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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냉소적인 시대에 신앙을 소통하기

크리스찬북뉴스 | 2017.10.26 08:27
냉소적인 시대에 신앙을 소통하기 팀 켈러의 설교/팀 켈러/채경락/두란노/김상일 편집위원

팀 켈러(Tim Keller)의 설교냉소적인 시대에 신앙을 소통하기(Preaching-Communicating Faith in an Age of Skepticism)는 독자들이 일반적으로 설교라는 주제에 대해서 기대하는 것과는 약간 다른 책입니다. 두가지 면에서 그러한데, 첫번째로, 이 책은 설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책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설교의 테크닉에 관한 부분이 말미에 약 20쪽 정도에 걸쳐서 나오긴 합니다만, 켈러 자신은 이 책이 설교의 어떻게에 관한 책이라기보다는, 설교의 무엇을에 관한 책이라는 사실을 책 전체를 통해서 더욱 강조합니다. 따라서 그런 부분을 기대하고 읽는 신학생이나 목회자는 약간 실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켈러가 이 책에서 다루는 부분들은 설교자의 설교를 더욱 풍성하게, 더욱 근본적으로 설교라는 직무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제공할 뿐 아니라, 틈틈이 켈러 자신이 뉴욕 맨하탄이라는 자신의 목회적 상황 속에서 어떤 문제들과 질문들에 부딪혔고, 그 질문들에 어떻게 답하고자 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노하우에 관해서도 굉장히 만족스러운 답을 여러 면에서 제공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로, 이 책은 설교에 관한 책뿐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책은 책 첫 부분에서 다루듯이, 그리스도인의 말씀 사역” (ministry of the Word)의 세 가지 측면을 다루면서, 교회에서 예배 시간에 행해지는 공식적인 설교를 훨씬 넘어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신앙을 소통하는데 꼭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 다룹니다.

 

켈러는 성경에서 말하는 말씀 사역의 세가지 차원을 level 1, 2, 3로 나누고, 거기에는 설교(level 3: 근거-사도행전에 나타나는 바울과 베드로의 공적 설교들)를 포함해서,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공적인 신앙의 소통과 가르침(level 2: 근거-베드로 전서 4:10-11),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사람들과 신앙을 소통하고 교류하는 (level 1: 근거-골로새서 3:16) 이 세가지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그리스도인의 말씀 사역을 훨씬 더 풍성하게 다룹니다. 물론 설교가 가지는 독특한 중요성에 대해서도 절대 놓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설교가 오늘날의 교회에서 중요하고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만큼이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설교를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신앙을 소통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이 책은 단순히 기독교 사역을 직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 뿐 아니라, 자신들의 신앙을 사람들과 소통하는데 관심이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게 된 그리스도인들은 저절로 그러한 관심이 생기게 될 것이라는 것이 이 책의 전제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을 대상으로 하게 되고,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책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각설하고, 켈러는 좋은 설교는 항상 두가지 책임을 수반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첫번째로 성경 본문에 대한 책임이며, 두번째는 특정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을 향한 책임입니다. 첫번째 책임과 두번째 책임은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으로 하나로 귀결됩니다. 성경에 나타나신 그리스도를 현대를 살아가는 삶 속에 나타나시는 그리스도로 선포하는 것, 그것이 설교자의 임무입니다. 그리고 켈러는 이런 작업을 위해서 세 가지 직무를 말합니다. 첫번째는 복음을 아는 것이며, 두번째는 특정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하면 변화하는지를 아는 것이며, 세번째는 설교자 자신의 깊은 내적 동기와 영적 성장을 성령의 도움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서평은 이 세가지 직무를 켈러가 어떻게 다루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 직무복음을 아는 것

 

