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1999년 4월 20일, 미국 고등학교 무차별 총기난사사건 그 이후
1999년 4월 20일, 미국 고등학교 무차별 총기난사사건 그 이후
이 책은 제목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최대한 늦추고 미루어 읽은 책이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용기도 없고 내용이 너무 무거울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다 읽고 났을 땐 이 책을 추천해준 동료가 고맙게 느껴졌다. 편한 책읽기보다 불편한 책읽기가 언제나 우리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이 책의 영어 부제는 A mother’s reckoning, living in the aftermath of tragedy이다. 비극의 여파와 후유증을 살아내야 하는 한 가해자 엄마의 생각(셈, 계산, 추정)이라는 뜻이다.
1999년 4월 20일 낮 12시 5분, 미국 콜로라도에 있는 콜롬바인 고등학교에서 최악의 사건이 일어났다. 딜런과 에릭이라는 고3 공범 2인조가 무차별 총기난사로 13명을 죽이고 25명에게 중상을 입힌 사건이다. 대학 행정실에서 일했던 딜런의 엄마는 여느 엄마들처럼, 아니 어느 엄마보다 더 잘 이 아들을 씻기고 안아주고, 책 읽어 재워주고, 기도하며 키웠다. 아이는 쾌활 다정 차분했고, 걱정을 끼치지 않는 자립적인 꼬마 기병 같이 자랐다. 내성적이고 자의식이 강해 망신당할 위험을 겁내며 실수를 가볍게 웃어넘기지 못하는 작은 단점은 있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자신이 살인자의 엄마가 될 수도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해 보았다. 그녀 자신도 이 끔찍한 사건을 TV에서 남의 일로 들었다면,‘그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키웠길래’라고 생각하며 똑같이 비난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청천벽력처럼 자신의 일이었고 폭풍같은 언론 취재세례를 받았다. 여러 언론 비난 중 부모로서 존재감 없이 한심하고,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그래도 좀 나았다. 이후 괴물을 키운 엄마로 불리우며 피해자들로부터 36건이 넘는 고소를 당하고, 말할 수 없는 비난을 들어야만 했다. 자신도 아들을 잃었지만 분노한 대중들 때문에 자살한 아들 딜런의 장례식은 제대로 치를 수도 없었다. 현실을 인정할 수가 없어서 날마다 울고 절규했다. 그러다가 고민 끝에 그 가족들에게 애도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죽거나 다친 피해자들을 하나로 묶어 희생자집단으로 치부해 버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욕먹을 일인 줄 알고 있었고, 절대 용서나 이해를 받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최소한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말할 기회는 얻고 싶어서였다.
아들의 범죄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더 힘들었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애도의 시간. 날마다 죽음을 생각했고 살아있는 것이 치욕스러웠다. 아무 음식도 넘어가지 않고 실성할 것 같이 멍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견디기 힘든 수많은 비난 속에서도 선한 이웃과 직장상사 동료 그리고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위로도 많았다. 몇몇 사람들은 날마다 전화하고 안아주었으며, 한 친구는 사건이후 맞는 첫 어버이날에 여기저기 방치되어 있던 모든 화분에 각색의 꽃을 심어 정원을 장식해 주고 가기도 했다. 직장이었던 대학의 총장은 다섯 시간정도의 파트타임으로 다시 불러내 일할 수 있게 해주었고, 직장동료들에게로 오는 모든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도 차단해주었다. 직장은, 양말 하나를 신으려 해도 4시간이나 걸리고 눈물이 마르지 않았던 그녀의 정체성을 되찾아가게 해주는 일종의 재활 치료 장이었다. 생각 없이 하는 작은 말 한마디에도 맘 다치고 좌절할 때가 있었지만 그래도 바깥으로 나오는 것이 궁극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남편은 깊고 깊은 동굴로 침잠해 들어갔고 빠져나오지를 못했다. 아이가 죽은 뒤에 이혼율이 급증한다는 통계가 있는데 이는 남자와 여자의 애도방식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아이가 자라나서 어떤 존재가 되지 못한 것과 사라진 미래를 슬퍼하고 있었고, 여자는 자기가 기억하는 아이를 잃은 것을 슬퍼했다.
사건의 주도적인 공범자인 에릭은 군인의 아들이었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아이였다. 이 둘은 원래 점심시간 때 터지게 되도록 학생식당에 폭발물을 설치했었는데, 그것이 실패하자 도서관으로 가서 총을 난사했다. 총기공격은 사실상 학교 전체를 날려버리려는 폭발 계획이 실패한 결과였다. 친구 에릭은 딜런의 우울증적 분노를 이용해 자신의 가학성을 부추겼고, 딜런은 에릭의 파괴충동을 이용해 수동성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아들 딜런은 이미 2년 전부터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사건 당시 자신의 단순 실수에 대해 일주일 정학을 내린 학교의 부당한 처우와 공평하지 않음에 분개하고 있었다.
