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로그인
서평

삼위일체를 바르게 아는 것은 영적 성장의 힘이다
삼위일체 해설: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간략한 선언과 변증/존 오웬/서문 강/도서출판 새언약/조정의 편집인“제가 이 작은 책자를 낸 것은 오직 하나의 목적 때문입니다. 여러분으로 하여금 진리에 대한 확고한 자세를 견지하도록 돕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 목적입니다. 만약 이 목적이 아니었다면 저는 이 책을 집필하는 데 들인 시간을 다른 데 썼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저술하는 동안 내내 여러분의 영적 유익과 성장에 기여할 것만 생각하였습니다”(12p). 존 오웬은 <삼위일체 해설: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간략한 선언과 변증>에 관한 책을 쓰면서 “독자에게 이르는 말”에 이와 같은 분명한 목적을 밝혔다. 다른 교리도 마찬가지지만, 삼위일체 교리는 특별히 아무런 유익과 영적 성장을 가져오지 않으면서 오히려 그리스도 안의 형제자매끼리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도록 만들 정도로 대단히 중요하면서도 잘못 표현되거나 전달되기 쉬운 교리이기 때문이다. 초대 교회 시대부터 중세 시대를 넘어 오늘날까지 교회가 내부적으로 진통을 겪었던 이유도 사실상 삼위일체 교리와 상관이 있고,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 교리이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잘못 가르치는 경우 분별이 다르거나 가르침이 약한 교회가 아니라 이단으로 정죄 받을 정도로 삼위일체 교리는 참 기독교의 핵심 표지 역할을 한다.
오웬은 머리말에서 삼위일체 교리가 교회 역사 가운데 어떤 논쟁을 불러일으켰는지 간략하게 정리한다. 그리고 곧바로 제1부 “성삼위일체 교리 해설과 변호”에서 첫 장부터 “하나님에 관한 성경의 명제들”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지성을 지나치게 자랑하는 나머지 초자연적인 신비인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설명해 보려고 애쓰지만, 언제나 그 설명엔 심각한 오류가 섞여 있기 마련이다. 삼신론과 양태론 등이 태어나게 된 배경이 그렇다. 그래서 오웬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것만 주목할 것을 요청한다. 물론 삼위일체는 성경에 나오는 단어가 아니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종합하여 볼 때, 우리가 발견한 신비로운 사실이기에,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하기 위한 개념들이 필요하지만, 언제나 그것을 설명할 때는 하나님의 계시와 어긋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말씀하신 데까지만 나아가는 겸손이 필요하다. 그것이 이치에 맞게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것이고 우리 신앙을 보호하는 방법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이 한 분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시며, 성부는 하나님이시고, 성자도 하나님이시며, 성령도 하나님이시다”라는 성경의 진리를 오웬은 먼저 믿음으로 받아들인 후에 “진리를 해설하는 문제가 논의되어야” 한다고 했다(46p). 이후로 오웬은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오해에 답하고 성부, 성자, 성령의 하나님 되심을 성경으로 변호하며, 성부, 성자, 성령을 구별하는 성경의 가르침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삼위일체 교리의 핵심 진리에 제기할 만한 반론들에 하나하나 답한다. 그가 삼위일체를 설명하고 변호하는 방식은 앞서 말한 것처럼 성경에 관한 믿음에 기초하는데, 해설을 통해 믿음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성경으로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 믿음으로 해설해 나간다는 올바른 지향점을 바르게 제시했다.
오웬은 이어서 그리스도의 위격에 집중한다. 인성과 신성을 취하신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우리 죄를 대신하셨는지 “그리스도의 만족 교리”라는 제목으로 설명한다. 오늘날 복음주의 안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대속의 교리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하는 대목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오웬과 같은 성경을 사모하는 이들의 투쟁과 헌신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셨다는 것의 풍성한 의미를 이렇게 쉽게 누리고 있는 걸 알아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반발과 공격이 옛것을 그대로 답습하며 새롭게 떠오를 때, 우리는 과거 전법을 익히고 배워 능히 그들을 식별하고 물리칠 수 있어야 한다.
특별히 오웬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신이 보증이 되시어 인간의 죄를 대신 담당하여 그에 합당한 형벌을 받기로 자원하신 것입니다. 이 목적을 위해 율법의 요구 중 ‘누가 형벌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완화(relaxation)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고통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결코 완화되지 않았습니다. 전자의 완화가 없었다면 그리스도의 대속은 받아들여질 수 없었을 것이며, 후자가 완화되었다면 그리스도의 고난은 본질상 ‘형벌’이라 부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형벌은 그것을 요구하고 시행하는 통치자의 공의와 의로움에 근거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공의는 율법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시행되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204p).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우리를 위한 사랑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분명히 알게 하는 대목이다. 이 책은 오웬의 간절한 소원처럼 독자에게 영적 유익과 성장을 가져다줄 것이 분명하다. 이 책을 쓰는 것이 불필요하지 않았던 것처럼, 읽는 것 또한 불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에게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와 계시와 그 안에서 쏟으신 사랑의 크기를 헤아리게 하는 청교도 신학자 오웬의 해설을 들어보라.

2,887개(1/145페이지)


신고
인쇄
스크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