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로그인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서 로그인하시면 별도의 로그인 절차없이 회원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서평

왜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정현욱 | 2019.05.22 10:28
왜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이성에서의 도피/프란시스 쉐퍼/김재영/생명의말씀사/정현욱 편집인

 왜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인간은 타락했다. 종교개혁가들에 의하면 타락은 초월적 존재인 하나님의 발견과 그로 인한 인간의 재발견이다. 루터는 십자가의 신학을 통해 절대 타자이신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인간들과 함께함을 선언한다. 칼뱅은 루터를 넘어 삼위의 하나님이신 성령의 내재하심을 통한 지성의 조명과 새 언약 안에서 새롭게 거듭난 인간들의 거룩한 삶을 강조했다. 루터와 칼뱅으로 대변되는 종교개혁의 핵심은 신성의 세속화이다. 충분히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용어이지만 설명하면 이렇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정립된 중세의 은총 대 자연이란 이분법적 세계관은 근대의 이원론과 흡사하다. 하나님은 절대 타자로서 초월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삶과 세상에 관심이 없으며 개입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전제한다. 이러한 아퀴나스적 이분법 세계관은 하나님을 과도하게 인간의 삶에서 터부시함으로 인간의 삶과 역사에 하나님의 의지와 뜻은 길을 잃고 무용지물이 되게 한다. 프란시스 쉐퍼는 이러한 중세적 모순을 종교개혁가들이 해결했다고 믿는다. 하나님께 속한 수도원만 거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맹세하지 않고 일상을 살아가는 평민들도 거룩하다는 것이다. 세계관은 사제와 평신도의 구분을 무너뜨렸고, 수도원과 일상의 경계를 사라지게 했다. 칼뱅이 직업을 소명으로 정의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모든 사람은 제사장이며,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소명자요, 모든 직업은 하나님께 소명받는 자들의 거룩한 일터라는 것이다.

 

개신교회를 출석하는 교인이나 목회자들 중에 위의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단순한 명징함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지불했고, 또한 계속해서 지불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현대교회가 길을 잃었다고 말한다면 과장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나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개혁교회는 이미 답을 얻었고,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황하는 것일까? 프란시스 쉐퍼는 개신교인들이 이성으로부터 도피했기 때문이라고 응답한다. 쉐퍼는 어떤 근거에서 그렇게 말했고, 왜 그러한 결론을 내렸는가 살펴보고자 한다.

 

쉐퍼가 모든 문제의 발달을 중세의 신학자요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에게서 출발하는 것은 잘한 일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중세 신학의 총체라고 할 수는 없으나 핵심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계를 자연과 은총으로 구분했기 때문이다. 은총은 상층부에 속한 것으로 신적이 영역이며, 보이는 것들에 영향을 미치는 세계이다. 이에 비해 자연은 하층부에 속하며 피조물이며, 땅에 속하는 것들이다. 엄밀히 말해 상층부의 영향 아래 있다고 옳을 것이다. 상층부는 인간 이해로 범접할 수 없는 시공이기 때문에 이성이 아닌 상징으로 표현된다. 아퀴나스는 비록 상층부와 하층부가 구분되고 상당한 질적 차이가 존재하지만 양자 간의 통일 개념을 가지고 있었’(22). 문제는 아퀴나스가 바라본 하층부에서 일어난다.

 