부상으로 야구의 꿈을 접어야만 했던 상처, 여자 친구가 없는 외로움과 친구들 사이에서의 소외감, 에릭과 게이관계라는 주변의 놀림에 대한 분노. 그 외에도 딜런은 가정에서 형의 비행문제와 아버지의 건강악화로 인한 수술, 그리고 자신의 대학등록금 등의 문제로 고민하며 스스로 깊은 우울증의 늪에 빠져 있었다. 엄마가 나중에야 발견한 낙서 같은 유서에는 “나는 더 나은 곳으로 가게 될 거니까 죽음이 두렵지 않다. 사는 게 그다지 좋지 않았으니..”라고 적혀 있었다. 딜런은 황폐한 안개 속에 있는 듯 했고 자기가 속할 수 없고 이해받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 분노했다. 그리고 자의식이 강한 회피성 인격 장애로 변해갔다.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으로 에릭과 함께 폭발물과 총을 샀다. 그리고 세상에 복수하고 자살할 결심을 실행해 옮겼다. 삶에서의 강한 열등감과 우울증은 사람의 판단과정에 혼란을 초래하는 법이었다. 딜런은 괴롭힘과 공격의 대상이 되었을 때 그 사실에서 수치심을 느끼고 고통을 자기 탓으로 돌렸을 것이다. 이 때 분노와 우울을 부추기는 게 아니라 달래줄 친구나 동지가 옆에 있었다면 문제는 달라졌을 것이다.
엄마는 고백한다. ‘나는 기질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이다. 설교하고 고치려고 하는 대신 귀를 더 많이 기울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고 전문가들에게 묻고 스스로 연구하며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깨닫는다. 긴 우울증과 병적인 정신이상을 겪으면 뇌의 사고가 망가져 버렸을 때 그 사고에 휘둘리게 된다는 것. 정신건강 관련 지원이 많아질수록 폭력이 줄어든다는 것. 정말로 폭력을 막고 싶다면 무기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많은 미국인들은 무기를 소지하고 스스로를 지킬 권리가 있다고 믿으며, 전미총기협회에서는 끊임없이 정부에 로비를 하고 있다). 사건 발생 때 ‘왜 그런 일을?’보다는 ‘어떻게?’라는 질문이 먼저여야 한다는 것. ‘왜?’만 물으면 해결책 없이 단순한 답에 안주하게 된다는 것 등. 그래서 그녀는 엄마들에게 아이의 치아나 용돈 영양관리의 중요성보다 뇌건강의 중요성을 먼저 생각해 볼 것을 강조한다. 100년 전 아이들이 전염병에 취약했던 만큼이나 오늘날 아이들은 뇌건강 문제에 취약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썼던 뇌 과학자 폴 칼라니티는 학생 때 실습 나갔던 정신병원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지극히 정상이었던 사람들이 뇌질환으로 인해 소리를 지르며 통제 안 되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상황, 기억회로에 손상을 입거나 서로를 해치기까지 하는 상황을 보며 뇌 연구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정신이상’ ‘정신건강’이라는 용어보다 ‘뇌건강’ ‘뇌질환’이라는 용어가 적합하다고 한다. 자살과 폭력과 뇌의 병 사이에는 명확한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딜런도 우울이나 망상, 회피성 인격장애 등 뇌건강의 문제로 인해 자살로 생을 마감하려는 욕망을 품게 된 것이 틀림없다.
현재 미국 자살방지 협회에서 자원봉사하고 있는 저자 수 클리볼드는, 가해자가 괴물로 그려져서 보통가족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느끼게 안도감을 주는 것은 거짓이라고 강조한다. 자신의 아이가 평범한 가정의 아이였다는 진실을 이야기함으로써 다른 엄마들이 무시하지만 매우 취약할 수 있는 인식을 일깨우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언론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았다. 자극적이고 경쟁적이고 지나치게 사실적인 보도는 청소년들에게 청사진을 제공해 모방범죄를 낳게 한다는 것이다. 때로 람보처럼 여럿을 죽인 아들 딜런을 영웅시하는 편지들을 받으면 혹독한 증오가 담긴 편지를 읽을 때보다 괴로웠다. 실제 그 이후 버지니아 공대 조승희 사건을 비롯한 모방범죄가 36건까지 일어났던 것이다.
이 책은 외국저자의 것임에도, 엄마로서의 절절하고 정직한 마음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어 전혀 거부감 없이 쉽게 읽혔다. 슬픔이 공포와 비슷하게 느껴졌었다는 그녀지만 결국 큰 절망을 버텨냈고 지금은 66세의 나이임에도 재발 방지를 위해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강연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충분한 애도와 비판을 견디게 해주는 주위의 사랑 그리고 다시 일어설 힘의 회복.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마침내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순환. 그녀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극단적 상실과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청소년의 특징은 ‘과대망상과 미숙’이므로 더 많은 대화를 필요로 한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집에서 툴툴거리며 반항적으로 대들 때, 그때는 야단치며 바로 잡을 때가 아니라 더 많이 들어주며 대화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늘 괜찮다고만 말하는 아이에게 그냥 그런 줄 알고 지나치는 무심한 부모가 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내 아이를 말 안 통하는 외계인으로 볼 게 아니라, 부모인 나도 다 알 수 없는 우주인으로 바라보자. 거꾸로 아이에게 부모가 말도 안 통하고 하고 싶지도 않은 외계인으로 여겨지기 전에.
자녀와의 관계, 세심한 관심과 소박한 사랑이 해법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