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바울의 재발견
바울의 재발견
구전사회
예수님이 살던 시대는 구전사회였다. 우리는 성경을 읽는다는 것을 그 시대의 맥락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우리의 배경에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도 글을 읽고 묵상하고 은혜를 받았을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대다수가 문맹이었다. 어부 출신인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글을 쓰고 문서로 만들 능력이 없던 가난하고 천하게 여김 받던 자들이었다. 읽기와 쓰기는 귀족과 사제와 서기관의 영역이었다.
개인에게 성경이 없고 사본도 없던 시절, 이들은 성경공부를 해서 하나님을 알 수 없었다. 회당에서 드려지는 공동체의 토라 읽기와 예배를 통해 신앙이 성장할 수 있었다. 특별히 이 시기는 구두사회였기에 공동체의 중요한 역사와 가치들은 구두로 전승되었다. 개인의 기억은 한계가 있지만 공동체의 기억은 공통점을 가지고 전달된다. 예수전승 역시 어느 정도 문서화의 가능성도 있지만 대부분 전승으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책의 저자는 그 시대의 상황 속에서 예수님의 존재와 사역을 해석하고 복음서 탄생으로까지 연결한다. 단순히 외우거나 암기하는 것과는 다르다. 복음서는 자신들의 삶의 이야기를 의미 있게 만드는 내러티브였고 그것에 따라 살아가는 가르침이었다. 예수의 제자들은 초기 성도들의 모임에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 것이고 그들은 자신의 정황에 맞게 적용하였을 것이다. 즉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의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전승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와 바울의 연속성
책은 총 9개의 논문으로 구성이 되었는데 1장부터 4장까지는 예수님과 복음서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이 되었다. 그리고 5장부터 9장까지는 바울(복음, 교회)에 대한 주제이다. 그중에서 저자는 예수님의 사역과 삶을 바울이 계승하고 이어간다고 주장한다. 예수님으로부터 바울에 이르는 연속성은 일직선으로 본다. 바울 신학의 그리스도는 복음서의 예수님과 동일시된다. 역사적으로 역사적 예수가 연구되기 시작되었을 때 예수님의 메시지와 바울의 복음을 다르게 보게 되었지만 저자는 연속성을 더 강조한다.
예수님은 사역을 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하나님의 왕정을 가르친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나라가 임했다고 가르치고 특히 축귀와 병고침을 통해 어둠의 권세가 물러가고 자신의 나라가 도래했음을 증명하였다. 또한 차별당하고 소외되고 유대인의 법 내에서 버림받은 자들은 구원하시고,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위한 기쁜 소식을 이사야 61장에 근거하여 선포하신다.
이런 예수님의 가르침은 바울의 복음과 상응한다. 바울은 이신칭의 신학을 통해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가 죄인의 마음에 양자됨의 법정적 선언으로 현재화 됨을 말한다. 또한 바울은 이방 죄인들을 위한 기쁨의 복음을 전하는데 예수님의 죄인을 구원하시는 사역과 연결되고 유대인의 경계를 넘는 구원의 확장과 상응한다. 그리고 바울 역시 가난한 자를 돕는 책임에 대해서 강조하는데 예수님의 말씀과 일치한다. 이외에도 ‘이미와 아직’이라는 종말론적 긴장에 있어서 일치하는 점이 있고 율법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법은 사랑으로 성취된다고 주장한다.
바울은 누구인가?
바울은 누구나 인정하는 지독한 바리새인이고 철저한 율법교사였다. 그도 자신을 소개하길 율법으로는 흠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율법을 지켜가는 유대주의자고 자신의 종교에서 최고의 스승에게 배우며 앞길이 창창한 지도자였다. 그런 바울이기에 어느 날 나사렛 시골에서 나타난 예수라는 청년이 하는 말과 행동들은 그의 신앙으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하나님을 섬기는 바울에게 자신이 하나님이고 자신에게는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고 자신이 아버지의 일을 한다는 예수는 바울에게 심각한 신성모독자였다.
그래서 그의 종교와 신앙을 위협하는 예수를 바울은 가만히 놔둘 수 없다. 그의 전 생애를 걸어 예수를 죽이고 교회를 핍박하고 박해하며 예수의 추종자들을 죽이는 것이 그의 사명이다. 이 일을 훌륭하게 감당하는 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고 그의 믿음이고 부르심이다. 그러나 이런 바울은 다매섹에서 홀연히 임한 빛을 보고 완전히 돌변한다. 목숨 걸고 예수를 부정하고 죽이려는 자가 목숨 걸고 예수를 전하는 자로 바뀐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바울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회심하였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도이고 복음의 종이고 이방인을 향한 사도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바울이 사도라는 직분을 이방인을 향한 선교의 사명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바울은 새로운 정체성으로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새롭게 바라본다. 여기서 저자는 바울이 더 이상 유대교 안에 있지는 않지만 유대교의 유산 안에서 사명을 수행했다고 본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오직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정체성이 결정된다. 그로 인해 그의 메시야관이 변하고 그의 신론과 세계관과 구원관이 바뀐다.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을 성취하고 하나님의 구원과 목적을 완성하는 죄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다. 예수님에 대한 만남과 구원에 대한 비밀이 열리니 그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후 그의 신학과 사상은 더 깊어지게 되고 그는 기독교의 초석을 놓으며 이방인과 전 세계에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는다.
바울은 기독교의 두 번째 설립자인가?
역사적 예수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바울에 대한 연구도 깊어지면서 예수님의 메시지와 바울의 복음에는 차이가 있다고 하며 바울의 영향력 때문에 그가 기독교의 실제 창시자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예수님은 그저 유대의 예언자로서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종교적 개혁과 정치적 회복, 그리고 나라의 독립을 요청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이어 하나님 나라를 밝히 보여주는 인물인가, 아니면 예수님과는 상관없는 유대교에서 흘러나온 다른 분파일 뿐인가?
바울이 기독교를 형성하는 것에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가 없었다면 유대교 내부의 메시아 종파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바울은 예수님을 예배하는 새로운 유대교 종파를 그 이상의 것으로 변형시킨 사람이다. 바울의 선교와 그의 서신들을 통해 전달된 가르침은 초창기의 기독교를 제2성전기 유대교를 근간으로 하는 메시아 종파에서 이방인을 포함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알맞은 종교로 변형시켰다.
바울의 편지들은 대부분 기독교 초창기의 것이고 기독교를 결정하는 근본조항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바울의 선교기간은 기독교의 존재와 특징을 위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가 설립한 교회와 전달된 편지들은 바울에게 기독교의 두 번째 설립자라는 칭호를 타당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말은 그가 첫 번째 설립자가 아니고 예수님보다 낫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의 영향력이 그만큼 지대하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가 예수님의 사역과 삶과 가르침을 이어간다는 것을 기억해야 될 것이다.
바울의 교회관
끝으로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바울의 교회론을 하나님의 교회로서의 교회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그리고 성령의 교제로서의 교회를 설명한다. 하나님의 교회가 된다는 것은 교회는 하나님의 목적과 함께한다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여전히 오늘도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의 현존이며 성령이 교제로서의 교회는 교회가 성령의 은혜를 통해 다양한 기능을 신실하게 수행해야함을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는 내용들이다. 아울러 9개의 논문을 통해 예수와 복음서와 바울까지 연결해보는 유익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