켈러는 복음을 설명할 때 타력 구원으로서의 복음의 정반대 개념인 자기 구원(self-salvation)과 대치시켜서 설명합니다. 켈러에 의하면, 공동체 중심의 전통적인 사회에서도, 개인 중심의 현대의 서구 사회에서도, 자기 구원의 방식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그것은 각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과 자기 가치를 세우는 방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개인이 속한 공동체에서 요구하는 기대치와 역할을 얼마나 충실하게 달성하느냐가 각 개인의 정체성과 가치를 결정짓는 잣대가 됩니다. 현대의 서구 사회에서는 그와는 달리 공동체에서 무엇을 요구하는냐와는 아무 상관이 없이, 각 개인이 얼마나 자신의 고유한 개성과 욕구를 잘 표현하느냐가 각 개인의 정체성과 가치를 결정짓는 잣대가 됩니다. 이 두 가지 방식이 가진 공통점은 정체성과 가치를 모두 개인의 노력과 열심으로 얻을 수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자기 구원을 추구하는 것이 이 두 가지 방식의 공통점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에서 보듯이, 이런 식으로 자기 구원을 추구하는 사람, 즉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를 자력으로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반드시 다른 사람, 특히 자신보다 이런 노력을 덜하는 사람을 깔보거나, 혹은 이런 일에 더욱 뛰어난 사람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자신이 일하고 노력한 만큼 하나님께 대가를 요구하려고 하며, 충분히 일하지 못했다고 느낄 경우 하나님께서 자신을 바라보시는 가치가 위축될 거라고 느끼며, 자신이 열심히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고 노력했다고 느낄 경우 자신의 가치가 더욱 인정받아야 한다고 하나님 앞에서 주장합니다. performance에서 identity를 찾게 될 경우 끊임없이 개인의 performance에 따라서 identity가 달라지게 되어 있으며, 그것은 끊임없는 비교와 갈등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복음은 우리 각 개인의 identity를 우리 각자의 performance에 두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인정에 두라고 촉구합니다. 그리고 그를 통한 정체성과 우리의 가치에서 시작하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소중하며 독특한 존재인지를 우리의 깊은 마음밭이 보게 되면 될 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 더 선하고 독특한 열매들을 많이 내게 될 것이라고 복음은 말합니다.

 

이와 아울러, 자력 구원적 접근이 가진 맹점에 대해서 켈러가 경계하는 것은 기독교에 대한 도덕주의적 이해입니다. 즉 기독교는 착하고 정의롭게 살라고 말하는 것이고, 그게 기독교의 전부라고 말하는 접근에 대해서 켈러는 매우 경계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제대로 듣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 저절로 복음 = 도덕이라는 공식을 세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켈러에게 있어서 이 공식을 깨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급선무가 됩니다. 이 공식을 깨지 않는 이상 사람들이 복음을 원래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그대로 들을 방법은 없으며, 심지어 교회에 다니는 신자들에게서도 복음 = 도덕이라는 전제가 은연중에 발견되기 때문에, 켈러는 모든 설교는 계속해서 복음을 전해야 하며, 복음은 도덕이 아니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강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도덕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선한 행위로 자신의 가치를 얻으려는 인간의 노력이라고 본다면, 도덕주의가 왜 자력 구원의 일환인지에 대해서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추가적으로, 켈러는 이러한 도덕주의와 자력구원이 문화간 차이를 뛰어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특별히 인류학자들에게서)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관련 자료 및 연구가 저에게는 없기 때문에 혹시 나중에 관련 연구를 보게 되면 추가적으로 생각을 나누는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두번째 직무특정 문화권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변화 역동을 이해하는 것

 

이 두번째 직무에 대해서 켈러는 첫번째 직무만큼이나, 혹은 그 보다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합니다. 그만큼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이 처한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복음을 전하고 신앙을 소통하는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켈러의 이 책은 이 부분(4, 5, 6)만으로도 충분히 책을 사서 읽어볼 가치가 있습니다. 이 부분은 켈러가 생각하는 신앙이 문화와 소통하는 방식에 대한 큰 그림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켈러가 이해하는 설교를 통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신학적 인간학에 대한 큰 그림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4장에서 켈러는 특정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과 신앙에 관한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그들과의 공감대를 찾는 것도, 무조건 그들을 향해서 반박하는 것도 아닌, 반박하고 도전하기 위해서 공감대를 찾으라고(adapting in order to confront) 말합니다. 이런 소통 방식에는 단순히 상대방과의 대화를 이끌어 나가기 위한 전략적 차원을 넘어서는 켈러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깔려 있습니다. 즉 어떤 문화든지 간에 복음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없는 문화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부분이 어떤 문화에나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들과 신앙을 소통하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그들이 속한 문화 안에 있는 복음과의 접점, 즉 복음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 것입니다. 이런 작업은 그 자체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들을 이해하려고 하고 소통하려고 하는 노력이 없이, 단순히 신앙을 소통하는 것을 기술적인 차원으로만 이해하기 시작하면 사랑이 없어지게 되고, 사랑이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게 되기에 그렇습니다.

