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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견딜 수 없는 무게, 견딜 수 없는 불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존 파이퍼, 조나단 에드워즈/백금산/부흥과 개혁사/[나상엽]
현재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지도자 존 파이퍼를 있게 한 영적 멘토는 바로 18세기 영적 거인 조나단 에드워즈였다.
존 파이퍼는 자신의 지난 30년간의 삶과 목회와 신학이 조나단 에드워즈의 생애와 신학을 통해서 어떻게 영향을 받게 되었는지를 이 책의 1권에서 감동적으로 말해준다.
또 이 책의 2권에는 존 파이퍼의 사상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조나단 에드워즈의 명저「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의 원문과 존 파이퍼의 상세한 해설적 각주가 담겨 있다.
● 저자 존 파이퍼
뮤니히 대학에서 신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미네소타 주 미네아포리스의 베들레헴 침례교회에서 1980년부터 지금까지 담임목사로 일하고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에게서 큰 영향을 받은 기독교 기쁨주의라는 사상을 기반으로 현재 미국 복음주의 교회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하나님의 기쁨", "여호와를 기뻐하라" 등의 많은 저서가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1703-1758)
미국이 낳은 대사상가요 설교자다. 그는 목회자를 아버지로 둔 경건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남보다 재능이 뛰어났기에 일찍부터 예일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목회에 투신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주권 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청교도들의 계약사상과 성경관에 대한 뚜렷한 확신이 있었다. 그는 지성을 겸비하였지만, 그 지성으로 인해 이성주의에 빠져 감정을 소홀히 하는 그런 누를 범하지는 않았다. 그는 감정주의와 지성주의를 융합시킨 부흥운동을 주도하였다. 그의 뜨거운 설교들은 2백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꺼지지 않는 불길로 남아 있다. 그는 부흥신학의 일인자로 인정받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 그는 프린스톤의 총장으로 두 달 정도 봉직하던 중에 사망하였다.
● 서평
한 마디로, 이 책은 독보적으로 무거운 책이다. 그 저변을 흐르는 영성이 무겁고, 그 나타나는 사상 역시 무겁다. 그 다루는 주제 역시 무겁고, 그 다루는 방식 역시 무겁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추구하는 바, 하나님의 영광은 본디 무겁고 무겁고 또 무거운 것이다.
그러나 기죽거나 놀라지 말자. 이 책이 무거운 것은 당연하다. 또한 이 책이 무거운 것은 도리어 우리에게 커다란 축복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重)하고 중한 하나님 그 분 자체의 영광을 생각하고 묵상하고 연구하고 경배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 영광은 오늘날 사람들을 간질이는 다른 것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사람들은 하나님과 나를 생각하기 마련이어서 '하나님-나'라는 일정한 틀로서 사물과 현상을 인식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하나님에 대해서 이와 같은 관점으로 접근한다. '나' 없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는 인식의 틀을 갖고 있는 것이다. 더 혹독하게 말하자면, 사실은 오직 '하나님' 그분 자신에 대해서는 오늘날 사람들은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가? 성경에서 이 하나님 자신의 영광 앞으로 이끌린 피조물들을 보라. 하나님 그분 자신의 영광 앞에서 모든 피조물들은 자아를 상실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분의 거룩하신 영광, 곧 스스로 자신을 존중하시는 바로 그 영광 앞에서 얼굴과 발을 가린 스랍들과 이사야 선지자를 보라. 주님을 뵌 직후로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었던 사도 요한을 보라. 중한 영광을 알고서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하여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던 사도 바울을 보라. 진실로 하나님 그분 자신의 영광을 탐구한 진지한 영혼들이 이 하나님의 영광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가운데에서 새롭게 자신이 발견되는 것임이 성경의 가르침일진대, 오늘날 우리는 분명 이것을 상실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존중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이다. 스랍들은 하나님을 향해 "사랑이다 사랑이다 사랑이다"라고 외치지 않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외친다.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기보다는 거룩이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더 빛나는 것이다. 이 거룩은 단순히 "지선(至善)의 순결의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 그분 자신의 영광이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기에, 즉 자신의 영광을 스스로 존중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사실 우리 차원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피조물의 구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피조물의 구원을 위해서 드려진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어린양이셨다. 즉, 그분 자신께서 자신의 공의와 사랑을 만족시키기 위해,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의 공의로우심과 사랑의 성품을 존중하시기에 친히 예비하신 어린양이셨던 것이다.
