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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왜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정현욱 | 2019.05.22 10:28
왜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이성에서의 도피/프란시스 쉐퍼/김재영/생명의말씀사/정현욱 편집인

 왜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인간은 타락했다. 종교개혁가들에 의하면 타락은 초월적 존재인 하나님의 발견과 그로 인한 인간의 재발견이다. 루터는 십자가의 신학을 통해 절대 타자이신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인간들과 함께함을 선언한다. 칼뱅은 루터를 넘어 삼위의 하나님이신 성령의 내재하심을 통한 지성의 조명과 새 언약 안에서 새롭게 거듭난 인간들의 거룩한 삶을 강조했다. 루터와 칼뱅으로 대변되는 종교개혁의 핵심은 신성의 세속화이다. 충분히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용어이지만 설명하면 이렇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정립된 중세의 은총 대 자연이란 이분법적 세계관은 근대의 이원론과 흡사하다. 하나님은 절대 타자로서 초월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삶과 세상에 관심이 없으며 개입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전제한다. 이러한 아퀴나스적 이분법 세계관은 하나님을 과도하게 인간의 삶에서 터부시함으로 인간의 삶과 역사에 하나님의 의지와 뜻은 길을 잃고 무용지물이 되게 한다. 프란시스 쉐퍼는 이러한 중세적 모순을 종교개혁가들이 해결했다고 믿는다. 하나님께 속한 수도원만 거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맹세하지 않고 일상을 살아가는 평민들도 거룩하다는 것이다. 세계관은 사제와 평신도의 구분을 무너뜨렸고, 수도원과 일상의 경계를 사라지게 했다. 칼뱅이 직업을 소명으로 정의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모든 사람은 제사장이며,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소명자요, 모든 직업은 하나님께 소명받는 자들의 거룩한 일터라는 것이다.

 

개신교회를 출석하는 교인이나 목회자들 중에 위의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단순한 명징함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지불했고, 또한 계속해서 지불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현대교회가 길을 잃었다고 말한다면 과장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나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개혁교회는 이미 답을 얻었고,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황하는 것일까? 프란시스 쉐퍼는 개신교인들이 이성으로부터 도피했기 때문이라고 응답한다. 쉐퍼는 어떤 근거에서 그렇게 말했고, 왜 그러한 결론을 내렸는가 살펴보고자 한다.

 

쉐퍼가 모든 문제의 발달을 중세의 신학자요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에게서 출발하는 것은 잘한 일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중세 신학의 총체라고 할 수는 없으나 핵심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계를 자연과 은총으로 구분했기 때문이다. 은총은 상층부에 속한 것으로 신적이 영역이며, 보이는 것들에 영향을 미치는 세계이다. 이에 비해 자연은 하층부에 속하며 피조물이며, 땅에 속하는 것들이다. 엄밀히 말해 상층부의 영향 아래 있다고 옳을 것이다. 상층부는 인간 이해로 범접할 수 없는 시공이기 때문에 이성이 아닌 상징으로 표현된다. 아퀴나스는 비록 상층부와 하층부가 구분되고 상당한 질적 차이가 존재하지만 양자 간의 통일 개념을 가지고 있었’(22). 문제는 아퀴나스가 바라본 하층부에서 일어난다.

 