 

또 하나 명심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기독교 = 복음이라는 공식에서 탈출하는 것입니다. 켈러는 책 전체를 통해서 복음의 완벽한 타자성을 말합니다. 즉 복음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절대로 완벽하게 이해하고 소유했다고 말할 수가 없기에, 어떤 경우에도 복음을 소통하려고 하는 내가 복음과 동일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혹은 기독교가 복음과 동일하다고 생각하고 신앙을 소통하기 시작할 경우, 우리가 대화하는 대상을 향해서 우리는 은연 중에 우월감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은 복음이 말하는 우리의 죄인됨에 정면으로 대치되며, 우리의 우리 된 것이 은혜를 통해서라는 바울의 고백에도 반대되는 마음가짐이기에 그렇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을 계속해서 유지한다는 전제 하에, 켈러는 특별히 사람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그들이 신뢰할 만한 자료를 인용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신앙이 다루는 각각의 주제에 대해서 자신이 인용했던 학자들의 저작을 언급하는데, 세속 문화의 흐름을 이해할 뿐 아니라 그를 통해서 사람들이 가진 생각의 흐름을 읽어내고자 하는 설교자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가이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 간단히 켈러가 각 주제에 대해서 제시하는 학자들을 언급하고 지나가겠습니다. 참고로, 여기 언급된 학자들은 모두 기독교 신자가 아니며, 때때로 무신론자들도 있습니다.

 

우상: 소설가이자 문학가이며, Pomona College 교수였던 David Foster Wallace는 스스로 신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무언가를 섬기고 예배한다고 말했습니다. 즉 기독교의 예배 개념과 접점을 찾을 만한 얘기를 한 것이지요. 아울러 그는 우상을 섬기는 것에 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사탄: 컬럼비아 대학의 Andrew Delbanco는 자신의 책 The Death of Satan에서 악과 사탄이 단지 사회구조적이고 심리적인 요소로만 환원되는 현대인의 문화적 관점이 악의 총체적 차원을 놓치게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특이한 주장이지만, Delbanco가 기독교 신앙이 없음에도 이런 주장을 한다는 것에서 충분히 신앙이 없는 사람들과의 접점을 세우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원죄: 영국의 무신론자 지식인이었지만, 이후에 신앙을 갖게 된 C.E.M. Joad는 원죄에 대한 거부 때문에 좌파 지식인들이 사람들이 합리적이지 못할 때 실망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즉 원죄 교리가 사람들의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부분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기능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리서치를 해본다면 아마 굉장히 많은 경우 신자가 아닌 학자나 지식인들이 복음이 말하는 통찰에 공감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켈러는 말합니다. 남은 것은 설교자들이 계속해서 문화와의 대화를 통해서 공감대를 찾아가는 것이며, 사람들이 신뢰할 만한 근거 제시를 통해서 복음을 신뢰할 만한 것으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각 사람이 처한 문화에 대한 이해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사람은 복음을 듣고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관한 것입니다. 켈러는 6Preaching to the Heart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아주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켈러의 신학적 인간학의 핵심을 볼 수 있는 이 장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바로 마음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마음이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감정이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논리적 생각을 관장하는 이성도 아닙니다. 마음은 오히려 우리의 감정과 이성, 그리고 의지를 모두 관장하는, 우리의 모든 행동과 말의 중심이 되는 동기 구조(motivational structure)를 말합니다. 같은 차원에서, 켈러는 이 장에서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들의 질서 구조라는 말을 또 합니다. 즉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고 신뢰하든지 간에, 그것을 우리의 이성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우리의 감정은 그것을 가치있다고 느끼며, 우리의 의지는 그것을 할만한 일이라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이 제대로 선포될 때 나타나는 현상은, 첫번째로 우리의 동기 구조가 드러나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사랑하고 믿고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가 드러나게 되며, 두번째로 그러한 드러남을 통해서 복음은 우리가 근본적으로 믿고 사랑하고 따르는 것보다 그리스도께서 더 우월하심을 설득하며 선포하며 보여줍니다. 이런 작업에서 복음에 대한 선포로서의 설교는 분명하고 논리적이어야 함과 함께, 또한 실제적이어야 합니다. 실제적이라는 말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는 그 순간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현존하시고 계심을 그들의 마음이 알 수 있도록, 즉 그들의 동기 구조에 균열이 갈 수 있도록 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알 수 있도록, 그들의 동기 구조에 균열이 생길 수 있도록 전하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켈러는 자신과 대화했던 한 소녀의 예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실제적이 된다는 말에 대해서 예를 들어 줍니다. 그 소녀는 자신이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없는 것에 굉장히 상심하고 있었고, 켈러는 그 소녀를 위로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소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요.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도 알고 있고,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리고 내가 천국에 갈 거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학교에서 나를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한 명도 없는데 그 모든게 무슨 소용이죠?” 이 소녀의 마음에 대한 켈러의 분석은 이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이 소녀를 향한 사랑은 이 소녀에게 있어서 실제적이지 않습니다. 이 소녀의 자기 정체성과 가치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그리스도의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남학생이 자신을 알아주고 좋아해주느냐 입니다. 따라서 복음이 제대로 선포되면 이 소녀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사랑해주시고 계시며, 그 사랑의 크시고 위대하심이 대단하기에 그 소녀가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없는 것이 적어도 지금만큼 크게 마음을 어렵게 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입니다. 설교는 바로 이런 변화를 이끌어내는 작업입니다. , 복음이 선포될 때 이 소녀가 실제로 마음에 두고 있는 신뢰 구조, 동기 구조가 바뀐다는 말을 켈러는 하고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예들은 켈러가 수많은 설교를 통해서 보여주었으니 그의 설교 한 편을 유튜브나 아이튠즈를 통해서 들어보시는게 이 글에서 예를 드는 것보다 더 빠를 것 같아서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마지막 직무로 넘어갑니다.