아퀴나스는 인간의 전적 타락을 믿지 않았다. 인간을 비록 타락했지만 지성은 타락하지 않았다.’(23) 이 미묘한 인식의 차이는 결국 인간을 절망으로 떨어뜨릴 것이다. 아퀴나스가 하층부에 심어놓은 자율적인 인간의 지성은 시간을 따라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쉐퍼는 예술에서 첫 징조를 발견한다. 자율 사상에 최초의 영향을 받은 화가는 조토 디 본도의 스승 치마부에(1240-1302)이다. 그들은 초월을 상징으로 표현하기보다 자연의 사물을 자연 그대로 그리기 시작했다.’(25) 물론 갑자기 변한 것이 아니다. 서서히 천천히 변했다. 단테(1265-1321)는 자연에 몰입한 화가처럼 글을 쓰기 시작한다.(26) 즉 자연에 대한 발견, 그리고 집중이 13세기 중반 이후 갑자기 증가한 것이다. 문제는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자율을 얻은 자연이 은총을 잠식하기 시작’(26)했다는 것이다. 르네상스가 끝나갈 즈음 자연은 은총을 삼켜 버린다. 쉐퍼는 1415년에 제작된 <루앙의 시도서>라는 채색 수사본을 근거로 제시한다. 이 그림은 은총이 훨씬 중요하고 자연을 별로 중요하지’(27)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14010년 북유럽의 반 에이크가 그린 <예수님의 세례>에서는 은총이 아닌 실제의 자연 풍경을 담은 것이다. 1435, 반 에이크는 <재상 롤랭의 마돈나>를 그린다. 이곳에서 재상 롤랑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가까이 마주 보며 앉아 있다. 이 그림의 핵심은 롤랭이 기도하는 자세로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있으나 마리아와 대등하게 그려져 있다’(30)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와서는 상층부에 속한 영혼을 그리려 했지만 그 영혼은 기독교의 영혼이 아니라 바다나 나무와 같은 영혼이었다. 이것으로 자연과 은총은 서로 통일될 수 없는 영역임이 분명해졌다.

 

문제의 해결은 전혀 엉뚱한 곳에 있었다. 보편을 강조한 신플라톤주의와 개체를 강조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은총과 자연을 통합적으로 보는데 실패했다. 그들의 실패의 기저에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하층부의 자율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깔려있다. 종교개혁가들은 중세의 신학과 철학에 도도하게 흘러온 신플라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배격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자율적’(47)이라고 선언한다. 인간은 전적 타락했으며, 결코 자율적이지 못하다고 선언한다. 인간은 그리스도가 행한 사역을 오직 믿음으로만 수납할 때 구원될 수 있는 것이다. 쉐퍼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오직 성경’(48)이라는 종교개혁가들의 외침을 주의할 것을 당부한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인간에 관한 지식을 제시한다. 칼뱅의 가르침처럼 하나님을 알 때, 인간을 비로소 인간 스스로를 바르게 볼 수 있다.

 

종교 개혁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이 상층부하층부에 관하여 성경을 통해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 즉 하늘에 속한 것에 대한 참된 진리를 계시로 말씀하시고, 자연, 즉 우주와 인간에 관한 참된 사실도 계시로 말씀하신다.”(51)

 

쉐퍼는 이곳에서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일깨운다. 그것은 바로 모든 문제의 시작이 성경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이며, 상층부와 하층부가 무엇인지 바르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자연과 은총은 두 개의 무엇이 아니었다. 그들은 참된 통일성을 갖고 있었고, 믿음에 근거한 바른 인식은 이러한 통일을 바르게 이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본주의적 신학에 빠져있던 아퀴나스는 하층부에 자율을 부여함으로 상층부를 추방시키는 불행의 씨를 심은 것이다. 종교개혁가들은 인간에게 자율적인 부분이 전혀 없’(52)다고 선언함으로 통일성을 회복시켰다. 진정한 회복은 거기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실재하시고, 인격적인 분이시다. 만물의 창조주이시다. 그리고 만물은 하나님께 돌아간다.’(54) 쉐퍼는 무한하신 하나님과 유한한 인간 사이에 이 있다고 본다. 또한 인간과 다른 피조물들 사이에도 이 존재한다. 종교개혁가들은 은총뿐 아니라 자연도 동일하게 중요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인류는 또다시 급류를 타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간다. 쉐퍼는 초기의 근대 과학 사상 속에서 종교개혁 이전의 왜곡된 자율이 움트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 종교개혁은 근대의 어머니다. 만약 종교개혁이 없었다면 근대는 좀 더 늦추어졌을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의 세계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은 급히 왜곡되어 갔다. 초기 과학자들은 이성적인 우주를 창조하신 이성적인 하나님이 계시고 따라서 인간은 이성을 사용하며 우주의 형상을 발견해 낼 수 있다’(68)는 견해를 견지했다. 그러나 루소와 칸트는 상층부의 문제를 관심 밖의 것으로 팽개쳤다. 자연은 은총을 완전히 삼켰고, 상층부에는 자유만 남겨진다. 그 자유는 구원을 필요로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속박을 받지 않는 자유’(71)이다. 그러나 하층부의 자율이 주도권을 쥐자 하층부가 상층부를 완전히 잠식해 버린다.

