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믿음을 더하여 주는 책
믿음을 더하여 주는 책
전도서는 어떤 책일까? 이름 그대로 도를 전하기는 하는데 어떤 도를 알려주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길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마주칠 수 있는 도를 가르쳐준다며 다가오는 그런 부류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인생에 다양한 철학 중에 참고할 수 있는 수준의 일리도 아닐 것이다. 그래도 정경에 포함되어 있으니 사이비 같은 수준의 도는 당연히 아닐 것이고 고등종교 이하의 도도 아닐 것이다.
전도서를 생각하면 헛되다는 말이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니 부하든 가난하든 권력이 있든 없든 누구나 죽음 앞에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도 여전히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다. 반면에 조작하고 사기치며 악하게 살아도 부와 명예를 얻고 큰소리치며 살아간다. 피해자는 집문도 열지 못하고 숨죽여 지내는데 가해자는 오히려 집문을 활짝 열고 대로를 활보하며 가식적으로 살아간다.
이 외에도 삶을 보면 부조리하고 모순되고 억울한 일들이 많이 발생한다. 그래서 전도서는 해 아래에서의 삶은 헛되다고 한다. 권력의 정점에 오르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다해도 죽음 앞에 아무 것도 가져갈 수 없으니 인생의 덧없음을 발견한다. 가난하고 소박하게 살아도 만족함보다는 상대적인 박탈감이 생기니 허무함이 더욱 커진다. 그래서 전도서는 해 아래에서의 삶은 다 의미 없으니 인생을 먹고 마시고 즐겨야 하고 그게 행복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인생의 행복은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의 한 구절처럼 ‘카르페 디엠’일까? 전도서에서 말하는 인생을 즐겨라의 의미는 단순히 육체의 만족과 쾌락과 본능을 위한 것이 아니다. 물론 전도서 본론에서 줄기차게 이 부분을 말하고 있지만 우리 시대의 가치관인 소확행이나 욜로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전에는 전도서를 통해 생각지도 못했던 자본주의를 항해 대항하고 부당한 시스템을 극복하라는 급진적인 의미로 즐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해 아래서의 삶이 지치고 피곤하지만 주어진 일상을 감사하고 지혜와 균형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 책의 저자는 전도서를 연구한 김순영 박사이다. 지혜문헌을 연구하여 신학적이고 대중적으로 쓴 책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이 책은 우리에게 전도서의 이해를 높여준다. 더구나 저자는 현대사회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통찰력이 뛰어나고 글쓰기 또한 단어가 정확하고 문장력이 탁월하다. 또한 구약학자 답게 설명이 필요한 곳에는 구약적 배경과 신학적 설명이 우수하다. 필자는 글을 읽으며 사회서적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는데 그만큼 우리시대를 잘 해석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도서의 저자를 대부분 솔로몬으로 알고 있는데 저자는 솔로몬이 아니라 익명의 지혜자가 솔로몬의 이름을 차용하여 무한한 그의 권력을 견제하고 일상의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알려주는 것이라고 한다. 필자도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당연하게 솔로몬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솔로몬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여성일 수 있다는 가능성도 보게 되었다. 아무튼 전도서의 저자는 가면을 쓰고 더 극적으로 연극을 하는 것처럼 자신을 가린 채 신중함과 통찰력과 시인의 감수성으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 전도서를 보면 어떤 것은 이렇다 하고 어떤 것은 저렇다 하고 말을 뒤집으며 우리를 헷갈리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는 잠언에서 말하는 보편원리와 일반법칙으로 권선징악같이 분명히 선을 그어주고 어떤 경우는 전혀 반대되는 상황을 보여주며 덧없다고 한다. 이렇게 일관성이 없고 말을 바꾸는 듯한 모습에 독자들은 어려워하고 짜증도 나고 궁금증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전도서의 목적과 의미를 충분히 알 수 있고 신앙에 유익을 얻을 수 있다.
먼저 일상의 소중함을 발견할 수 있다. 전도서의 애매모호한 표현이나 현실을 부정하고 비관하는 듯한 서술은 삶을 도피하고 싶게 만든다. 더구나 의롭게 살아가는 자가 불의한 일을 당하고 불의하게 사는 자가 정의롭게 평가를 받는 일이나, 열심히 심었는데도 하나도 거두지 못하고 악인이 다 갈취해 가거나 심지도 않은 자가 몽땅 거두어 가는 일을 볼 때 일상을 포기하고 싶고 삶은 정말 무의미해진다.
우리의 삶을 보면 일반원리와 보편적인 가치로 움직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 점은 복잡한 삶의 한 단면이지 그것이 삶의 전부는 아니다. 현실에서 부딪히는 삶은 눈물과 모순과 억울함과 불의함 등 여러 가지가 뒤엉켜서 움직인다. 일상이라는 것이 순리대로만 흘러가지 않고 역리가 있는가 하면 드러난 하나님의 뜻이 있고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도 있다. 행복할 때가 있지만 불행할 때가 있고 웃고 싶을 때가 있지만 통곡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일상은 모순과 부조리와 양면의 것들이 즐비하다. 그렇다고 부정하고 내팽개쳐버릴 수 없다. 그런 중에 지혜자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 삶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한다. 전도자는 이 책을 통해 단순히 쾌락을 추구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일상이지만 주어진 삶이기에 소중하게 여기도록 도와준다. 내가 선택한 것이든 우연히 주어진 것이든 내 인생과는 분리될 수 없으니 겸허히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을 찾도록 도와준다. 일상을 못살게 하는 책이 아니라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고 미래를 열어가게 해주는 책이다.
