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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삶, 하나님, 그리고 고난이라는 끝없는 물음

크리스찬북뉴스 | 2017.11.12 23:30
삶, 하나님, 그리고 고난이라는 끝없는 물음 고통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걷기/팀 켈러/Riverhead Books/김상일 편집위원

팀 켈러의 고통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걷기(Walking with God through Pain and Suffering)은 굉장히 총체적인 책입니다. 영어 원서로 장장 300쪽이 넘는 이 책은 고통과 고난에 관한 모든 문제를 몇십년에 걸쳐 사역한 목회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한 때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실천 신학 교수였던 학자의 관점에서 가능한 한 다 다루어내고자 합니다. 아마 한글로 번역이 된다면 못해도 400쪽은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한 주제를 총체적으로 다루어내려고 하는 책들이 자주 빠지게 되는 함정은 초점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러다보니 너무 중구난방 식으로 내용이 흘러가기 쉽다는 것 외에도 깊이가 얕아진다는 것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함정들을 잘 피해서 고통과 고난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어떤 의미이며, 어떤 의미여야 하는가를 잘 파헤칠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고통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걷는 그 길을 갈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매우 실제적이면서도 신학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인 관점에서 다룹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애초에 팀 켈러라는 목회자이자 학자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는데요. 그것은 팀 켈러가 다른 무엇보다 마음(heart)의 문제에 집중하는 목회자라는 점이었습니다. 이 서평에서는 켈러가 바라보는 마음의 문제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얘기 외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깊이 새겼던 세가지 주제를 추가해서, 문화, 마음, 지혜, 그리고 현실이라는 네가지 주제를 한 꼭지씩 공간을 내어서 다루어 볼 예정입니다.

 

문화: 고통과 고난을 다루어내는 방식

 

켈러는 고통과 고난이라는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곧바로 성경이나 신학으로 직행하지 않습니다. 대신, 문화적 서사의 문제를 먼저 다룹니다. 켈러가 문화의 문제를 다루면서 보여주는 통찰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첫번째, 모든 문화는 고통과 고난의 문제를 다루어내기 위해서 나름의 서사를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현대 서구 문화가 고통과 고난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예리한 자기 성찰, 즉 저명한 종교 사회학자 크리스챤 스미스(Christian Smith)가 도덕적 치유적 이신론(moralistic therapeutic deism)(물론 스미스는 이런 분석을 미국의 십대들에 대한 통찰에 주로 국한시키고 있지만, 십대들이 자라나는 문화의 배양자가 성인들임을 고려해 볼 때, 성인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봄) 이라고 부르는 서구의 문화적 성향에 대한 통렬한 자기 반성과 비판입니다. 첫번째로 돌아가서, 켈러는 크게 고통을 다루는 네가지의 문화적 서사를 나열합니다. 이것은 각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고통과 고난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어내느냐의 문제이며, 동시에 역사적이고 종교적이며 인류학적인 차원에서의 구분입니다. 첫번째로 도덕적 관점이 있습니다. 이 관점은 주로 고통과 고난을 당한 사람들의 도덕적 과오를 그들의 고통과 고난의 주된 원인으로 돌립니다. 인도 힌두교의 카르마 (환생) 교리를 그 대표적인 것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욥기의 세 친구들의 생각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기독교와 유대교 안에도 이런 관점이 있습니다.) 두번째로 자기 초월적 관점입니다. 이 관점은 고통과 고난의 원인이 우리 각자를 만물의 일부이자 전체가 아닌 각각의 개인으로 보는 허상, 그리고 그러한 허상에 따라서 우리 각각의 채워지지 않은 욕구를 채우려고 하는 허상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따라서 유일한 탈출구는 그러한 허상을 벗어나서 물질적이고 허망한 것들로부터 마음을 멀리하고, “모든 욕구와 개체성, 그리고 고난이 사라지는 영혼의 평안을 이루는 것 뿐입니다. 불교의 서사가 이러한 관점을 제시하는 대표적인 예가 됩니다. (역시 기독교 안에도 이러한 관점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세번째로 운명론적 관점입니다. 이 관점은 우리의 고난과 고통을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것으로 인정하고, 거기에 서서 그냥 묵묵히 견디어 내는 사람을 이상적인 존재로 그려냅니다. 따라서 이런 문화적 서사 속에서 가장 영웅적인 인물은 고통과 고난을 수없이 많이 당했음에도 굴하지 않고 그 모든 고난을 견디어 내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 안에는 고통과 고난을 견디어 내는 일에 대한 암묵적인 숭배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근.현대의 한국 문화 안에, 특별히 한국의 기독교 문화 안에 이런 고통과 고난에 대한 암묵적 숭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거기에 대한 구체적인 증명은 이 서평의 목적과도 맞지 않고,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직관적인 판단으로만 언급하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원론적 관점이 있습니다. 이 관점은 세상을 선과 악이라는 두 동등한 힘이 벌이는 전쟁터로 파악합니다. (이런 면에서 지난 번 융이 지적했던 이원론적인 하나님 이해와 맞아 떨어지는 면이 있지요.) 악은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다기 보다는, 하나님이 어찌할 수 없는 다른 영역에서 발생하는 것들이며, 이런 전쟁은 긍정적으로 보자면 최후의 순간에 구원자가 나타남으로서 종식됩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 이기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고난받는 자들은 악의 힘이 그들을 누르고 있다고 판단하게 되며, 궁극적으로 선의 능력에 참여하라는 부름을 받습니다 (기독교에도 이런 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지요).

