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분노의 정체를 밝히는 뛰어난 통찰을 만나다
분노의 정체를 밝히는 뛰어난 통찰을 만나다
우리에게는 모두 분노의 문제와 관련해 좋지 않은 경험이 있다. <악한 분노, 선한 분노>의 저자에 의하면 분노는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다른 사람에게 화를 쏟아낼 때도 있고, 반대로 누군가가 표출한 분노의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또한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이 화를 내는 장면은 쉽게 볼 수 있다.
이 책은 실패하지 않을 어떤 기술이나 통찰, 전략을 약속하지는 않는다. “분노의 문제를 완벽히 해결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자기계발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아를 긍정하는 언어를 사용하라’,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편히 쉬라’ 등으로 화난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방법, 혹은 ‘진짜 자신을 만나고 세상에 당신의 느낌을 전하라’하는 식의 조언을 이 책에서 찾지는 못할 것이다”(20쪽).
사도 바울이 인간의 전형적인 죄악들을 나열할 때 그 절반 이상이 분노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인간에게 분노가 얼마나 보편적인 문제인지를 잘 보여 준다(갈 5:19-21).
그러나 올바르게 표출되는 분노도 있다. 선한 분노는 “그건 잘못되었어!”라고 말하며 죄 없고 힘없는 사람들을 보호한다. 선한 분노는 진짜 문제를 다룰 수 있도록 용기를 준다. 하지만 선한 분노와 악한 분노를 분별하기란 쉽지 않다. 더욱 어려운 것은 악한 분노를 선하게 바꾸는 일이다.
저자는 강조한다. “분노를 잘 다루지 못하면 당신은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 “분노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인생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진다.”(21쪽) 분노는 마음속에 있는 불만과 오랜 기간 쌓인 것이 여러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다. 분노는 불평, 곱씹음, 짜증, 언쟁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그 모든 것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분노의 문제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다시 말해, 기질과 성격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겪는 문제다. 화내는 방식이 다를 뿐, 우리는 모두 분노를 경험하며 살아간다(30쪽).
저자는 원래 성격이 조용한 편이었고 천성적으로 화를 잘 내지 않는 기질이었다. 그래서 화내는 사람들을 볼 때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때로는 그들 곁에 가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별일도 아닌 일에 왜 이렇게 화를 내지?”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하지만 그 자신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단지 화를 내는 방식이 다를 뿐 그도 역시 분노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화를 밖으로 폭발시키지는 않았지만 혼자서 불만을 곱씹고, 숨어버리고, 상대방을 부정적으로 판단하거나, 갈등이 싫어 회피하고, 잘못을 알고도 고치려 하지 않는 무관심으로 반응하곤 했다. 분노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내가 화났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나는 그런 갈등 상황과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는 데 능숙했고 이는 전면전이 아닌 냉전과 같은 형국이었다. 결국, 나는 자신을 속이면서 나에겐 분노의 문제가 없다고 착각하며 살아왔던 것이다.”(31쪽)
저자는 그 역시 분노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이 문제에 많은 관심을 두게 되었다. 화가 치밀어 곧 폭발 직전인 사람도 있지만, 저자처럼 화를 잘 표출하지 않으면서 분노하는 사람들도 있다. 저자는 그 모두를 돕고 싶어 이 책을 쓴 것이다.
저자는 “나는 당신의 분노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첫째, 당신도 분노하는 사람이다. 둘째, 당연히 화를 내야 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당신에게 명백한 잘못을 했을 때 말이다. 셋째, 당신의 분노는 대부분 적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넷째, 분노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분노하는 방식이 잘못되었던 경험이 있다. 분노하며 했던 생각, 내뱉었던 말 그리고 행동들은 매우 적대적이고 때로는 비열했다. 때로 당신은 쉽게 판단하고, 속 좁은 태도로 악을 악으로 갚고, 그러한 복수가 오류를 바로잡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분노는 건강하지 않고 파괴적이다. 당신의 분노는 문제를 더 악화시키고, 상처를 주고, 관계를 깨뜨렸을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을 것이다. 다섯째, 분노의 이유가 타당했든 그렇지 않았든, 분노를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둔 경험이 있다. 여섯째, 그렇게 분노가 쌓였다면, 이미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후다. 분노는 한 사건에 국한되지 않는다. 많은 경우 누적된 삶의 좌절과 실망이 함께 얽혀 있다. 일곱째, 당신은 분노해야 하는 상황에 분노하지 않았다. 명백히 잘못된 일이 일어났고 당신은 그 일을 확실히 해결했어야 하는 데도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것이다. 사실, 당신은 본성적으로 자신과 별로 관련 없는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반응하지 않으려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변화가 어려운 일임을 알고 있다. 자신의 분노마저 명확하게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미 그 분노가 당신을 사로잡고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노할 때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란 쉽지 않다. 분노한 후에 스스로 매우 비이성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후회하곤 한다.
어떤 때는 이러한 분노의 광기가 지속해서 우리 안에 머물기도 한다. 심하면 평생 계속된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벗어날 수 없듯, 우리는 그 습관적인 광기 안에 갇혀 버리는 것이다(49-52쪽).
저자에 의하면 선한 분노도 있다. 그것은 부당하고 잘못된 상황을 목격하고, 그에 대한 분노가 용기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랑과 선한 뜻으로 약자 편에 서려는 마음에서 출발한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이러한 분노는 사실 드물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분노를 배우며 그들을 따라 한다(120쪽). 어떤 아이들은 비속어와 욕을 집에서 배운다. 어떤 엄마는 화난 티를 내지 않으면서 침묵으로 불만을 표출하다가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으로 분노를 해결하기도 한다. 그런 엄마를 통해 아이들은 분노를 표출하는 여러 방식을 배우고 그들의 분노 역시 비슷한 양상을 띤다.
저자는 “교통 체증 같은 작은 문제에서도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있고, 천국을 맛볼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교통 체증에서 화가 난 우리에게도 찾아오신다. 작은 불평과 짜증의 문제를 해결하면 분노라는 문제의 깊은 뿌리까지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분노의 분제를 근본부터 다르면서 성경적인 이해를 돕고, 실천적 대안도 제시하는 탁월한 저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