 

쉐퍼는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헤겔이 등장하고, 헤겔의 철학이 절망선이라고 선언한다. 임마누엘 칸트가 상층부와 하층부의 통합에 실패하고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면, 헤겔은 정립과 반정립과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진보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왜 이것이 절망으로 떨어지는 시작일까? 하나님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 인간의 우주의 중심에 있고 자율적이라는 것’(83)이다. 그런데 기이하게 희망을 선포한 헤겔이 절망인 것이다. 쉐퍼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절망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지식과 삶에 대한 통일된 해답을 바라던 희망을 포기하는 데서 오는 절망이다. ... 이제까지 인간이 갈망하던 것이 전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절망 가운데 사는 것이다.”(87)

 

그렇다. 더 이상 희망은 없으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절망 가운데 사는 것, 그것이 헤겔이 낳은 네피림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이가 등장한다. 실존주의 아버지, 케에르케고어(1813-1855)가 그 주인공이다. 일부의 학자들은 완고하게 부정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과 필자가 판단하기에 키에르케고어는 실존주의 아버지가 확실하다. 키에르케고어는 절망을 살아가는 당대인들에게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려 있다고 말하고, 절망이란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도약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상층부는 인간의 이성과 이해가 도달할 수 없는 곳이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합리적 이성이란 사다리는 허공에서 끝이 나고 인간은 추락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 도약해야 한다. 도약의 시작은 인간이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도약은 실패한다. 도약은 그 개념 속에 상층부와 하층부 자체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존주의 관점에서 볼 때 상층부와 하층부는 통합이 불가능한 물과 기름일 뿐이다. 쉐퍼는 실존주의가 이성을 버렸다고 주장한다.

 

도약이란 실재이지 결코 도약을 표현한 용어가 아니다. 언어 표현, 즉 상징체계는 변할 수 있다. 그 체계가 종교적이든 비종교적이든 또는 같은 말을 쓰든 다른 말을 쓰든, 그런 것은 부수적이다. 현대인은 도약함으로써 합리성을 떠나고 이성을 떠나, 상층부에서 해답을 찾는 데 열중한다.”(106)

 

5장에서는 예술이 어떻게 상층부로 도약하려는 지 탐색한다. 예술 역시 철학과 다르지 않다. 예술은 도약을 미치는 것’(132)으로 상정한다. 실존주의는 모든 것을 상대화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어머니다. 쉐퍼는 6장에서 신비주의를 다루면서 궁극적으로 통합이 실패했음을 선언한다. 신비주의는 범신론이란 독을 품고 있다. 신비주의를 절대화하는 이들의 일부가 범신론에 빠지는 이유가 바로 그곳에 있다. 신비주의는 상당히 종교적이지만 전혀 종교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그곳에 인격적이고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비주의는 종교적인 양상일 뿐이다. 이에 비해 범신론은 도약을 왜곡시켜 모든 존재를 신격화하는 우상숭배다. 현대적 신비주의는 상층부에 계시는 하나님을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죽은 것과 다름없다. 쉐퍼는 이렇게 말한다.

 

신신학자는 성경에 계시되고 종교 개혁에서 말하는, 유일하고 무한하신 인격적 하나님을 상실했다. 현대적 사고방식을 따르는 자유주의 신학은 대용물로써이라는 단어만을 소유할 뿐이다.”(139)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성경을 떠난 인류는 답을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오직 성경에만 바른 통합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렇게 가르친다. “무한의 면에서 보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되어 있으나, 인격적인 면에서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152) 하나님은 여전히 창조된 세계와 사물에 관심을 갖고 계시며 적극적으로 개입하신다. 하나님은 사람을 기계처럼 다루지 않고 인격적으로 대하신다. 우리가 합리주의가 아니라 합리성을 가지고 성경을 대한다면 상층부의 하나님과 하층부의 피조세계를 통합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잘못 읽지 않았다면 프란시스 쉐퍼가 말하는 이성에서의 도피는 세상을 바르게 보려는 노력으로부터의 도피이다. 쉐퍼의 책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라면 명징함과 난해함이 뒤섞여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로부터 시작하여 현대에 이르는 상층부와 하층부의 개념으로 명쾌하게 구분한다. 과도하게 간소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분리가 아니라 구분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렇다! 성경은 초월적 존재로서 하나님을 소개한다. 하나님에 의해 피조된 세계 역시 존재한다. 인간들은 이것을 은총과 자연, 상층부와 하층부로 구분한다. 인간의 역사는 상층부와 하층부의 통합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의 자율에 무게중심을 두거나, 통합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절망에 빠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율과 자연에 함몰된 그릇된 객관, 비합리적 도약과 불가지론 등이 잘못된 시도들인 것이다.