아퀴나스는 인간의 전적 타락을 믿지 않았다. 인간을 비록 타락했지만 지성은 타락하지 않았다.’(23) 이 미묘한 인식의 차이는 결국 인간을 절망으로 떨어뜨릴 것이다. 아퀴나스가 하층부에 심어놓은 자율적인 인간의 지성은 시간을 따라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쉐퍼는 예술에서 첫 징조를 발견한다. 자율 사상에 최초의 영향을 받은 화가는 조토 디 본도의 스승 치마부에(1240-1302)이다. 그들은 초월을 상징으로 표현하기보다 자연의 사물을 자연 그대로 그리기 시작했다.’(25) 물론 갑자기 변한 것이 아니다. 서서히 천천히 변했다. 단테(1265-1321)는 자연에 몰입한 화가처럼 글을 쓰기 시작한다.(26) 즉 자연에 대한 발견, 그리고 집중이 13세기 중반 이후 갑자기 증가한 것이다. 문제는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자율을 얻은 자연이 은총을 잠식하기 시작’(26)했다는 것이다. 르네상스가 끝나갈 즈음 자연은 은총을 삼켜 버린다. 쉐퍼는 1415년에 제작된 <루앙의 시도서>라는 채색 수사본을 근거로 제시한다. 이 그림은 은총이 훨씬 중요하고 자연을 별로 중요하지’(27)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14010년 북유럽의 반 에이크가 그린 <예수님의 세례>에서는 은총이 아닌 실제의 자연 풍경을 담은 것이다. 1435, 반 에이크는 <재상 롤랭의 마돈나>를 그린다. 이곳에서 재상 롤랑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가까이 마주 보며 앉아 있다. 이 그림의 핵심은 롤랭이 기도하는 자세로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있으나 마리아와 대등하게 그려져 있다’(30)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와서는 상층부에 속한 영혼을 그리려 했지만 그 영혼은 기독교의 영혼이 아니라 바다나 나무와 같은 영혼이었다. 이것으로 자연과 은총은 서로 통일될 수 없는 영역임이 분명해졌다.

 

문제의 해결은 전혀 엉뚱한 곳에 있었다. 보편을 강조한 신플라톤주의와 개체를 강조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은총과 자연을 통합적으로 보는데 실패했다. 그들의 실패의 기저에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하층부의 자율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깔려있다. 종교개혁가들은 중세의 신학과 철학에 도도하게 흘러온 신플라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배격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자율적’(47)이라고 선언한다. 인간은 전적 타락했으며, 결코 자율적이지 못하다고 선언한다. 인간은 그리스도가 행한 사역을 오직 믿음으로만 수납할 때 구원될 수 있는 것이다. 쉐퍼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오직 성경’(48)이라는 종교개혁가들의 외침을 주의할 것을 당부한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인간에 관한 지식을 제시한다. 칼뱅의 가르침처럼 하나님을 알 때, 인간을 비로소 인간 스스로를 바르게 볼 수 있다.

 

종교 개혁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이 상층부하층부에 관하여 성경을 통해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 즉 하늘에 속한 것에 대한 참된 진리를 계시로 말씀하시고, 자연, 즉 우주와 인간에 관한 참된 사실도 계시로 말씀하신다.”(51)

 

쉐퍼는 이곳에서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일깨운다. 그것은 바로 모든 문제의 시작이 성경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이며, 상층부와 하층부가 무엇인지 바르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자연과 은총은 두 개의 무엇이 아니었다. 그들은 참된 통일성을 갖고 있었고, 믿음에 근거한 바른 인식은 이러한 통일을 바르게 이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본주의적 신학에 빠져있던 아퀴나스는 하층부에 자율을 부여함으로 상층부를 추방시키는 불행의 씨를 심은 것이다. 종교개혁가들은 인간에게 자율적인 부분이 전혀 없’(52)다고 선언함으로 통일성을 회복시켰다. 진정한 회복은 거기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실재하시고, 인격적인 분이시다. 만물의 창조주이시다. 그리고 만물은 하나님께 돌아간다.’(54) 쉐퍼는 무한하신 하나님과 유한한 인간 사이에 이 있다고 본다. 또한 인간과 다른 피조물들 사이에도 이 존재한다. 종교개혁가들은 은총뿐 아니라 자연도 동일하게 중요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인류는 또다시 급류를 타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간다. 쉐퍼는 초기의 근대 과학 사상 속에서 종교개혁 이전의 왜곡된 자율이 움트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 종교개혁은 근대의 어머니다. 만약 종교개혁이 없었다면 근대는 좀 더 늦추어졌을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의 세계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은 급히 왜곡되어 갔다. 초기 과학자들은 이성적인 우주를 창조하신 이성적인 하나님이 계시고 따라서 인간은 이성을 사용하며 우주의 형상을 발견해 낼 수 있다’(68)는 견해를 견지했다. 그러나 루소와 칸트는 상층부의 문제를 관심 밖의 것으로 팽개쳤다. 자연은 은총을 완전히 삼켰고, 상층부에는 자유만 남겨진다. 그 자유는 구원을 필요로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속박을 받지 않는 자유’(71)이다. 그러나 하층부의 자율이 주도권을 쥐자 하층부가 상층부를 완전히 잠식해 버린다.

