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로그인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서 로그인하시면 별도의 로그인 절차없이 회원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서평

사람들의 죄로 인해 아파하시는 하나님

정현욱 | 2019.04.10 11:46
사람들의 죄로 인해 아파하시는 하나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김지찬/생명의말씀사/정현욱 편집인

사람들의 죄로 인해 아파하시는 하나님


들어가면서 

 

2성전 문헌 중의 하나인 에녹서를 보면 거인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타락한 천사들이 사람의 딸들과 관계하여 거인들이 탄생한다는 이야기다. 창세기 6장을 근거하여 묵시적 상상력을 동원해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천사들은 헤르몬 산에서 회집하여 동맹을 결성하고 지상 세계에 내려온다. 그들은 인간의 딸들과 결혼하여 거인을 낳고, 인간들에게 의료지식과 저주를 가르친다. 그 외에도 많은 지식을 전수해 주어 인간 문명이 발달하는 토대를 제공한다. 여인들이 낳은 거인들은 땅의 모든 열매를 먹어치우므로 더 이상 그들을 키울 수 없게 되고, 거인들은 사람들을 잡아먹고 포악한 행동을 하기에 이른다. 결국 세상은 다시 심판 아래 놓이게 된다. 경건한 신자라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신화적 이야기인데도 노아의 홍수와 관련된 고대의 이야기는 유대문헌 속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 영화로도 몇 번에 걸쳐 제작된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현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번에 출간된 김지찬 교수의 이 책은 이전의 노아 홍수에 관련된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르다. 저자는 화란 유학 때부터 가졌던 언약 신학(Covenant Theology)’과 현대 신학계가 관심을 갖고 살피는 시초론(protology; 1-11)’ 때문이라고 밝힌다. 시초론은 고대의 사건을 살펴봄으로 궁극적으로 종말에 대한 이해를 얻으려는 것이다. 종말은 다시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의 지표를 잡아주기 때문에 중요한 신학적 주제가 된다. 더 나아가 노아의 홍수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과 노아에 대한 바른 이해를 추구하고자 저술한다고 밝힌다. 신약의 저술가들은 예수님의 입을 통해 노아의 때가 이미 도래했으며, 종말론적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미 심판의 선고된 종말의 시기에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축복과 저주의 갈림길 사이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노아의 내러티브를 읽어 가면서 생길 수 있는 질문을 22개로 만들었고, 그에 대한 답변을 하는 방식으로 서술해 나간다. 필자는 모든 질문과 답을 정리하지 않고 몇 가지 중요한 이슈를 정리하고 평가하려고 한다.

 

하나님은 후회할 수 있는가?

 

아마 노아 홍수 사건을 시작하면서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은 하나님이 후회하시는 장면이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에 대한 이야기는 신화적 이야기라면 넘어갈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후회하신다는 이야기는 심각한 신학적 난제가 아닐 수 없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만드시고 죄를 범하니 후회하신다는 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저자는 두 번째 질문으로 이 문제와 직면한다. 먼저 하나님이 진노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하나님의 진노를 표현하는 아프헤마라는 동사가 노아 내러티브 안에서 나오지 않으며, 진노하셨다는 개념도 없다. 그럼, 하나님은 죄지은 인간들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품지 않으셨을까? 저자는 진노가 아니라 후회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악을 보시고 한탄(나함)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신다. 한탄을 한글개역은 후회하셨다고 바꾸어 번역했다.

 

존 월튼이 고민한 것처럼 하나님의 한탄(후회)는 심판을 가져온다는 측면에서 난제이다. 이것은 단순히 신인동형론적표현일 뿐일까? 저자는 이것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한탄을 뜻하는 나함을 살피면서, 그 단어가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셨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런데, 그것 역시 난제다. 하나님의 뜻이 바뀐다는 것은 섭리와 작정 등의 모든 신의 속성 자체에 심각한 오류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무엘상 1529절에서 하나님은 변개(나함)치 않는다고 선언하고 있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기자는 왜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셨다고 말하는가?

