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로그인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서 로그인하시면 별도의 로그인 절차없이 회원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서평

칼뱅주의 목사가 본 웨슬리 신학

정현욱 | 2019.09.23 22:36
칼뱅주의 목사가 본 웨슬리 신학 웨슬리안 실천교리/김민석/샘솟는기쁨/정현욱 편집인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는 장로교회 목사인 나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다. 교회사에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웨슬리가 조지 윗필드와 함께 영국 대각성 운동을 일으킨 주역이라는 것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칼뱅주의 교리 때문에 조지 윗필드를 선호하는 사상이 한국교회 안에 잔존하지만 웨슬리를 빼 놓고 영국의 대각성 운동을 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종교개혁 이후 루터에 의해 시작된 종교개혁은 인간의 행위와 공로를 부정한 것으로 규정하고 터부시해왔다. 루터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칼뱅에 이르러 구원 이후 삶에 대한 질문이 일어났고, 결국 성화론에 집중하게 된다. 18세기 영국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영국교회는 영적으로 무능함을 넘어 죽어 있는 상태였고, 도덕은 땅에 떨어져 야만인이 되었다. 산업혁명이 가져온 결과는 무서웠다. 수공업자는 몰락과 사양의 길로 떨어졌고, 개인의 도덕성은 생존 경쟁과 물질주의에 함몰되어 상실되고 말았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했던가. 조지 윗필드와 웨슬리 형제는 혜성처럼 일어났고, 영국을 개혁해 나갔다. 조지 윗필드가 개인적으로 행동했다면, 웨슬리 형제는 조직적이었다. 무엇보다 땅에 떨어진 도덕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성화와 실천을 강조하게 된다. 칭의를 강조했던 윗필드와 실천을 강조한 웨슬리와의 긴장 관계는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 두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 나갈 필요가 있다. 필자는 저자가 제시한 일차 독자인 목회자, 신학생, 교회학교 교사, 그리고 웨슬리안 전통에 익숙한 교인’(19)의 관점에서 본서를 살펴볼 것이다. 장로교회(합동) 소속의 신학적 관점으로 비판적으로 읽기보다는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는 것을 우선할 것이다. 성결 신학에 거의 접해 보지 못한 필자로서 본서는 웨슬리 신학의 정수를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배움의 기회로 삼고자 한다. 이제 저자의 주장을 따라 가보자.

 

Part1Part2로 나누었지만 Part2는 웨슬리의 두편의 논문을 번역해 붙인 것으로 부록에 가깝다. 저자의 논지는 Part1에 담았다. 모두 13장으로 나누어 웨슬리의 교리를 빼곡히 설명하고 해석한다.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3장까지는 서론부에 해당되며, ‘소명’ ‘교리의 필요성’ ‘신학 방법론을 다룬다. 4-13장까지는 웨슬리의 교리를 신론에서 종말론까지 다룬다. 웨슬리 신학의 정수는 케네스 J. 콜린스가 단권으로 출간하기도 한 성경적 구원의 길에 있다. 루터와 칼뱅으로 대표되는 종교개혁 신학에 익숙한 이들에게 웨슬리 신학은 익숙한듯하지만 몹시나 낯설다. 필자의 경우 선행은총이란 단어에서 루터가 그토록 싸웠던 중세의 공로사상과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김민석 교수의 주장을 따라가 보자. 아마도 웨슬리 신학이 주는 맛을 느낄 수 있으리라.

 

우리는 아직 살아 있습니까?

 

18세기 부흥운동의 시작은 당연한 찰스 웨슬리다. 그러나 웨슬리 홀로 부흥운동을 주도하지는 않았다. 수많은 헌신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부흥은 철저히 하나님의 주도에 의해 시작되고 진행되지만 헌신된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18세기 부흥운동의 형태는 교회 밖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교회 밖에 있는 이들을 찾아 설교하기 시작한 것이다. 야외설교자들로 불리는 그들은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드렸다. 그러나 헌신의 대가는 너무나 컸다. ‘복음을 전하다 병으로, 낙마로, 테러로, 강도 상해’(24) 등으로 수많은 전도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해 보았던 이들을 그해는 보지 못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통일찬송가 280생전에 우리가는 바로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원가사를 직역하면 이렇다.