 

쉐퍼는 인간의 자율이 아니라 성경에 근거한 이성이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하나님은 초월해 계시지만 여전히 살아계시고, 인격적으로 피조 세계에 관여하시고 개입하신다. 이러한 지식은 성경에서만 얻을 수 있다. 성경을 떠난 인간의 노력들은 언제나 실패한다. 쉐퍼는 종교개혁가들의 성경관을 통해 바른 통합 원리를 제시한다. 하나님은 창조주인 동시에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절대 타자이면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시다. 시대가 혼탁하고 어지럽다. 다시 바른 하나님과 세상에 대한 지식을 위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아직 도피할 때가 아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2,659개(1/133페이지)
온전한 복음으로의 초대 온전한 복음으로의 초대
예수 왕의 복음
매튜 W. 베이츠(Matthew W. Bates)/이학영/학영/모중현 편집위원


좋은 질문은 통찰을 이끌어 냅니다. 가끔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한 대답이 따라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우문(愚問)이 현답(賢答)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예리한 질문은 새로운 시각을 허락합니다. 질문을 바꾸면 대상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어떤 대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던집니다. 그 대상을 정의하고 개념을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질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각자의 가치와 사상에 따른 다양한 해석이 뒤따릅니다. 그러면서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조차 천차만별(千差萬別)이 됩니다.​한 단어에 ...
사도들이 들려주는 특별한 이야기 사도들이 들려주는 특별한 이야기
사도바울의 마지막, 특별한 열흘
배성혜/좋은땅/모중현 편집위원


이야기는 우리를 상상하게 합니다. 팍팍하고 고단한 현실의 짐을 잠시 내려놓습니다. 잠시이지만 이야기가 들려지는 순간에 염려와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풍성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집니다. 듬성듬성 드러났던 빈 공간이 이야기로 가득 채워집니다.더하여 좋은 이야기는 우리를 그 이야기 안으로 동참하게 만듭니다. 마치 그 시간, 그 장소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웃고 웁니다. 조용히 그들 곁에 있습니다. 그들과 눈 마주치고 함께 대화를 나눕니다. 함께 햇살을 맞고, 포옹하며, 감격을 나눕니다.성경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야기 ...
말씀을 벗하여 살아가는 삶 말씀을 벗하여 살아가는 삶
깨달음은 더디 온다
사막 교부와 교모/이덕주/사자와어린양/모중현 편집위원


속도가 중시되는 사회입니다. 빠르게 결과물을 만들어야 합니다. 먼저 선점하지 않으면, 뒤처진다 말합니다. 그리하여 과정은 무시됩니다. 사람에 대한 관심은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윤리도 우선순위에서 한참 뒤에 있습니다. 오로지 경쟁 우위를 통해 승리를 쟁취하고자 합니다.​이러한 사회는 인내가 없습니다. 성실함은 도외시됩니다. 일상은 무너집니다. 효율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에서는 참된 교육과 배움의 공간이 줄어듭니다. 고민하고 질문하고 사유하기보다는 더 빨리 답을 찾는 방법을 배웁니다. 인생에 대한 진지한 접근보다 순간적인 처세술만...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누구신가?
그리스도는 질문이다
웨인 A. 믹스/김경민/비아/모중현 편집위원