 

하나님의 작정은 변하지 않으나, 섭리는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죄를 지을 때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은 뜻을 돌이켜(나함) 그들을 용서하신다. 저자는 그 근거로 요엘서 213-14절과 요나서 39-10절을 제시한다.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나함)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나함)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3:9-10).

 

하나님은 요나에게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멸망당할 것이라고 선포하라고 하신다. 그런데 느니웨 백성들은 혹시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내릴 심판을 바꾸실(나함)지 모른다며 회개한다. 하나님은 그들의 회개를 보시고 뜻을 돌이키신다(나함). 4장으로 넘어가면 이러한 하나님을 향하여 분노하며 실망한다. 뜻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다시스로 도망가려 했다고 토로한다. 하나님의 작정은 변하지 않으나, 섭리에서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탄이나 후회보다는 중립적으로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셨다’(82)라고 번역하는 것을 추천한다.

 

저자는 여기는 끝내지 않고 좀 더 깊이 하나님의 돌이킴을 탐색한다. 비록 하나님께서 중립적으로 뜻을 바꾸셨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한탄이나 후회를 제거할 필요는 없다고 단언한다. 나함이란 단어가 정서적인 고통이나 약함을 경험한다란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한다(83).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보시고, 진노하시기 전에 아파하시고, 근심하신다.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죄악과 인간의 사악한 생각에 대해 마음에 고통을 느끼고 근심하는 분’(85)이시다.

 

하나님이 아픔은 골고다의 길에서 절정을 이룬다. 저자는 노아홍수에서 갈보리 산상에서 절정에 달했던 하나님의 고난의 시작’(86)을 본다는 헬무트 틸리케의 묵상을 끌고 온다. 그렇다. 하나님의 고통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치환된다. 기타모리 가조는 하나님의 아픔에 대해 이렇게 역설한다.

 

하나님의 아픔 속에 들어갈 때, 우리 자신은 자기 죄의 참모습에 대해 각성하고, 자기를 미워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 자신은 이러한 우리를 진실하게 한결같이 사랑하고 계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아픔의 영역도 꿰뚫고 하나님의 아픔도 잊어버릴 정도의 한결같은 사랑이다”(기타모리 가조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 새물결플러스, P.150).

 

뜻을 돌이키신 하나님은 오류가 아니라 사랑이며, 변덕이 아니라 긍휼이다. 노아 홍수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하나님은 언제나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신 하나님’(79)이시다. 어쩌면 하나님의 한탄은 인간을 사랑하시지만 그들의 죄로 인해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초대장일 수 있다.

 

노아 홍수의 정경학적 의의

 

한 가지의 주제를 더 살펴보자. 저자는 8장에서 노아 홍수가 지역적인가 전 지구적인가를 다룬다. 그러나 제목과 다르게 이곳에서는 노아의 홍수가 갖는 신학적 의미를 다룬다. 창조과학에 한 발자국이라도 디뎌본 사람이라면, 아니 창조과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이들을 가까이 둔 사람이라면 노아의 홍수 사건이 얼마나 큰 논쟁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는지 알 것이다. 젊은 지구론을 비롯해, 화석, 지층의 연대 등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들을 들먹이며 노아의 홍수 사건이 역사적 사건인 것과 전지구적이었다고 주장한다. 캐럴 힐 등이 공저한 <그랜드캐니언, 오래된 지구의 기념비>(새물결플러스)에서는 많은 사진과 함께 지질학적 관점에서 노아의 홍수를 추론한다. 그런데 그렇게 성경을 읽는 것이 옳을까? 성경은 과학이 아니라고 하면서 유독 과학적 관점으로 노아의 홍수를 바라보는 것일까? 저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벗어나 성경이 말하고자하는 맥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아의 홍수 사건에 대해 저자는 우주적인 혼돈의 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창조 질서의 해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우주적 홍수를 선포하는 담교적 담론’(253)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과학이니 비과학이 하는 성경 외의 관점에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은 성경의 언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노아의 홍수는 일반적인 비가 아니라 특별한 비(게솀)가 내린다. 비만 내린 것이 아니라 깊음(테홈)의 샘이 터지고, 하늘의 창문이 열렸다. 깊음(테홈)이란 단어는 창세기 1:2에 기록된 깊음과 동일한 단어다. 이 단어는 창조 시에 땅을 덮고 있었던 원시의 바다 혹은 태고의 혼돈의 물’(255)을 가리킨다는 것이 학자들의 정설이다. 궁창을 만드시고 위의 물과 아래의 물로 나뉜 창조가 다시 하나로 합해지는 사건이 바로 노아의 홍수인 것이다.

