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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요나보다 더 큰 이, 그 탕부(蕩父)에게로

나상엽 | 2019.04.03 08:56
요나보다 더 큰 이, 그 탕부(蕩父)에게로 팀 켈러의 방탕한 선지자/팀 켈러/홍종락/두란노/나상엽 편집위원

요나보다 더 큰 이, 그 탕부(蕩父)에게로


본서를 두 번 읽었다. 한 번은 순수한 독자로서 책을 통해 배우고자 읽고, 또 한 번은 서평을 위해서 군데군데 찾아가며 꼼꼼히 읽었다. 그러고 나서야 프롤로그의 소제목에 고개가 주억거려진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요나!’

 

정말 그랬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나 역시 충분히 알지 못했다. 큰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보낸 요나의 이야기는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나 삼손 이야기 등과 함께 호기심 가득한 어린 시절의 동심을 만족시키는 주일학교의 단골 메뉴였기 때문에 우리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고래든지 상어든지 간에 그 커다란 물고기가 요나서의 다층적이면서도 심오한 메시지마저 다 삼켜버려서 그런지, 그저 그것뿐이다. 그러나 비평학자들의 회의의 배 밑바닥에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요나를, 천진한 교인들의 호기심이라는 큰 물고기 뱃속에 갇혀만 있던 요나를, 우리 시대의 탁월한 설교가 팀 켈러가 성경의 메시지 그대로 되살려냈다. 그가 프롤로그에서 밝힌바, 30년 동안 전혀 다른 상황 가운데 전혀 다른 청중들에게 세 차례 요나서 전체를 강해했던 경험이 바탕이 되었겠으나, 그는 여전히 철저하고도 꼼꼼한 본문 연구와 복음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신선하고 신령한 통찰, 그리고 오늘날 우리 시대의 적실한 문제와 연관 짓는 노련함으로 우리 앞에 묵직하고도 강력한 메시지를 내놓은 것이다.

 

먼저, 요나서를 단순한 우화가 아닌 절묘하고 정교하게 구성된 문학 작품임을 소개해주는 그의 문학적 안목이 눈에 띈다. 1장과 2장이 하나의 이야기 세트를 이루고, 다시 3장과 4장이 또 다른 세트가 되어 거의 완전한 평행구조로 서로 절묘하게 대칭을 이루고 있음을 서두에서부터 명시해줌으로 요나서를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을 갖춰준다(10~11). 또한 요나서의 주요한 특징으로 열린 결말을 지적하면서, 결국 요나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우리 자신이 이 하나님의 마지막 질문에 대해 각자의 대답을 내놓아야함을 요구한다(173-175). 게다가 비록 간략하지만 실감나게 당시 앗수르와 이스라엘의 적대적 관계 및 앗수르의 잔인무도함을 알려줌으로 요나가 느꼈을 그 당혹감과 거부감에 공감하며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또한 본문을 꼼꼼히 읽어내는 작업을 통해 요나서의 역설적 진리들을 드러내준다. 이를테면 잠든 요나를 선장이 깨울 때 하나님께서 요나를 부르실 때 사용한 것과 동일한 단어들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통해, 그 자신이 하나님을 전해야 할 하나님의 선지자가 도리어 이교도로부터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게 된 상황이 되었다는 것은 가히 충격적이다(55). ‘요나의 반()선교활동은 아이러니하게도 도리어 비이스라엘인들의 회심을 가져왔다는 문장은 요나의 역설적인 특징을 잘 보여준다(92).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하게 된 요나의 상황에 대한 성경 묘사의 점층적인 면을 놓치지 않은 점도 주목할 만하다. 욥바로, 배 밑바닥으로, 물고기 뱃속으로, 깊음 속 바다 가운데, 산의 뿌리, 그리고 바다의 심연 속 더욱 아래 스올의 뱃속으로까지 끝없이 가라앉고 있는 요나를 잘 보여준다(95-6). 그럼으로써 물에서든 믿음에서든 마침내 오르기 시작하려면 먼저 그의 한계에 이르러야 함을, 올라가는 방법은 다름 아닌 내려가는 것임을, 하나님의 은혜의 가장 큰 신비를 배우는 곳이 밑바닥이라는 역설적 진리는 더욱 선명해진다(99).