 

켈러의 판단에 따르면 이런 네가지 관점에는 세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번째, 고통과 고난은 인생에 있어서 당연한 것이며,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니라고 역설합니다. 두번째, 고난받는 자들에게 고통과 고난을 통해서 자기 완성과 영적 성장이라는 더 나은 삶의 견지가 열리게 될 것이며, 고통과 고난은 그러한 길을 가는데 있어서 필수적이라고 말합니다. 세번째, 그러므로 고통과 고난에 맞서서 각자가 책임을 지는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모든 문화적 서사들은 고통과 고난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긍정적 견지에서 고통과 고난을 겪는 사람들에게 대처법을 제시한다는 면에서 대체로 서로 통합니다. 하지만 켈러가 바라보기에, 이런 모든 문화적 서사와 완전히 다르게, 하지만 별로 능숙하지 못한 방식으로 고통과 고난을 바라보는 문화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현대 서구의 문화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켈러의 문화적 서사가 고통을 다루어 내는 방식에 대한 두번째 통찰입니다. , 현대 서구 문화의 고통과 고난에 대한 문화적 서사를 짚어내는 것입니다. 켈러에 의하면, 현대 서구 문화의 고통과 고난에 대한 지배적 서사는 고통과 고난은 좋지 않은 것이며,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이미 스미스가 지적했듯이, 현대 서구 문화는 고통과 고난을 치료받아야 할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서구 문화는 치료사들과 전문가들이 득세하는 문화입니다. 하지만 켈러는 (같은 서구 문화 속에 존재하는!) 심리학의 연구를 빌어서 이런 문화를 비판합니다. 로버트 스피처(Robert Spitzer) 박사는 심리 상담과 정신 분석에 있어서 거의 표준처럼 여겨지는 DSM-III(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3rd edition: 현재는 5판까지 나왔음)의 특별 위원회를 이끌었는데, 위원회의 DSM-III 완성 이후 25년이 지난 2007, BBC 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현재는 정상적인 반응들이라고 여겨지는 애통이나 비탄, 슬픔, 그리고 근심의 반응들을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 정도로 심리적 문제로 바꾸어 놓았는지를 고백합니다. 기자가 그러면 박사님께서는 일반적인 인간의 슬픔과 그에 대한 반응을 의료적이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으셨다는 거군요?” 라고 묻자, 이렇게 답합니다. “제 생각에 우리는 아마도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인간 반응의 20퍼센트, 혹은 30퍼센트, 정확히 얼마인지는 모릅니다만, 아무튼 상당한 부분을 비정상화시켰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인간 반응의 많은 부분이 개정판에서, 특별히 2013년의 5판에서 고쳐지긴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서구 문화의 고통과 고난을 바라보는 지배적 관점이 바뀌었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에 켈러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봅니다.)