 

인간의 죄악들은 하나님의 창조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려 놓은 것이다. 창조가 무질서 질서로, 공허에서 충만으로 나아갔다면, 노아의 홍수는 정확하게 그 반대로 역행한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정확하게 창조의 순서로 창조를 해체하시는 하나님의 무서운 손길’(263)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로 인해 아파하실 뿐 아니라 피조된 세계를 기꺼이 해체할 수 있다고 선언하고 계신다. 역으로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하나님은 오직 인간을 위해 세상을 창조하셨고, 창조의 영광으로 여기고 계심이 분명하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든지 임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운다.

 

노아의 홍수가 전환점을 맞이하는 부분은 81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기억이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기억하심으로 불어났던 물은 줄어들기 시작하고 마침내 방주는 땅에 바닥을 내린다. 구원은 하나님의 기억을 통해 시작된다. 출애굽기에서도 하나님은 족장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2:15)하심으로 구원을 시작하신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시자 태초에 불었던 바람(루하흐)이 다시 불기 시작한다(8:1). 지나간 세상을 심판하셨지만 방주에 있는 노아의 가족과 동물들을 기억하심으로 혼돈으로 돌아간 세상을 다시 새롭게 재창조’(289)하신 것이다.

 

나가면서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가 출판되기 이십 년도 더 오래 전에 김지찬의 <언어의 직공이 되라>가 출판되었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감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수년 후에 필자는 그 주인공 밑에서 구약을 공부했고, 성경을 읽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씩 배워나갔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구약신학을 전공했을 것이다. 히브리어가 갖는 독특성과 신비로움 때문이다. 헬라어가 과학적이고 치밀하다면, 히브리어는 서정적이며 묵시적이다. 이 책은 다시 한 번 언어의 직공이 무엇인지? 왜 언어의 직공이 되어야 하는지 보여준다. 신화적 상상으로만 치부했던 노아 홍수는 우리가 알고 있던 기존의 지식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긍휼과 아파하심을 읽게 도와준다. 삶의 맥락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이 현재를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정확하게 짚어 준다. 몇 달 전에 출간된 <룻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감격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 그보다 더 깊고 웅장한 노아 홍수의 이야기로 초대되어 기쁘다. 노아 홍수의 이야기를 깊게, 그리고 즐겁게 읽고 싶다면 이 책을 강력 추천한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1,879개(1/94페이지)
계몽된(거듭난) 인간을 향하여 계몽된(거듭난) 인간을 향하여
인간이 된다는 것
로완 윌리엄스/이철민/복있는사람/강도헌 편집위원


계몽된(거듭난) 인간을 향하여   어떤 신학자는 ‘신학’을 ‘인간학’이라고 표현하였을 만큼 사실 인간(실존)을 배제한 신학이나 종교학은 스콜라주의로서 사변으로 치우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많은 신학자들이 그러하듯이 나도 인간의 이해가 신에 대한 이해만큼 신학과 신앙(종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즉, 경전에 대한 연구 만큼 우리는 인간(피조 세계)에 대한 연구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바르트가 말한 신문만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창조주와 피조물의 상호 소통의 방식과 그 내용들을 연구하는 ...
성경의 배경을 알 수 있게 하는 지침서 성경의 배경을 알 수 있게 하는 지침서
중근동의 눈으로 읽는 성경
김동문 글 신현옥 그림/선율/서상진 편집위원


