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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칼뱅주의 목사가 본 웨슬리 신학

정현욱 | 2019.09.23 22:36
칼뱅주의 목사가 본 웨슬리 신학 웨슬리안 실천교리/김민석/샘솟는기쁨/정현욱 편집인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는 장로교회 목사인 나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다. 교회사에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웨슬리가 조지 윗필드와 함께 영국 대각성 운동을 일으킨 주역이라는 것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칼뱅주의 교리 때문에 조지 윗필드를 선호하는 사상이 한국교회 안에 잔존하지만 웨슬리를 빼 놓고 영국의 대각성 운동을 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종교개혁 이후 루터에 의해 시작된 종교개혁은 인간의 행위와 공로를 부정한 것으로 규정하고 터부시해왔다. 루터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칼뱅에 이르러 구원 이후 삶에 대한 질문이 일어났고, 결국 성화론에 집중하게 된다. 18세기 영국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영국교회는 영적으로 무능함을 넘어 죽어 있는 상태였고, 도덕은 땅에 떨어져 야만인이 되었다. 산업혁명이 가져온 결과는 무서웠다. 수공업자는 몰락과 사양의 길로 떨어졌고, 개인의 도덕성은 생존 경쟁과 물질주의에 함몰되어 상실되고 말았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했던가. 조지 윗필드와 웨슬리 형제는 혜성처럼 일어났고, 영국을 개혁해 나갔다. 조지 윗필드가 개인적으로 행동했다면, 웨슬리 형제는 조직적이었다. 무엇보다 땅에 떨어진 도덕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성화와 실천을 강조하게 된다. 칭의를 강조했던 윗필드와 실천을 강조한 웨슬리와의 긴장 관계는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 두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 나갈 필요가 있다. 필자는 저자가 제시한 일차 독자인 목회자, 신학생, 교회학교 교사, 그리고 웨슬리안 전통에 익숙한 교인’(19)의 관점에서 본서를 살펴볼 것이다. 장로교회(합동) 소속의 신학적 관점으로 비판적으로 읽기보다는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는 것을 우선할 것이다. 성결 신학에 거의 접해 보지 못한 필자로서 본서는 웨슬리 신학의 정수를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배움의 기회로 삼고자 한다. 이제 저자의 주장을 따라 가보자.

 

Part1Part2로 나누었지만 Part2는 웨슬리의 두편의 논문을 번역해 붙인 것으로 부록에 가깝다. 저자의 논지는 Part1에 담았다. 모두 13장으로 나누어 웨슬리의 교리를 빼곡히 설명하고 해석한다.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3장까지는 서론부에 해당되며, ‘소명’ ‘교리의 필요성’ ‘신학 방법론을 다룬다. 4-13장까지는 웨슬리의 교리를 신론에서 종말론까지 다룬다. 웨슬리 신학의 정수는 케네스 J. 콜린스가 단권으로 출간하기도 한 성경적 구원의 길에 있다. 루터와 칼뱅으로 대표되는 종교개혁 신학에 익숙한 이들에게 웨슬리 신학은 익숙한듯하지만 몹시나 낯설다. 필자의 경우 선행은총이란 단어에서 루터가 그토록 싸웠던 중세의 공로사상과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김민석 교수의 주장을 따라가 보자. 아마도 웨슬리 신학이 주는 맛을 느낄 수 있으리라.

 

우리는 아직 살아 있습니까?

 

18세기 부흥운동의 시작은 당연한 찰스 웨슬리다. 그러나 웨슬리 홀로 부흥운동을 주도하지는 않았다. 수많은 헌신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부흥은 철저히 하나님의 주도에 의해 시작되고 진행되지만 헌신된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18세기 부흥운동의 형태는 교회 밖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교회 밖에 있는 이들을 찾아 설교하기 시작한 것이다. 야외설교자들로 불리는 그들은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드렸다. 그러나 헌신의 대가는 너무나 컸다. ‘복음을 전하다 병으로, 낙마로, 테러로, 강도 상해’(24) 등으로 수많은 전도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해 보았던 이들을 그해는 보지 못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통일찬송가 280생전에 우리가는 바로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원가사를 직역하면 이렇다.