 

, 그렇다면 서구 문화가 바라보는 고통과 고난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는 또 다른 문화적 서사가 있을까요? 물론 이에 대한 쉬운 대답은 기독교 복음입니다. 하지만 켈러는 곧바로 그것이 기독교 복음이라는 답을 내어놓기 보다는, 약간 에둘러서 돌아갑니다. 그리고 켈러가 그렇게 에둘러서 돌아가게 해주는 통로는 바로 인간의 마음입니다. 여기에는 켈러 나름의 독특한 복음에 대한 이해, 즉 인간의 마음에 닿는 하나님의 해결책에 대한 나름의 이해가 깔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일차적으로는 종교철학에 속한 분야로 여겨지는 신정론으로 향합니다.

 

마음: 개인과 공동체가 추구하는 것들의 중심적 동인

 

켈러는 전체 3부로 이루어진 이 책1부의 마지막 장과 2부 첫 장에서 신정론(theodicy)의 문제를 다룹니다. 신정론은 철학자 라이프니쯔가 처음 만들어낸 말로, 직역하면 하나님의 방식에 대한 정당화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관점에서 고통과 고난이 왜 인간에게 필요한지에 대해서 소통하는 일 정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예고했다시피, 켈러의 신정론에 대한 접근은 일반적인 접근과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켈러는 애초에 과연 신정론이 우리를 설득하고 변화시킬 수 있느냐의 관점, 어쩌면 지극히 목회적이고 실천적인 관점에서 신정론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에 대한 켈러의 짧은 대답은 입니다. 그리고 켈러가 부정적인 대답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신정론이 사람의 마음을 건드릴 수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켈러가 이해하는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여기서 켈러의 마음에 대한 이해를 담은 글을 인용하려고 합니다.

 

마음은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지향점, 우리가 가장 깊이 헌신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비유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가장 신뢰하는 것들(3:5; 23:26)입니다. 마음은 우리가 가장 사랑하고 소망을 두는 것이며, 우리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 있는곳이며, 우리의 상상력을 가장 자극하는 것이 있는 곳(6:21)입니다. 모든 마음에는 지향하는 바, 즉 어디론가 향하는방향이 있습니다(6:5). 마음의 방향은 곧 모든 것을 지배합니다. 우리의 사고, 느낌, 결정과 행위 모두를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합리적인 것으로, 바람직한 것으로, 이루어낼 만한 것으로 판단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 속에 가장 아끼고 소중히 다루는 것이 우리의 전인(the whole person)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마음에대해서 신경을 많이 쓰셨던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외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별 신경을 쓰지 않으시고, 마음을 최고로 여기셨던 것도 당연합니다 (삼상 16:7; 고전 4:5; 17:10) 선지자들이 구원의 목적을 단순히 법에 따르는 것이 아닌, 영적 갱생을 통해서 마음에 율법이 새겨지는 것(31:33)으로 보았던 것도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결국에는 우리의 마음이 가장 원하는 것을 따릅니다. 팀 켈러 홈페이지, “기독교가 바라보는 마음에 대한 혁명적인 관점

 

따라서 켈러는 곧바로 기독교 복음의 서사가 어떻게 고통과 고난을 맞닥뜨리는 우리의 마음에 다가가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켈러의 대답은 고통에 대한 관점과 하나님에 대한 관점에 달려 있습니다. 기독교 복음은, 고통을 정당한 것인 동시에 불의한 것으로, 하나님을 전지전능한 분이신 동시에 고난 받으시는 분으로 표현합니다(130).

