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예배를 드리자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예배를 드리자
저자는 묻는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이 거하시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진정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는 전적으로 그분의 주권에 달려 있다. 예배를 진정으로 표현하는 길은 오직 그분의 주권적인 능력과 한없는 은혜를 신뢰하면서 우리의 모든 계획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다”(17쪽). 진정한 예배의 핵심은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삶이다. ‘우리’에게 무슨 이익이 있는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계획을 영원하신 왕 앞에 내려놓은, 깨어지고 겸손한 자가 되는 것이다.
예배는 우리의 근본적인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그 목적이 될 수 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오늘날 경배음악이 대중화되면서 예배 인도자와 예배 연주자, 작사 작곡자와 예배 팀의 영향력이 눈에 띌 정도로 증대되었다. “거의 록 스타에 맞먹는 예배 연주자의 인기,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출판 인세로 예배는 기독교 음반 산업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이제 경배 음악은 그 자체로 한 장르가 되었다. 이러한 경배 음악의 성장은 한편으로는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돈과 명성, 그리고 그것들이 가져다주는 모든 권력이 깔린 지뢰밭에 아슬아슬하게 길을 내는 일이기도 하다”(20-21쪽).
저자에 따르면 하나님은 진정한 예배의 중심이시다. 예배는 그 자체로 목적이다. 예배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은 예배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자신이 세우신 교회에 거하기로 하신 하나님은 예배 안에 자신을 드러내신다. 이것이 성경이 이해하는 예배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찬송 중에 거하시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낮추신다.
예배는 하나님이라는 관념을 사색하는 것이 아니다. “그분이 실재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27쪽).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에 반응하는 것이다. 토저(A.W. Tozer)는 일찍이 예배란 ‘교회가 잃어버린 보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예배를 여시는 분도, 예배의 유일한 중심도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왕이시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 아래 살아간다는 것은 예배자가 되는 것이며, 그 분에게 돌아가 입 맞추는 것이다.
예배는 우리를 향해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 속죄하셨음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예배의 중심이 그리스도에게서 우리로 옮겨지면서 끝내 아름다운 예배를 망치게 된다. 십자가가 없다면 진정한 예배도 없다. 하나님을 보는 것은 바로 이곳,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을 바라보는 것이다”(44쪽).
예배의 모든 경험은 성령이 주관하신다. 성령으로 충만한 예배는 우리를 아버지께로 이끈다.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주님의 영이 자유로워질 때, 그 영이 공동체 모임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독자가 확인할 수 있었던 중요한 가르침 가운데 하나는, 예배에 아름다움과 다양성을 더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양한 감각으로 넘쳐나는 자연계를 창조하셨듯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도 이런 감각과 떨어질 수 없다”(105쪽).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는 다양한 창조성을 발휘하여 열정적으로 예배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천상의 예배’를 살펴본 후, “하나님은 여러 가지 감각으로 표현하는 찬양을 즐거워하신다”고 요약한다(114쪽).
우리는 자신의 언어와 리듬, 문화를 사용하면서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하나님은 최초의 예술가이시다. 하나님은 그분이 창조물 안에 심어두신 창조성과 열정이 메아리치는 예배를 즐거워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에서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표현을 계발해야 한다.
본서는 예배의 본질에 대해 성경적 접근을 하고 있다. 또한 예배인도 사역을 통해 저자가 얻은 통찰이 본서 곳곳에 녹아들어가 있다. 예배의 의미를 알고자 하거나 참된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본서를 필독서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