 

우리가 아직 살아 있습니까? 그리고 서로 얼굴을 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에 예수께 영광과 감사를 돌립시다!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여기 충만한 구원으로 인도된 우리는 그 분 앞에서 예수를 찬양하기 위해 모여 있습니다.”(25)

 

쉽게 간과(看過)할 수 없는 이 이야기는 웨슬리신학이 갖는 독특성과 정체성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절대적 헌신과 실천적 신앙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고 하나님 나라의 부흥을 꿈꾸었던 웨슬리안들의 마음을 담고 있다. 루터의 이신칭의 교리를 기반으로 하는 칼뱅주의 신학은 신론에 중심을 둔다. 츠빙글리 역시 신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개혁주의 사상의 기저(基底)를 보여준다. 그러나 웨슬리 신학은 많은 부분은 개혁주의적 관점을 견지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이들의 결단과 헌신, 그리고 삶의 목적대로 살아가려는 성화에 집중한다. 어떻게 구원 받았는가?’보다는 구원 받은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에 골몰한다. 웨슬리 신학이 실천적 성향을 강하게 갖는 이유는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이백년을 넘긴 시대라는 것과 기독교 국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음에도 도덕적으로 심각한 퇴보가 일어난 사회적 현상과 맞물린다. 웨슬리 신학을 들여다볼 때 이러한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메소디스트의 설교자들의 소명은 개혁성결로 압축된다. 개혁은 국가 개혁과 교회 개혁으로 구분된다. 성결은 개인의 변화와 세상의 변혁’(27)의 수단이다. 성결의 개념은 칼뱅주의가 정의하는 바와 약간 다르다.

 

성서적 성결이란 다름 아닌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모든 피조물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온 땅에 성서적 성결이 전파된 상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실천을 통해 온 땅이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으로 충만해진 상태이다.”(28)

 

칼뱅주의 신학이 성결을 개인의 성화적 차원에 집중한다면, 웨슬리는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한다. 웨슬리안들이 사회적 차원의 헌신과 실천적 사랑을 강조한 이유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담겨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교리를 무시하고 실천에만 몰입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분명 실천적 성향이 강했지만 웨슬리 역시 교리를 중요하게 여겼다.

 

웨슬리의 신학과 교리의 중요성

 

웨슬리는 교리와 실천 사이에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교리가 우상화 되거나, 교리 없는 삶의 맹목으로 떨어지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기독교 교리를 핵심 교리(fundamental doctrine)와 의견(opinion)’(39)으로 구분했다. 신학자보다는 운동가에 가까웠던 탓에 웨슬리는 핵심 교리를 명징한 표나 저술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의 저술 속에 전반적으로 나타난 핵심 교리는 원죄와 칭의, 마음과 삶의 성결 교리로 추측할 수 있다. 웨슬리는 칭의를 정적인 정의를 넘어 삶이라는 동적의 형태로 정의하고 싶어 했다. 즉 칭의가 마음과 삶의 성결로 나아가야 한다’(40)고 강조했다. 교리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삶의 기준’(41)이다. 또한 변증 기능’(42)훈련의 가이드라인’(43) 기능을 가진다.

 

웨슬리는 성경의 각 본문은 성경 전체와 상응하는 평이한 의미’(50)를 가지며,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인 구원 사역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 구속의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함을 말한다. ‘삼위 하나님께서 성경적 진리를 체험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과 거룩한 삶으로 인도하신다’(51)는 성경관은 교리와 삶을 놓치지 않으려는 웨슬리의 성향과 닮아 있다. 그렇다면, 웨슬리에게 있어서 이성은 어떤 대상일까? 저자는 웨슬리가 일반 이성을 이해를 위한 영혼이 능력이며 도구’(55)로 보았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56)라고 말했다고 한다.

 

첫 사람의 타락으로 인해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의 손상과 상실’(96)이 일어났다. 그 결과는 도덕 형상의 상실로 이어졌다. 두 번째 결과는 단절과 죽음’(96)이며, 세 번째 결과는 삼중 욕망으로 가득 찬 존재’(97)가 되었다. 삼중 욕망이란 육신의 소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말한다. 삼중 욕망은 치명적 질병이며, 삼중 욕망을 만족시키려는 노력은 이 세상에 대한 사랑’(97)으로 정의한다. 웨슬리는 인간의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것으로 보는 동시에 거듭남의 순간에 도덕적 형상이 본격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한다’(98)고 말한다. 웨슬리는 구원이 곧 도덕적 회복으로 나아간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에 중심에 도덕적 형상’(98)이 있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성경적 구원이란 무엇인가?