 

우리가 아직 살아 있습니까? 그리고 서로 얼굴을 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에 예수께 영광과 감사를 돌립시다!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여기 충만한 구원으로 인도된 우리는 그 분 앞에서 예수를 찬양하기 위해 모여 있습니다.”(25)

 

쉽게 간과(看過)할 수 없는 이 이야기는 웨슬리신학이 갖는 독특성과 정체성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절대적 헌신과 실천적 신앙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고 하나님 나라의 부흥을 꿈꾸었던 웨슬리안들의 마음을 담고 있다. 루터의 이신칭의 교리를 기반으로 하는 칼뱅주의 신학은 신론에 중심을 둔다. 츠빙글리 역시 신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개혁주의 사상의 기저(基底)를 보여준다. 그러나 웨슬리 신학은 많은 부분은 개혁주의적 관점을 견지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이들의 결단과 헌신, 그리고 삶의 목적대로 살아가려는 성화에 집중한다. 어떻게 구원 받았는가?’보다는 구원 받은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에 골몰한다. 웨슬리 신학이 실천적 성향을 강하게 갖는 이유는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이백년을 넘긴 시대라는 것과 기독교 국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음에도 도덕적으로 심각한 퇴보가 일어난 사회적 현상과 맞물린다. 웨슬리 신학을 들여다볼 때 이러한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메소디스트의 설교자들의 소명은 개혁성결로 압축된다. 개혁은 국가 개혁과 교회 개혁으로 구분된다. 성결은 개인의 변화와 세상의 변혁’(27)의 수단이다. 성결의 개념은 칼뱅주의가 정의하는 바와 약간 다르다.

 

성서적 성결이란 다름 아닌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모든 피조물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온 땅에 성서적 성결이 전파된 상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실천을 통해 온 땅이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으로 충만해진 상태이다.”(28)

 

칼뱅주의 신학이 성결을 개인의 성화적 차원에 집중한다면, 웨슬리는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한다. 웨슬리안들이 사회적 차원의 헌신과 실천적 사랑을 강조한 이유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담겨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교리를 무시하고 실천에만 몰입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분명 실천적 성향이 강했지만 웨슬리 역시 교리를 중요하게 여겼다.

 

웨슬리의 신학과 교리의 중요성

 

웨슬리는 교리와 실천 사이에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교리가 우상화 되거나, 교리 없는 삶의 맹목으로 떨어지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기독교 교리를 핵심 교리(fundamental doctrine)와 의견(opinion)’(39)으로 구분했다. 신학자보다는 운동가에 가까웠던 탓에 웨슬리는 핵심 교리를 명징한 표나 저술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의 저술 속에 전반적으로 나타난 핵심 교리는 원죄와 칭의, 마음과 삶의 성결 교리로 추측할 수 있다. 웨슬리는 칭의를 정적인 정의를 넘어 삶이라는 동적의 형태로 정의하고 싶어 했다. 즉 칭의가 마음과 삶의 성결로 나아가야 한다’(40)고 강조했다. 교리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삶의 기준’(41)이다. 또한 변증 기능’(42)훈련의 가이드라인’(43) 기능을 가진다.

 

웨슬리는 성경의 각 본문은 성경 전체와 상응하는 평이한 의미’(50)를 가지며,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인 구원 사역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 구속의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함을 말한다. ‘삼위 하나님께서 성경적 진리를 체험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과 거룩한 삶으로 인도하신다’(51)는 성경관은 교리와 삶을 놓치지 않으려는 웨슬리의 성향과 닮아 있다. 그렇다면, 웨슬리에게 있어서 이성은 어떤 대상일까? 저자는 웨슬리가 일반 이성을 이해를 위한 영혼이 능력이며 도구’(55)로 보았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56)라고 말했다고 한다.