따라서 구속받은 그분의 피조물들은 단순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라는 '사건' 이면에 더 깊이 자리하고 있는, 스스로 자신의 영광을 위하시고 존중하시는 하나님 그분 자신을 뵙고 경배한다. 하나님은 유일하시고 자존하신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그 자신의 영광을 위하시고 존중하시는 하나님으로서, 피조물인 자연과 인생은 이 하나님의 자신의 영광을 존중하시는 그분의 본성에 부합해야 함이 마땅하다.
에드워즈의 하나님의 천지 장조 목적을 바탕으로 천지 창조에만 국한하여 하나님의 목적을 성경적이고 합리적으로 심도 있게 탐구한 저술로도 이만큼 위대할진대, 그분의 구속 사역과 그분의 궁극적인 만물의 회복에 이르기까지 진지한 마음으로 탐구한다면 과연 우리가 뵙게 될 하나님 그분의 영광은 얼마나 더 무한하고 무한할 것인가?
오! 당신의 영광을 위해 당신께서 당신을 위하며 당신을 위하여 열심히 이루시다니(사 48:11)! 견딜 수 없는 그분의 영광의 무게, 그리고 이 영광을 위한 그분의 열심의 불길로 인해 모든 독자의 영혼은 감히 설 수 없어 엎디어 그분을 사랑하여 경배하리라.
주는 진실로 무한하고 영원하신 만왕의 왕, 만주의 주 하나님이시니이다.
모든 피조물이 왕을 뵈옵고 경배하고 경배하나이다.
또한, 왕이신 내 주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가 되시니
당신의 새 피조물 교회는 아버님을 뵈옵고 기뻐하여 사랑하나이다.
현재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지도자 존 파이퍼를 있게 한 영적 멘토는 바로 18세기 영적 거인 조나단 에드워즈였다.
존 파이퍼는 자신의 지난 30년간의 삶과 목회와 신학이 조나단 에드워즈의 생애와 신학을 통해서 어떻게 영향을 받게 되었는지를 이 책의 1권에서 감동적으로 말해준다.
또 이 책의 2권에는 존 파이퍼의 사상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조나단 에드워즈의 명저「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의 원문과 존 파이퍼의 상세한 해설적 각주가 담겨 있다.
● 저자 존 파이퍼
뮤니히 대학에서 신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미네소타 주 미네아포리스의 베들레헴 침례교회에서 1980년부터 지금까지 담임목사로 일하고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에게서 큰 영향을 받은 기독교 기쁨주의라는 사상을 기반으로 현재 미국 복음주의 교회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하나님의 기쁨", "여호와를 기뻐하라" 등의 많은 저서가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1703-1758)
미국이 낳은 대사상가요 설교자다. 그는 목회자를 아버지로 둔 경건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남보다 재능이 뛰어났기에 일찍부터 예일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목회에 투신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주권 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청교도들의 계약사상과 성경관에 대한 뚜렷한 확신이 있었다. 그는 지성을 겸비하였지만, 그 지성으로 인해 이성주의에 빠져 감정을 소홀히 하는 그런 누를 범하지는 않았다. 그는 감정주의와 지성주의를 융합시킨 부흥운동을 주도하였다. 그의 뜨거운 설교들은 2백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꺼지지 않는 불길로 남아 있다. 그는 부흥신학의 일인자로 인정받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 그는 프린스톤의 총장으로 두 달 정도 봉직하던 중에 사망하였다.