 

고통과 하나님에 대한 이 두가지 진리는 모두 기독교 복음의 서사에 기초해 있습니다. 먼저 고통이 정당한 까닭은 우리 인간과 피조계가 모두 타락했고, 그 이후에 세상에는 고통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통이 불의한 까닭은 선하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고통이 덜 오는 것도, 불의하고 악랄하게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고통이 더 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욥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분이신 것에는 세속주의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면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다만, 성경은 하나님을 전지전능하신, 모든 것을 당신의 지배와 계획 아래 두시는 분이시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고난 받으신 하나님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고난을 받으신 적이 없으시다면 고난받고 고통 당하는 이들에게 하나님 자신이 별로 할 말이 없으시겠지만, 그 분 또한 인간의 자리에서 고난을 받으심으로써 당신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고통과 하나님에 대한 관점을 기독교 복음의 서사가 표현한다고 해도, 고통이 가시는 것도, 고난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세상 속에서 고통 받고 고난 받으며, 여전히 인생은 힘들고 고달픕니다. 그래서 켈러는 지혜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합니다.

 

지혜: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물론 지혜는 머리로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가장 깊이 헌신하고 있는 것들이 드러나고, 그것들이 피조계에 있는 것들에서 하나님과 이웃으로 바뀌어 가게 되는 과정이, 즉 내가 사랑하는 것의 우선순위가 마음에서부터 바뀌게 되는 것이 바로 지혜를 얻게 되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런 지혜의 기초는 현실을 제대로 보게 되는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고통이 가져다주는 인생과 삶에 대한 현실. 그리고 그러한 고통 속에서 하나님이라는 분을 전지전능하심에도 불구하고 고난받으신 분이 아닌, 전지전능하신 까닭에 우리와 함께 고난받기로 결정하신 분으로 이해하기 시작할 때 가능합니다. 켈러는 구약과 신약 성경 모두가 말하는 지혜의 기초는 현실에 능숙하게 대처하는 것입니다. “현실은 결코 단면적이지 않습니다. 한가지 관점 혹은 두세가지 관점으로는 현실을 이해할 수도, 제대로 대처할 수도 없습니다. 고난과 고통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과 고통에는 다양한 모습이 있으며, 켈러는 성경이 그러한 고난과 고통의 다양한 측면들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혜란 복잡다단한 현실을 한 가지 혹은 몇가지 관점으로 환원시키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에 관해서, 그 분이 단순히 우리가 꾸며낸 허상 속에서 사는 분이 아닌, 현실과 고난의 복잡다단함을 모두 다 지배하시며 계획하시고 또 그 안에서 함께 고난받으신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하면 지혜가 생기는 길을 걷게 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그 분 자체로 보고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를 지혜롭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그렇게 바라보게 될 때에야우리는 현실과 맞닿을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187).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특별히 서구 사회의 지배적 문화 서사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그러한 서사가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죠. 그 말을 우리가 이야기하는 주제에 적용시키면, 서구인들이 특별히 비서구인들보다 고통이나 고난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나 고난을 받을 때 그 고통이나 고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비서구인들이 서구인들보다 더 그런 부분에서 탁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비서구인들이 가진 문화적 서사는 적어도 고통과 고난을 인생과 삶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어 준다는 차원에서는 분명히 나은 듯 싶습니다.

 

고통과 고난이 불의한 것이면서도 정당한 것이라는 관점, 그리고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면서도 고난받으시는 분이라는 관점. 고통에 대한 두가지 모순된 관점도, 하나님에 대한 두가지 모순된 관점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인간은 그 본성상 고통에 대해서도, 하나님에 대해서도 자신의 머리 안에서 조화롭게 이해되는 관점을 추구하게 되어 있는데, 성경과 기독교 복음이 제시하는 고통과 하나님에 대한 관점은 어느 쪽도 서로 조화되기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켈러에 의하면 고통이 불의하지만 정당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또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신 분이신데도 고통과 고난을 우리에게 허락하셨고, 또 그 속에서 스스로 고난받으셨다는 것도, 실제로 고통과 고난을 당해본 사람이 받아들이기에 어려운 것들입니다만, 또 한 편으로는 고통과 고난을 당해본 사람들만이 그러한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길을 걸을 수 있게 됩니다. 현실이란 그런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이 머리로, 체계적인 이론으로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되지 않는 것, 사람의 이해나 체계를 항상 넘어서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팀 켈러가 고난과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 주는 목회적 조언은 언제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을 시작점이자 도착점으로 삼습니다.