성경의 배경을 알 수 있게 하는 지침서 성경에는 낯선 지명이 등장을 한다. 성경에는 수많은 사람의 이름이 등장을 한다. 어쩔 때는 지명이 사람이름 같기도 하고, 사람이름이 지명 같기도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이름과 우리나라의 지명과는 다른, 우리가 익숙하게 들어왔던 이름과 지명이 아닌 낯선 이름으로 인해서 성경이 어렵다고 느껴질 때가 많이 있다. 그뿐이겠는가?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로 인해서 벌어지는 사건은 또 어떤가? 도무지 그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연관성을 어쩔 때는 찾을 수가 없다. 어떤 배경에서 그런...
교회는 사랑으로 지어져간다 교회는 사랑으로 지어져간다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
김남준/익투스/방영민 편집위원


교회는 사랑으로 지어져간다   일치  교회는 무엇으로 하나됨을 이루어야 하는가? 세상은 학연과 지연과 혈연 등으로 하나됨을 자랑하고 끈끈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교회는 혈연공동체도 아니고 서로 공통의 관심사로 모이는 곳도 아니다. 교회라는 특별한 곳은 너와 내가 뜻을 합하여 세우자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며 서로의 수준 높은 삶을 위해 생겨나는 곳도 아니다. 교회는 반드시 무엇인가 일치되어야 교회됨을 보여줄 수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세상적인 관점으로 이해하고 심지어 교회에 속해 있는 사람들조차 바...
반복적 예배에 참여하라 반복적 예배에 참여하라
습관이 영성이다
제임스 K. A. 스미스/박세혁/비아토르/강도헌 편집위원


점점 사람들은 공 예배에 대한 회의적 관점들이 늘어가고 있다. 점점 “가나안 성도(이 단어는 ‘안나가’를 거꾸로 뒤집은 단어이다)”가 늘어나고 개인적 방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간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본다. 첫째는 교회(목회자와 성도, 시스템을 총칭하여)의 부패에 대해 실망감을 느끼고 개인적 신앙생활을 선택한 경우이다. 그리고 놓치지 말아야 할 두 번째 이유로는 ‘편의주의’이다. 그냥 교회 나가는 것이 싫고, 귀찮고, 이것저것 부담되고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않기 때문에 교회에 나가야 할 필...
아들을 경배하라! 아들을 경배하라!
아들을 경배함-초창기 기독교 예배 의식 속의 예수
래리 허타도/송동민/이레서원/정현욱 편집인


예수는 언제부터 경배 받았을까? ‘하나님=로고스=성육신=예수’라는 요한문헌 공식에 익숙한 보수한국기독교인들에게 앞선 질문은 낯설고 어색하다. 그러나 세계 신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핫 이슈 중의 하나는 아이러니하게 ‘예수는 누구인가?’이다. 해외의 저작물은 차치(且置)하더라도 번역되거나 한국 신학 논문의 주제들의 상당한 분량이 ‘초기 기독교’와 ‘초기 기독론’에 몰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새 관점주의자로 불리는 제임스 던(James D.G. Dunn)의 『예수와 기독교의 기원 상·하』를 비롯하여, 리처드 ...
예배로 하나님께 물들다 예배로 하나님께 물들다
습관이 영성이다
제임스 K. A. 스미스/박세혁/비아토르/서중한 편집위원