재빨리 답을 찾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명확한 방법을 통해 명징한 정답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오랜 연구를 통해 얻게 되는 것은 '답'보다는 '질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신학의 언어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 얼마든지 변화되며 통합되고, 재해석됩니다.​신앙과 신학의 언어를 이야기와 은유로 받아들인다면 우리 삶을 더욱 폭넓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고통과 고난의 순간 진심이 담기지 않은 상투적인 말 한마디는 깊은 상처를 줍니다. '하나님의 뜻'은 단정 지을 수 없고, 그것은 고통의 당사자가 오랜 ...
흥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가 아니라 말씀대로 행하는 교회가 흥하는 교회다 흥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가 아니라 말씀대로 행하는 교회가 흥하는 교회다
쇠하는 교회 흥하는 교회
서창원/개혁된실천사/조정의 편집인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예수님이 직접 하신 이 말씀이 현실과 거리가 있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실제로 세워지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무너지는 교회도 있다(무너지는 교회가 더 많은 것처럼 보인다). 흥하는 교회도 있지만 쇠하는 교회도 많다. 교인의 숫자만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니다. 사람은 넘쳐날 수도 있다. 하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 많은 사람이 “반석 위에” 세워져 있지 않다면, 언제든 음부의 권세 아래 흩어지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
기독교와 자유주의는 다른 종교다 기독교와 자유주의는 다른 종교다
기독교와 자유주의: 정통 기독교의 본질을 말하다
J. G. 메이첸/황영철/복있는사람/조정의 편집인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 있다. 역사적으로 적실한 내용을 탁월하게 담고 있는 책, 그래서 굉장히 많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의미 있고 도전을 주는 책. 메이첸의 <기독교와 자유주의>가 그런 책 중에 하나다. 웨인 그루뎀은 추천사에서 “나는 모든 신학 입문 강의에서 이 책을 필독서로 삼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금의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을 설립하게 된 배경이자 수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사역을 시작하게 만든 계기, 자유주의 신학과 논쟁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전제를 구축한 책이 바로 <기독교와 자유주의>이다...
이제는 성령론을 바르게 정립할 때다 이제는 성령론을 바르게 정립할 때다
삼위일체론적 성령신학
유태화/아바서원/조정의 편집인


삼위일체론은 교회사 초기부터 교회 안에 큰 문제를 일으켰다.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에 관한 반복된 논쟁은 결국 싸움에서 진 상대방을 이단으로 축출하기에 이르렀고, 다른 측면에서 이는 성경이 말하는 삼위일체론을 자연스럽게 정립해 가는 과정으로 작용했다. 이렇게 정립된 삼위일체론은 성경을 진지하게 믿는 모든 교회가 공통적으로 수용하는 건전한 교리가 되었다. 초기 기독교가 기독론 때문에 삼위일체론을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면, 비교적 최근에 교회가 겪고 있는 교리적-실천적 문제는 성령론 때문이다. 성령에 관한 가르침 자체가 너무 빈약한 것도...
예수님을 만나면 영원한 행복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영원한 행복이 시작됩니다
만화, 행복의 시작, 예수 그리스도
조현삼 글 크레마인드 그림/생명의말씀사/조정의 편집인


'감자탕교회’로 알려진 서울광염교회 담임목사 조현삼은 처음 교회를 개척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약 30년 동안 전도에 열정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전도지를 만들었고 그 결과물이 바로 <행복의 시작, 예수 그리스도>라는 전도 책자였다. 믿음이 없는 대상자를 염두에 두고, 읽기만 해도 복음이 선포되기를 바라는 내용으로, 성경을 기반으로 한, 예수님 중심적인 전도지를 책으로 출간하기까지 했다. 그 책이 만화로 나온 것이 바로 <만화: 행복의 시작, 예수 그리스도>이다(생명의말씀사, 2023). 기본적인 내용(글)은...
정치를 말하기 전,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 정치를 말하기 전,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
웨인 그루뎀의 성경과 정치(상)
웨인 그루뎀/조평세/도서출판언약/조정의 편집인


웨인 그루뎀은 <조직신학>, <기독교 윤리학>을 통하여 복음주의적 교리와 실천을 체계적으로 정립하고 가르쳐온 실력 있는 학자다. 현재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으며, ESV 성경 번역 감독과 ESV 스터디 바이블 총괄 편집을 하기도 했다. 2010년 그루뎀이 이 책 <Politics - According to the Bible>을 냈을 때, 정말 탁월한 저자라고 생각했다. 복잡하고 다양한 정치 현안에 관하여 그루뎀 만큼 조직적으로 풀어낼 만한 사람이 없을 것 같고, 또 <복음주...
바람이 불 때, 예수님 손을 더 굳게 붙잡으라 바람이 불 때, 예수님 손을 더 굳게 붙잡으라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을 때
해럴드 센크바일/김태형/구름이머무는동안/조정의 편집인