 

그렇다면 이와 같이 문학적이고 역사적이며 성경적인 성실한 작업을 통해 그가 되살려낸, 우리가 미처 몰랐던 요나의 이야기는 과연 무엇인가? 요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듣게 되는 진짜 이야기는 무엇인가?

 

첫째, 가장 근원적이고도 우상숭배적인 불신의 문제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니느웨로 가라는 분명한 하나님 말씀에도 불구하고 요나가 정반대 방향으로 가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명령이 자신의 신학적 기준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임무도, 또 그 임무를 맡기신 분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26). 하나님의 명령에 내가 납득할 만한 타당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면 거기에 순종할 수 없다고 결론내리는 것은, 결국 하나님보다 자기를 신뢰하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불신의 양상이 적극적인 악의 선택이 아니라 오히려 대단히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사람이 되는 것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주장은(29~31), 자신의 공로를 통해 하나님을 통제하려는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참으로 주요한 메시지다. 결국 하나님을 거부하고 달아나는 이유는, 단순히 신학적인 문제 그 이상으로 우리 마음의 문제임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 다른 것에서 우리 존재 가치를 세우려는 우리의 얄팍한 정체성,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하는 배제와 타자화, 비인간화의 경향이 우리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3~4). 이는 오늘날 다양한 형태로 변종되어 나타나는데, 요나가 그랬듯이 민족주의 내지는 종교적 우월주의의 형태로, 아니면 다른 어떤 이들에게는 학벌주의나 인종주의, 이념과 정당 대결 등의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다. 특히나 요나와 요나보다 더 선량한 이교도들에게서 발견되는 대조적인 모습을 통해 건네는 메시지는 대단히 중요하다. 오늘날 복음에 대한 편협하고 그릇된 이해로 인해 비신자와 불신 세상에 대해 무감각하고 무례하며, 아예 현실을 도외시하여 도시와 공공선, 사회 개혁 등에 전혀 무관심한 기독교인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또한 회개를 사회적인 측면으로 접근하여, 비록 니느웨가 최종적인 용서나 구원은 받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들이 제국주의나 잔혹함, 사회적 불의에서 돌이킨 것이 하나님 말씀의 능력이었다는 사실을 밝힌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는 사회 개혁이나 변화가, 능력있는 하나님 말씀의 결과라는 것을 밝혀주는 것이며, 나아가 두려움 없이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일과 사회적 개혁과 정의 구현을 위해 헌신하는 일이 신학적으로 분리될 수 없음을 증명한다(125). 팀 켈러는 본서의 여러 챕터에서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 이와 관련된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만약 우리가 이 엄중한 메시지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우리의 참된 정체성을 그분이 우리를 아는 그 참된 지식 위에 두지 않는다면, 요나처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선지자로 전락해, 편협하고 옹졸하여 초라한 모습으로 도리어 그분을 불명예스럽게 할 것이다.

 