 

첫 사람의 타락으로 인해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의 손상과 상실’(96)이 일어났다. 그 결과는 도덕 형상의 상실로 이어졌다. 두 번째 결과는 단절과 죽음’(96)이며, 세 번째 결과는 삼중 욕망으로 가득 찬 존재’(97)가 되었다. 삼중 욕망이란 육신의 소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말한다. 삼중 욕망은 치명적 질병이며, 삼중 욕망을 만족시키려는 노력은 이 세상에 대한 사랑’(97)으로 정의한다. 웨슬리는 인간의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것으로 보는 동시에 거듭남의 순간에 도덕적 형상이 본격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한다’(98)고 말한다. 웨슬리는 구원이 곧 도덕적 회복으로 나아간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에 중심에 도덕적 형상’(98)이 있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성경적 구원이란 무엇인가?

 

이제 웨슬리 신학의 핵심 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성경적 구원의 길을 살펴보자. 칼뱅주의 신학과 현저하게 다르게 나타나는 부분이 바로 이곳이다. 웨슬리는 구원 이전에 선행 은총을 허락하심으로 다가오셨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콜린스의 주장을 인용하여 선행은총의 다섯 가지 유익을 이렇게 설명한다.(119-120)

 

선행은총으로 하나님에 관한 가장 기본적 지식을 얻게 된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선행 은총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어느 정도 자유 의지를 주신다.

 

선행은총을 통해 이 세상에 도덕법(하나님의 법)이 어느 정도 다시 주어졌다.

 

선행은총을 통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초자연적 선물로 양심을 주셨다.

 

선행은총의 유익들을 잘 활용하면 인간과 사회의 사악함을 어느 정도 제약할 수 있다.

 

칼뱅주의 신학을 따르는 필자로서 가장 난해하고 모호한 부분이 바로 이곳이다. 웨슬리는 거듭나기 이전에 어느 정도의 이 가능한 것처럼 이야기 한다. 루터나 칼뱅의 경우는 거듭나기 이전에 이성과 지성의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을 향한 선의 개념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다만 중생 이전에도 보편은총의 개념으로 하나님에 관한 신지식이 아닌 자연적 지식과 일반적 도덕성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선행은총의 문제는 웨슬리와 윗필드의 가장 뜨거운 논쟁의 주제였던 하나님의 예정으로 확장될 수밖에 없다. 만약 선행은총의 개념이 인간의 자유의지의 문제로 연결된 경우 하나님의 예정은 논리적 모순을 갖게 되고 구원의 주도권이 하나님 미리 아심이 아닌 인간의 선택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이중예정론을 부정한다. 이중예정론(Predestination)은 창세 이전의 하나님의 작정과 유기(버려둠)가 이미 결정되었다는 칼뱅주의 교리이다. 웨슬리는 이중예정론이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이 충돌할 뿐만 아니라 거룩한 사랑을 뒤로 밀어내는 경향이 있다’(128)고 본다.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책임성이 훼손되며, 인간의 어떠한 행위도 불필요하게 만들며, 성화와 설교의 필요성을 약화시키고, 결함이 있는 해석에 기초하며,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들이 결정론적 예정의 가르침에 파괴된다고 보았다. 저자는 토마스 오덴의 입을 빌려 이렇게 주장한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역사를 미리 아셨다. 따라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의 영원부터 성자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시는 것을 결정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제안을 하나 하시기 위해서였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거나 믿지 않을 것을 선택할 수 있다. 그 선택의 결과로 영원한 생명을 받거나 혹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된다.”(129-130)

 

오덴의 주장을 분석하면 웨슬리의 주장은 확연히 알미니안적이며, 에라스무스의 자유의지와 닮아 있다. 그런데 그들과 결정적인 차이를 갖는 것이 바로 선행은총이다. 저자는 타락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130), 선행은총을 통해 하나님께 응답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초대하셨지만 사람들의 응답 여부에 의해 구원받거나 멸망 받는 것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131)이라고 말한다. 이 부분은 칼뱅주의 5대 교리 중의 하나인 불가항력적 은혜와 대치(對峙)된다. 어떤 면에서 칼뱅주의 교리는 모순적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동시에 인간의 책임을 묻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이러한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최종결정을 인간의 손에 맡긴다.