 

세번째 직무성령의 도움을 통해서 설교자 자신의 내적 동기와 영적 성장을 아는 것

 

마지막으로 켈러가 하고자 하는 말은, 설교는 복음을 알아야 하는 작업이며, 또 사람들과 문화를 알아야 하는 작업인 것 만큼이나 설교자 자신에 대해서 깊이 통찰해야 하는 작업입니다. 그 까닭은, 설교자가 앞에서 얘기한 첫번째와 두번째 직무를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없이도 자신의 재능만으로도 충분히 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재능만으로 이런 일을 해내는 사람은 어쩌면 가장 저주 받은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정작 자신은 복음에 의해서 도전받거나 변화받지 못하게 되는! 따라서 성령께서 설교자에게 주시는 통찰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능력입니다. 켈러는 이 얘기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설교를 위해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보다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다보니 설교가 나오게 되는 것이 건강하다고 말입니다. 그만큼 계속적으로 말씀을 읽고 자주 규칙적으로 묵상하는 것이 설교자의 삶에 필수적이라는 얘기일 겁니다.

 

마지막으로 켈러가 주목하는 것은, 그가 subtext라고 부르는,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언외의 뜻정도로 볼 수 있는 말입니다. 켈러는 설교자의 입에서 나오는 내용과는 상관없이, 각각의 설교자가 궁극적으로 의도하는 바가 있음을 간파합니다. 어떤 경우에 그러한 의도는 설교자 자신이 얼마나 설교를 화려하게 잘 하는지 일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설교자가 속한 교단이나 교파, 혹은 특정 공동체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에 대한 긍정일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경우에는 설교자의 설교를 통해서 선포되는 진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에 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마지막 경우 켈러가 특별히 조심하고자 하는 것은 진리 자체에 대한 높임이 그 자체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일 수 있지만, 그러한 선포가 많은 경우 신앙적 배경이 없는 비신자들에게는 무례함이 되거나 의도치 않은 배제로 연결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선포되는 목적이 바로 믿지 않는 사람들을 예수께로 이끌려고 하는 것임을 고려할 때, 이러한 언외의 뜻이 얼마나 복음의 원래 의도에서 벗어나 있는지 금방 알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켈러가 가장 이상적으로 보는 설교의 언외의 뜻은 설교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높임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무시당하는 자와 약자, 가난한 자들의 구세주이시기에, 그리스도를 높이는 설교는 필연적으로 내부자와 외인을 나눌 수가 없습니다. 또한 신앙이 좋은 사람과 초신자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그리스도 앞에서 죄인이라고 선포함을 받으며, 또 동시에 모두가 의인이라고 선포함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어떤 개인의 행위나 노력 여하에 따라서 더욱 인정을 받고 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높임을 받게 되는 설교만이 원래의 복음 선포라는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설교가 됩니다.