셋째, 이 책의 백미(白眉)로서, “요나보다 더 큰 이가 계시다”(12:41)는 최종적이고도 궁극적인 이야기다. 요나가 타인을 배제함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려 했다면, 예수님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온전한 타자임에도 우리와 같이 되셨다(233). 또한 선원들을 위해 자신을 큰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로 던지라는 요나의 이야기는 결국 진정한 원형적 사랑은 대속적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그런 점에서 우리 예수님의 자기 희생적인 사랑은 요나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크고 완전하다(83, 86~92). 요나는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는다 할 수 있으나,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으로 죄인들을 위해 하나님의 정죄를 온전히 받으셨으며,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셨다. 요나는 뱃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바다 깊이 내려갔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죽음 곧 하나님과의 분리라는 심연 속으로 들어가셨다. 요나는 도시 때문에 울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예루살렘 도성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셨다. 요나는 성의 멸망을 보러 성 밖으로 나갔지만 우리 주님은 그 도시를 구원하시고자 영문 밖으로 나가셨다. 특히 여전히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은혜에 무지해 잔뜩 뿔이 난 요나를 이해시키는 마지막 장면에서, 폭력적인 이교도들을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이들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모습은 요나의 그릇된 태도와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것이다. ‘긍휼이라는 단어가 뜻하는 바, 그들의 죄에 모종의 방식으로 연결되어 하나님이 마음 아파하시고 고통 받으신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모두의 죄 때문에, 무죄한 예수님이 죄가 되셔서 십자가에서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받으셨다. 요나에게는 도저히 풀리지 않는 모순이요 그의 불순종의 이유였던 하나님의 자비와 하나님의 심판 사이의 부조화는,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던 성자 하나님을 통해서야 비로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인한 것임이 분명히 드러나게 된 것이다.

 

결국 요나 이야기는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과 은혜에 무지한 한 사람, 그리하여 옳고도 아름다운 그분의 말씀을 버리고 하나님을 피해 달아나는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탕자이기도 하고, 탕자의 형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나이기도 하고 당신이기도 하다. 그리고 요나 이야기는 그러한 최악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침내 선하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게 하시는, 자신의 선함과 자비로움을 온전히 나타내신 자비로운 하나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현대 사회가 직면하는 심각한 문제들에 도전하며, 인간 존재의 기만적인 특징을 예리하게 포착해 여지없이 폭로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에 충실하며 그 변화시키는 능력을 확신하는 팀 켈러가 들려주는 방탕한 선지자(The Prodigal Prophet) 이야기를 통해, 요나보다 더 큰 이, 그 탕부(蕩父, The Prodigal God)*에게로 돌아가 그분의 은혜를 이해하고 그로 인해 변화를 이루는 여정을 또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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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 팀 켈러의 탕부 하나님(두란노)과 본서를 같이 읽으면 더욱 유익하고 풍성한 독서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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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은 우리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누구를 만나는지와 그 만남의 깊이와 친밀함의 정도에 따라 변화의 폭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더 이상 나의 방법으로 헤어 나올 수 없을 때, 누군가의 만남이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음을 기억합니다.'복음'은 교리의 모음이 아닙니다. 해야 할 것들의 목록도 아니지요. '복된 소식'은 '만남'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우리에게 가장 큰 '좋은 소식'입니다. 하나님이 인간 되셔서 친히 우리에게 만나자고 말씀하시며, 손을 내밀어 주시고, 함께해 주시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그 ...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다면..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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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희/지우/모중현 편집위원


기쁨과 행복이 강요받는 시대입니다. 힘들어도 기뻐하라 합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감사하라고 합니다. 눈물을 빨리 닦고 다시 일어서라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충분하게 울어보지도 못한 채, 경쟁의 틈바구니 속으로 재차 들어갑니다. 소리 내어 크게 충분하게 울고 싶었는데 말입니다.우리에게 어쩌면 슬픔에 오롯하게 잠기어 있는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시간은 고요하게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이 됩니다. 아픔을 부둥켜안고 오랫동안 울어본 사람만이 타인의 고통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그들의 눈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성경에도 기쁘고...
온전함을 위한 발걸음 온전함을 위한 발걸음
역설
파커J.파머(Parker J. Palmer)/김종훈 /템북/모중현 편집위원


