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계몽된(거듭난) 인간을 향하여
계몽된(거듭난) 인간을 향하여
어떤 신학자는 ‘신학’을 ‘인간학’이라고 표현하였을 만큼 사실 인간(실존)을 배제한 신학이나 종교학은 스콜라주의로서 사변으로 치우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많은 신학자들이 그러하듯이 나도 인간의 이해가 신에 대한 이해만큼 신학과 신앙(종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즉, 경전에 대한 연구 만큼 우리는 인간(피조 세계)에 대한 연구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바르트가 말한 신문만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창조주와 피조물의 상호 소통의 방식과 그 내용들을 연구하는 것이 신학의 궁극적 목적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최근 얼마 전부터 몇몇 출판사들이 앞다투어 로완 윌리엄스에 대해 경쟁적으로 출판을 하고 있어서 이제 굳이 윌리엄스에 대한 소개는 필요 없으리라 생각된다(나도 2권을 서평 했다). 저자 윌리엄스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이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주제로 ‘참된 인간이란 어떤 인간인가?’라는 답을 찾아가고 있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 “계몽된 인간”이라는 표현을 통해 이 책의 목적을 마무리 하고 있다.
의식
윌리엄스는 이 책 전체에서 현대 과학주의로 인해 팽배해 있는 환원주의(물질주의)에 대해 매우 심각한 우려를 보이고 있다. 그 첫 단추로 “(인간의) 의식”을 주제로 이 책의 문을 연다. 사실 “의식”은 생명과학, 심리철학, 현상학 등에서 지금도 치열하게 논의되고 있는 부분이라고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저자도 깊고 복잡한 주제로 들어가기보다는 “의식”이 환원주의가 말하는 기계(몸)를 작동시키는 그 무엇은 아니며, 의식이 몸과 분리될 수는 없지만, 환경이나 사건에 대하여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소통을 통한 새로운 창조적 활동을 하는 것으로서 인간의 몸과 의식의 관계는 기계적 관계가 아닌 유기체적 관계이므로 인간에 대한 연구에서 반드시 신학적 요소가 중요한 위치에 자리 잡아야 함을 피력하고 있다.
개인과 인격
두 번째 장에서는 “개인과 인격”을 대조하면서 현재 만연해 있는 개인 중심의 교육관과 사회, 문화의 가치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이 장에서 말하는 개인은 생물학적으로 분리된 개체를 의미하고, 개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 인격은 상호 관계의 소통 속에서 창조되고 형성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개인주의적 가정(전제)이 우세해 보이는 문화와 노동 환경 속에 있습니다. 즉, 통제에 관한 가정, 갈등을 피할 수 없다는 가정, 우리가 후퇴하여 문을 닫아 버릴 수 있는 사적 영역이 있다는 가정입니다. 이는 내가 출발했던 인격주의 모델과 이 모든 것이 역행하는 문화입니다" (67페이지).
윌리엄스는 독립된 개체성을 개인주의의 뿌리로 보고, 개체성(독립성)을 강조하는 문화가 ‘통제’, ‘갈등’의 문화를 양산해 내는 문화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서 ‘인격주의’는 자신을 독립(자립)시키고 통제하는 삶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지 않고 타자(이웃과 세계)와의 협력과 공동체성을 지향함으로써 개인주의의 파괴적 문화를 인격주의를 통한 회복의 가능성을 피력한다.
"인격이란 흥미롭게 또한 불가피하게 혼성적 실재(hybird reality)라는 이해입니다. 물질세계 안에 뿌리내려져 있고, 시간의 경과에 따라 지배받는다는 면에서 물질적이지만, 동시에 신비롭게 자신의 환경에 반응하여 다른 환경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정해진 의제를 뛰어넘어 주변을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 나는 기계도 아니고 자족적인 영혼도 아닙니다. 누군가가 내게 말하고 주목하기 때문에 나는 한 인격이고, 누군가가 내게 말하고 주목하고 나를 사랑함으로써 나는 현실의 존재가 됩니다"(69페이지).
즉, 인격성은 나 스스로 획득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자에 의해 관계 속에서 부여되는 것으로서 내가 볼 수 없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이 항상 존재한다는 저 편만하고 신비롭고 영속적인 인식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유한함의 중요성
3장의 “몸, 마음, 생각”에서는 실천적 지성의 개발을 말하면서, 참된 지성은 통제나 분열(편가르기)이 아니라 연합과 연대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우리 몸의 한계성, 몸이 접촉할 수 있는 환경의 한계성, 이러한 유한함과 한계를 지닌 자신의 지식으로 자신의 삶 전체를 통제하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며, 통제가 아니라 오히려 공감과 소통, 그리고 관계해야 하며 여기에는 반드시 인내와 시간들임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4장의 “믿음과 인간의 번영”에서는 종교적으로 계몽된 인간의 성숙을 위해 ‘의존과 자율성’, ‘욕망의 교화’, ‘시간의 경과’, ‘유한성의 수용’이라는 4가지 훈련을 제안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 5장의 “침묵과 인간의 성숙”에서는 성장과 관계 속에서 “침묵”의 중요성과 그 가치를 설명하면서 마무리를 하고 있다.
계몽된 인간
나는 이 책을 통하여 현대의 문화 속에서 ‘신학의 소외’에 대한 저자의 우려가 매우 깊게 느껴졌다. 신학이 없는 신앙과 환원주의(물질주의, 과학적 실증주의)의 문화 속에서 파생된 현재의 ‘인간’에 대한 이해로 인해 ‘자율성’과 ‘독립성’만을 강조함으로 본래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한계성(유한성)’, ‘인격성’, ‘공동체성(관계성)’을 상실함으로 점점 인간은 괴물이 되어가고 인간의 사회는 분열(단절과 소외)되어가고 있음에 대한 저자의 엄중한 경고가 느껴진다.
인간은 ‘독립’과 ‘자율’ 그리고 ‘자기통제’을 통해 탁월한 개인이 됨으로 인간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 세상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진정으로 자기 자신 다운 인간다움을 향할 수 있다. 그래서 반드시 신앙과 세상의 문화 안에 ‘신학’의 자리가 필요하며, 그 무엇보다 지금! 신학(존재 간의 관계와 소통을 말해주는)을 통한 계몽이 절실하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이 책은 모든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읽고 토론해 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