 오래 전 유명한 교회의 목회자 세미나에 참여했다가 적잖이 실망한 적이 있다. 평신도훈련에 관한 세미나였는데 대부분의 시간이 소그룹을 효과적으로 인도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고, 경건훈련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나 실천은 찾기 어려웠다. 그저 소그룹을 잘 이끌어서 교회를 부흥시키는 것에 초점하고 있었다. 참여한 목회자들은 대형교회의 건물과 명성에 압도당하면서 부푼 꿈을 안고 각자 사역지로 돌아가는 듯했다. 그 때부터 평신도 훈련에 대한 갈증과 공허함이 있었는데 책을 읽는 동안 잊었던 그때의 기억들이 되살아났고 책은 나의 오랜 ...
과거 종말론은 무엇을, 왜 믿고 있는가? 과거 종말론은 무엇을, 왜 믿고 있는가?
예수의 종말론
R. C. 스프라울/김정식/좋은씨앗/조정의 편집위원


필자는 종말론의 관점으로 나눠 보자면 점진적 세대주의 종말론을 지지하고 있습니다(참고로 존 맥아더, 대럴 벅 등도 점진적 세대주의 종말론을 지지합니다). 한국 교계에서는 세대주의 종말론을 이단이라고 말하는 극단적인 분들도 있지만, 사실 종말론에 관한 다양한 관점 중 자기 관점과 차이가 크게 나는 것을 이단으로 몰아세우기 원한다면 “급진적 과거 종말론” 역시 AD 70년에 ‘주의 날’을 포함하여 모든 것이 역사적으로 성취되었다고 주장하는 견해이니만큼, 반대쪽에서 보면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이단처럼 보이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nb...
십자가는 켜켜이 쌓인 하루의 결과이다 십자가는 켜켜이 쌓인 하루의 결과이다
중근동의 눈으로 읽는 성경-신약
김동문, 신현/선율/정현욱 편집인


그 이름도 유명한 방탄소년단을 아는가? 방탄은 말 그대로 총알을 막는다는 그 방탄(防彈)이다. 방탄소년단에 대해 할 말은 정말 많지만 이것 하나만 언급하자. 그 어떤 슈퍼스타도 해내기 힘들다는 수만 명이 입장하는 스타디움 해외 콘서트를 모두 매진시킨 7인조 보이밴드다. 어떤 음악평론가는 한국 대중 음악사를 조용필-서태지, 그리고 방탄으로 구분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방탄소년단은 K-POP의 한 그룹이었다. 이제는 그들은 단지 방탄소년단(BTS)일 뿐이다...
윌리엄 커닝함의 “역사신학”을 보아야 한다 윌리엄 커닝함의 “역사신학”을 보아야 한다
역사신학 2
윌리엄 커닝함/서창원/진리의깃발/고경태 편집위원


윌리엄 커닝함(William Cunningham, 1805-1861)은 스코틀랜드 자유교회의 대표적인 신학자이다. 커닝함은 1843년 교회의 순수성,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심을 지키기 위해서 토마스 찰머스(Thomas Chalmers, 1780-1847)와 함께 자유교회를 설립해야 했고 그 뒤를 이었다. 윌리엄 커닝함이 신학교에서 강의했던 자료를 묶어서 역사신학(Vol1, Vol2)으로 1882년에 출판했다. 사도시대부터 커닝함 당대 교회(19세기 교회)까지 교회역사, 사상사를 정리한 것이다. 홍치모 박사는 윌리엄 커닝함을 ‘스코틀랜드...
성경해설의 새로운 표준 성경해설의 새로운 표준
Refo 500 성경해설 시가서
박우택/세움북스/이동준 편집위원


‘Refo 500 성경해설 시가서’를 서평하기로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늦었다. 바쁘다는 핑계도 있었지만 시와 지혜문학을 어떻게 풀어내는지 궁금해서 조금 꼼꼼히 읽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출간된 성경해설 모세오경과 역사서와 다를 바 없이 각 성경의 개관과 주석서를 함께 잘 녹인 장점이 드러난다.  지혜서 가운데 가장 지루하고 철학적인 욥기를 먼저 어떻게 풀어갈지 기대되었다. 평이하고 무난했다. 그래서 심심했다. 욥과 세 친구들의 대화를 설명하는 것에는 충실하였지만 이 대화들이 가지는 신학적인 함의를 좀 더 이끌어 내지 못한...
지나고 보니 정말 고난은 선물이다 지나고 보니 정말 고난은 선물이다
하나님의 광야학교
고영완/예수전도단/송광택 편집고문