우주에서 가장 막강한 힘과 지혜를 가지고 있어서 하지 못하는 일이 없고 알지 못하는 것이 없는 신이 있다면, 그리고 그 신이 나를 너무 사랑해서 자기의 하나뿐인 아들을 내어주기까지 했다면, 그러면 내 삶은 형통하고 행복하기만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을 때”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분명한 간극을 줄어들게 하는 지혜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특별히 삶이 곤고하고 괴로우며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아니, 하나님은 정말 계시는가? 고통의 문제는 기독교를 가장 의심스...
하나님을 안으면 불안과 함께 잘 지낼 수 있다 하나님을 안으면 불안과 함께 잘 지낼 수 있다
당신은 불안을 안고 잘 지내는 사람
헬렌 손/신하영/좋은씨앗/조정의 편집인


제목이 독특하다. <당신은 불안을 안고 잘 지내는 사람>. 원제는 “Hope in an Anxious World”으로, 직역하면 ‘불안한 세상 가운데 소망’ 정도가 될 것이다. 무난한 책 제목을 독특한 제목으로 바꾼 이유는 이 책의 저자인 헬렌 손(한국 발음 ‘손’이 아니라 ‘Thorne, ‘톤’에 가까운 ‘쏜’)이 이 책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 가운데 우리가 불안을 안고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말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저자는 불안을 감쪽...
우동 한 그릇이 주는 감동 우동 한 그릇이 주는 감동
우동 한 그릇
구리 료헤이/최영혁/청조사/고경태 편집위원


일본 작가 구리 료헤이가 쓴 <우동 한 그릇>(1989년)이라는 책이 있다. 1989년 2월 일본 국회 예산 심의위원회에서 공명당의 오쿠보 의원이 대정부 질문에서 질문이 아닌 이 소설책을 읽어서 화제였다. 의원들은 오쿠보 의원의 행위에 대해 비난을 한 것이 아니라 함께 울었다고 한다. 예산 심의에서 <우동 한 그릇>를 낭독한 의원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운데, 함께한 의원들이 울면서 들었다는 것도 그렇게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는 40여년 전에 창조사에서 번역해서 출판하고 있다. <...
'너'의 고통에 반응하는 영성 '너'의 고통에 반응하는 영성
영성 없는 진보-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생각함
김상봉/온뜰/모중현 편집위원


누군가를 이겨야만 끝나는 전쟁과 같습니다. '역사적 사실'이나 '사건의 진실 여부'보다 자신의 정치 성향에 따라 시비가 결정됩니다. 사용하는 언어는 같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가 매우 다릅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는 시대입니다. ​지금의 우리나라를 보면 숨이 막혀 옵니다.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 어렵습니다. 기본적인 소통이 되지 않다 보니 대화의 가능성조차 없습니다. 서로는 상대방을 향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비상식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은 해괴망측한 사람을 지지하지?'​민주주...
우리에게 '희망'은 존재하는가? 우리에게 '희망'은 존재하는가?
희망의 신학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이신건/대한기독교서회/모중현 편집위원


세상이나 현실을 바라볼 때 좌절하게 됩니다. 언제 세상이 옳은 방향, 좋은 방향으로 변화될지에 대한 기대까지 사라지게 만듭니다. 여전히 세상은 잔혹하고, 전쟁은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각자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의 사소한 실수는 크게 부각시키며, 자신의 잘못에는 관대합니다.​자본의 노예가 되어버린 사회는 새로운 계급이 형성됩니다. 사회적 제도로 인한 계층 구조는 아니지만, 부자와 가난한 자의 위치는 점점 더 멀어집니다. 가진 자는 현대 사회에서 더 많은 힘을 얻고, 그 힘을 자유롭게 사용합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힘없는...
칠십인역에 대한 새로운 이해 칠십인역에 대한 새로운 이해
칠십인역 입문
윌리엄 A. 로스(William A. Ross), 그레고리 R. 래니어(Gregory R. Lanier/이민희/북오븐/모중현 편집위원