 

이제 웨슬리 신학의 핵심 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성경적 구원의 길을 살펴보자. 칼뱅주의 신학과 현저하게 다르게 나타나는 부분이 바로 이곳이다. 웨슬리는 구원 이전에 선행 은총을 허락하심으로 다가오셨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콜린스의 주장을 인용하여 선행은총의 다섯 가지 유익을 이렇게 설명한다.(119-120)

 

선행은총으로 하나님에 관한 가장 기본적 지식을 얻게 된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선행 은총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어느 정도 자유 의지를 주신다.

 

선행은총을 통해 이 세상에 도덕법(하나님의 법)이 어느 정도 다시 주어졌다.

 

선행은총을 통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초자연적 선물로 양심을 주셨다.

 

선행은총의 유익들을 잘 활용하면 인간과 사회의 사악함을 어느 정도 제약할 수 있다.

 

칼뱅주의 신학을 따르는 필자로서 가장 난해하고 모호한 부분이 바로 이곳이다. 웨슬리는 거듭나기 이전에 어느 정도의 이 가능한 것처럼 이야기 한다. 루터나 칼뱅의 경우는 거듭나기 이전에 이성과 지성의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을 향한 선의 개념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다만 중생 이전에도 보편은총의 개념으로 하나님에 관한 신지식이 아닌 자연적 지식과 일반적 도덕성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선행은총의 문제는 웨슬리와 윗필드의 가장 뜨거운 논쟁의 주제였던 하나님의 예정으로 확장될 수밖에 없다. 만약 선행은총의 개념이 인간의 자유의지의 문제로 연결된 경우 하나님의 예정은 논리적 모순을 갖게 되고 구원의 주도권이 하나님 미리 아심이 아닌 인간의 선택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이중예정론을 부정한다. 이중예정론(Predestination)은 창세 이전의 하나님의 작정과 유기(버려둠)가 이미 결정되었다는 칼뱅주의 교리이다. 웨슬리는 이중예정론이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이 충돌할 뿐만 아니라 거룩한 사랑을 뒤로 밀어내는 경향이 있다’(128)고 본다.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책임성이 훼손되며, 인간의 어떠한 행위도 불필요하게 만들며, 성화와 설교의 필요성을 약화시키고, 결함이 있는 해석에 기초하며,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들이 결정론적 예정의 가르침에 파괴된다고 보았다. 저자는 토마스 오덴의 입을 빌려 이렇게 주장한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역사를 미리 아셨다. 따라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의 영원부터 성자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시는 것을 결정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제안을 하나 하시기 위해서였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거나 믿지 않을 것을 선택할 수 있다. 그 선택의 결과로 영원한 생명을 받거나 혹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된다.”(129-130)

 

오덴의 주장을 분석하면 웨슬리의 주장은 확연히 알미니안적이며, 에라스무스의 자유의지와 닮아 있다. 그런데 그들과 결정적인 차이를 갖는 것이 바로 선행은총이다. 저자는 타락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130), 선행은총을 통해 하나님께 응답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초대하셨지만 사람들의 응답 여부에 의해 구원받거나 멸망 받는 것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131)이라고 말한다. 이 부분은 칼뱅주의 5대 교리 중의 하나인 불가항력적 은혜와 대치(對峙)된다. 어떤 면에서 칼뱅주의 교리는 모순적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동시에 인간의 책임을 묻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이러한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최종결정을 인간의 손에 맡긴다.

 

저자는 웨슬리 신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성경적 구원의 길’(9-11)에서 깊이 있게 다룬다. 선행은총은 하나님께 응답하기 위해 조건을 갖추는 것부터 성화의 모든 단계에서 역사한다. 선행은총은 양심을 일깨워 하나님을 인지하도록 도우며, 양심은 자유의지를 도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한다. 믿는 순간 그리스도의 의가 덧 입혀지고,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 구원의 공로적 원인으로 작용한다.(151) 구원의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인간적 의(칭의)가 덧입혀진다. 덧입혀진 의는 다시 새겨짐(거듭남)’로 나아간다.

 

칭의는 용서, 용납, 화해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변화를 의미하는 반면에 신생은 그리스도를 닮으로 나아가게 하는 실제적 변화의 첫 시작, 즉 성화의 시작을 의미한다. 칭의는 관계의 변화인 반면에 신생은 실제적 변화이다.”(153)

 

신생, 즉 거듭남은 성화의 시작이며 성화로 들어가는 문’(155)이다. 웨슬리는 지속적인 믿음’(160)을 통해 신자 안에 남겨진 죄를 치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죄는 신자의 타락의 결과이며, 타락하지 않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자녀 됨을 끊임없이 점검받아야’(160) 할 필요성이 상존한다. 점검의 방법은 경건의 행위자비의 행위로 구분된다.(161) 주의 만찬, 예배, 금식, 기도, 성경 연구, 성경 묵상, 경건의 글 읽기, 찬송, 설교, 그리고 말씀 묵상 등과 같은 것이다. 자비의 행위는 긍휼을 베풀고, 나그네는 환대하는 것들을 말한다.

