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올드해보이지만
80년대엔가 청년대학부에서 엠마오 서적에서 나온 로버트 H 스타인의 ‘비유해석학’을 담당교역자였던 전도사님이 강의를 하셨다(공교롭게도 그 책을 낸 출판사나 그 출판사가 운영했던 고속버스터미널에 있던 서점이나 책 모두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그때 그 강의와 책은 성경을 보는 데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고 지금도 내게 가슴깊이 박혀 있다. 이번에 읽은 시드니 그레이다누스의 ‘구약의 그리스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이레서원)를 읽으며 스타인의 책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던 것은 은연중에 연결고리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시드니 그레이다누스의 책은 제목처럼 구약으로부터 그리스도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를 보여준다. 이러한 주제는 중요하다고 많은 분들이 이야기는 하지만 만만히 볼 주제는 아니다. 부목사로 사역하던 이전교회의 목사님은 가끔씩 사석에서 설교학으로 달라스 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신 분이었는데 설교에서 그리스도(또는 복음)를 언급하지 않는 설교자의 문제를 심각하게 지적하곤 하셨는데 결국 그것은 성경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약이 아닌 구약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음을 설교자들은 느낄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를 설교한다는 명목 하에서 지나치게 무리수를 드는 경우들도 있다. 의도는 좋을지 모르지만 정작 본문은 설교자를 지지하지 않는 경우들이 꽤나 있다. 그럴 때 설교자는 하나님보다 앞서 나가는 것을 포기할 용기와 결단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그것이 단순히 설교자의 오만이나 욕심이라면 본인의 자제와 내려놓음에 달린 문제겠지만 본문에서 벗어남을 설교자 자신이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또 역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왜 구약에서까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음에도 굳이 설교해야 하는지에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설교자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의미가 있는 듯싶다. 저자는 구약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해야 하는 이유와 중요성을 1~2장에서 다룬다. 이것은 결국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독자의 시선을 넓혀준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그런데 이 책의 1~2 장은 어떤 점에서 적잖이 올드해 보인다. 저자의 이 책의 원서의 출간년도도 1999년이니 그 자체만으로도 조금은 올드해보일 수 있다. 최근의 신선하고 감각적인 신학사조나 새롭고 감각적인 신학적 견해와 성경이해도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시사나 경영에 관한 책들이라면 올드하다는 것이 약점이고 시대를 좇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신학과 신앙에 있어서는 꼭 그렇다고 볼 수 없을 듯싶다. 어떤 점에서 올드하다는 것이 전통이나 관습, 통념에 갇혀 있다는 것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복음과 신앙의 중심이라는 절대성 측면에서 그 본질이 달라질 수 없고 성경을 시대에 따라 바라보는 측면이 달라질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 성경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측면에서 그 올드함이 어떤 영역에서 그러하냐에 따라 그 올드함이 부정적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것이 그 중심성을 지키고 그 본질을 견지해나가는 뚝심과 올바름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1~2장은 성경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을 다시 바로잡아 준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고 복음적이다. 비록 낯익고 어느 정도 익숙한 것을 바라보는 것 같지만 그것이 우리가 놓치고 있거나 소홀해졌던 부분을 다시 독려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신앙 시력을 교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3~4장은 구약에서의 그리스도 설교를 교회사적 측면에서 중요인물을 통해 다루고 있다. 이 부분은 앞서 언급했던 스타인의 ‘비유해석학’과 어느 정도 통하는 면이 있는데 시드니 그레이다누스가 구약을 바라보는 교부와 신학자들의 문제를 다룬다면 스타인은 신약에서의 본문해석 속에서의 문제를 다룬다. 물론 스타인은 비유라는 한정된 범위 내에서(그것도 신약이라는 틀에서) 다루지만 결국 두 저자 모두 성경 자체가 말씀하는 것과 그것을 해석하고 설교하는 설교자의 관점의 갭을 좁히기 위해 노력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관점을 얼마나 내려놓으려 하는지를 역사 속 인물들을 통해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5~7장은 설교자들에게 특히 유익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를 어떻게 구약에서 설교하느냐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어떤 면에서 이 세 장은 설교학을 독자들에게 가르쳐준다고 할 수 있다. 5~6장에서 그리스도 중심적인 해석과 설교를 위한 여러 방법을 구약의 여러 본문을 통해 시도하고 보여주며 그 명암을 드러낸다. 특히 7장은 5~6장의 비교하고 분석했던 방법들을 토대로 실제적으로 어떻게 설교할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설교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유익한 도움을 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다시 말하지만 올드하다. 좀 익히 알고 있는 듯한 내용을 다루고 신선해보이지는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복음적이고 실제적인 측면에서 도움이 되는 아주 괜찮은 책이다. 아니 꽤 좋은 책으로 유념해볼 책이다.
설교자는 인기 있는 책들보다는 묵직한 책들을 잡는 것이 진정 긴 목회와 건강한 설교를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패스트푸드는 맛은 있을지 모르지만 정작 장기적인 건강에 있어서는 좋을 수 없다. 역시 밥심으로 살아야 하는 것처럼 설교자나 공동체도 무엇이 내게 영적 건강을 줄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추신: 세 분의 역자가 힘을 모았는데 중량감있는 분들이 함께 번역했기에 이 책의 충실도는 보장할 만한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