지나고 보니 정말 고난은 선물이다 <하나님의 광야학교>는 특별한 책이다. 저자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뒤늦게 전도사 시절에 하나님을 만났다. 그 후 자신의 삶을 드리기로 헌신하고 열심히 사역했지만,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재혼하여 얻은 아들도 사고로 잃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그 모든 고난이 광야에서 훈련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임을 인정하고, 이제는 광야에서 만난 하나님을 전하는 귀한 삶을 살고 있다.저자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나는 너무나도 부족한 사람이다. 내세...
담백한 이야기가 건네는 아름다운 일상으로의 초대 담백한 이야기가 건네는 아름다운 일상으로의 초대
주목할 만한 일상
프레드릭 비크너/오현미/비아토르/나상엽 편집위원


담백한 이야기가 건네는 아름다운 일상으로의 초대 처음 그를 만났을 때의 인상이 아직 짙다. 슬프면서도 가벼운 웃음이 입가에 번지고, 연민을 느끼다가도 문학적 감수성에 탄복하게 하는 글이었다. 과하지 않은 문장으로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고 무심하게 흘러가는 인생 가운데 찾아오신 하나님 이야기를 고백적으로 들려주던 그의 이야기에 마음이 벅찼던 가을이었던 것 같다(『하나님을 향한 여정』<요단, 이문원 역, 2003>). 그 뒤로 그의 독창적이고도 발랄한 책 『통쾌한 희망사전』(복 있는 사람, 이문원 역, 2005)이 ...
하나님의 아름다운 선물, 고난 하나님의 아름다운 선물, 고난
고난
폴 트립/조계광/생명의말씀사/정현욱 편집인


하나님의 아름다운 선물, 고난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신장 기능이 65% 이상 망가진 이후, 저자는 이전에 체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삶을 살아야만했다. 여섯 번의 수술을 해야 했고, 이전과 전혀 다른 역경에 봉착해야 했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라고.  누군가는 이것이 믿음 없는 이야기라 말할지 모르나 삶이란 그런 것이다. 모세도 삶을 회상하며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그때 그 시절속으로 그때 그 시절속으로
중근동의 눈으로 읽는 성경
김동문 글, 신현욱 그림/선율/방영민 편집위원


그 때 그 시절속으로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향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고 외칠 때 그 의미를 아는가? 예수님께서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고 놀라운 믿음에 대한 말씀이 무엇인줄 아는가? 누구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적혀져 있으니 갓 태어나거나 애교가 넘치는 새끼양으로 생각할 것이다. 어떤 이는 믿음이 좋으면 문자적으로 실제의 산이 들리어 바다에 빠지게 된다는 것으로 이해할 것이다.  복음서를 넘어 서신서를 보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라’고 말하...
과학주의는 과학과 기독교 모두를 파괴한다 과학주의는 과학과 기독교 모두를 파괴한다
과학, 과학주의 그리고 기독교
J. P. 모어랜드/황을호/생명의말씀사/조정의 편집위원


“세계적인 과학자 아무개가 말하기를…”, “유명한 대학교 과학 연구팀의 발표에 따르면…” 언제부터인가 이런 방식의 표현이 많아졌습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과학”이 말하는 것을 신뢰하고 대부분 그 권위를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반면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로 시작하는 정보는 사실과 관계없는 철학(신학)의 영역으로 진지한 크리스천이어야만 의심 없이 사실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프랜시스 쉐퍼가 정확히 분석한 대로 현대 사상이 상층부를 억지로 하층부와 분리하면서, 과학이 자리 잡고 있는 하층부는 실증적, 객관적 사실로 ...
이제는 목사를 분별하고 선택하는 그리스도인이 필요하다 이제는 목사를 분별하고 선택하는 그리스도인이 필요하다
목사를 고르는 법
윤한석/홍성사/고경태 편집위원