 

나가면서

 

교회사에 중요한 인물이었음에도 칼뱅주의 목회자였기에 웨슬리 읽기는 2차 문헌이나 조지 윗필드의 이야기 속에서 읽은 것 외에는 없었다. 기껏해야 <존 웨슬리의 일기>를 단편적으로 읽은 것뿐이었다. 김민석 교수의 저작물을 통해 접한 웨슬리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확실히 웨슬리는 신학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후대의 학자들이나 메소디스트들에 의해 체계화 시키려는 노력들이 있기는 했지만 웨슬리 신학이 이것이다라고 정의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 책 역시, 필자의 오독이 아니라면 적지 않은 부분에서 모호하다. 아마도 칼뱅주의 신학에 익숙한 탓이기도 하고, 웨슬리 신학 자체가 갖는 실천신학적 측면 때문일 수도 있다. 두 번째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책임을 다하려는 몸부림이 느껴진다. 적지 않은 부분에서 필자가 몸담고 있는 칼뱅주의 신학과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웨슬리 신학에는 장로교단이 잃어버린 성화의 갈망과 사회변혁에 대한 열정이 담겨있다. 지성적 믿음으로만 구원과 중생의 의미를 담으려는 이들에게 불편함이 느껴진다. 심각한 도덕의 타락과 실천 없는 종교적 타성에 안주해있던 영국 교회 안에 불을 지폈던 웨슬리 신학은 변혁을 요구하고 있고, 사랑의 실천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마이너스 성장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는 헌신과 사랑의 부재 탓은 아닐까? 주일학교가 무너지고 있다는 염려와 통계는 끊임없이 나오고 있지만, 주일학교를 위해 기도하고 재정을 투자하며 교사로 헌신하는 이들은 계속하여 줄고 있는 이유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지으신 목적대로 살아가려는 몸부림으로 점철된 웨슬리의 생애는 교리는 있으나 실천을 상실한 현대교회에 던지는 도전이다.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거룩한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도전 받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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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얼마전 티비에서 방송인 샘 해밍턴이 나오는 토크쇼를 보았다. 그는 두 아들을 데리고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육아 방송을 하였는데 육아를 하는 부모와 공감대를 형성하며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 프로그램에서 지금도 여러 채널에 소개되는 유명한 장면이 있다. 아기가 기저귀를 차고 물놀이는 하는데 그것이 아주 큰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것이고, 그것을 엉덩이에 달고 움직이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과 미소와 동심의 세계를 전달하였다. 그리고 토크쇼에서 사회자가 그에게 질문하길 “어떻게 하면 육아방송에서 성공할 수...
현장이 없는 윤리는 윤리가 아니다 현장이 없는 윤리는 윤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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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10.29 참사가 벌어진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국정을 책임지는 지도자는 연일 조문을 하고 각종 종교단체가 열고 있는 애도 종교행사에 참여하며 오늘은(11/7) 드디어 미뤄왔던 사과까지 하는 모습을 보였다. 종교집회에서도 사과를 표명하긴 했지만 대국민을 위한 장소이냐라는 장소적 적당성과 그 문구적 표현에 있어 과연 직접적인 사과표현이냐라는 점에서 의문이 가기에 사과라는 말을 배제하고프다. 오늘 한 사과마저도 대국민 성명이 아니라 회의 석상에서 한 것이기에 직접적 사과를 피하고픈 일종의 꼼수같다는...
네가 거듭나야 하겠다 네가 거듭나야 하겠다
거듭남에 관한 결정적 대화
스티븐 J. 로슨/김태곤/생명의말씀사/조정의 편집위원