 

쉐퍼는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헤겔이 등장하고, 헤겔의 철학이 절망선이라고 선언한다. 임마누엘 칸트가 상층부와 하층부의 통합에 실패하고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면, 헤겔은 정립과 반정립과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진보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왜 이것이 절망으로 떨어지는 시작일까? 하나님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 인간의 우주의 중심에 있고 자율적이라는 것’(83)이다. 그런데 기이하게 희망을 선포한 헤겔이 절망인 것이다. 쉐퍼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절망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지식과 삶에 대한 통일된 해답을 바라던 희망을 포기하는 데서 오는 절망이다. ... 이제까지 인간이 갈망하던 것이 전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절망 가운데 사는 것이다.”(87)

 

그렇다. 더 이상 희망은 없으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절망 가운데 사는 것, 그것이 헤겔이 낳은 네피림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이가 등장한다. 실존주의 아버지, 케에르케고어(1813-1855)가 그 주인공이다. 일부의 학자들은 완고하게 부정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과 필자가 판단하기에 키에르케고어는 실존주의 아버지가 확실하다. 키에르케고어는 절망을 살아가는 당대인들에게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려 있다고 말하고, 절망이란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도약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상층부는 인간의 이성과 이해가 도달할 수 없는 곳이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합리적 이성이란 사다리는 허공에서 끝이 나고 인간은 추락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 도약해야 한다. 도약의 시작은 인간이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도약은 실패한다. 도약은 그 개념 속에 상층부와 하층부 자체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존주의 관점에서 볼 때 상층부와 하층부는 통합이 불가능한 물과 기름일 뿐이다. 쉐퍼는 실존주의가 이성을 버렸다고 주장한다.

 

도약이란 실재이지 결코 도약을 표현한 용어가 아니다. 언어 표현, 즉 상징체계는 변할 수 있다. 그 체계가 종교적이든 비종교적이든 또는 같은 말을 쓰든 다른 말을 쓰든, 그런 것은 부수적이다. 현대인은 도약함으로써 합리성을 떠나고 이성을 떠나, 상층부에서 해답을 찾는 데 열중한다.”(106)

 

5장에서는 예술이 어떻게 상층부로 도약하려는 지 탐색한다. 예술 역시 철학과 다르지 않다. 예술은 도약을 미치는 것’(132)으로 상정한다. 실존주의는 모든 것을 상대화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어머니다. 쉐퍼는 6장에서 신비주의를 다루면서 궁극적으로 통합이 실패했음을 선언한다. 신비주의는 범신론이란 독을 품고 있다. 신비주의를 절대화하는 이들의 일부가 범신론에 빠지는 이유가 바로 그곳에 있다. 신비주의는 상당히 종교적이지만 전혀 종교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그곳에 인격적이고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비주의는 종교적인 양상일 뿐이다. 이에 비해 범신론은 도약을 왜곡시켜 모든 존재를 신격화하는 우상숭배다. 현대적 신비주의는 상층부에 계시는 하나님을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죽은 것과 다름없다. 쉐퍼는 이렇게 말한다.

