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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태초부터 시작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
삼위일체와 구속언약/존 페스코/전광규/부흥과 개혁사/조정의 편집위원
바라기는 이 신학적 회복의 실행이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사이에 공유되고 알려진 사랑, 타락했지만 구속받은 죄인들에게 은혜롭게 부어진 사랑을 보여 주는 교리인 구속 언약에 대한 관심과 활용에 있어 작은 진일보가 되었으면 한다(412페이지).
존 페스코는 영국 애버딘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개혁 신학 신학교(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에서 조직신학 및 역사신학 교수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존 페스코는 또한 목사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영혼 구원 사역을 하는 목사이자 복음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존 페스코가 이 책을 통해 말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책 제목처럼 그는 “삼위일체” 그리고 “구속 언약”을 함께 설명하려고 합니다.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지만,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 사실 정확하게 표현하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고 설명하다 보면 잘못된 견해를 낳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 페스코가 “삼위일체와 구속 언약”을 설명하려는 이유는 과거에도 그랬지만 오늘날 복음주의 기독교 안에서 구속 언약에 대한 반대가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이 태초부터 시작된 삼위일체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누리는 데 방해가 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3부 2장에서 페스코가 전개한 삼위일체에 대한 현대 연구에서 “삼위일체 내부 활동을 들여다보는 것은 인간의 지적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라”는 비판이 있다고 그는 말합니다. 또한 20세기 들어 톰 라이트, 제임스 던, 마이클 버드와 같은 신학자가 ‘그리스도의 연합’을 강조하며 바울의 새 관점을 주장하는데, 이때 그리스도의 의로움이 우리에게 전가되었다는 개념을 무시하거나 약화시키려고 했던 점을 지적합니다(296-7페이지).
저자는 이러한 비판과 도전이 정통적인 구속 교리를 위협하고 무엇보다도 삼위일체 안에서 언약된 영원한 사랑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이 책 2부에서 스가랴 6장 13절, 시편 2편 7절, 시편 110편과 에베소서 1장, 디모데후서 1장 9-10절을 통해 구속 언약의 석의상 근거를 확실히 제시합니다. 구속 언약은 만들어낸 교리가 아니라 성경이 말하고 있는 확실한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속언약이 무엇일까요? 저자는 이렇게 정의합니다.
구속 언약은 택자의 구속을 계획하고 실행하기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시간 이전에 맺은 삼위일체 내부 협약이다(166페이지).
이 구속 언약 안에서 삼위 하나님은 각각 역할을 분담하셨는데, “성부는 성자를 보내며, 성자는 중보자 및 언약 보증인 사역을 수행하고, 성부와 성자는 성자의 사역을 적용하기 위해 성령을 보내”셨습니다(166페이지).
삼위일체가 맺은 구속 언약은 감정이 들어있지 않은 기계적인 합의가 아니라 오히려 넘치는 사랑의 언약이라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이것이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확실하게 알리려는 내용입니다. 구속 언약을 지켜내는 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이 신자에게 베푸신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구속 언약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사이에 영원히 존재하는 삼위일체 내적 사랑의 발현, 곧 피조물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범죄하고 타락한 피조물에게 베풀기로 작정하신 사랑의 발현이다. 구속 언약은 택자 곧 성자의 신부에게 베푸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다. 이어지는 교리에 대한 모든 설명에서 우리는 사랑과 구속 언약의 부정할 수 없는 관계를 잊지 말아야 한다(176페이지).
정리해보면, 저자는 창세 전에(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상호 간에 협약을 맺으셨는데, 언약하신 그대로 성부, 성자, 성령께서 각각 자기의 역할을 담당하심으로 택자에게 구속의 사랑을 베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한 이 말씀에서 우리는 페스코의 주장의 근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페스코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기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우리를 향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페스코가 말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충분히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직접 이 책을 읽어보면 그렇게 쉬운 내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가 각각의 의지를 가지고 협약을 한다는 말은 세 분의 독립적인 의지를 가진 하나님 곧 삼신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 신자를 택하시고 타락을 허용하신 후 구원하셨나 아니면 먼저 창조하시고 타락을 허용하신 후 선택 및 구원을 하신 것인가? 구속 언약에 있어 성령은 무슨 역할을 하신 것인가? 구속 언약을 기독론에 포함할 것인가 아니면 구원론에 포함할 것인가?
443페이지에 담긴 이 복잡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다양한 견해, 그리고 저자의 분석과 결론을 하나하나 읽다 보면 위에서 정리한 내용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이것은 단지 교리를 위한 논쟁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조직신학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가 이 책을 읽는 것은 대단한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신학을 공부한 이들이나 목사로 일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꼭 필요한 책입니다. 이해가 잘 되지 않더라도 조금씩 읽어나가며 소화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책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주의 내에서도 신학자들이(그것도 유명한) 구속 언약에 대한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그것이 여러 목사의 가르침을 통해 성도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면에서 목사는 신학자가 아닙니다. 최신 신학 견해를 모조리 다 알고 있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 목사는 반드시 신학자이어야 합니다. 학위 이야기가 아닙니다. 날마다 쏟아지는 ‘새 관점’이나 신학적 견해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거나 따라가지 않으려면 성경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한 것처럼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해야 합니다(딤후 3:14).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는 성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존 페스코는 신학자이자 목사입니다. 그가 이 어려운 주제를 이 책을 통해 다루려고 한 이유는 결국 목회적인 적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는지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사랑을 어떻게 부어주셨는지 제대로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찬송하며 그분께 감사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힘이 아닙니까? 그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지 않습니까?
오늘날 교회가 그 힘을 잃어버리고 목적을 상실하며 부패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고 돈을 더 사랑하며 쾌락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딤후 3). 결국 교회를 회복시키는 힘은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며, 사랑의 하나님이 얼마나 큰 사랑으로 교회를 사랑하셨는지 아는 것이 회복의 첫걸음이자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저자의 바람대로 하나님이 창세 전에 시작하신 교회를 향한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작은 진일보”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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