이제는 목사를 분별하고 선택하는 그리스도인이 필요하다 “목사를 고르는 법”은 상당히 충격적인 제목이다. 손재익 목사는 <설교 어떻게 들을 것인가?>(좋은씨앗)를 집필하기도 했다. 두 주제는 현 교회 상황에 대해서 냉철한 자세를 독자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목사를 고르는 법>의 저자 윤한석은 목사이다. 책의 처음 문장이 “저는 목사입니다”이다. 목사가 목사를 고르는 법을 집필했다. 통렬한 자기반성의 고백이고,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포스트모던 사회를 넘어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교...
던(Dunn)의 예수예배? VS 허타도(Hurtado)의 아들경배 던(Dunn)의 예수예배? VS 허타도(Hurtado)의 아들경배
아들을 경배함
래리 허타도/송동민/이레서원/고경태 편집위원


제임스 던/첫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예배했는가?/좋은씨앗(2016)아들을 경배함/래리 허타도/이레서원(2019)1세기 예수와 기독교 연구는 인류의 주요 테마 중 테마이다. 당연히 기독교 학문에서는 매우 중요한 위치이다. 18세기 역사적 예수 탐구를 시작케 한 라이마루스(H.S. Reimarus)부터 지금까지 논의가 진행 중이다. 필자는 라이마루스의 열매를 인정하지 않는 학도이지만, 동일 기독교 진영의 학문이기 때문에 탐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1-2세기 산물을 연구하기 때문에 중요한 역사 자료를 포함하고 있다. 합리적으로 신학하...
어린아이의 신앙에서 벗어나 어른스러움의 신앙으로 어린아이의 신앙에서 벗어나 어른스러움의 신앙으로
무엇이 성숙인가
조정민/두란노/서상진 편집위원


시간이 지나면 무엇이든 좋아지는 것이 맞을까요? 음식물은 냉장고에 아무리 넣어둔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게 되면 썩게 됩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마음과 정성과 사랑을 가지고 한 사람을 대한다고 한다면, 관계는 아름다워지고, 평안해져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믿음의 경우라면 어떨까요? 원칙대로 한다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는 더욱 성숙해져 가야만 할 것이고, 그 성숙함을 통해서 어른스러운 믿음과 성품으로 변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것도...
영혼을 살리는 경건한 기도묵상 영혼을 살리는 경건한 기도묵상
영성가의 기도
이블린 언더힐/박천규/비아/정현욱 편집인


영혼을 살리는 경건한 기도묵상일반 개신교인들에게 저자인 이블린 언더힐이란 이름은 낯선 이름일 것입니다. 저도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어디선가 멀리서 들리는 환청처럼 낯설고 모호한 이름이었습니다. 아마 성공회라는 교단에 속한 이유이기도 하거니와 가톨릭적 영성에 근접해 있는 언더힐의 독특한 성향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중세 가톨릭이 상징과 보이는 종교였다고 주장한 루터에 의해 시작된 종교개혁과 이후의 개신교는 말씀과 들리는 종교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분가한 것이 아니라 전쟁을 치르며 쟁취한 독립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가톨릭과 정교회에 ...
하나님 없이는 인간이 된다는 것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하나님 없이는 인간이 된다는 것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이 된다는 것
로완 윌리엄스/이철민/복있는사람/조정의 편집위원


하나님 없이는 인간이 된다는 것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로완 윌리엄스는 세계 성공회의 지도자인 전 캔터베리 주교이고,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대표적 신학자 중 한 사람입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크라이스트 컬리지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옥스포드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성공회 신학교를 거쳐 옥스포드, 케임브리지 등에서 35세의 어린 나이 때부터 교수로 가르치기도 했습니다.국내에는 <복 있는 사람>에서 출간한 신앙의 기초 3부작: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2015), “제자가 된다는 것”(2017) 그리고 이 책, “인간...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