 

신신학자는 성경에 계시되고 종교 개혁에서 말하는, 유일하고 무한하신 인격적 하나님을 상실했다. 현대적 사고방식을 따르는 자유주의 신학은 대용물로써이라는 단어만을 소유할 뿐이다.”(139)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성경을 떠난 인류는 답을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오직 성경에만 바른 통합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렇게 가르친다. “무한의 면에서 보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되어 있으나, 인격적인 면에서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152) 하나님은 여전히 창조된 세계와 사물에 관심을 갖고 계시며 적극적으로 개입하신다. 하나님은 사람을 기계처럼 다루지 않고 인격적으로 대하신다. 우리가 합리주의가 아니라 합리성을 가지고 성경을 대한다면 상층부의 하나님과 하층부의 피조세계를 통합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잘못 읽지 않았다면 프란시스 쉐퍼가 말하는 이성에서의 도피는 세상을 바르게 보려는 노력으로부터의 도피이다. 쉐퍼의 책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라면 명징함과 난해함이 뒤섞여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로부터 시작하여 현대에 이르는 상층부와 하층부의 개념으로 명쾌하게 구분한다. 과도하게 간소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분리가 아니라 구분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렇다! 성경은 초월적 존재로서 하나님을 소개한다. 하나님에 의해 피조된 세계 역시 존재한다. 인간들은 이것을 은총과 자연, 상층부와 하층부로 구분한다. 인간의 역사는 상층부와 하층부의 통합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의 자율에 무게중심을 두거나, 통합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절망에 빠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율과 자연에 함몰된 그릇된 객관, 비합리적 도약과 불가지론 등이 잘못된 시도들인 것이다.

 

쉐퍼는 인간의 자율이 아니라 성경에 근거한 이성이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하나님은 초월해 계시지만 여전히 살아계시고, 인격적으로 피조 세계에 관여하시고 개입하신다. 이러한 지식은 성경에서만 얻을 수 있다. 성경을 떠난 인간의 노력들은 언제나 실패한다. 쉐퍼는 종교개혁가들의 성경관을 통해 바른 통합 원리를 제시한다. 하나님은 창조주인 동시에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절대 타자이면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시다. 시대가 혼탁하고 어지럽다. 다시 바른 하나님과 세상에 대한 지식을 위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아직 도피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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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약속하신 진짜 복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약속하신 진짜 복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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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믿음, 철학과 신학 철학과 믿음, 철학과 신학
철학, 믿음과 함께 걷다
안영혁/목양/고경태 편집위원


“철학으로 세계를 묻고 믿음으로 다시 보다”, 마치 틸리히(Paul Tillich)의 상관 관계를 말하는 것 같다. 틸리히는 '실존의 물음'과 '신학의 대답'을 추구했다. 그러나 안영혁 박사의 <철학, 믿음과 함께 걷다>는 그런 관계성 유지보다는, 한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 살면서, 신학을 하면서 겪은 철학에 대한 좌충우돌 사고(思考)를 고대철학에서 현대철학까지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안영혁의 <철학, 믿음과 함께 걷다>를 읽으면서, 불현듯 존 프레임의 <서양 철학과 신학의 역사>이...
한약 같이 달여 먹어야 하는 책 한약 같이 달여 먹어야 하는 책
아는 만큼 깊어지는 신앙
송인규/비아토르/문양호 편집위원