목회자들이나 신학생들에게 칠십인역이 그렇게 낯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칠십인역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천차만별입니다. 70명의 번역자가 아닌 72명의 유대 학자들이 번역했다는 정도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지적 만족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실제로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이 그리스어로 번역된 것은 시기와 장소를 특정할 수 없습니다. 칠십인역에 대한 우리의 정보는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의 설명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의 요청으로, 72명의 번역가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파견되어 프톨레마이오스 궁궐에서 72일만에 과업을...
참 존재와 대면하는 시간 참 존재와 대면하는 시간
인간이란 무엇인가
폴 투르니에(Paul Tournier)/강주헌/포이에마/모중현 편집위원


한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힘겨운 과정입니다. 저마다 자신의 참 존재가 무엇인지를 모른 채 상황에 휩쓸려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더하여 변화하는 환경에 맞추어 자신의 모습을 숨기기도 하고, 특정 부분만을 부각시키기도 합니다. 각자 저마다의 가면을 쓴 채 살아갑니다.이러한 삶은 타인과 적절하게 거리를 유지한 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괜찮은 듯합니다. 문제는 진짜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가 불분명해진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역할에 맞추어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는 능수능란하지만, 참 존재에 대한 인식은 흐릿해집니다.스위스의 ...
당신은 하나님을 안고 잘 지내는 사람 당신은 하나님을 안고 잘 지내는 사람
당신은 불안을 안고 잘 지내는 사람
헬렌 손/신하영/좋은씨앗/조정의 편집인


제목이 독특하다. <당신은 불안을 안고 잘 지내는 사람>. 원제는 “Hope in an Anxious World”으로, 직역하면 ‘불안한 세상 가운데 소망’ 정도가 될 것이다. 무난한 책 제목을 독특한 제목으로 바꾼 이유는 이 책의 저자인 헬렌 손(한국 발음 ‘손’이 아니라 ‘Thorne, ‘톤’에 가까운 ‘쏜’)이 이 책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 가운데 우리가 불안을 안고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말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저자는 불안을 감쪽...
믿음이 주는 선물, 자유 그리고 순종 믿음이 주는 선물, 자유 그리고 순종
그리스도인의 자유
마르틴 루터/조계광/개혁된실천사/조정의 편집인


칼 트루먼은 마르틴 루터가 쓴 <교회의 바벨론 유수>, <독일 귀족에게 고함>,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종합하면 “종교개혁의 완벽한 선언문이 완성된다”라고 말했다(10p). 각각의 책은 세례와 성찬이 어떻게 말씀과 연관되어 재구성되어야 하는지, 교회와 국가의 관계가 어떻게 새롭게 정립되어야 하는지, 기독교 윤리가 어떻게 바르게 개정되어야 하는지를 다룬다. 트루먼은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루터의 “신학 체계 안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라고 말했다(11p). 루터가 선행을 어떤 관점으...
열왕기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만나기 열왕기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만나기
열왕기, 그리스도 중심 성경읽기
레이몬드 딜라드/박성호/좋은씨앗/조정의 편집인


레이몬드 딜라드는 WBC 성경 주석 시리즈 중 <역대하>를 집필한 성경학자이고(솔로몬, 2005), 이번에 좋은씨앗에서 출간된 <열왕기, 그리스도 중심 성경 읽기>와 함께 단 두 권의 책이 국내 보급되었다. 출판사는 딜라드에 관하여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데 정평이 난 학자로 알려졌다”고 소개했는데, 그의 책을 추천한 사람 중에서 싱클레어 퍼거슨과 D. A. 카슨, 모세스 실바 등 건전하고 성경적인 교리를 가르치는 데 헌신하고 있는 유명한 학자들이 있어서, 다소 생소한 딜라드 역시 신뢰할...
우리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은 영원을 준비하는 절호의 기회다 우리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은 영원을 준비하는 절호의 기회다
시간 관리도 영성이다: 목적과 의미가 충만한 시간을 사는 예수의 원칙
조던 레이너/정성묵/두란노/조정의 편집인


솔직히 시간 관리에 관한 신앙 서적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케빈 드영의 <미친 듯이 바쁜>(부흥과개혁사, 2013)이다. 생산성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삶을 오히려 규모 없게, 목적을 상실한 채 살지 않도록 경고하고, 단순한 목표를 세우고 충성스럽게 살라고(왜 바쁜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항상 기억하라고) 권면하는 좋은 책이었다. 2019년에는 팀 챌리스가 쓴 <Do More Better: A Practical Guide to Productivity>를 번역해서 청년들과 함께 읽고 실천해 ...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