 

현실: 고통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걷기

 

현실을 맞닥뜨린 인간은 자신이 머릿 속으로 가지고 있던 세상과 현실에 대한 이해나 체계가 실제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충격을 받습니다. 특별히 충격을 받는 부분이 실제로 자신에게 고통이나 고난으로 다가올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얘기했던 고난과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현실에 직면해야 합니다. 계속적으로 그러한 현실에 직면할 때 거기에 대처하는 마음의 근육이 생깁니다. 이것이 바로 켈러가 지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혜는 단순히 지적인 차원에서 어떤 통찰을 알고 있다는 차원이 아닌, 실제로 마음에 그 통찰이 닿아서 몸을 움직이게 하는 차원까지 내려갔을 때 지혜라고 부릅니다.

 

이런 차원에서 팀 켈러는 고통과 고난에 대처하는 지혜를 얻어가는 세 단계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이 단계들은 여타의 책들이 제시하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다만, 서구 사회가 고통을 대하는 지배적 관점에 견디어 냄이라는 말이 빠져 있음을 지적하면서, 켈러는 자신의 삼단계 대처가 결국에는 고통을 견디어내고 그 안에서 좋은 것들이 나올 수 있게 스스로 버티는 과정에 지나지 않음을 말합니다. 고통을 피한다거나, 줄인다거나 하는 말들이 지배적인 심상으로 작용하는 서구 사회에서 고통을 견딘다는 말이 가지는 무가치함과 무효용성에 맞서서 켈러는 성경이 고통을 견디라는 말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처음에는 고통 앞에서 우는 것입니다. 마음을 모두 다 하나님 앞에 쏟아내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켈러는 강변합니다. 두번째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내가 마음에 두었고 신뢰했던 것들이 민낯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서 현실을 배우게 됩니다. 고난과 고통을 통해서 전해지는 삶과 존재에 대한 현실. 그리고 하나님이라는 분에 대한 현실을 온 몸으로 배우는 단계가 바로 이 단계입니다. 마지막으로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세 단계는 시간적으로 따로 떨어져서 일어날 수 있는 단계가 아닙니다. 모두 다 전인적인 차원의 단계들이며, 모두 다 우리 전 존재를 다 쏟아부어야 가능한 단계들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는 법을 배우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현실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지혜를 배우며, 우리 안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자기 중심성이라는 독약의 효과에서 점차 벗어나게 됩니다. 이런 기도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들어달라는 차원의 기도가 아니라, 우리의 자기 중심성이 벗겨지는 기도이며, 우리가 무한하신 하나님 앞에서, 세상의 고난이라는 현실 앞에 정직하게 서게 만들어주는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는 크나큰 유익이 됩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왜 팀 켈러를 그렇게도 좋아하는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던 책이었습니다. 켈러의 집요한 인간 마음에의 추구,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마음이 바뀌는가를 조사하고 실제로 체험하며 실험하는 과정을 이 책은 잘 담고 있습니다. 특별히 켈러 스스로가 갑상선암에 걸려서 수술을 받아본 적이 있기에, 켈러의 아내인 캐시 여사가 크론병에 걸렸었고, 그 병이 심해져서 수술을 몇 차례나 받아야 했었던 기억을 통해서, 또 켈러가 지난 수십년간의 목회 사역을 통해서 만났던 수많은 고난과 고통을 통해서 배우고 깨달은 것을 나누고 있기에 어느 목회자나 신학자에게도, 또 어떤 그리스도인에게도 추천할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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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존재와 대면하는 시간 참 존재와 대면하는 시간
인간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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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힘겨운 과정입니다. 저마다 자신의 참 존재가 무엇인지를 모른 채 상황에 휩쓸려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더하여 변화하는 환경에 맞추어 자신의 모습을 숨기기도 하고, 특정 부분만을 부각시키기도 합니다. 각자 저마다의 가면을 쓴 채 살아갑니다.이러한 삶은 타인과 적절하게 거리를 유지한 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괜찮은 듯합니다. 문제는 진짜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가 불분명해진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역할에 맞추어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는 능수능란하지만, 참 존재에 대한 인식은 흐릿해집니다.스위스의 ...
당신은 하나님을 안고 잘 지내는 사람 당신은 하나님을 안고 잘 지내는 사람
당신은 불안을 안고 잘 지내는 사람
헬렌 손/신하영/좋은씨앗/조정의 편집인


