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이정명의 밤의 양들을 읽고 드는 잡념
기독교를 소재로 한 책들이나 영화는 의외로 많다. 하지만 기독교를 소재로 했다고 해서 그 책이나 영화가 기독교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독교를 소재로 했지만 반 기독교적이거나 왜곡된 기독교를 전하는 것들도 많기 때문이다. 또 어느 정도 기독교에 친화적이긴 하지만 정작 기독교나 복음에 대해 올바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들도 꽤나 있다.
그에 반해 기독교를 소재로 하지만 반기독교적 색채를 지닌 경우도 있다―여기서 반기독교적이라는 것은 꼭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이고 노골적으로 기독교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왜곡된 이미지를 심어주는 책들을 의미한다. 딘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같이 야설과 가짜뉴스 같은 자료들로 쓰였으면서도 그 읽는 재미와 이슈들로 인해 많은 독자를 낳았던 그런 류의 책들까지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싶다. 그에 반해 작품성 있고 고전으로 가치가 있는 작품을 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성 프란치스코’ 외에도 다수의 기독교 소재를 넘어 기독교가 주가 되는 거작 소설을 내놓았고 새로운 인사이트를 독자에게 준 것도 사실이지만, 기독교에 대한 올바른 소개보다는 왜곡되고 금기(?)를 넘는 이미지를 주고 있는 면이 있다. 물론 복음전도를 위해 쓴 책은 전혀 아니기에 작가에게 그것을 요구하거나 기대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또 소설이기에 어느 정도 픽션이나 작가의 재해석이 포함되는 것도 어쩔 수 없을지 모른다. 그에 반해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은 크리스천 작가가 쓴 책이 아니기도 하고 신앙여린 이들을 뒤흔들어 놓는 면도 있긴 하지만 복음에 관련된 이슈를 정통으로 다루고 고민해본다는 측면에서 꼭 한번은 읽어 볼만하다.
지금까지 언급된 책들과는 달리 김성일의 여러 작품들이나 조성기의 ‘야훼의 밤’ 시리즈 중 1편―‘야훼의 밤’시리즈는 1편―만이 정통 기독교 소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연작들은 일종의 기독교 소설의 ‘인간시장’ 같은 느낌이다. ‘라하트 하헤렙’은 구도적 종교소설로서 구분해야 할 듯싶기도 하다―이청준의 ‘낮은 데로 임하소서’와 같은 복음과 회심, 기독교 옹호적 소설들처럼 그 기독교 색채와 작가의 신앙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책들도 있다. 어떤 책은 그보다 나아가 소설이며 작가의 신앙을 담아내면서도 교리서와 같이 신학적 묵직함을 보여주는 윌리엄 폴 영의 ‘오두막’, 존번연의 ‘천로역정’ 부류들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 우연히 읽게 된 이정명의 ‘밤의 양들’은 이 중에 어디에 속한다고 할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리기 마지막 일주일을 배경으로 연쇄살인이 벌어지고 로마 장교를 죽인 살인범인 죄수가 이 살인 사건을 추적해가는 이야기는 흥미롭고 재미있다. 잔혹한 살인 곳에서 비교(秘敎)와 당시의 정치적 종교적 세력 간의 암투 등은 읽는 독자들에게 굳이 기독교적 배경을 갖지 않았다 할지라도 재미있게 읽혀지게 한다.
특히나 이 소설은 구도적 색채를 지닌다. 주인공의 험난한 삶의 궤적이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을 연쇄살인의 용의자로 추적해가면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과정은 상당히 독자들에게 주는 흡입력이 강하다. 아직 읽지 않은 이들에게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자세한 이야기를 피하는 것이 좋긴 하겠지만 성경에 등장하는 마지막 일주일과 그 연관된 사건들을 잘 버무리고 마지막에 반전을 주는 것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어떤 때는 이것을 꿰어 맞추기 위해 무리수가 가해지는 듯 하기도 하고 용서와 구원에 대한 논쟁과 고민을 다룸에 있어 스토리보다 저자의 논설이 약간은 오버하는 듯할 때도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간만에 보는 한국 기독교 소설의 주목해볼 만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듯싶다.
추신: 파울로 코엘료의 ‘다섯 번째 산’이 갑자기 떠오른다. 엘리야와 사렙다 과부를 주인공으로 하는 그의 소설은 그의 작품에 비하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주목해볼 만하고 생각해볼 만한 소설중 하나다. 절판이라 구하기 힘들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