출생이 인생의 시작인 것처럼, 영적 출생 또한 참된 인생의 시작이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처럼(요 3:3),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 나라 백성이 되려면 반드시 영적으로 죽은 자는 출생해야 한다. 거듭나야 한다. 거듭남은 그래서 기독교의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기초가 되는 교리이며 그리스도께서 제자로 삼을 때 반드시 먼저 실천하라고 명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기준이 된다. 죽은 자에게 아무리 힘주어 거듭 명령한다고 해도 소용없는 것처럼, 거듭나지 않은 자...
수고하고 무거운 이웃이여, 우리 집 문을 열고 들어와 복음의 대접을 받으라 수고하고 무거운 이웃이여, 우리 집 문을 열고 들어와 복음의 대접을 받으라
복음과 집 열쇠: 탈 기독교 세상에서 급진적으로 일상적인 손 대접 실천하기
로자리아 버터필드/조계광/개혁된실천사/조정의 편집위원


“급진적”이면서 동시에 “일상적”인 것은 다름 아닌 ‘복음’이다. 복음은 급진적 변화를 가져온다. 죄와 허물로 죽은 자를 살린다. 하나님의 원수에서 자녀가 된다. 믿음 없는 자에서 믿음 있는 자로,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는 불순종의 자녀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는 순종의 자녀로 바뀐다.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영벌에서 영생으로, 그리스도 밖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복음은 믿음을 통해 급진적 변화를 일으키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동시에 복음은 일상적이다. 삶의 모든 영역에 복음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말...
삶의 길에서 고민하는 당신에게 삶의 길에서 고민하는 당신에게
하나님을 선택한 구약의 사람들
조영민/죠이북스/서상진 편집위원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늘 선택이라고 하는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무엇을 어떻게,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하느냐에 따라서 나의 인생이 어려워지기도 하고, 반대로 평탄한 삶으로 전환점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선택의 갈등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선택이라고 하는 과정을 넘어설 수 없는 한계를 가진 존재가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선택에는 기준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한다. 선택은 나의 가치관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준다. 선택을 통해서 내가 감추고 있었던 것을 드러나기도 한다. 반대로 선택은 포기함을 내포...
‘동성애’에 관한 성경적 또는 개혁주의적 관점 ‘동성애’에 관한 성경적 또는 개혁주의적 관점
한 남자와 한 여자
조엘 R. 비키, 폴 M. 스몰리/개혁된실천사/송광택 편집고문


이 책은 두 명의 저자가 공동 저술한 것이다. 조엘 R. 비키 (Joel R. Beeke)는 미국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의 헤리티지 네덜란드개혁교회의 목사이며, 퓨리턴리폼드신학교의 학장이자 조직신학 교수이다. 국내에 《오직 성경으로》, 《청교도 신학의 모든 것》, 《개혁주의 청교도 영성》 등의 저서가 출간되었다. 폴 M. 스몰리는 퓨리탄 리폼드 신학교에서 조엘 비키 박사의 조교이며, 임마누엘 개혁 침례교회에서 직업 목회자로 사역하고 있다.이 책은 아래와 같은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1장 토대 : 사랑, 권위, 섹슈얼리티. 2장...
‘신과 진리는 죽었나?’라는 질문에 과학이 답하다 ‘신과 진리는 죽었나?’라는 질문에 과학이 답하다
하나님 존재 가설의 귀환
스티븐 마이어/소현수/부흥과개혁사/조정의 편집위원


1966년 4월 8일 타임지 커버 스토리 제목은 “Is God Dead?”(‘신은 죽었는가?’)였다. 이제 인류의 사상 가운데 ‘신은 죽었다’고 선포한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이 대중에게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반세기가 지나 2016년 타임지는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Is Truth Dead?”(‘진리는 죽었는가?’). 절대자를 지운 인류는 이제 진실과 거짓을 판단하는 기준을 잃어버렸다. 연쇄적으로 따라오는 질문은 “Is Morals Dead?”(‘도덕은 죽었는가?’)일 것이다.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
정보 과식, 폭식, 편식을 피하는 지혜를 배우라 정보 과식, 폭식, 편식을 피하는 지혜를 배우라
지혜 피라미드: 정보 과잉 시대의 그리스도인을 위한 지혜의 토대 쌓기
브렛 맥크라켄/윤상필/성서유니온/조정의 편집위원


 브렛 맥크라켄(Brett McCracken)은 TGC의 선임 편집자다. 그는 교회 안에 존재하는 불편함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교회가 마땅히 감수해야 하는 필수 요소라고 Uncomfortable이란 책에서 주장한 바 있다. 이번에 두 번째로 읽게 된 책 The Wisdom Pyramid는 TGC를 비롯한 여러 기독교 지도자들이 추천한 ‘올해의 책’이었고, 마이클 호튼 등 많은 개혁주의 목사와 신학자에게 추천사를 얻은 책이어서 잔뜩 기대하며 전자책으로 구입했는데, 원서를 읽어보기 전에 <지혜 피라미드>라는 제...
은혜가 은혜되게 하는 복음 은혜가 은혜되게 하는 복음
존 파이퍼의 갈라디아서 강해
존 파이퍼/유정희/개혁된실천사/조정의 편집위원