제목이 독특하다. <당신은 불안을 안고 잘 지내는 사람>. 원제는 “Hope in an Anxious World”으로, 직역하면 ‘불안한 세상 가운데 소망’ 정도가 될 것이다. 무난한 책 제목을 독특한 제목으로 바꾼 이유는 이 책의 저자인 헬렌 손(한국 발음 ‘손’이 아니라 ‘Thorne, ‘톤’에 가까운 ‘쏜’)이 이 책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 가운데 우리가 불안을 안고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말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저자는 불안을 감쪽...
믿음이 주는 선물, 자유 그리고 순종 믿음이 주는 선물, 자유 그리고 순종
그리스도인의 자유
마르틴 루터/조계광/개혁된실천사/조정의 편집인


칼 트루먼은 마르틴 루터가 쓴 <교회의 바벨론 유수>, <독일 귀족에게 고함>,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종합하면 “종교개혁의 완벽한 선언문이 완성된다”라고 말했다(10p). 각각의 책은 세례와 성찬이 어떻게 말씀과 연관되어 재구성되어야 하는지, 교회와 국가의 관계가 어떻게 새롭게 정립되어야 하는지, 기독교 윤리가 어떻게 바르게 개정되어야 하는지를 다룬다. 트루먼은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루터의 “신학 체계 안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라고 말했다(11p). 루터가 선행을 어떤 관점으...
열왕기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만나기 열왕기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만나기
열왕기, 그리스도 중심 성경읽기
레이몬드 딜라드/박성호/좋은씨앗/조정의 편집인


레이몬드 딜라드는 WBC 성경 주석 시리즈 중 <역대하>를 집필한 성경학자이고(솔로몬, 2005), 이번에 좋은씨앗에서 출간된 <열왕기, 그리스도 중심 성경 읽기>와 함께 단 두 권의 책이 국내 보급되었다. 출판사는 딜라드에 관하여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데 정평이 난 학자로 알려졌다”고 소개했는데, 그의 책을 추천한 사람 중에서 싱클레어 퍼거슨과 D. A. 카슨, 모세스 실바 등 건전하고 성경적인 교리를 가르치는 데 헌신하고 있는 유명한 학자들이 있어서, 다소 생소한 딜라드 역시 신뢰할...
우리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은 영원을 준비하는 절호의 기회다 우리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은 영원을 준비하는 절호의 기회다
시간 관리도 영성이다: 목적과 의미가 충만한 시간을 사는 예수의 원칙
조던 레이너/정성묵/두란노/조정의 편집인


솔직히 시간 관리에 관한 신앙 서적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케빈 드영의 <미친 듯이 바쁜>(부흥과개혁사, 2013)이다. 생산성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삶을 오히려 규모 없게, 목적을 상실한 채 살지 않도록 경고하고, 단순한 목표를 세우고 충성스럽게 살라고(왜 바쁜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항상 기억하라고) 권면하는 좋은 책이었다. 2019년에는 팀 챌리스가 쓴 <Do More Better: A Practical Guide to Productivity>를 번역해서 청년들과 함께 읽고 실천해 ...
로마서 강해의 모범 사례 로마서 강해의 모범 사례
로마서 강해1: 로마서 1-2장
김병훈/개혁된실천사/조정의 편집인