 

개인적으로 이미 몇 번 얘기했듯이 켈러의 신학적 인간학이 저에게 박사 과정의 공부를 시작할 수 있는 동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또한 박사 과정의 논문을 쓰는 것에도 켈러의 신학은 저에게 계속해서 큰 영감을 불어넣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켈러가 속한 교단인 PCA(Presbyterian Church of America)의 교리적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켈러의 신학에는 교단적이고 교파적인 신학을 넘어서서 범교파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호소가 가능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켈러가 조나단 에드워즈라는 거인의 신학을 업고 있기에 그런 면도 있을 겁니다. 기회가 된다면 켈러가 에드워즈 신학을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지에 대해서도 한 번 조사를 해보고 싶습니다. 일단 다음번에는 오늘 다루었던 설교에 관한 비전의 핵심이 되는 복음과, 복음을 통해서 변화된 인간의 마음이라는 두 주제가 어떻게 사회 정의의 근본적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다룬 켈러의 Generous Justice에 대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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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카 김의 저서 “그럼에도 눈부신 계절”은 일본인 작가처럼 보이는데 번역자가 없다. 후우카 김은 일본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인이다. 한국 이름은 순분, 그런데 후우카, 풍향(風香, 바람의 향기), 후우카 김이다. 그의 남편의 블로그에는 “그녀에게 항상 향기가 있다. 사랑과 그리움, 애틋함과 따스함의 향기가 있다. 난 그녀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왠지 모른 삶의 향기가 느껴진다”라는 글이 있기도 하다.   후우카 김은 자기 자신을 ‘간서치(看書癡)’라고 소개한다. 간서치는 “지나치게 책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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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하고 겸손하니
데인 오틀런드/조계광/개혁된실천사/조정의 편집위원


이 책은 2020년 ACBC(Association of Certified Biblical Counselors)에서 선정한 최고의 책 중 하나다. 복음주의 신학자이자 블로거로 많은 서평을 남긴 팀 챌리스는 이 책을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알고 사랑하고 신뢰하도록 돕는 책”이라고 평가했다. D. A. 카슨, 러셀 무어, 마이클 리브스, 폴 트립, 브라이언 채플 등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기독교학자, 상담가, 목사 등이 추천하면서 극찬한 책이다. 하지만 한편 존 맥아더 목사 기관 사역인 Grace to You 블로그에서 한 기고자가 남...
지금 이곳에 계속되어야 할 후속 종교개혁 지금 이곳에 계속되어야 할 후속 종교개혁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유산인 문답식 교리공부
빌헬무스 스코팅후이스/개혁된실천사/조정의 편집위원


후속 종교개혁 혹은 네덜란드 제2 종교개혁은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에서 멈추지 않고 교리적으로 또 교회적으로 개혁을 지속했던 이들 가령 17-8세기 영국 청교도와 같은 무리가 일으킨 운동이다. 당시 종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지속적인 종교개혁은 단지 교회 내부 개혁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시작은 언제나 성경의 진리로 교육하고 훈련하여 개인의 영성을 증진하는 것이었다. 빌헬무스 스코팅후이스의 <문답식 교리교육>은 바로 그런 후속 종교개...
현대인을 위한 기독교가 될 수 있을까? 현대인을 위한 기독교가 될 수 있을까?
모두를 위한 기독교교양
손성찬/죠이북스/방영민 편집위원


