한 걸음에 시위현장으로 합류할 줄 알았던 그런 뜨거운 청춘을 경험한 세대입니다.

 

최소한 100권 이상의 독서량은 되어야 한다는 거만도 떨었고 한 때 통일을 외치며 어깨동무를 하고 길바닥에 누울 줄 알았던 세대. 경찰의 곤봉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탱크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세대로 서울의 소위 명문대학을 졸업하고서도 열악한 노동현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당당함도 누렸던 세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사라져버렸습니다. “누군가는 변절했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그 시절 영웅담을 내세워 출세했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소시민이 되어 진급과 연봉에 목숨을 걸고 산다고 하고 누군가는 소식이 끊겼고, 누군가는 원인도 모르게 요절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졸업과 동시에 그 사회 속으로 깊숙이 몸을 숨겼습니다.

 

단순히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일용할 양식을 구한 것이 아니라 젊은 날 지녔던 잠깐의 기상과 호연지기가 그저 젊음의 객기였음을 술안주 삼으며 이전에 자신들이 맞서던 이들보다 더 지능적이고 더 교활하고 더 비겁한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된 경우입니다. 가난과 싸우다 그 가난에 먹힘을 당한 겁니다.

 

이제는 탐욕과 경박함에 기름진 얼굴의 기성세대가 되어 새로운 계층의 담을 세우고 후배들과 젊은이들 위에 군림하며 자신의 지위와 안위를 부여잡은 부끄러운 세대가 되었습니다. 기러기 아빠, 비정규직, 88만원세대는 이 세대의 공헌이자 작품입니다. 역사는 이런 아이러니한 세대를 386세대라 정의할 것입니다.

 

출생년도만 보면 386세대인 케임브리지 대학의 장하준 교수는 2002년 세계의 이목을 끈 책,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경제 분석 도서를 집필합니다. “선진국들의 성장신화 속에 숨겨진 은밀한 역사!”라는 표제를 붙인 이 책의 내용을 보면 그런 나라들이 선진국이라는 간판을 달기까지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선진국 반열에 오른 후 지금은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주도면밀하게 연구, 분석한 결과를 다룹니다.

 

현재의 선진국들이 후진국들에게 강요하는 정책과 제도는 과거 자신들이 경제 발전 과정에서 채택했던 정책이나 제도와 얼마나 거리가 먼 것인지, 후진국들에 대한 그들의 정책공작이 얼마나 위선적인지를 밝히고자 했다.” 자신들은 벌써 사다리를 타고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오는 이들을 떨어트리기 위해 사다리를 치웠다는 말입니다.

 

저자가 출판물을 통해 마치 과거 선진국들과 같이 사다리를 걷어찬 주역이 되어 있는 386세대들을 고발하는 듯 보이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오늘날의 교회들이 산업화와 경제화의 바람을 타고 가난을 피해 도시로 서울로 피난 온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오던 7-80년대의 교인 수 증가를 부흥의 결과로 여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복음의 위로와 은혜가 필요가 이들에게 개교회 헌신을 통한 복을 선동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대형 교회들이 세워질 수 있었을까. ‘우리교회’, ‘우리목사님을 연호하는, 하나님만큼 숭배하는 현대교회는 출구를 닫고 사다리를 걷어찬 선진국(?)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대형교회 소형교회 개척교회, 세상 어느 종교에도 이런 용어를 사용하는 예가 없습니다. ‘큰 목회’ ‘큰 일꾼’ ‘크게 쓰임 받음은 한국 개신교만이 전용하는 표현입니다. 사회문화적으로는 저급하고 종교적으론 불경스러운 사고입니다. 큰 목회라는 용어 자체가 비성경적입니다. 여자가 난 자중에 가장 큰 자라고 칭했던 예수님을 조롱하는 말입니다. 세례요한이나 스데반을 실패자로 몰아가는 천박한 인식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작은 목회자이고 쓰임 받지 못한 사역자가 되는 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관점이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입니다. 사다리 걷어찬 그들과 마찬가지입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성경적 비유로 부자 교회와 가난한 교회가 있겠습니다.

 

이처럼 현실과 진실사이의 간극은 우리의 신앙과 생활에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오늘 내 생활이 바뀌고, 인간됨됨이가 바뀌고, 인생의 관심과 목적이 바뀌는 것입니다. 어떤 거창한 업적이나 이적을 행함에서가 아니라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예수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입니다.

 

자기 배를 불리며 이웃의 기쁨보다 자기 기쁨을 우선하는 이들에게 떠날 것'을 명하신 로마서의 말씀은 오늘도 유효합니다. 성령충만은 이상한 말을 하는 것으로, 앞일을 내다보는 영험한 말에서, 황금을 부르는 축복의 말에서가 아닌, 하나님을 경험하며 이웃에게로 달려가는 떨리는 가슴과 내어주는 손으로 드러납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시는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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