송인규 교수님의 책을 그래도 상당히 관심가졌다고 생각했고 꽤 많이 읽어왔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못읽은 것은 그럴수 있다 치더라도 제목도 몰랐던 책이 있었다는 것은 좀 자존심(?)에 금이 간다. 이번에 비아토르에서 개정증보판으로 낸 ‘아는 만큼 깊어지는 신앙’은 시리즈로 기획된 ‘아는 만큼 누리는 예배’의 다음을 잇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십여년 전에 나왔을 때 ‘아는 만큼 누리는 예배’보다는 주목받지는 못했다고 하는데 지금도 좀 그런 면이 있는 듯 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아는 만큼 누리는 예배’를 인상적으로 읽기도 했지만 주...
당신의 교회는 건강하십니까? 당신의 교회는 건강하십니까?
건강한 교회: 교회 건강의 개혁된 실천
도널드 J. 맥네어, 에스더 L. 미크/유정희/개혁된실천사/조정의 편집위원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고, 참석자가 혜택을 얻어가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은사를 가진 사람이 모여 자기 은사로 서로를 섬기는 유기적인 조직이다. 그래서 교회에 컨설팅이 필요하다는 말이 굉장히 모순처럼 느껴진다. 가령 교회가 성경적으로 건전한 교리를 매주 강단을 통해 가르치고 있는지 혹은 배우고 있는지 여부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구체적인 사항으로 가면 더 복잡하다. 성도의 교제가 충분히 친밀하게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무엇을 근거로 판단할 수 있을까? 성도의 영적 성장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나? 보통 컨설팅...
포스트코로나, 위드코로나 시대에서 교회가 선택할 유일한 가치 포스트코로나, 위드코로나 시대에서 교회가 선택할 유일한 가치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리더십, 정의로운 교회
박윤성/글과길/고경태 편집위원


코로나19의 팬데믹 상황에서 교회가 입은 심각한 충격은 성도 숫자 감소보다도 교회에 대한 냉소적인 평가를 넘어서 부정적인 평가이다. 그러한 평가를 받은 요인은 교회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내부에 있다고 우리는 평가해야 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여러 방안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그 만큼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일 것이다.   박윤성 목사(익산기쁨의교회 담임)도 코로나 시대의 리더십을 제언하는데, “정의로운 교회”를 테마로 설정하면서 대안을 제시했다.   저자는 한국 교회에 있는 불공정한 모습을 제시했다...
목회적 관점으로 읽는 에베소서 목회적 관점으로 읽는 에베소서
맥아더 신약 주석 에베소서
존 맥아더/전의우/아바서원/정현욱 편집인


기다렸던 책이 출간되었다. 언젠가는 누가 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지만 막상 손에 넣고 읽어보니 감개무량하다. 존 맥아더 목사는 한국 내에서도 워낙 유명한 저자이기에 필자의 설명이 굳이 필요 없으리라 본다. 그럼에도 몇 가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먼저는 상당히 보수적 성경관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학자다움을 갖춘 목회자라는 점이다. 두 가지의 특징은 존 맥아더의 전부라고 말해도 될 만큼 중요한 부분이다. 매일 성경을 주해하고 설교해야 되는 설교자라면 그 어떤 주석보다 가장 먼저 구입해야 할 책...
소돔과 고모라에 살고 있는 교회에게 소돔과 고모라에 살고 있는 교회에게
신좌파의 성혁명과 성정치화
칼 트루먼/윤석인/부흥과개혁사/조정의 편집위원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됐을까? 소돔과 고모라를 보는 것만 같다. 사적인 미디어 방송에서 동성연애, 트랜스젠더를 다루는 것은 당연하고 공영방송에서도 이제 쉽게 성 혁명의 결과물을 발견한다. 사회 저명한 학자, 강사나 지도자, 정치인들이 하나같이 지금의 시대 정신이 옳고 바른 길로 가는 중이라고 외친다. 대중의 다수가 이 흐름에 동조한다. 군대에서 동성끼리 성관계를 맺은 행위는 무죄, 이를 조사한 행위는 조사받는다. 자기 스스로 여성이라 느끼는 남성 수영선수가 여성 수영대회 상을 휩쓸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데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세상에 닿는 복음 전략 세상에 닿는 복음 전략
탈 기독교 시대 전도
팀 켈러/장성우/두란노/서상진 편집위원


