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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교리적 논쟁의 역사적 모델, 스펄전
스펄전 vs. 하이퍼 칼빈주의/이안 머레이/정대운, 김균필/새언약/조정의 편집인웨스트민스터 교회에서 로이드 존스 목사와 동역한 이안 머레이(머리)는 1957년에 진리의 깃발사(The Banner of Truth Trust)를 설립하여 개혁 신학 및 청교도 신학을 전 세계로 보급하고 20세기 최고의 전기작가로서 로이드 존스와 아더 핑크, J. C. 라일, 찰스 스펄전, 조나단 에드워즈, 존 맥아더 등의 전기를 집필했다. 그는 또한 “분열된 복음주의”의 역사, “부흥과 부흥주의” 역사를 다루는 책도 썼는데, 존 맥아더 목사는 이안 머레이가 쓴 책을 반드시 읽어보라고 추천하면서 그가 쓴 전기 및 역사책은 비평적인 측면이 아니라 성경적인 측면에서 교훈과 원칙을 많이 얻을 수 있다고 칭찬한 적이 있다. 이번에 도서출판 새언약에서 출간된 <스펄전 vs. 하이퍼 칼빈주의>는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중요한 역사적 투쟁과 거기서 반드시 배워야 할 교훈을 얻을 수 있는데, 그 배경은 스펄전과 하이퍼 칼빈주의를 주창한 목회자 간의 논쟁에 있다.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에 관한 논쟁은 아르미니우스주의와 칼빈주의로 대표된다. 스펄전은 아르미니우스주의와 싸운 인물로 크게 알려졌는데, 흥미롭게도 같은 칼빈주의 계통 동료들에게도 비판받았다. “하이퍼 칼빈주의”로 분류되는 스펄전의 대적들 눈에는 스펄전이 아르미니우스와 타협한 것처럼 보였다. 그가 모든 죄인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라는 말씀을 전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말씀도 택하신 자들에게만 해당한다고 분명히 가르치기를 강요했다. 이러한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특별히 개혁주의 신학이 더 많이 보급되고 수용될수록, 개혁주의 신학에 특별한 열정을 보이는 이들로부터 “하이퍼 칼빈주의”가 일으킨 분쟁과 분열의 문제가 발생할 위험이 더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1995년 머레이는 이렇게 예견했다: “세계 곳곳의 많은 교회 안에서 칼빈주의 신앙이 새롭게 부활하고 있고, 그에 대한 지식이 크게 증대되고 있다. ‘잊혀진’이라는 용어를 스펄전에게 적용해야 할 필요성이 40년 전보다 현저하게 줄어든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스펄전이 강조했던 또 다른 문제를 훨씬 더 깊이 인지해야 할 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23-4pp).
성경은 우리에게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라고 명령한다(엡 4:15). 머레이가 묘사한 스펄전은 특별히 그의 칼빈주의 동료들을 대할 때, 이 말씀을 신실하게 따랐다는 것을 입증한다. 그는 존경하는 선배 목사나 동료들이 자신을 비판하고 조롱할 때도, 적절하게 그들의 교리적 분별에 반대하면서도, 그들의 인격이나 사역 등은 언제나 존중하고 칭찬했다. 상대적으로 하이퍼 칼빈주의를 주창한 이들의 말은 확실히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지 않았다(골 4:6). 그들은 웨슬리가 지옥에 있을 것이란 말도 서슴지 않고 했다. 물론, 스펄전도 하이퍼 칼빈주의가 지적하는 문제에 담대히 맞섰다. 스펄전은 1) 성경이 복음의 초청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점, 2)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들을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을 방해한다는 점(왜냐하면 ‘당신이 선택받았다면’이라는 전제를 요구하기 때문에), 3) 인간의 책임을 축소한다는 점, 4) 하나님의 사랑이 선택받은 자 외에는 나타날 수 없는 것처럼 제한한다는 점에서 하이퍼 칼빈주의가 잘못되었다고 온유하면서도 담대하게 비판했다.
예수님은 싸움의 대상을 아시고 각각 그들에게 맞게 대처하셨다. 가령 자기 죄를 돌이키지 않고 사람들을 율법주의로 이끄는 외식하는 자들에겐 심한 꾸지람으로 회개를 촉구하셨고, 믿음이 없어 도움을 요청하는 자에겐, 자비를 베풀어 연약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은혜를 부어주셨다. 종종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는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씀하신 주님의 본을 따라가기는 커녕 역행한다. 원수 마귀와 싸우는 건지 아니면 형제자매와 싸우는 건지 분간을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진리가 영혼을 살리거나 죽이는 중대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논쟁이 치열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분의 겸손하심, 온유하심이 우리의 논쟁 가운데 더 빛이 나야하는 게 아닐까? 이안 머레이는 그래서 이렇게 조언한다: “하이퍼 칼빈주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 문제를 둘러싸고 새로운 논쟁을 벌이기보다는 은혜의 교리가 복음적인 설교와 조화를 이룬다는 증거를 삶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208p).
하이퍼 칼빈주의는 분명히 잘못되었다. 하나님의 선택(예정)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모든 성경 구절을 해석하는 천편일률적인 원칙이 되는 건 아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성경을 통하여 모든 죄인에게 회개를 요구하신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대로 균형 있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은혜롭게 선포되게 하는 일에 이 책이 귀한 도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이 책은 성경과 교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꼭 배워야 할 성숙한 태도를 가르쳐주는 귀한 자원이 될 것이다. (오래된 고어를 번역해야 하는 작품인 만큼 전문 번역이 이루어졌으면 더 많은 사람에게 쉽게 읽혔을 것 같다는 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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