 

저자는 웨슬리 신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성경적 구원의 길’(9-11)에서 깊이 있게 다룬다. 선행은총은 하나님께 응답하기 위해 조건을 갖추는 것부터 성화의 모든 단계에서 역사한다. 선행은총은 양심을 일깨워 하나님을 인지하도록 도우며, 양심은 자유의지를 도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한다. 믿는 순간 그리스도의 의가 덧 입혀지고,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 구원의 공로적 원인으로 작용한다.(151) 구원의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인간적 의(칭의)가 덧입혀진다. 덧입혀진 의는 다시 새겨짐(거듭남)’로 나아간다.

 

칭의는 용서, 용납, 화해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변화를 의미하는 반면에 신생은 그리스도를 닮으로 나아가게 하는 실제적 변화의 첫 시작, 즉 성화의 시작을 의미한다. 칭의는 관계의 변화인 반면에 신생은 실제적 변화이다.”(153)

 

신생, 즉 거듭남은 성화의 시작이며 성화로 들어가는 문’(155)이다. 웨슬리는 지속적인 믿음’(160)을 통해 신자 안에 남겨진 죄를 치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죄는 신자의 타락의 결과이며, 타락하지 않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자녀 됨을 끊임없이 점검받아야’(160) 할 필요성이 상존한다. 점검의 방법은 경건의 행위자비의 행위로 구분된다.(161) 주의 만찬, 예배, 금식, 기도, 성경 연구, 성경 묵상, 경건의 글 읽기, 찬송, 설교, 그리고 말씀 묵상 등과 같은 것이다. 자비의 행위는 긍휼을 베풀고, 나그네는 환대하는 것들을 말한다.

 

나가면서

 

교회사에 중요한 인물이었음에도 칼뱅주의 목회자였기에 웨슬리 읽기는 2차 문헌이나 조지 윗필드의 이야기 속에서 읽은 것 외에는 없었다. 기껏해야 <존 웨슬리의 일기>를 단편적으로 읽은 것뿐이었다. 김민석 교수의 저작물을 통해 접한 웨슬리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확실히 웨슬리는 신학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후대의 학자들이나 메소디스트들에 의해 체계화 시키려는 노력들이 있기는 했지만 웨슬리 신학이 이것이다라고 정의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 책 역시, 필자의 오독이 아니라면 적지 않은 부분에서 모호하다. 아마도 칼뱅주의 신학에 익숙한 탓이기도 하고, 웨슬리 신학 자체가 갖는 실천신학적 측면 때문일 수도 있다. 두 번째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책임을 다하려는 몸부림이 느껴진다. 적지 않은 부분에서 필자가 몸담고 있는 칼뱅주의 신학과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웨슬리 신학에는 장로교단이 잃어버린 성화의 갈망과 사회변혁에 대한 열정이 담겨있다. 지성적 믿음으로만 구원과 중생의 의미를 담으려는 이들에게 불편함이 느껴진다. 심각한 도덕의 타락과 실천 없는 종교적 타성에 안주해있던 영국 교회 안에 불을 지폈던 웨슬리 신학은 변혁을 요구하고 있고, 사랑의 실천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마이너스 성장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는 헌신과 사랑의 부재 탓은 아닐까? 주일학교가 무너지고 있다는 염려와 통계는 끊임없이 나오고 있지만, 주일학교를 위해 기도하고 재정을 투자하며 교사로 헌신하는 이들은 계속하여 줄고 있는 이유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지으신 목적대로 살아가려는 몸부림으로 점철된 웨슬리의 생애는 교리는 있으나 실천을 상실한 현대교회에 던지는 도전이다.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거룩한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도전 받기를 원한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2,659개(1/133페이지)
온전한 복음으로의 초대 온전한 복음으로의 초대
예수 왕의 복음
매튜 W. 베이츠(Matthew W. Bates)/이학영/학영/모중현 편집위원