전도..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누구나 전도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80-90년대만 하더라도 전도가 참 잘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교회마다 하는 총동원전도주일이라고 하는 이름하에 그동안 기도하며 사랑을 베풀었던 대상자를 교회로 모시고 와서 복음을 듣게 함으로 결단하게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회적인 분위기, 또한 코로나 펜데믹 이후에는 교회에 관한 말을 세상 속에서 말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교회마다 많은 고민이 있다. 펜데믹 이후에 전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또한 그 방법은 무엇인지에...
설교자의 반성 설교자의 반성
설교자의 인생
임종구/다함/서상진 편집위원


“설교자의 인생” 책 제목이 참 좋다. 이 책의 저자인 임종구 목사는 10여년 전 경산의 한 교회의 모임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 모임에서 자신의 개척 시절의 처절하고 힘들었던 삶을 가감없이 전해주었고, 그런 삶이 자신의 목회의 뿌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됨을 강조했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자기도 그렇게 해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들지만, 그런 삶이 쉽지 않다. 이 세상에 설교에 관한 수많은 세미나가 존재한다. 사람들은 세미나 속에서 방법을 찾고, 강의를 하는 그 사람을 찾지 않는다. 세미나를 하기까지 그가 어떤 삶을 ...
세상이 교회를 비필수적이라고 말할 때, 당신의 대답은 무엇인가? 세상이 교회를 비필수적이라고 말할 때, 당신의 대답은 무엇인가?
교회의 재발견: 왜 그리스도의 몸은 필수적인가
콜린 핸슨, 조너선 리먼/개혁된실천사/조정의 편집위원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미국은 락다운(이동금지명령)과 셧다운(폐쇄 명령)으로 모든 비필수적 모임과 행사, 심지어 사업장 운영 등을 강력하게 통제했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건강 외적인 영역의 위험성을 고려하면서 “필수적”(essential)인 일들에 한하여 규제를 완화했다. 이런 정책의 전환은 대한민국에서도 유사하게 이루어졌다. 문제는 국가가 교회를 ‘필수적’이지 않다고 규정하고 모이기를 폐하도록 요구했다는 것이다.참 교회는 스스로 ‘필수적’이지 않다고 인정할 수 없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하나님...
성경이 말하는 영적 전쟁, 성경이 말하는 대로 싸워라 성경이 말하는 영적 전쟁, 성경이 말하는 대로 싸워라
일상의 영적 전쟁: 매일의 영적 전쟁에서 어떻게 굳건히 설 것인가
데이비드 폴리슨/권명지/토기장이/조정의 편집위원


<일상의 영적 전쟁: Standing Firm in Spiritual Battles>이란 제목을 봤을 때, 그리스도인의 성화, 영적 전쟁을 다룬 책이라고 생각했다. 죄인이 거듭나 옛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 과정, 육체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성령의 소욕을 따라 성령의 열매를 맺을 때 육체와 세상과 마귀와 맞서 싸우는 과정을 다룬 책이라 생각했다. 부제인 “매일의 영적 전쟁에서 어떻게 굳건히 설 것인가”도 저자인 데이비드 폴리슨이 발전시킨 성경적 상담학의 주요 주제인 신자의 영적 성장과 관련된 책이란 걸 말해준다. 추천인...
변한 세상, 변함 없는 복음, 어떻게 전파할까? 변한 세상, 변함 없는 복음, 어떻게 전파할까?
탈기독교 시대 전도: 세상에 닿는 복음 전략
팀 켈러/장성우/두란노/조정의 편집위원


지금까지 진정한 의미에서 기독교 시대는 없었다. 타락과 부패가 만연한 세상은 기독교가 추구하는 세상이 아니다. 교회가 기다리는 세상은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온전히 실현되고 악이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세상(새 하늘과 새 땅)이다. 어떤 사람은 중세 시대 교회와 정부가 결탁했을 때 기독교인이 세상을 지배한 것이 아니냐고 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기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만행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다). 참된 기독교의 특징은 회심이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성령의 능력을 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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