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번영복음에 대한 성경적 철학적 비판
번영복음에 대한 성경적 철학적 비판
우리는 전도를 할 때 이런 류의 전도를 많이 해 왔다. 사업이 잘 되지 않거나, 자녀의 대학진학이나, 취직, 혹은 결혼의 문제, 그리고 병에 걸린 사람들, 이런 분들에게 예수를 믿으면 사업이 잘되고,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취직이 되고, 암이 고침을 받는다는 식의 말을 많이 했다. 그러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 자녀들이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고, 취업이 되지 않고, 결혼을 하지 못하고, 암에 걸려 죽는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을까?
돈을 많이 소유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무조건적으로 좋은 대학에 입학을 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것이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일까? 그러면 성경에서 나오는 믿음의 위인들 중에서 고난 가운데 죽임을 당하고, 병에 걸려 죽는 경우는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을까? 예수만 잘 믿으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하게 되고, 그런 만사형통이 예수를 믿는 것의 목적이 되어버렸다면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할까?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식의 기복적인 신앙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세상의 수많은 종교도 복을 간구한다. 세상의 많은 종교도 자신의 정성과 물질을 자신이 믿고 있는 신에게 간절히 간구하게 되면, 신은 간구하는 대상의 정성을 보고, 그 사람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식의 내용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게도 이런 식의 기도와 간구를 한다고 한다면, 그래서 내가 소원하는 것을 얻고 소유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세상의 종교와 세상의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와의 차이점은 과연 무엇일까?
실제로 예수님은 그 당시 가난하고, 헐벗고, 소외받은 수많은 백성들을 향해서 물질적인 복이 진정한 복이 아니라, 세상에서 돈을 많이 벌고, 권력을 잡고,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의 개념의 복을 설명하셨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먼저 세속적인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하는 말은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기독교는,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오늘날의 강단은(물론 과거에도 그렇다), 오로지 복만을 강조하고, 내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가 세상에서 좀 더 잘되기 위한 수단으로서 믿음을 강조해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번영신학(번영복음)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신학적인 이해와 성경적인 이해를 바르게 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
‘번영복음의 속임수’의 저자 권수경 교수는 이 책에서 번영이라고 하는 관점으로 성경을 뚫는 것으로 책을 시작하고 있다. 번영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인류에게 지속적으로 만연해 있는 인간의 욕망이고 욕심이라고 정의한다. 인간의 범죄한 후 땅은 우리에게 상실을 허락했고, 그 상실의 증거로서 가시와 엉겅퀴라고 하는 저주가 우리에게 임했다. 땅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리 땀을 흘리며, 노력을 한다고 해도 힘에 겹고, 그런 수고를 통해서 우리에게 만족할 만한 풍요로움은 없다고 말을 한다. 가시와 엉겅퀴를 통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선함이 소멸된 것이 아니라, 악이 그 가운데로 들어오게 됨을 통해서 선과 악이 공존하게 되었고, 그 공존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선하고 좋은 것이 이제는 얻기도 힘들고, 누리기도 어려운 것이 된 것이다.
우리 인생은 가시와 엉겅퀴로 인해서 힘들게 먹고 사는 삶이 되었다. 땅이 저주를 받았기에 사람에게는 고통과 괴로움은 늘 존재하게 되었다. 그런 고통과 괴로움은 정복시대와 사사시대, 왕정시대를 거쳐서 남북왕국으로 분열이 되는 과정, 그리고 이스라엘이 이방민족에 의해서 망해가는 과정 속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저자는 이런 번영의 속임수에 우리가 다 속고 있다고 말을 한다. 번영이 우리에게 옳은 것은 아니다. 또한 번영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 그러나 교회에서 선포되어지는 번영에 대한 환상과 잘못된 인식은 우리로 하여금 번영은 항상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다가오는 것이고, 번영은 하나님과 대비가 될 만큼 강력한 우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이 땅은 가시와 엉겅퀴로 뒤덮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번영을 우리가 추구하고, 또 번영만을 바라고 있다고 한다면, 그 번영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번영이라고 하는 또 다른 우상이 우리의 사고와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 책에서는 이런 번영의 원인을 성경의 신구약의 다양한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교훈한다.
또한 번영의 본질이 하나님 덕에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돈이 최우선이라고 말을 한다. 그 돈이 오늘날 한국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다. 이런 번영복음의 역사적 기원은 20세기 초 미국에서 시작된 신사고(New Thought)운동이라고 말한다. 이 신사고 운동의 대강이 기독교 교리의 중심 구도를 차지하고 있고, 이런 운동의 실체가 교회로 들어와서 교회는 번영이 최고선이라고 하는 것에 지배를 당하고 만 것이다.
이런 번영신학을 로버트 슐러(1926-2015)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로버트 슐러는 미국의 유리로 만든 수정교회의 담임목사이다. 그는 은퇴 후 아들에게 교회를 대물림 했고, 2년 뒤 맏딸에게 세습을 시켰다. 그러다가 수정교회가 재정난으로 인해 파산신청을 했고, 결국 2012년 천주교에 매각이 되어 대성당이 되었다. 로버트 슐러는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강조했다. 또한 가능성 사고라는 말과 ‘할 수 있다’라고 하는 가능성에 강조를 두었다. 소위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예화를 많이 들면서, 적극적인 사고와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면 복을 받는다고 하는 식의 설교를 많이 전했다.
한국에는 이런 류의 목사가 조용기 목사이다. 조용기 목사의 신학은 삼중축복과 오중복음으로 집약된다. 그 중에 삼중복음은 영혼이 잘되어 번성하고 몸이 건강한 것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을 소위 삼박자 축복이라고 하는 한국풍의 말을 만들어서, 세상에서의 번영을 강조했다.
더 나아가 ‘긍정의 힘’의 저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조엘 오스틴은 신학을 바로 공부한 적도 없지만, 매 주일 십만 명 이상이 교회에 출석을 해서 그의 설교를 듣는다. 오스틴은 자신의 번영복음을 단 두 권의 책으로 집약해서 미국과 한국 교회를 평정했다. 조엘 오스틴의 핵심은 긍정적인 사고이다. 조용기 목사의 삼박자 축복과 유사하다.
저자는 위에서 밝힌 로버트 슐러, 조용기, 조엘 오스틴을 예로 들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번영복음의 잘못된 점을 잘 설명하였다. 번영복음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 구원에 이른다고 하는 성경의 본질적인 진리를 왜곡한 채 오히려 돈과 건강, 권력과 인기를 함께 누려야 한다고 하는 거짓 복음을 밑바탕에 두고 있다. 그렇기에 오늘날 한국교회는 더 크게, 더 많이, 더 넓게 예배당을 건축하려고 하고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으려고 하고 있고, 더 많은 헌금을 교회의 재정에 넣어 그것이 진정한 복이고 좋은 교회라고 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번영복음의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비판과 함께 진정한 복음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알고자 하는 독자들이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