좋은 질문은 통찰을 이끌어 냅니다. 가끔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한 대답이 따라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우문(愚問)이 현답(賢答)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예리한 질문은 새로운 시각을 허락합니다. 질문을 바꾸면 대상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어떤 대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던집니다. 그 대상을 정의하고 개념을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질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각자의 가치와 사상에 따른 다양한 해석이 뒤따릅니다. 그러면서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조차 천차만별(千差萬別)이 됩니다.​한 단어에 ...
사도들이 들려주는 특별한 이야기 사도들이 들려주는 특별한 이야기
사도바울의 마지막, 특별한 열흘
배성혜/좋은땅/모중현 편집위원


이야기는 우리를 상상하게 합니다. 팍팍하고 고단한 현실의 짐을 잠시 내려놓습니다. 잠시이지만 이야기가 들려지는 순간에 염려와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풍성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집니다. 듬성듬성 드러났던 빈 공간이 이야기로 가득 채워집니다.더하여 좋은 이야기는 우리를 그 이야기 안으로 동참하게 만듭니다. 마치 그 시간, 그 장소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웃고 웁니다. 조용히 그들 곁에 있습니다. 그들과 눈 마주치고 함께 대화를 나눕니다. 함께 햇살을 맞고, 포옹하며, 감격을 나눕니다.성경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야기 ...
말씀을 벗하여 살아가는 삶 말씀을 벗하여 살아가는 삶
깨달음은 더디 온다
사막 교부와 교모/이덕주/사자와어린양/모중현 편집위원


속도가 중시되는 사회입니다. 빠르게 결과물을 만들어야 합니다. 먼저 선점하지 않으면, 뒤처진다 말합니다. 그리하여 과정은 무시됩니다. 사람에 대한 관심은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윤리도 우선순위에서 한참 뒤에 있습니다. 오로지 경쟁 우위를 통해 승리를 쟁취하고자 합니다.​이러한 사회는 인내가 없습니다. 성실함은 도외시됩니다. 일상은 무너집니다. 효율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에서는 참된 교육과 배움의 공간이 줄어듭니다. 고민하고 질문하고 사유하기보다는 더 빨리 답을 찾는 방법을 배웁니다. 인생에 대한 진지한 접근보다 순간적인 처세술만...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누구신가?
그리스도는 질문이다
웨인 A. 믹스/김경민/비아/모중현 편집위원


재빨리 답을 찾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명확한 방법을 통해 명징한 정답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오랜 연구를 통해 얻게 되는 것은 '답'보다는 '질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신학의 언어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 얼마든지 변화되며 통합되고, 재해석됩니다.​신앙과 신학의 언어를 이야기와 은유로 받아들인다면 우리 삶을 더욱 폭넓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고통과 고난의 순간 진심이 담기지 않은 상투적인 말 한마디는 깊은 상처를 줍니다. '하나님의 뜻'은 단정 지을 수 없고, 그것은 고통의 당사자가 오랜 ...
흥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가 아니라 말씀대로 행하는 교회가 흥하는 교회다 흥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가 아니라 말씀대로 행하는 교회가 흥하는 교회다
쇠하는 교회 흥하는 교회
서창원/개혁된실천사/조정의 편집인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예수님이 직접 하신 이 말씀이 현실과 거리가 있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실제로 세워지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무너지는 교회도 있다(무너지는 교회가 더 많은 것처럼 보인다). 흥하는 교회도 있지만 쇠하는 교회도 많다. 교인의 숫자만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니다. 사람은 넘쳐날 수도 있다. 하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 많은 사람이 “반석 위에” 세워져 있지 않다면, 언제든 음부의 권세 아래 흩어지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
기독교와 자유주의는 다른 종교다 기독교와 자유주의는 다른 종교다
기독교와 자유주의: 정통 기독교의 본질을 말하다
J. G. 메이첸/황영철/복있는사람/조정의 편집인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 있다. 역사적으로 적실한 내용을 탁월하게 담고 있는 책, 그래서 굉장히 많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의미 있고 도전을 주는 책. 메이첸의 <기독교와 자유주의>가 그런 책 중에 하나다. 웨인 그루뎀은 추천사에서 “나는 모든 신학 입문 강의에서 이 책을 필독서로 삼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금의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을 설립하게 된 배경이자 수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사역을 시작하게 만든 계기, 자유주의 신학과 논쟁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전제를 구축한 책이 바로 <기독교와 자유주의>이다...
이제는 성령론을 바르게 정립할 때다 이제는 성령론을 바르게 정립할 때다
삼위일체론적 성령신학
유태화/아바서원/조정의 편집인