율법과 은혜의 갈등 관계는 예루살렘에서 열린 사도들의 공의회에서 완전히 결판난 이야기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율법을 자기 의를 내세우는 데 사용한 유대교의 폐해, 율법주의는 자기중심적, 행위 중심적인 죄의 본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예루살렘 공의회로부터 이천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죄인이 구원의 문에 들어서는 것을 가로막고, 문을 통과하여 구원에 이르는 길을 걷고 있는 의인의 풍요로운 삶을 궁핍하게 만든다. 사도 베드로 역시 공의회에서 “우리는(유대인) 그들이(이방인)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라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습관 들이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습관 들이기
크리스천 일상 정리법
저스틴 휘트먼 얼리/우성훈/생명의말씀사/조정의 편집위원


습관의 힘은 막강하다. <크리스천 일상 정리법>의 저자 저스틴 휘트멀 얼리는 “우리 모두 습관의 구체적인 통제에 따라 살아가며, 그 습관은 우리 삶의 대부분을 형성한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찰스 두히그가 <습관의 힘>에서 한 말을 인용하며 “습관이 형성될 때 두뇌는 의사 결정에 관여하기를 완전히 멈춘다”라고 말했다. 듀크 대학이 연구한 결과를 인용하며 “우리가 매일 취하는 행동의 40%는 선택이 아닌 습관의 결과물”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습관은 무의식적으로 반복되지만 의식적으로 선택한 삶만큼이나 우리 삶을 ...
더욱 성경적인 상담자가 되려면 더욱 성경적인 상담자가 되려면
당신의 상담을 돌아보라
밥 켈레멘/신성만, 임한나/생명의말씀사/조정의 편집위원


많은 사람이 ‘기독교 상담’과 ‘성경적 상담’의 차이를 알지 못한다. 단순한 표현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둘 다 상담의 도구로 성경을 사용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기독교 상담은 세속 심리학의 원리와 관찰 및 해석을 비판적으로 수용한다. 성경적 상담은 말 그대로 ‘성경’으로 충분하다고 믿기 때문에, 세속 심리학의 원리를 비판적으로 거부한다. 다만 관찰한 것의 객관적 결과를 (심리학적 해석을 철저히 배제하고) 참고할 수는 있다. 성경적 상담을 창시한 사람은 제이 아담스, 이를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사람은 대표적으로 데이비드 폴리슨이다. 폴...
감사가 사라진 세상에서 범사에 감사하는 기술 감사가 사라진 세상에서 범사에 감사하는 기술
감사의 기술: 삶의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법 연습하기
샘 크랩트리/박상은/생명의말씀사/조정의 편집위원


사도 바울은 말세에 겪는 고통스러운 현실 중 하나로 “감사하지 아니하”는 것을 꼽았다(딤후 3:2). 감사가 좀 부족한 삶이 뭐가 그리 문젠가?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을 알되 마땅히 감사하지 않는 것이 인간 세상에 난무한 모든 불의의 시작이라고 말한다(롬 1:21). 하나님은 만물과 양심을 통해 그분의 신성과 능력을 보이시고 창조주로서 피조물인 우리에게 매 순간 공급하시는 은혜를 보여주시는데도,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그 허망하고 미련하며 어두워진 마음 가운데 내버려 둠을 당하여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터진 웅...
31일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하는 연습 31일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하는 연습
하나님의 속성: 31일간의 묵상
조엘 비키, 브라이언 코스비/이제롬/개혁된실천사/조정의 편집위원


묵상집(devotionals)에 해당하는 훌륭한 자료가 국내 많이 보급됐다. 일반적으로 매일 아침 성경 본문 그리고 그와 관련된 짧은 묵상 글을 제공하여 교훈을 얻고 매일의 실천 사항을 정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을 목적으로 사용된다. 종종 특별한 주제를 가진 묵상집이 출판되는데, 대표적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집중적으로 다루며 묵상하게 하는 마크 존스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다(복있는사람, 2018). 2016년에 시편 묵상집인 팀 켈러의 <묵상: 예수의 노래들>도 있었다(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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