그리고 아주 저항적인 의미로 일상의 소중함을 발견하게 해준다. 전도서는 정의가 뒤집히는 문제를 불편해하고 악인이 장수하고 행복하게 사는 잘못된 현실을 보며 인생의 덧없음을 읊조린다. 노동이 신성하고 고귀하고 아름답고 삶의 기쁨인데 노동한 만큼 대가를 받지 못하고 땀 흘린 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을 향해 분노한다. 많은 소득 자체가 칭송을 받고 불로소득으로 살아가는 것이 지혜롭게 여겨지는 사회를 향해 쓴웃음을 짓는다.
이런 현실은 독자들로 하여금 삶의 무상함과 허무함을 느끼게 해준다. 더구나 출발선 자체가 뒤쳐져 있고 어떤 힘도 없는 자들은 심각한 박탈감을 안게 될 것이다. 그런 사회는 인간평등과 인간존엄의 가치가 실현되기 힘들 것이고 많이 가진 자들이 적게 가진 자들을 교묘하게 착취하는 불의한 체제가 세워질 것이다. 그리고 반지하에 사는 자들은 지상에 사는 자들에게 기생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질서가 확립될 것이다.
전도서는 이러한 일상이 불의하고 악이고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라고 한다. 더 많이 더 높이 더 빠르게 살아가게 만드는 시스템은 인간을 기계적으로 대하고 노예화 시킨다. 각박하게 돌아가는 사회에서는 삶의 여유도 없고 서로를 돌아보는 따뜻함도 없다. 이런 세상을 향해 전도자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한다. 이 말은 과잉과 탐욕을 멈추고 자본에 종속되지 말고 노예가 되지 말라는 것이다. 불의한 체제와 제도를 향해 대항하는 지혜자가 되라는 강력한 도전이다.
셋째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도록 도와준다. 전도서에서 펼쳐지는 내용을 보면 삶이 허무하고 덧없다고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은 무의미하지 않다. 물론 너무 힘이 들어 이해되지 않는 일들로 세상을 부정하고 고립되어 염세적으로 살아가는 자들도 있고 세상 속으로 더 들어가 쾌락적으로 살아가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전도서는 허무와 쾌락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하나님의 복음이 우리에게 삶에 대한 거룩과 책임을 가르쳐주듯 전도서 또한 삶에 대한 자세를 새롭게 해준다. 주 예수님의 복음이 세상을 아름답게 섬기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처럼 전도서 또한 삶이 모순되어 보이지만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이 가능하다고 가르쳐준다. 세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하나님을 등지고 폭력과 투쟁과 범죄와 탐욕적으로 달려가 죽음의 일들이 일어나지만 그래도 여전히 세상은 하나님의 창조세계이고 당신의 신성이 있기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회복이 일어나는 곳이다.
그래서 전도서는 독자들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도록 촉구한다. 사탄의 능력으로 죽음의 문화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음으로 악에 물들지 않고 복음의 열매를 맺도록 도와준다. 전도서가 신앙과 경건에 유익을 주지 못하는 책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도록 견인하는 책이다. 신앙에서 미끄러지고 어긋날 수 있는 상황에도 하나님과의 끈을 지탱해주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전도서는 다시 오실 주님을 고대하게 해준다. 모든 일에는 때와 기한이 있다. 삶을 살 때가 있다면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으면 뽑을 때가 있고 기쁠 때가 있으면 슬플 때가 있다. 세상에는 의로운 자가 있으면 악한 자가 있고 깨끗한 자가 있으면 더러운 자가 있고 가해자가 있으면 피해자가 있다. 모든 시간과 공간과 구성원은 하나님의 법 안에서 움직인다. 우연도 아니고 기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 속에는 좋은 일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쁜 일들도 있다. 피곤하고 속상하고 억울하고 지치게 하는 것들이 있다. 피조물들도 허무한데 굴복하고 인간도 허무하게 만드는 좌절들이 있다. 그런 해 아래에서의 피곤한 일들을 겪지만 전도서는 해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해준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모든 묶인 것을 풀어주시고 아픔 위에 치료의 광선을 발하여 주시고 모든 굽은 것들을 바르게 해주셔서 신음과 한숨을 찬양과 노래로 바꿔주신다.
전도서는 바로 그 심판자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한다. 창조주와 구속주가 되시는 주님의 주권도 드러나지만 심판자가 되시는 그 주님의 엄위와 공의를 더 높여준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으로 인도한다.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시간을 아끼고 불의한 탐욕을 절제하며 지금 여기서도 심판하시는 주님과 동행하도록 이끌어준다. 그래서 전도서는 애매모호 하고 복잡하기만 하고 삶의 허무와 쾌락을 주는 책이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과 지금 여기서도 행하시는 주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을 더하여 주는 은혜로운 정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