삼위일체론은 교회사 초기부터 교회 안에 큰 문제를 일으켰다.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에 관한 반복된 논쟁은 결국 싸움에서 진 상대방을 이단으로 축출하기에 이르렀고, 다른 측면에서 이는 성경이 말하는 삼위일체론을 자연스럽게 정립해 가는 과정으로 작용했다. 이렇게 정립된 삼위일체론은 성경을 진지하게 믿는 모든 교회가 공통적으로 수용하는 건전한 교리가 되었다. 초기 기독교가 기독론 때문에 삼위일체론을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면, 비교적 최근에 교회가 겪고 있는 교리적-실천적 문제는 성령론 때문이다. 성령에 관한 가르침 자체가 너무 빈약한 것도...
예수님을 만나면 영원한 행복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영원한 행복이 시작됩니다
만화, 행복의 시작, 예수 그리스도
조현삼 글 크레마인드 그림/생명의말씀사/조정의 편집인


'감자탕교회’로 알려진 서울광염교회 담임목사 조현삼은 처음 교회를 개척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약 30년 동안 전도에 열정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전도지를 만들었고 그 결과물이 바로 <행복의 시작, 예수 그리스도>라는 전도 책자였다. 믿음이 없는 대상자를 염두에 두고, 읽기만 해도 복음이 선포되기를 바라는 내용으로, 성경을 기반으로 한, 예수님 중심적인 전도지를 책으로 출간하기까지 했다. 그 책이 만화로 나온 것이 바로 <만화: 행복의 시작, 예수 그리스도>이다(생명의말씀사, 2023). 기본적인 내용(글)은...
정치를 말하기 전,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 정치를 말하기 전,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
웨인 그루뎀의 성경과 정치(상)
웨인 그루뎀/조평세/도서출판언약/조정의 편집인


웨인 그루뎀은 <조직신학>, <기독교 윤리학>을 통하여 복음주의적 교리와 실천을 체계적으로 정립하고 가르쳐온 실력 있는 학자다. 현재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으며, ESV 성경 번역 감독과 ESV 스터디 바이블 총괄 편집을 하기도 했다. 2010년 그루뎀이 이 책 <Politics - According to the Bible>을 냈을 때, 정말 탁월한 저자라고 생각했다. 복잡하고 다양한 정치 현안에 관하여 그루뎀 만큼 조직적으로 풀어낼 만한 사람이 없을 것 같고, 또 <복음주...
바람이 불 때, 예수님 손을 더 굳게 붙잡으라 바람이 불 때, 예수님 손을 더 굳게 붙잡으라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을 때
해럴드 센크바일/김태형/구름이머무는동안/조정의 편집인


우주에서 가장 막강한 힘과 지혜를 가지고 있어서 하지 못하는 일이 없고 알지 못하는 것이 없는 신이 있다면, 그리고 그 신이 나를 너무 사랑해서 자기의 하나뿐인 아들을 내어주기까지 했다면, 그러면 내 삶은 형통하고 행복하기만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을 때”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분명한 간극을 줄어들게 하는 지혜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특별히 삶이 곤고하고 괴로우며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아니, 하나님은 정말 계시는가? 고통의 문제는 기독교를 가장 의심스...
하나님을 안으면 불안과 함께 잘 지낼 수 있다 하나님을 안으면 불안과 함께 잘 지낼 수 있다
당신은 불안을 안고 잘 지내는 사람
헬렌 손/신하영/좋은씨앗/조정의 편집인