● 서평
한 마디로, 이 책은 독보적으로 무거운 책이다. 그 저변을 흐르는 영성이 무겁고, 그 나타나는 사상 역시 무겁다. 그 다루는 주제 역시 무겁고, 그 다루는 방식 역시 무겁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추구하는 바, 하나님의 영광은 본디 무겁고 무겁고 또 무거운 것이다.
그러나 기죽거나 놀라지 말자. 이 책이 무거운 것은 당연하다. 또한 이 책이 무거운 것은 도리어 우리에게 커다란 축복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重)하고 중한 하나님 그 분 자체의 영광을 생각하고 묵상하고 연구하고 경배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 영광은 오늘날 사람들을 간질이는 다른 것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사람들은 하나님과 나를 생각하기 마련이어서 '하나님-나'라는 일정한 틀로서 사물과 현상을 인식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하나님에 대해서 이와 같은 관점으로 접근한다. '나' 없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는 인식의 틀을 갖고 있는 것이다. 더 혹독하게 말하자면, 사실은 오직 '하나님' 그분 자신에 대해서는 오늘날 사람들은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가? 성경에서 이 하나님 자신의 영광 앞으로 이끌린 피조물들을 보라. 하나님 그분 자신의 영광 앞에서 모든 피조물들은 자아를 상실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분의 거룩하신 영광, 곧 스스로 자신을 존중하시는 바로 그 영광 앞에서 얼굴과 발을 가린 스랍들과 이사야 선지자를 보라. 주님을 뵌 직후로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었던 사도 요한을 보라. 중한 영광을 알고서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하여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던 사도 바울을 보라. 진실로 하나님 그분 자신의 영광을 탐구한 진지한 영혼들이 이 하나님의 영광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가운데에서 새롭게 자신이 발견되는 것임이 성경의 가르침일진대, 오늘날 우리는 분명 이것을 상실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존중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이다. 스랍들은 하나님을 향해 "사랑이다 사랑이다 사랑이다"라고 외치지 않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외친다.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기보다는 거룩이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더 빛나는 것이다. 이 거룩은 단순히 "지선(至善)의 순결의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 그분 자신의 영광이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기에, 즉 자신의 영광을 스스로 존중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사실 우리 차원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피조물의 구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피조물의 구원을 위해서 드려진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어린양이셨다. 즉, 그분 자신께서 자신의 공의와 사랑을 만족시키기 위해,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의 공의로우심과 사랑의 성품을 존중하시기에 친히 예비하신 어린양이셨던 것이다.
따라서 구속받은 그분의 피조물들은 단순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라는 '사건' 이면에 더 깊이 자리하고 있는, 스스로 자신의 영광을 위하시고 존중하시는 하나님 그분 자신을 뵙고 경배한다. 하나님은 유일하시고 자존하신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그 자신의 영광을 위하시고 존중하시는 하나님으로서, 피조물인 자연과 인생은 이 하나님의 자신의 영광을 존중하시는 그분의 본성에 부합해야 함이 마땅하다.
에드워즈의 하나님의 천지 장조 목적을 바탕으로 천지 창조에만 국한하여 하나님의 목적을 성경적이고 합리적으로 심도 있게 탐구한 저술로도 이만큼 위대할진대, 그분의 구속 사역과 그분의 궁극적인 만물의 회복에 이르기까지 진지한 마음으로 탐구한다면 과연 우리가 뵙게 될 하나님 그분의 영광은 얼마나 더 무한하고 무한할 것인가?
오! 당신의 영광을 위해 당신께서 당신을 위하며 당신을 위하여 열심히 이루시다니(사 48:11)! 견딜 수 없는 그분의 영광의 무게, 그리고 이 영광을 위한 그분의 열심의 불길로 인해 모든 독자의 영혼은 감히 설 수 없어 엎디어 그분을 사랑하여 경배하리라.
주는 진실로 무한하고 영원하신 만왕의 왕, 만주의 주 하나님이시니이다.
모든 피조물이 왕을 뵈옵고 경배하고 경배하나이다.
또한, 왕이신 내 주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가 되시니
당신의 새 피조물 교회는 아버님을 뵈옵고 기뻐하여 사랑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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