나그네 교회 담임목사이자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인 김병훈이 쓴 책 중에서 처음 읽어본 것은 개혁된실천사에서 출간된 <슬픈 인생과 그리스도의 위로>였다(2021). 책 제목만 보고 가졌던 선입견이 금세 무너졌다. 저자는 같은 주제를 다룬 여러 신앙 서적이 그렇듯 몇 구절의 성경 본문을 가볍게 훑고 나서 숯한 예화와 쉴 새 없는 권면으로 독자를 위로하려고 하지 않았다. 주해가 풍성한 책이었다. 그 말은 저자가 성경 본문의 의미를 제대로 연구하고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애쓴다는 걸 의미한다. 어쩌면 그런 저자의 열심...
개혁은 언제나 진리를 향한 뜨거운 열심을 원료로 한다 개혁은 언제나 진리를 향한 뜨거운 열심을 원료로 한다
종교개혁 신학: 조직신학 관점의 개요
매튜 바렛 외/스데반 황/생명의말씀사/조정의 편집인


'개혁'은 언제나 현재의 문제점을 전제하고, 기독교 개혁은 언제나 현재지향적이기보다 과거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미래를 지향한다. 종교개혁은 루터와 칼빈, 루터교회와 개혁주의 교회로 단순하게 정리할 수 없는 역사적 신학적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종교개혁의 역사와 그 가운데 선포된 종교개혁자들의 통일성 있는 가르침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계속해서 유익을 끼치는 이유가 있다. 종교개혁은 온건한 모양이든지 급진적인 방식이든지 일반적으로 '오직 성경'의 정신을 갖는다. 사람이 만든 전통과 사람이 세운 권위가 아니라 성경에게 모든...
돈에 대한 균형 감각 익히기 돈에 대한 균형 감각 익히기
돈: 탐욕의 대상에서 사랑의 도구로
손성찬/죠이북스/모중현 편집위원


현대인들에게 있어 '돈'은 매우 중요합니다. 자본주의라는 구조 속에서 돈은 필수적입니다. 없어서는 안되는 도구인 셈이죠.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표현하지는 않더라도, 마음 한구석에 이미 제일 우선적인 것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돈입니다.돈에 대한 많은 책들은 세상의 관점을 따릅니다. 부를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합니다.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서는 부자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적극적으로 자본을 축적하고, 그것을 통해 돈이 일하게끔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근로소득에 비해 자본소득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하기까지 합...
마침내, 교회가 되는 길 마침내, 교회가 되는 길
마침내, 교회가 희망이다
박영호/복있는사람/모중현 편집위원


교회는 참으로 독특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위로를 받습니다.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영광과 위엄을 느낍니다. 우리의 어떠함보다 존재 자체를 받아주고 귀하게 여깁니다. 그 안에서 한없는 평안과 사랑을 누립니다. 함께 울고 웃는 사람들로 인해 진정한 하나 됨을 경험합니다.반면 교회에서 우리는 좌절과 실패, 억울함의 기억도 있습니다. 세상보다 더하다고 생각들 때가 있습니다. 배제와 혐오, 편견과 차별이 만연합니다. 그것이 거룩함이라고 포장됩니다.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 보입니다. 탐욕으로 눈...
이제야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 이제야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
따름, 그 회복의 여정
오지영/Ivp/모중현 편집위원


'만남'은 우리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누구를 만나는지와 그 만남의 깊이와 친밀함의 정도에 따라 변화의 폭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더 이상 나의 방법으로 헤어 나올 수 없을 때, 누군가의 만남이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음을 기억합니다.'복음'은 교리의 모음이 아닙니다. 해야 할 것들의 목록도 아니지요. '복된 소식'은 '만남'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우리에게 가장 큰 '좋은 소식'입니다. 하나님이 인간 되셔서 친히 우리에게 만나자고 말씀하시며, 손을 내밀어 주시고, 함께해 주시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그 ...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다면..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다면..
우리의 춤은 변하여 슬픔이 되고
전원희/지우/모중현 편집위원