제목이 독특하다. <당신은 불안을 안고 잘 지내는 사람>. 원제는 “Hope in an Anxious World”으로, 직역하면 ‘불안한 세상 가운데 소망’ 정도가 될 것이다. 무난한 책 제목을 독특한 제목으로 바꾼 이유는 이 책의 저자인 헬렌 손(한국 발음 ‘손’이 아니라 ‘Thorne, ‘톤’에 가까운 ‘쏜’)이 이 책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 가운데 우리가 불안을 안고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말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저자는 불안을 감쪽...
우동 한 그릇이 주는 감동 우동 한 그릇이 주는 감동
우동 한 그릇
구리 료헤이/최영혁/청조사/고경태 편집위원


일본 작가 구리 료헤이가 쓴 <우동 한 그릇>(1989년)이라는 책이 있다. 1989년 2월 일본 국회 예산 심의위원회에서 공명당의 오쿠보 의원이 대정부 질문에서 질문이 아닌 이 소설책을 읽어서 화제였다. 의원들은 오쿠보 의원의 행위에 대해 비난을 한 것이 아니라 함께 울었다고 한다. 예산 심의에서 <우동 한 그릇>를 낭독한 의원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운데, 함께한 의원들이 울면서 들었다는 것도 그렇게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는 40여년 전에 창조사에서 번역해서 출판하고 있다. <...
'너'의 고통에 반응하는 영성 '너'의 고통에 반응하는 영성
영성 없는 진보-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생각함
김상봉/온뜰/모중현 편집위원


누군가를 이겨야만 끝나는 전쟁과 같습니다. '역사적 사실'이나 '사건의 진실 여부'보다 자신의 정치 성향에 따라 시비가 결정됩니다. 사용하는 언어는 같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가 매우 다릅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는 시대입니다. ​지금의 우리나라를 보면 숨이 막혀 옵니다.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 어렵습니다. 기본적인 소통이 되지 않다 보니 대화의 가능성조차 없습니다. 서로는 상대방을 향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비상식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은 해괴망측한 사람을 지지하지?'​민주주...
우리에게 '희망'은 존재하는가? 우리에게 '희망'은 존재하는가?
희망의 신학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이신건/대한기독교서회/모중현 편집위원


세상이나 현실을 바라볼 때 좌절하게 됩니다. 언제 세상이 옳은 방향, 좋은 방향으로 변화될지에 대한 기대까지 사라지게 만듭니다. 여전히 세상은 잔혹하고, 전쟁은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각자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의 사소한 실수는 크게 부각시키며, 자신의 잘못에는 관대합니다.​자본의 노예가 되어버린 사회는 새로운 계급이 형성됩니다. 사회적 제도로 인한 계층 구조는 아니지만, 부자와 가난한 자의 위치는 점점 더 멀어집니다. 가진 자는 현대 사회에서 더 많은 힘을 얻고, 그 힘을 자유롭게 사용합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힘없는...
칠십인역에 대한 새로운 이해 칠십인역에 대한 새로운 이해
칠십인역 입문
윌리엄 A. 로스(William A. Ross), 그레고리 R. 래니어(Gregory R. Lanier/이민희/북오븐/모중현 편집위원


목회자들이나 신학생들에게 칠십인역이 그렇게 낯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칠십인역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천차만별입니다. 70명의 번역자가 아닌 72명의 유대 학자들이 번역했다는 정도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지적 만족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실제로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이 그리스어로 번역된 것은 시기와 장소를 특정할 수 없습니다. 칠십인역에 대한 우리의 정보는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의 설명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의 요청으로, 72명의 번역가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파견되어 프톨레마이오스 궁궐에서 72일만에 과업을...
참 존재와 대면하는 시간 참 존재와 대면하는 시간
인간이란 무엇인가
폴 투르니에(Paul Tournier)/강주헌/포이에마/모중현 편집위원


