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벽돌 같은 책에 담긴 설교자와 설교의 무게
벽돌 같은 책에 담긴 설교자와 설교의 무게를 생각한다
벽돌하나를 격파했다. 몇 달 동안 노력했지만 제대로 진행이 안 되다가 이제야 끝내게 되었다. 900쪽에 거의 육박하니, 벽돌보다 두껍고 무게도 얼추 그것에 견줄만한 책 한권을 겨우 다 읽었다는 이야기다. 소설도 900쪽에 달하면 아무리 재밌어도 조금은 숨 가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설교역사에 관한 책인데 분량이 이 정도니 결코 만만하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용을 떠나서 꽤 흥미 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단순히 설교의 역사가 아니라 부제에서 언급하듯 설교를 행한 설교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한국교회 설교역사’가 아니라 ‘한국교회 설교자 역사’라 제목을 붙이는 것이 더 타당할 듯싶기도 하다. 어쨌든 이 책은 한국교회초기부터 현대의 목회자들 가운데 이미 소천하신 분 중에서 목회자들을 선정해서 그의 인생과 사역, 설교의 특징들을 이야기한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파란만장한 격변의 한국근현대사를 사신 분들이기에 이 분들의 삶은 웬만한 소설의 주인공 이야기를 넘어설 정도로 극적이고 드라마틱하다. 죽음의 위기를, 어떤 이는 질병이나 살해 위협과 전쟁 등등을 각기 겪거나 중첩되어 겪곤 한다. 그 가운데에서 적지 않은 분들이 하나님을 극적으로 만나 목회자의 길에 들어서기도 하고, 또 새로운 도약이나 정결의 과정을 겪는 경험 등을 하곤 한다. 결국 하나님과의 깊이 있는 만남을 통해 설교자가 어떤 존재이고, 설교가 무엇인지를 깨닫곤 한다.
그런 속에서 각각의 설교자로서 그 시대와 상황에 필요한 설교의 소명을 감당한다. 종종 이런 설교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들이나 설교비평에 관련된 책들은 설교자를 히어로나 성자로 그리거나 그들의 설교에 대해 칭찬 일변도로 가득한 경우들이 있곤 한다-비평이 있더라도 구색 갖추기 식.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설교자와 그분들의 설교에 대해 일방적 찬양을 하거나 과오에 대해 합리화나 변명을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들의 과오를 드러내고 비판하지만 그 비판이 비난이 아니라 안타까움을 담은 애정 어린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교계의 어른이고 존경스러운 분들이지만, 역사를 살아가면서 당대의 상황이 그렇다 할지라도, 어떤 분은 신사참배로 어떤 분은 독재자를 위한 국가조찬기도회를 주도하거나 그들의 정통성을 합리화하는 일들에 대해 기여한 일들은 분명 그분들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일수 밖에 없다. 종종 어떤 이들은 고의나 굴종이라기보다는 시대를 바라보는 눈의 둔감성으로 인해 제대로 깨닫지 못해 잘못된 결정과 행동을 한 분들도 일부는 있을 게다. 그것을 직시할 때 뒤를 좇는 후배 설교자들이 똑같은 전철을 밟지 않는 일에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설교자와 설교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아무리 설교자가 자신의 설교를 지혜와 지식, 그리고 멋들어진 문체로 포장해도 그 설교의 진솔성의 진위는 멀지 않아 드러날 것이다. 책에 담긴 설교자들의 삶을 보면, 그들의 설교가 갖는 진정성을 볼 수 있다. 그들의 걸어온 인생여정이나 인격, 그리고 무엇보다 영성이 그들의 설교의 성격과 능력을 담아낸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그런 것 같다. 이 책은 전반부에 설교가 갖는 중요성과 의미와 역할을, 후반부에 한국교회의 설교 위기와 그 해결책을 서술한다. 이 책은 이 부분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다.
그 글에 담긴 저자의 주장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결국 이 시대의 문제는 설교자들이 갖고 있는 그 무게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문제는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 벽돌 같은 책 한권을 끝냈지만 이 책에 실린 설교자들의 무게는커녕 책 한권의 무게보다 가벼워 보이는 내 영성을 생각하니 마냥 주눅 드는 것은 나만의 고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