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역사속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보라
역사속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보라
서론
신학은 하나님에 관한 학문이다. 신학은 인간의 창의성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오직 계시에 근거하여 세워지는 것이다. 스콜라신학으로 인해 신학이 일반학문으로 유입되어 일반인들도 할 수 있는 학문의 분과로 들어오게 되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신학은 믿음으로 해야하는 것이고 계시에 근거해서만 할 수 있는 학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앙과 사랑 없이 신학을 한다는 것은 ‘신학’이라는 단어가 가진 뜻만 보아도 불가능한 것이다.
게할더스 보스의 ‘성경신학’은 신학을 공부하고 설교를 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성경과 신학을 공부해야 하는지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신학에는 크게 성경신학, 조직신학, 실천신학, 역사신학으로 나눌 수 있는데 나름 학문의 방법과 체계가 있겠지만 모두다 성경에 근거하지 않고 계시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사변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유한이 무한을 알 수 없기에 유한한 생각으로 무한을 파악하는 것은 교만한 것이고 신성모독도 될 수 있다.
역사성
보스는 이 책을 통해 계시의 역사성을 강조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로부터 시작하고 하나님의 구원역사 속에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기록하고 있다. 이 지식은 신령한 지식이고 인간을 구원하고 세상을 구속하는 은혜로운 지혜이다. 성경신학이라는 것도 단순히 주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된 특별계시인 성경 안에서 드러나는 구원역사를 따라 구속사적 지식을 체계화한 학문이다. 성경의 통일성을 근거로 하는 조직신학과는 순서와 방법이 다르다.
보스는 성경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우선적으로 연구할 것을 제안한다. 필자도 이에 대해서 동의가 되는데 성경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이고 이것은 인간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역사 속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는 이유는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고 고민하는 것에 답을 찾고 과학적인 근거를 발견하며 심리적인 해결을 위한 정도가 아닐 것이다.
물론 성경을 공부하는 이유가 그런 개인적인 소원과 기도제목을 담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궁극적으로 더 중요한 구원을 끊임없고 선포하고 드러낸다. 왕국시대 아니 성경 속에 나타나는 모든 시대에 공의와 정의와 평화와 법을 강조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구원과 하나님나라를 선포하는 하나님의 뜻이다. 또한 인생에게 가장 큰 위로는 자기 소원이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은혜를 알고 자신이 구원의 경륜 속에 들어 있고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지 아는 것일 것이다.
계시란 무엇인가
계시는 하나님의 구속을 인간이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을 보여주신 하나님의 지식이다. 이것은 언어로 이루어지며 이후에 행위계시가 발생하며 이를 설명하는 언어가 다시 주어진다. 따라서 계시의 과정에서 있어서 구약은 예언적이고 예비적인 말을 기록하고 있고, 복음서들은 구속계시 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서신서들은 이것을 설명하는 해석을 기록하고 있다. 이렇듯 계시는 단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실제적으로 구현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의 지식이지만 여기에는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이 지식은 개념적이고 정보적인 지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계시를 통해 획득되는 지식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그리스도와의 사랑의 연합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이 은혜로운 사랑은 언약으로 구체화되며 강화된다. 실제 성경의 역사 속에서 이 언약은 시대별로 구체적으로 체결되어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시대마다 인물마다 갱신되며 흐른다.
모세시대의 계시, 선지자시대의 계시, 신약시대의 계시는 이 책의 큰 틀로서 계시의 흐름과 발전을 아주 상세하고 가르쳐주고 있다. 구체적적으로 모세시대는 아담의 타락이전의 전구속적 특별계시 기간과 아담타락 후 첫 구속적 특별계시 기간, 노아, 족장과 모세까지의 기간을 다룬다. 선지자시대는 왕국의 형성과 분열과 멸망기간에 활동한 선지자들의 계시를 다루고, 신약시대는 예수의 탄생과 세례요한의 활동, 공생애까지의 계시의 진행을 다룬다. 따라서 계시는 하나님의 언어와 행위가 그분의 구원역사 속에서 드러나고 각 시대를 따라 언약으로 구체화된다.
성경신학의 목적
계시는 인간의 타락 이후에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로 인해 더 이상 수납할 수 없게 되자 기록으로 보존되었다. 즉 인간의 죄로 인해 기록된 계시를 성경이라고 한다. 이 성경은 전 구속적 특별계시로 출발하여 정경화 과정의 완료단계까지 기록된 특별계시로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성경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계획과 성품과 뜻을 무오하게 나타내셨고 자신의 언어와 사건과 행위와 해석까지 성령님의 감동으로 기록하셨다.
성경신학은 이렇게 기록된 성경을 기초로 해서 연구한다. 이는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과정을 연구하는 것이다. 특별계시의 역사로서 성경신학이 필연적으로 계시의 과정을 살필 수밖에 없다. 이 계시의 역사성 속에서 드러나고 밝혀지는 하나님의 뜻은 다양하고 풍성하며 인간을 구원하기에 충분하고 위대하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구속사에서 드러나는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열심이 이 계시의 역사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성경신학은 하나님의 구속적 자기계시에서 드러나는 과정을 따라 연구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즉 성경신학은 구속사적 관점을 지향하고 그 순서를 따라 진행한다. 우리의 임의대로 시기를 구분할 수는 없고 계속적인 언약체결의 원칙에 따라 하나님의 구원역사 속에서 언약을 맺은 시점을 따라 구분한다. 성경의 시대와 각 권마다의 다양성과 독특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성경의 주제들의 점진적인 발전을 드러내는 구속사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결론: 하나님의 전경륜
필자가 이 책을 보며 성경이 하나님의 자기계시이고 신학이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라면 ‘성경이 신학방법론을 제공한다’는 보스의 주장이 이해가 되었다. 신학의 목적이 학문의 고도화와 사변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을 소개하고 인간을 초대하여 종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특별계시인 성경이 보여주는 방법을 따라 뼈대를 세워가는 신학공부는 가장 하나님의 신비가 드러나는 길이라 여겨진다.
게할더스 보스는 프린스톤이 대륙의 자유주의를 받기 전까지 약 40년간 성경신학을 가르쳤다. 한국개혁주의신학에 기초를 세우고 틀을 다진 박형룡 또한 보스에게 성경신학을 배웠다. 이 책은 세계적으로도 번역되어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보스의 이 방법론은 신학계에서 비주류이다. 가장 성경적인 방법으로 안전하게 하나님의 전경륜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비해 이 방법이 학계에서 마이너로 여겨지는 것은 의문이다.
성경을 읽는 목적은 성경대로 살기 위한 것이고 성경은 구원을 위한 명료성과 통일성을 가지고 구속역사를 지닌다. 성경은 인간의 도덕과 윤리적인 삶을 도울 수 있고 인륜의 합당한 행실을 하도록 가르쳐줄 수도 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고 우리는 듣는 것이다. 성경은 구속사를 통해 죄인인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고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는 것이다. 그 일을 위해 보스가 말하는 방법론은 오늘 우리의 신학의 동기와 방법을 재조명해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그의 신학을 통해 하나님의 경륜을 볼 수 있고 우리의 위치 또한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