한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힘겨운 과정입니다. 저마다 자신의 참 존재가 무엇인지를 모른 채 상황에 휩쓸려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더하여 변화하는 환경에 맞추어 자신의 모습을 숨기기도 하고, 특정 부분만을 부각시키기도 합니다. 각자 저마다의 가면을 쓴 채 살아갑니다.이러한 삶은 타인과 적절하게 거리를 유지한 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괜찮은 듯합니다. 문제는 진짜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가 불분명해진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역할에 맞추어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는 능수능란하지만, 참 존재에 대한 인식은 흐릿해집니다.스위스의 ...
당신은 하나님을 안고 잘 지내는 사람 당신은 하나님을 안고 잘 지내는 사람
당신은 불안을 안고 잘 지내는 사람
헬렌 손/신하영/좋은씨앗/조정의 편집인


제목이 독특하다. <당신은 불안을 안고 잘 지내는 사람>. 원제는 “Hope in an Anxious World”으로, 직역하면 ‘불안한 세상 가운데 소망’ 정도가 될 것이다. 무난한 책 제목을 독특한 제목으로 바꾼 이유는 이 책의 저자인 헬렌 손(한국 발음 ‘손’이 아니라 ‘Thorne, ‘톤’에 가까운 ‘쏜’)이 이 책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 가운데 우리가 불안을 안고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말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저자는 불안을 감쪽...
믿음이 주는 선물, 자유 그리고 순종 믿음이 주는 선물, 자유 그리고 순종
그리스도인의 자유
마르틴 루터/조계광/개혁된실천사/조정의 편집인


칼 트루먼은 마르틴 루터가 쓴 <교회의 바벨론 유수>, <독일 귀족에게 고함>,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종합하면 “종교개혁의 완벽한 선언문이 완성된다”라고 말했다(10p). 각각의 책은 세례와 성찬이 어떻게 말씀과 연관되어 재구성되어야 하는지, 교회와 국가의 관계가 어떻게 새롭게 정립되어야 하는지, 기독교 윤리가 어떻게 바르게 개정되어야 하는지를 다룬다. 트루먼은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루터의 “신학 체계 안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라고 말했다(11p). 루터가 선행을 어떤 관점으...
열왕기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만나기 열왕기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만나기
열왕기, 그리스도 중심 성경읽기
레이몬드 딜라드/박성호/좋은씨앗/조정의 편집인


레이몬드 딜라드는 WBC 성경 주석 시리즈 중 <역대하>를 집필한 성경학자이고(솔로몬, 2005), 이번에 좋은씨앗에서 출간된 <열왕기, 그리스도 중심 성경 읽기>와 함께 단 두 권의 책이 국내 보급되었다. 출판사는 딜라드에 관하여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데 정평이 난 학자로 알려졌다”고 소개했는데, 그의 책을 추천한 사람 중에서 싱클레어 퍼거슨과 D. A. 카슨, 모세스 실바 등 건전하고 성경적인 교리를 가르치는 데 헌신하고 있는 유명한 학자들이 있어서, 다소 생소한 딜라드 역시 신뢰할...
우리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은 영원을 준비하는 절호의 기회다 우리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은 영원을 준비하는 절호의 기회다
시간 관리도 영성이다: 목적과 의미가 충만한 시간을 사는 예수의 원칙
조던 레이너/정성묵/두란노/조정의 편집인


솔직히 시간 관리에 관한 신앙 서적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케빈 드영의 <미친 듯이 바쁜>(부흥과개혁사, 2013)이다. 생산성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삶을 오히려 규모 없게, 목적을 상실한 채 살지 않도록 경고하고, 단순한 목표를 세우고 충성스럽게 살라고(왜 바쁜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항상 기억하라고) 권면하는 좋은 책이었다. 2019년에는 팀 챌리스가 쓴 <Do More Better: A Practical Guide to Productivity>를 번역해서 청년들과 함께 읽고 실천해 ...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