세상 한복판에서 살아가지만 세상과 같지 않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 자체로 역설입니다. 강렬하게 통합된 삶을 원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은 우리의 실제 삶과는 많이 다릅니다. 우리는 현실의 문제 앞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존재의 연약함으로 좌절하곤 합니다.개인적인 모순과 역설로도 벅찬데, 세상으로 나가면 더 큰 혼돈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부분이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겸손은 나약함으로 보이기도 하고, 진취적인 모습은 교만으로 비치기도 합니다.작가이자 교사, 활동가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여정에 동참하는 일상 예수 그리스도의 여정에 동참하는 일상
고난은 사랑을 남기고
김기현/두란노/모중현 편집위원


해마다 사순절이 되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평소보다 더 많이 묵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십자가의 의미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시간이 갈수록 십자가가 보다 분명하게 우리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와야 한다고 느껴집니다. 우리 삶에서 십자가가 해석되고 적용돼야 한다는 말입니다.사순절의 기간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고난을 마음 깊숙이 새길 수 있는 유익한 절기입니다.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이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선명하게 우리의 일상과 맞닿을 수 있는 고난과 십자가에 대한 묵상이 우리에게 요구됩니다.말씀 자체의 묵상도 ...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
버텨 줘서 고마워
한미연/세움북스/모중현 편집위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치유하는 일은 지금도 일어납니다. 공개적으로 추천하지는 않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에 내밀하게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은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은사 자체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 있는 열린 마음이겠지요.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 때로는 미련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적당하게 지혜롭게 살아가도 괜찮을 텐데 말이죠. 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은 다양하고, 하나님께서는 각자의 성향과 은사에 맞게 필요한 것들로 채워주십니다. 인내와 순종의 삶에 하나님은 세밀...
그림을 통해 꿈꾸는 세상 그림을 통해 꿈꾸는 세상
교회 옆 미술관
구미정/비아토르/모중현 편집위원


예술에 관심은 많지만, 듣고 보는 것을 잘 이해하고 누리지는 못하는 듯합니다. 중학생 때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피카소 작품전이 생각납니다. 처음으로 접하는 그림이 하필 피카소라니요. 뭔가 모를 꿈틀거림이 있었지만, 그것을 표현하기에는 여러모로 어렸습니다.작품을 대할 때는 사전 지식과 더불어 직관적으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 두 가지가 공명할 때 제대로 작품을 알 수 있습니다. 음악이나 미술이 우리에게 말을 건네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깊은 감동을 경험합니다.특별히 성경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성화...
하늘과 땅을 잇대는 교회 하늘과 땅을 잇대는 교회
우리는 날마다 교회가 무엇인지 묻는다
이재학/샘솟는기쁨/모중현 편집위원


개인적으로 신학의 각론 중에 가장 어려운 부분은 교회론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과 우리가 경험하는 실제적 교회의 차이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실재로서 교회가 존재해야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슬프고 암담하기까지 합니다.물론 성경에서 나오는 초대 교회도 말도 많고 탈도 많았습니다. 그 갈등을 중재하고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고자 바울은 편지를 적었습니다. 바울은 완벽하게 정리된 교리 모음집을 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 교회의 어려움과 문제에 대처하고자 그 상황에 가장 걸맞은 처방전을 제...
장벽을 넘으시는 예수님 장벽을 넘으시는 예수님
비트 주세요, 주님
지푸, 최재욱, 이창수/이야기가 있는 집/모중현 편집위원


참 많은 장벽이 존재합니다. 역설적이게도 교회에 더 많은 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교회에서 '거룩'이라는 단어는 좀 더 정제되고 점잖은 표현이나 태도를 뜻하게 된 듯합니다. 기존의 문화와 다르면 재빨리 선을 그으며, 세속적이라 비난할 때도 있습니다.그 틈을 메우려 했던 사람들 중에서도 성속의 이분법을 완전하게 넘어서지 못한 사람들이 보입니다. 가령 힙합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지만, 언어는 부드러워야 하며, 내용은 복음적이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물론 아직도 힙합이나 랩이라는 도구를 불편해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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