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인기 없는 설교 배우기
인기 없는 설교 배우기
설교 준비할 때 가끔씩 유혹을 받는다. 설교 준비하다가 어떤 예화를 이 설교에 넣으면 성도들이 감동하고 은혜 받았다고 하거나 설교 재미있었다고 반응할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본문의 흐름과 맞지 않거나 성경해석과 따로 놀 때 또는 설교보다 예화가 더 부각될 것이 자명해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고민하다가 결국 그 예화를 빼버리고 만다. 그러면서도 인간적인 욕심으로는 아쉬울 때가 있다. 사람들의 칭찬이나 호응보다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지가 더 중요하고 하나님이 지금 설교를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기를 원하시는지는 타협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기에 아쉬워도 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는 예화만이 아니다. 어떤 때는 설교의 중심을 잡고 그 주제와 구성을 이루어갈 때도 마찬가지이다. 본문을 해석해 나가다 보면 성도들에게 어떤 해석이 더 흥미롭고 인기가 있을지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아니 내 자신이 좀 더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을 때도 있다. 성경의 흐름과 주제가 나의 해석과 의도와 동일할 때도 있지만 조금씩 어긋날 때도 있다.
그런데 성경에서 벗어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내 의도가 조금 더 앞선다면 그것도 포기해야 할까? 예레미야 7장 2절에서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라고 말씀하신다. 여호와의 집 안이 아니라 문이다. 그것은 결국 그 안에 들어가 봤자 하나님을 만날 수 없음을 말씀하심이다. 하나님의 집이라 하여도 하나님께 순종함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더 이상 하나님의 집이라 말할 수 없다. 설교는 그런 것이다. 목회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렇지 않을 때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 그러기에 목회자의 설교는 세상이 원하는 것과 다를 수밖에 없고 세상의 교훈과는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병수 목사의 설교집의 제목이 ‘역설’인 것은 목회자와 설교의 위치와 역할이 어떤지를 드러내기 위함이었을 듯싶다. 아니 목회자와 설교의 위치와 역할이 그런 것을 넘어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독교가 그렇다. 만일 교회나 기독교가 지나치게 세상과 친화적이라면 이미 그 정체성을 잃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성도들이 교회나 말씀에 대해 지나치게 열광적이고 인기가 있다면 그 원인은 성도들과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올곧게 순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갈망함이 크거나 아니면 교회와 기독교가 세속화되어 세상을 만족시키고 있다는 것이 될 수 있을게다.
이에 대한 평가는 우리가 조금만 좀 더 말씀에 정직한다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어렵지 않게 얻게 되지 않을까? 자기 자신의 심령이 무뎌있지만 않으면 말이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올곧게 전하는 설교는 세상에서 인기 있는 설교와는 심심하고 재미없을지 모른다. 또는 사람들이 듣기를 원하거나 세상의 가르침에 비해 불편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설교집은 인기 있는(?) 설교집이나 사람들이 원하는 설교하고는 거리가 있다. 그것은 저자가 그런 설교를 할 줄 몰라서가 아니다. ‘역설’이란 제목처럼 세상과 충돌하더라도 세상의 교훈에는 역설인 교훈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이 또한 제자의 길이기 때문이다. 제자도 자체가 역설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물결을 거스리는 이이다. 이 설교집은 작고 분량도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읽고 내 자신의 삶이 역설의 길을 가는지 돌아볼 기회를 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