  현대인을 위한 기독교가 될 수 있을까?   서론   대선을 지나며 언론에 등장하는 기독교와 교회의 뉴스가 성도의 마음을 복잡하고 부끄럽게 만들고 일반사회와 시민들까지 불편하고 황당하게 만든다. 기독교에 어떤 사람들은 모든 사람의 생명이 걸려 있는 코로나시국에 예배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하는 정부를 향해 여전히 기독교 핍박과 탄압이라고 부르짖는다. 의료와 보건과 공무를 위해 수고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해주지는 못할망정 우리를 공격하는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어느 종교나 자신들이 믿...
tolle lege tolle lege
읽기록
서자선/지우/방영민 편집위원


tolle lege   저자를 페북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페북인연으로는 7년이 된 것 같다. 페북 밖에서도 두 번 만나서 교제를 나눈 기억이 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온라인으로만 연결되었지 서로의 마음과 삶을 깊이 나누는 관계까지는 가지 않았다. 저자와 친한 분들도 여럿 있기에 구지 나까지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었고, 만남과 관계라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저자는 항상 책의...
성화는 꼭 필요한 것인가? 성화는 꼭 필요한 것인가?
칼뱅 참여 그리고 선물
토드 빌링스/송용원/이레서원/정현욱 편집인


행위 구원론에 빠진 중세의 신학에서 벗어나는 최선의 길을 최대한 인간 행위가 구원에 개입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루터는 그가 의도했던 하지 않았든 이신칭의라는 정형화된 교리를 만들어 냈다. ‘오직 은혜’를 강조했던 루터의 신학은 불가피하에 행위 자체를 소홀히 여기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위험성을 감지한 칼뱅은 루터의 신학을 흡수하는 동시에 소외된 행위의 문제를 보충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칼뱅은 철저히 루터의 ‘이신칭의’를 수납하는 동시에 성화에 무게를 두게 된다. 그의 <기독교 강요>가 실천적 삶을 강조한 이유...
성소수자 운동의 아동 인권 유린과 젠더의 종말 성소수자 운동의 아동 인권 유린과 젠더의 종말
미셀 푸코와 주디스 버틀러의 황혼
정일권/CLC/고경태 편집위원


정일권 박사는 고신대학교와 신학대학원을 마치고, 군종목사,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본래 삼위일체를 연구하려다가 프랑스 사상가인 르네 지라르를 만나면서, 르네 지라르 연구 전문가, 문화인류학 전공을 진행하고 있다. 정 박사는 보수적인 신학을 견지하면서 한동대, 숭실대 등에서 외래교수와 초빙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유명 저서로 『붓다와 희생양』(2013), 『십자가의 인류학』(2015), 『문화막시즘의 황혼, 21세기 유럽 사회민주주의 시대의 종언』(2020) 그 외 다수...
대한민국에서 이해하는 웨스트민스터 문서: 대교리문답 대한민국에서 이해하는 웨스트민스터 문서: 대교리문답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 STUDY-I
장대선/고백과문답/고경태 편집위원


Larger Catechism를 번역하면 ‘대요리문답’, ‘대교리문답’이다. 통상적으로 대요리인데, 대교리로 번역하는 연구자도 다소 있다. 장대선 목사는 Westminster Larger Catechism를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으로 번역했다. Catechism은 '가르침'이 어원적 의미이고, 기독교 교리를 문답식으로 엮은 문장이다. 요리문답, 교리문답이라 한다. 요리(要理)는 요강(要綱)과 교리(敎理)일 것이다. 칼빈의 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는 “기독교강요(基督敎綱要)”로 번역하여 사용하...
일상은 자녀를 제자로 삼는 최고의 시간, 순간, 사건이다 일상은 자녀를 제자로 삼는 최고의 시간, 순간, 사건이다
가정 제자훈련
매트 챈들러, 애덤 그리핀/윤상필/성서유니온/조정의 편집위원