기쁨과 행복이 강요받는 시대입니다. 힘들어도 기뻐하라 합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감사하라고 합니다. 눈물을 빨리 닦고 다시 일어서라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충분하게 울어보지도 못한 채, 경쟁의 틈바구니 속으로 재차 들어갑니다. 소리 내어 크게 충분하게 울고 싶었는데 말입니다.우리에게 어쩌면 슬픔에 오롯하게 잠기어 있는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시간은 고요하게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이 됩니다. 아픔을 부둥켜안고 오랫동안 울어본 사람만이 타인의 고통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그들의 눈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성경에도 기쁘고...
온전함을 위한 발걸음 온전함을 위한 발걸음
역설
파커J.파머(Parker J. Palmer)/김종훈 /템북/모중현 편집위원


세상 한복판에서 살아가지만 세상과 같지 않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 자체로 역설입니다. 강렬하게 통합된 삶을 원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은 우리의 실제 삶과는 많이 다릅니다. 우리는 현실의 문제 앞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존재의 연약함으로 좌절하곤 합니다.개인적인 모순과 역설로도 벅찬데, 세상으로 나가면 더 큰 혼돈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부분이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겸손은 나약함으로 보이기도 하고, 진취적인 모습은 교만으로 비치기도 합니다.작가이자 교사, 활동가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여정에 동참하는 일상 예수 그리스도의 여정에 동참하는 일상
고난은 사랑을 남기고
김기현/두란노/모중현 편집위원


해마다 사순절이 되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평소보다 더 많이 묵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십자가의 의미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시간이 갈수록 십자가가 보다 분명하게 우리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와야 한다고 느껴집니다. 우리 삶에서 십자가가 해석되고 적용돼야 한다는 말입니다.사순절의 기간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고난을 마음 깊숙이 새길 수 있는 유익한 절기입니다.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이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선명하게 우리의 일상과 맞닿을 수 있는 고난과 십자가에 대한 묵상이 우리에게 요구됩니다.말씀 자체의 묵상도 ...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
버텨 줘서 고마워
한미연/세움북스/모중현 편집위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치유하는 일은 지금도 일어납니다. 공개적으로 추천하지는 않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에 내밀하게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은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은사 자체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 있는 열린 마음이겠지요.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 때로는 미련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적당하게 지혜롭게 살아가도 괜찮을 텐데 말이죠. 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은 다양하고, 하나님께서는 각자의 성향과 은사에 맞게 필요한 것들로 채워주십니다. 인내와 순종의 삶에 하나님은 세밀...
그림을 통해 꿈꾸는 세상 그림을 통해 꿈꾸는 세상
교회 옆 미술관
구미정/비아토르/모중현 편집위원


예술에 관심은 많지만, 듣고 보는 것을 잘 이해하고 누리지는 못하는 듯합니다. 중학생 때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피카소 작품전이 생각납니다. 처음으로 접하는 그림이 하필 피카소라니요. 뭔가 모를 꿈틀거림이 있었지만, 그것을 표현하기에는 여러모로 어렸습니다.작품을 대할 때는 사전 지식과 더불어 직관적으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 두 가지가 공명할 때 제대로 작품을 알 수 있습니다. 음악이나 미술이 우리에게 말을 건네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깊은 감동을 경험합니다.특별히 성경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성화...
하늘과 땅을 잇대는 교회 하늘과 땅을 잇대는 교회
우리는 날마다 교회가 무엇인지 묻는다
이재학/샘솟는기쁨/모중현 편집위원


개인적으로 신학의 각론 중에 가장 어려운 부분은 교회론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과 우리가 경험하는 실제적 교회의 차이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실재로서 교회가 존재해야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슬프고 암담하기까지 합니다.물론 성경에서 나오는 초대 교회도 말도 많고 탈도 많았습니다. 그 갈등을 중재하고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고자 바울은 편지를 적었습니다. 바울은 완벽하게 정리된 교리 모음집을 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 교회의 어려움과 문제에 대처하고자 그 상황에 가장 걸맞은 처방전을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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