나이테가 보이는 나무의 단면을 표지 이미지로 사용한 <Family Discipleship>이란 책을 처음 만났을 때, 가정 예배와 자녀 양육에 관심이 많아 관련 서적을 탐독할 때라서 또 다른 가정 예배 지도서 내지 자녀 양육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부제인 “일상의 시간, 순간, 사건을 통해 제자로 자라가는”(Leading Your Home through Time, Moments, and Milestones)을 읽고 매우 실제적인 책이면서 다른 가정 관련 신앙 서적에서 찾기 힘든 관점으로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시간과 ...
캐나다 개혁교회의 개혁된 실천 캐나다 개혁교회의 개혁된 실천
캐나다 개혁교회 체험기
이종표/개혁된실천사/조정의 편집위원


2013년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파송 교회에서 처음 나눈 간증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성경 해석법, 강해 설교법, 조직 신학, 교회 사역, 성경 원어 등 다양한 학문을 체계적으로 집약적으로 배웠지만, 성도가 가장 큰 감동과 교훈을 얻은 부분은 그 모든 것을 실천하고 있는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의 간증이었다. 교회가 어떻게 복음 중심적으로 예배하고 있는지, 교회가 어떻게 사랑으로 섬기고 교제하는지, 교회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서로 대접하고 봉사하는지, 교회 인도자가 어떻게 성경의 원칙에 따라 교회를 인도하고 다스리...
사막의 영성이 필요한 시대 사막의 영성이 필요한 시대
깨달음은 더디 온다
사막교부와 교모/이덕주/사자와 어린양/문양호 편집위원


우연찮게 내 품에 들어와 읽게 된 이 책은 미세먼지와 코로나로 외적으로나 심적으로나 혼탁해 있는 듯한 내게는 부제 때문에 더 끌리게 되었다. ‘말씀에서 말씀으로 살아낸 사막교부와 교모의 인생가르침’이란 문구가 눈에 스며들었고 아마도 영성을 소재로 다루었다는 느낌에 더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엮어내고 풀어낸 이덕주 교수님의 머리말은 더더욱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전 내 머릿속에 먼저 자리 잡았다. 그런데 첫 챕터를 읽어 나가며 그런 주관적 선행 학습은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읽어나가면 읽어 나갈수록 학창시절 읽었던 탈무드같은 이...
광야를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광야를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광야의 의미
폴라 구더/이학영/학영/정현욱 편집인


21세기에 전쟁이라니?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대해 놀라고 있습니다. 절대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는 푸틴 대통령의 계속된 장담도 거짓임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전쟁에 무뎌진 21세기의 유럽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은 것을 차치하더라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묘한 관계는 타국으로 하여금 함부로 간섭하지도 못하도록 차단하고 있습니다. 까마득한 유럽의 일이 실시간으로 보도되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로 인해 전 세계가 요동치고 있다는 것은 더욱 놀랍습니다.우크라이나 침...
독일 브랜드 루터를 읽다 독일 브랜드 루터를 읽다
루터 브랜드가 되다
앤드루 페트그리/김선영/이른비/고경태 편집위원


기독교는 신앙과 인문학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세계 주류 역사에서 기독교는 2,000년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는 탈-기독교 사회가 되어가고 있지만, 2,000년 역사까지 지울 수 없을 것이다. 특이 독일에서는 더욱 그럴 것 같다. 그러한 것이 독일의 대표 브랜드가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이기 때문이다. 영국인들은 세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브랜드는 무엇일까? 세종대왕, 충무공 이순신일 것이다. 우리 ...
개인 번역이지만 매우 좋은 성경 번역, 맛싸 성경 개인 번역이지만 매우 좋은 성경 번역, 맛싸 성경
맛싸 성경
이학재/월간맛싸/고경태 편집위원


"맛싸 성경", 이학재 박사(구약학 전공)가 원어 성경(히브어와 헬라어)에 충실하게 번역하여 출판하였다. 이 박사는 <월간 맛싸>의 대표로 성경 1189장을 연구하고 묵상하면서 번역을 진행한 것이다. 지금도 <월간 맛싸>는 격월간으로 출간되고 있다. 이학재 박사는 21년간 구약학으로 교수 사역을 하였고, 바른성경 번역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지금도 <월간맛싸>에 맞춰서 유투브로 원어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맛싸 성경"이 참조한 원문은 구약은 레닌그라드 코덱스를 참조하고, 신약은 알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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